13화. 이별 여행
“무슨 일이죠?”
어머니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나를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민정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손가방을 열어서, 어머니가 건네주었던 비행기 티켓을 다시 밀어 놓는다.
“무슨 뜻이죠?”
“떠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식으로 윤호를 떠난다면, 정말 윤호 돈 때문에 만난 거 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알아서 윤호 놓아주겠습니다. 생각 많이 해봤는데, 정말 제가 윤호 앞길 막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정말 윤호가 미국에 가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제가 놓아줘야 할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이렇게 행동하신다면, 제 사랑이 이상하게 변질되잖아요.”
“고집이 센 아가씨군.”
어미나가 비행기 티켓을 다시 민다.
“헤어지지 않아도 줄 거였어.”
“네?”
“강제로 끌고 갔으면 됐으니까.”
어머니가 살짝 미소를 짓는다.
“나도 그랬어요.”
“?”
“나도 어머니 반대를 받고 결혼을 했었지. 그리고 지금은 엄청 후회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어머니가 나를 이해 못 해주시니까. 그리고 나도 당신 이해해 줄 사람이 못 돼요. 나도 속물이 다 되었죠.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서로 맞지 않고, 계속 문제가 생길 거라면 당신과 윤호가 헤어지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일로, 윤호 아빠는 집안에서 쫓겨났어요. 그리고 나는 윤호도 집안에서 쫓겨나는 꼴은 못 봐요. 그나마 윤호는 할아버지께 귀염을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넓게 이해하고 윤호 좋은 마음으로 보내줘요, 분명 당신이 원하는 것 처럼 윤호는 그 곳에서 잘 지낼 거예요. 정말 당당하게, 뉴스에서 윤호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할 거예요. 지금은 윤호에게 커피 핑계로 데려가지만, 사실은 경영학 수업을 시킬 거예요. 지금 윤호 아빠가 하는 그룹을 이어 받게 할 거죠. 그러니까, 사랑하는 마음도,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도, 그냥 없애 줘요. 그 마음 계속 지니고 있으면, 혼자 아프니까요. 부탁할게요. 그렇게 윤호를 잊어두는 게, 윤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고, 민정씨에게도 도움이 될 거에요. 괜히 마음 아플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냥 윤호 마음에서 깨끗하게 지워주었으면 해요. 어차피 헤어진다고 했으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네요. 민정씨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할 거라고 믿어요. 민정 씨는 윤호와는 달리 어른이니까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민정이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 말씀대로 하기로 했어요.”
민정이 빙긋이 웃는다.
“그런데 지금 바로 마음을 지우지는 못하겠어요. 그리고 그 일은 저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지만, 윤호에 대해서도 모독이니까, 그 동안 우리가 지녀왔던 그 시간들에 대한 잘못이니까요. 잠시만, 정말 잠시만이라도 윤호 더 사랑하면 안 될까요? 부탁드릴게요. 어머니. 잠시만 저 혼자서라도 윤호 마음에 더 두고 있을게요. 그냥 혼자서만 마음을 두고 있을게요, 윤호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메몰차게 돌아설게요. 그냥, 그냥 마음 속에만 두고 있게 해주세요.”
“알았어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꼭 잊어줘요.”
“네.”
어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해요.”
“아.”
“이런 식으로 만나서 정말 슬프지만.”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여보세요?”
“나야.”
“어, 당신 무슨 일이야?”
“여행가자고.”
“여행?”
윤호가 미소를 짓는다.
“당신이 어쩐 일이야?”
“가기 싫어?”
“아니죠.”
윤호가 싱긋 웃는다.
“언제요?”
“오늘.”
“오늘요?”
“갑자기 웬 여행이에요?”
“우리 여행간 적 없잖아.”
“그렇긴 해도.”
윤호는 민정의 짐을 보고, 입을 떡 벌린다.
“짐이 너무 많잖아.”
“그런가?”
민정이 짐 위에 앉아서, 짐을 꾹꾹 누른다.
“당신, 거기 가서 살기라도 하려고?”
“일주일동안 다녀올거니까.”
“일주일?”
윤호의 눈이 동그래진다.
“왜?”
“아니, 당신 답지 않아서.”
“나 다운 게 뭔데?”
“미리 준비 다하고, 그러는 게, 당신 다운 거잖아.”
“피.”
민정이 싱긋 웃는다.
“그래서 가기 싫어?”
“나 아무 것도 준비 못했는데?”
“됐거든. 내가 당신 거 다 준비했어.”
민정이 뒤에서 가방 하나를 더 꺼낸다.
“어?”
“당신 옷들이야.”
“당신이 내 사이즈 어떻게 알고?”
“지난 번에 당신이 내 옷 못 입겠다는 거 보고 알았지. 그리고 내가 당신 안아봤었는데, 당신 사이즈도 모를까봐?”
민정이 싱그럽게 웃었다.
“그럼 나는 뭐 준비해?”
“그냥 이 가방들이나 들고 오시면 됩니다.”
“지금 가는 거야?”
“그럼.”
민정이 밝게 웃으며 집을 나섰다.
“빨리 와.”
“가, 같이가!”
윤호도 허겁지겁 민정을 따라간다.
“그런데요. 어머니.”
“응?”
“마지막으로 여행 한 번만 다녀올게요.”
“!”
“부탁드립니다.”
민정이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수작 같은 거 부리려는 거 아니에요. 다만 우리 사이에 너무 추억이 없으니까, 하나의 추억이라도 더 만들고 싶어서 가는 거에요. 그래도 제가 윤호의 첫사랑이고, 첫 번째 여자인데 윤호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두고 싶어요. 흔히들 남자는 첫사랑 죽을 때 까지 못 잊는다고 하는데, 윤호가 저 못 있고 생각할 때, 그 기억이 좋은 기억이었으면 해요. 윤호 미련 없이 거기서 보낼게요. 하지만 딱 일주일만 윤호와 제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알겠어요.”
어머니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주일이에요.”
“네.”
“더 이상은 안 돼요.”
“네.”
“나는 내 아들을 알아요.”
어머니가 창 밖을 바라보았다.
“민정 씨가 그 이상을 붙잡아두면 흔들릴 거라는 걸.”
“저도 알아요.”
“그러니 부탁해요.”
“네.”
“고마워요.”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이런 모진 사람도 이해해줘서.”
“제가 어머니여도 그랬을 거예요.”
민정이 싱긋 웃었다.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이니까.”
“이해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행복하겠죠?”
“그럴 겁니다.”
“성공 하겠죠?”
“그렇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까 보내요.”
“!”
어머니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게 윤호를 위해서 더 좋은 길이니까 보내요. 어머니가 꼭 윤호 성공시켜주셔야 해요. 제가 후회되지 않도록.”
“약속하죠.”
“감사해요.”
민정이 싱긋 웃었다.
“그러면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하아.”
민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안녕. 안녕.”
이제 안녕인건가?
“하아.”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같은데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서로 사랑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산을 만났다. 모든 게 쉽게 풀어질 것 같으면서도 계속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련이 없다. 더 이상 억지를 부리기도 싫다. 이게 윤호를 위한 거니까. 윤호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 당연히 보내주는 것이다. 윤호가 행복해질 수 없다면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확답을 내리시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가 계신데, 민정이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듯 싶었다. 게다가 그 동안 윤호가 부모님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니, 이제 그 갈등도 해소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정은 그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 자신이 윤호를 버리고, 그 윤호의 아픔을 부모가 감싸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더 모질게 윤호를 버리기로 결심을 했다. 윤호가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고, 자신을 정말 미워하게 되고, 더 큰 상처를 받아서, 결국에는 자신의 어머니의 품으로 들어가서, 그 동안 누리지 못했던 자식으로써의 행복도 누리고, 어리광도 부리고, 결국은 윤호가 성공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민정은 윤호를 흔쾌히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확신이 없다면, 정말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민정의 마음은 여태까지 윤호를 만나왔던 그 어떤 순간보다 편안하다. 한숨이 나오고 자꾸 눈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런 고통보다는 윤호의 오랜 행복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짧은 슬픔이 윤호의 앞길을 막는다면, 그 일이 더 고통스럽고 숨이 막히고, 후회가 되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윤호를 위해서 자신이 떠나서, 윤호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니, 민정은 마음이 놓이고, 또 놓이고, 다시 놓인다.
“하아.”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에게 추억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커다란 추억도 없다.
“이별 여행.”
이번 여행은 꼭 행복하게 보내야 할 것 같다.
“하아.”
민정이 눈물을 닦고 씩씩하게 걸었다.
“회장님.”
“왜?”
비서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도련님을 보낼까요?”
“응.”
어머니는 확신을 가졌다.
“분명해.”
“어떻게.”
“눈을 봤어.”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네?”
“하아.”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 눈 진심이었는데.”
“네?”
“정말 윤호를 좋아하나봐.”
“!”
“그걸 아는데 꼭 헤어지게 해야하는지.”
“하지만.”
어머니가 미소를 짓는다.
“알아, 우리 남편 때문이라는 거.”
“네.”
“그런데 말이야.”
“?”
“어미로써 내가 너무 잔인한 것 같아.”
“!”
“그래서 후회돼.”
“회장님.”
“이럴 때는 나도 그냥 엄마이고 싶다.”
“!”
“아들 뜻 그냥 따라주는 평범한 엄마이고 싶어. 아들 여자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고,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그런 엄마 말이야. 나는 윤호에게 단 한 번도 진짜 엄마인 적이 없어. 항상 윤호의 숨통을 조여오는 역할만 맡았아. 나도 이제는 그런 역할이 천천히 지겹고, 무서워져 가. 이러다가 영영 윤호와 내 사이가 회복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회장님.”
“우리도 가자고.”
“그래도 여행은.”
“사고라도 칠까봐?”
“네.”
비서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게 뭐 어때서?”
“네?”
“차라리 사고라도 쳤으면 좋겠어.”
“?”
“두 사람 잘 어울리니까.”
“?”
“그 때는 우리 남편도 어쩔 수 없을테니까.”
“회장님!”
“남편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마요.”
“네.”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거기에 아무도 붙이지 마.”
“!”
비서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알아.”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남편이 사람 붙였다는 거.”
“아시는 분이.”
“아니까 그래.”
“네?”
“마지막 여행이라잖아.”
“네.”
“그러니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아야지.”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내 선물이니까.”
“네.”
비서가 가만히 머리를 조아렸다.
“나도 이럴 때는 엄마 같지?”
“네.”
“하아. 슬프네.”
어머니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엄마는 무엇일까?”
“회장님.”
“그래, 가자.”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회장님.”
“어?”
“정말 믿을 수 있을까요?”
“물론.”
어머니가 비서의 옆구리를 찔렀다.
“내 안목을 무시하는 거야?”
“아닙니다.”
“훗.”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잘 지낼꺼야. 그 사람이라면 그래 줄꺼야.”
“하지만.”
“더 이상 하지마.”
어머니가 방을 벗어났다.
“아무런 간섭도 말고.”
“네.”
“어서 가자고.”
“네.”
비서가 황급히 따라간다.
“흐윽.”
혼자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미안, 미안.”
이별, 혼자서 생각하는 이별도 이렇게 슬플 줄이야.
“무슨 생각해요?”
“어?”
“무슨 생각하냐고요.”
“아, 아무 것도 아니야.”
민정이 싱긋 웃는다.
“기분 너무 좋다.”
“그러니까요.”
윤호가 운전석에 앉는다.
“어디로 갈꺼예요?”
“부산.”
“부산이요?”
윤호가 시계를 본다.
“너무 늦었는 걸요?”
“그러니까 차가 안 막힐 거 아냐.”
“네.”
윤호가 싱긋 웃는다.
“당신 말 들을게요.”
“고마워.”
민정이 싱긋 웃었다.
“가자!”
“우와!”
차에서 내리자마자 민정이 기지개를 폈다.
“피곤하죠?”
“네가 더 피곤하지.”
민정이 싱긋 웃는다. 민정이 빨리 가고 싶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휴게소에서 들러 잠도 자지 못하고, 그냥 운전을 한 윤호다.
“미안.”
“당신이 뭐가 미안해.”
아직까지는 어색한지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서 쓰는 윤호다.
“우리 밥부터 먹을까?”
“당신 뭐 먹고 싶어?”
윤호가 겉옷을 벗어서 민정을 덮어준다.
“고마워.”
“조금 쌀살하다.”
“우리 따뜻한 거 먹을까?”
“따뜻한 거?”
윤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뭐, 먹고 싶은데?”
“모르겠다.”
“그럼 우리 회 먹자.”
“회?”
민정이 인상을 찌푸린다.
“왜?”
“여름 회는 몸에 안 좋다잖아.”
“킥, 괜찮아.”
윤호가 민정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여름에만 먹는 생선도 있어.”
“진짜?”
“그럼.”
윤호가 싱긋 웃는다.
“그러니까 회 먹으러 가자.”
“흠.”
“가면 매운탕도 줘.”
“정말?”
민정의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응.”
“오케이.”
민정이 윤호의 팔장을 낀다.
“가자.”
“그래.”
“맛있다.”
“그지?”
“응.”
민정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동안 우리는 왜 이런 거 안 했지?”
“그러게 말이야.”
윤호가 민정을 뚫여저라 본다.
“왜 그래? 느끼하게.”
“사랑해.”
“킥.”
민정이 미소를 지으면서 소주를 들이킨다.
“당신은 아니야?”
“나도 당연히 사랑하지.”
윤호가 싱긋 웃는다.
“나는 당신이 정말 좋아.”
윤호가 민정의 손을 잡는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윤호야.”
“당신, 나랑 결혼하자.”
“!”
민정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왜?”
“좋아서.”
민정이 싱긋 웃는다.
“나도 이런 거를 다 받아보네.”
“그럼 내가 안 할 줄 알았어요?”
“그러게 말이야.”
민정이 다시 소주를 들이킨다.
“너무 좋다.”
“진짜?”
“응.”
민정이 윤호를 꼭 끌어 안는다.
“사랑해.”
“나도.”
“정말 사랑해.”
“킥.”
윤호가 웃음을 터뜨린다.
“취했나봐?”
“그러니까.”
민정이 싱긋 웃는다.
“당신 정말 취했어.”
“그런가?”
민정이 계속 술을 들이킨다.
“그, 그만 마셔!”
윤호가 냉큼 소주잔을 빼앗는다.
“왜?”
민정이 다시 그 술잔을 빼앗는다.
“오늘따라 간만에 술이 좀 받는데.”
“그래도.”
“괜찮아.”
민정이 마지막 한방울까지 마신다.
“이제 일어나자.”
“그래, 지금 가면 서울 가겠다.”
“서울?”
민정이 인상을 찌푸린다.
“오늘 자고 간다니까.”
“뭐?”
윤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장난하지마.”
“장난 아닌데.”
민정이 혀를 살짝 내민다.
“자기가 먼저 씻을래?”
“당신, 너무 많이 취했어. 그냥 자.”
윤호가 웃으며 민정을 눕힌다.
“당신 내가 싫어?”
“싫기는.”
윤호가 싱긋 웃는다.
“너무 예뻐서 지금도 심장이 마구마구 두근거리는 걸?”
“그런데 왜 아무 것도 안해?”
윤호의 얼굴이 붉어진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킥.”
“자.”
윤호가 민정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이제 밤은 쌀쌀하다.”
“자기는 어디서 자게?”
윤호가 고개짓으로 소파를 가리킨다.
“저기서?”
“응.”
“불편하잖아?”
“괜찮아.”
윤호가 민정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잘 자.”
“응.”
“자.”
“어.”
“불 끈다.”
“응.”
윤호가 불을 껐다. 별빛이 방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자?”
“아니.”
“너무 좋다.”
“응.”
민정은 마음이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 내일은 뭐할까?”
“글쎄다. 모르겠다.”
민정이 싱긋 웃는다.
“자기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럼, 내일은 수영하자.”
“좋아.”
민정이 싱긋 웃는다.
“자.”
“응.”
윤호가 눈을 감는다.
“하아.”
민정이 한숨을 쉰다.
“미안. 미안.”
민정의 눈에서 이슬이 떨어진다.
“음.”
윤호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하암.”
햇살이 기분좋게 윤호의 몸을 감쌌다.
“당신. 어?”
침대에 아무도 없다.
“어디 갔지?”
윤호가 욕실문을 열었다.
“어?”
어디 간 거야? 마트라도 갔나?
윤호가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를 여는 순간, 문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
그리고 그 것을 읽는 윤호의 얼굴이 굳었다.
“다, 당신!”
“미안.”
민정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나는 항상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여자인가봐.”
민정이 부지런히 펜을 놀렸다.
‘나, 이제 네 곁을 떠날래. 너, 내가 있으면 힘들잖아. 그러니까, 이제 내가 너를 보내줄게. 아니, 내가 너를 찬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내가 찬 거니까, 다시는 내 생각 하지 말고, 네 앞길만 생각해. 그래서 보기 좋게 나를 내려다봐줘. 그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하아.”
선제가 종이를 구겨버린다.
“바보. 바보.”
윤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바보.”
“서울 가는 표 한 장이요.”
민정이 돈을 치룬다.
“그래, 잘 하는 거야.”
민정이 고개를 숙인다.
“하아.”
“안 돼! 안 돼!”
윤호가 악을 쓰며, 자동차를 터미널로 몬다.
“제발, 가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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