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AM 7:42 [완]

AM 7:42 - [아홉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 9. 20:20
 




AM 7:42




9화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나 본 적 있죠?”


“네.”


채경의 어머니다.


“이런 곳 까지 어쩐 일로 오셨나요?”

“잠깐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진호는 태균을 바라본다. 태균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같이 가시죠.”


“그러죠.”




“차 나왔습니다.”

“드시죠.”


그녀가 조심스럽게 녹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진호를 바라본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

“네.”

“먼저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채경의 엄마가 명함을 내민다.


대기업의 회장님이라니.


“아.”

“채경인 이런 나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에요.”

“네.”

게다가 채경은 그런 회장님의 외동딸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간지러운 이야기 하는 거 못 해요. 이런 일을 애 아빠가 해줬으면 싶지만, 그이는 이런 일에 관심이 없으니까.”

말을 하면서, 그녀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냈다.


“내가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어요.”


“!”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동생과, 대학에 다녀야 하는 그 쪽이더군요. 부모는 안 계시고, 그래서 한 가지 조건을 걸고자 합니다.”


“조건이요?”

“그래요.”


여자가 심호흡을 했다.


“내가 모든 학비를 대겠어요.”


“!”

“대신 우리 채경이에게서 떨어져요.”


“!”

진호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난한 구두닦이가 잘나가는 대기업의 무남독녀 외동딸에, 젊은 나이에 실장까지 오른 여자와 사귄다면, 뭐겠어요? 뻔한 거 아닌가요? 단지, 돈! 그거 하나만 보고 사귀는 거 아니냐는 말입니다.”

“하.”

진호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왜요? 너무 정곡을 찔렀나보죠?”


“저는 그 사람이 팀장인 지도 모르고 사귄 겁니다.”


“어디서 그런 뻔한 거짓말을!”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진호를 노려본다.


“더 이상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 겁니까?”


“!”

“우리 채경이 나처럼 만들 수는 없어요. 헤어져 줘요.”


“부탁입니다.”

진호는 무릎을 꿇는다.


“지,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이제 저는 그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어서 일어나요!”


그녀가 억지로 진호의 팔을 잡아 끈다.


“그렇게 지저분하게 매달리지 말아요. 바뀌는 사실은 없으니.”

“하지만.”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군요.”

그녀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나 말 길게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어차피 나는 두 사람 헤어지게 만들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죠.”

“!”


“그래서 제가 기회를 주는 겁니다.”

“기회요?”


“그래요, 기회. 무언가라도 얻고, 헤어지느냐! 아니면 말 그대로 개처럼 끌려서 헤어짐을 당하느냐.”

“개처럼.”

진호는 살면서 이토록 큰 모욕은 당한 적이 없다.


“말씀이 너무 심하시군요.”


“더 심하게 말해줄 까요?”

“!”

“솔직히 나 당신을 아무도 모르게 죽일 능력 정도는 되는 사람이에요.”


“좋으시겠군요.”


“네 좋아요. 편해요. 당신에게는 이런 내가 속물로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당신들처럼.”

그녀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진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구질구질하고 냄새나는 사람들하고는 차원이 틀리다고요. 말 그대로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하.”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럼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제 제안을 거절하는 겁니까?”


“네.”

진호는 명확히 대답했다.


“그런 돈 받을 수 없습니다.”


“후회할 일이 생겨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명심하죠.”

진호는 가게를 벗어났다.


“하아.”

여자는 머리를 받쳤다.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은 놈이야.”


그녀의 눈이 빛났다.




“하아.”

진호가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다.


“개?”


자신이 그토록 부족해 보이는 건가? 개라, 진호는 자신의 직업이 그렇게 무시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여태까지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직업을 탓해본 적도 없고, 천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항상 자신의 직업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당당했고 숨긴 적도 없었다.


“도대체 왜.”

단순히 구두닦이라는 게 이토록 문제가 될 성 싶다.


“하아.”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진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 누구도 진호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진호는 더 힘이 들다.




“늦었네?”

“어? 진희야.”

여동생을 보니 더 가슴이 뭉클해지는 진호다.


“진희야 지금 바빠?”


“아니? 무슨 일 있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이야기?”

진희가 바로 읽던 책을 덮어두고, 진호의 앞에 와서 앉는다.


“무슨 이야긴데?”


“그냥 별 아닌 이야긴데, 들어줄 수 있어?”

“응.”


진희가 진호를 바라본다.


“이야기 해 봐.”




“설마, 그거 오빠 얘기 아니지?”


“어?”

“아니지?”


진희의 말에 진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오빠! 진짜 오빠 이야기인 거야?”

진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진희가 진호의 가슴을 두드린다.


“나에게는 언제나 이렇게 든든한 가슴이었던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대우를 받아! 어! 당장 헤어져! 헤어지라고.”


“나도 머리에서는 자꾸 헤어지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자꾸 헤어지지 말라고 그런다. 헤어지고 싶은데 그러지 말래.”

“하.”

진희가 진호를 안는다.


“우리 오빠 어떡하니? 응?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떡하니?”

“나는 이런 일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다.”

“오빠.”


“그런데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다. 너무나도 평범한 구두닦이인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힘들어 하지마. 내가 있잖아. 응? 오빠, 힘들어 하지마.”

진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우리 오빠 힘들게 하는 사람들 내가 다 가만 안 둬. 절대로.”


“진희야, 고마워.”

“오빠 왜 이렇게 바보 같니? 왜 이렇게 착하기만 하니.”


“그런가?”

“조금은 독해야 할 거 아니야. 세상을 살아가려면.”

“하.”

“바보.”




“일이 쉽지 않을 거 같아.”


“네.”

“그 사람의 여동생이라는 아이. 잡아 와.”


“하, 하지만!”

“내가 시키면 시킨 대로 해!”

“네.”


“우리 채경이는 내가 지킬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빠 이제 자. 내일도 일 해야 하잖아.”


“응.”

진희가 다시 한 번 진호의 등을 토닥여 준다.


“우리 오빠. 사랑해.”

“나도.”

남매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시간 나면 어디 놀러 가자.”


“응.”




“오빠, 나 이번 주 주번이라서 일찍 나가야 해.”


“그래?”

토스트를 만들던 진호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잠깐만 기다려.”

“나 지금 바쁜데!”

진희는 운동화를 신으면서 대답하느라 진땀이 난다.


“잠깐!”


진호가 쟁반에 우유 한 잔과 토스트 한 개를 받쳐서 진희에게 가져 온다.


“이거 먹고 가.”

“하여간 오빠는 엄마 같다니까.”

진희가 미소를 짓더니, 우유를 원샷한다.


“빵은 물고 가면 되니까. 다녀올게.”

“그래.”

진희가 미소를 지으면서 집을 나섰다.


“이제 나도 준비해 볼까?”

진호는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읏차.”

진희가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있는 데 갑자기 앞으로 그림자가 나타난다.


“?”

고개를 돌리는 진희의 표정에 두려움이 나타난다.


“누, 누구세요?”




“너 요즘 연애 사업이 너무 힘드나보다.”

“미안.”

벌써 일주일 째 혼자 남아서 일을 하는 태균이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


“그래 어떻게 되었어?”


“뭐가?”

“그 사모님 말이야.”


“그냥,”

진호가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너 채경 씨에게 말 안 했지?”


“말 해서 뭐하냐?”


“그래도.”


“됐네요.”


진호는 미소를 지으며 도구들을 정리한다.


“너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다.”


“뭐가?”

“채경 씨가 서운해 하지 않을까?”

“서운해 한다고?”


“그렇지 인마. 그래도 애인인데 그런 건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진호는 복잡한 건 질색이다.


“됐다. 됐어. 그냥 편하게 살란다.”


“하여간 물러 터진 놈.”

태균은 고개를 젓는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뭘 어떻게 해?”


“헤어, 질 거야?”


태균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내가 왜?”

“정말?”


“그래.”

진호는 미소를 짓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헤어지냐.”


“그래, 조금은 강진호스럽다.”

태균이 미소를 지으며 진호의 어깨를 두드린다.


“킥.”

‘따르릉’


“잠깐만.”


진호는 휴대전화 액정을 보았다.


‘진희 담임 선생님’


“?”

 

진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 순간 태균은 진호의 얼굴이 굳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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