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AM 7:42 [완]

AM 7:42 <열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 10. 20:00
 





AM 7:42




10화


당신이라는 사람 때문에, 내 가족이 너무 아파해요.




“하아.”

전화를 끊은 진호는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무슨 일이야?”

“진희가 학교를 안 갔대.”

“!”

“분명 아침에 나간 애가 학교를 안 갔대.”


“지각 아니야?”

진호가 고개를 젓는다.


“지금이 몇 신데.”

“그럼 애가 도대체 어디를 간 거야?”

그 때 진호의 머리를 스치는 채경의 엄마의 한 마디.


‘후화할 일이 생겨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하, 그런 의미였나?

“왜?”


“누가 그랬는 지 대충은 알 거 같아.”


“뭐?”

“아마도 맞을 거야.”

진호가 명함을 꺼냈다.


“아마도 맞을 거야. 분명해.”




“회장님, 강진호 씨 전화입니다.”

“후후, 눈치가 그렇게 느린 사람은 아니군. 연결해.”

“네.”


정수는 여유럽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강진호입니다.”

“아, 그게 누구더라?”


“어제 만난 그 청년입니다.”

“아, 그 구질구질했던 청년. 기억나지. 얼마나 구질구질했는데, 호호호.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셨나?”


“제 동생 데려가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나는 모르겠는 걸.”

정수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 쪽에서 먼저 나의 방식의 거래를 거부했으니, 또 다른 나의 방식으로 거래를 해봐야 하지 않겠어?”


“그거 납치라고요!”

“나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봐요!”

“채경이랑 헤어질 건가?”

“!”

“왜 대답을 못 하지?”

정수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동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정말 데려가셨군요.”

“그렇다면?”

“당장 돌려주십시오.”


“싫다면?”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내가 왜 이러는 지 몰라서 묻는 거야?”


정수의 표정이 굳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사는 거야.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했어. 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너는 너무 위험한 상대와 연애를 즐기고 있던 거였어. 그리고 너는 그 충고마저도 거절한 거지. 그런 너에게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아니던가?”

“제발.”

“제발?”


정수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제발이라는 거지?”


“진희는 돌려주십시오.”

“분명히 말했지만, 우리 채경이와 헤어지지 않는 한, 나도 잘 모르겠군.”

“헤어지겠습니다.”


“뭐?”

“헤어지겠다고요.”


“아.”

정수의 입에 미소가 떠올랐다.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뭐 이렇게 튕겨? 그러니까 돈도 못 받고 이런 험한 꼴 당하는 거잖아.”

“언제 돌려주실 겁니까?”

“금방 집 앞에 던지러 갈 거야.”

“!”


“그럼 이제 서로의 용건은 모두 끝난 건가?”


“그렇군요.”

“다시는 그 쪽의 더럽고 천한 목소리 듣지 않았으면 싶어. 알았지?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저도 그 쪽과 통화하고 싶은 마음, 단 한치도 없습니다.”

“후후후, 그거 참 잘 되었군.”

정수의 눈이 차갑게 빛난다.


“앞으로 우리 채경이 앞에 보이지도 마.”


“명심하죠.”




“하.”

“누구야?”


“그 사람 어머니.”


“뭐?”

태균은 기가 막히다.


“그 사람이 데리고 간 거야?”


“응.”

진호는 채경이 이 정도의 사람이었는 지 싶다. 정말 대단하다.


“그래, 어떻게 하래?”

“헤어지라지 뭐.”


“하.”

태균은 자신의 일도 아닌데 화를 낸다.


“그래서 너는 헤어진다고 했고?”

“그러면 어떡하냐? 우리 진희 데려갔는데.”

“바보같은 놈.”


“하아.”

그래도 다행이다. 다행이다.




“여보세요?”


“나에요.”

“어쩐 일이에요?”


“지금 좀 만나요.”


“지금요?”

채경이 시계를 본다. 이제 열한 시를 조금 넘는 시간이다.


“이르지 않아요?”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요?”


“네.”


“알았어요.”

“지난 번에 갔던 그 카페로 오세요.”

“네.”

전화를 끊고 채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지?”

평상시의 진호와 너무나도 다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채경은 조금 두려워진다.


“설마?”

채경은 재빨리 외투를 걸친다.


“나 잠시 다녀올게.”

“어디 가세요?”


“몰라. 그 사람이 잠시만 나오래.”

“아.”


“금방 올게.”


“네.”

채경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흠.”


아무리 고민해도 그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만나자고 한 거야?”


“응.”

“정말 헤어지려고?”

“나 내가 힘든 건 괜찮아도, 우리 진희가 힘든 거는 못 참아.”

“야!”

“어쩔 수 없잖아?”

진호가 힘겹게 미소를 짓는다.


“나랑 채경 씨는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걸.”

“하지만.”


“괜찮아.”

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녀올게.”

“진호야!”

진호는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금방 돌아올게.”

“힘들어 하지 마라.”


“응.”



“오래 기다렸어요?”

“앉아요.”

“아, 네.”

차가운 진호.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우리 헤어져요.”

“네?”


채경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 이야기라면 진작에 모두 해결 본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네?”


진호는 차분하다.


“해결 못 봤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 헤어져요.”


“이유가 뭐에요.”

“이유요?”

진호가 쓸쓸히 말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 걸요.”

“진호 씨!”

“당신 때문에 우리 가족이 너무 아파요.”

“!”

채경의 눈이 동그래진다.

“설마. 우리 엄마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신 거예요?”

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맞구나?”

“맞던 틀리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 중요해요.”

채경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는 진호 씨 놓칠 수가 없어요.”

“나는 채경 씨 잡을 수가 없어요.”


“진호 씨!”

“채경 씨 좋아해요. 하지만 더 이상 힘들어지기는 싫어요.”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에요.”

진호는 미소를 짓는다.


“채경 씨는 쉽게 생각이 되겠죠?”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요. 맞아요.”

“하.”

“채경 씨는 내 입장이 아니어서 몰라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요.”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채경의 손을 잡았다.


“나도 채경 씨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건 알아요. 사랑이 뭔지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런데요?”


“그렇지만, 채경 씨의 어머니는 그런 분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채경 씨와 헤어지려는 거예요.”

“나랑 사귀는 데, 왜 엄마를 끌어들여요.”

“채경 씨 어머니 때문에 힘드니까.”

“하.”

 

채경은 답답하다.


“진심이에요?”

“농담으로 보여요?”

“엄마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진호 씨!”


“나한테 동생 하나 있는 거 알죠?”

“네.”

채경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설마?”

 

채경이 자신의 입을 막는다.


“납치해가셨어요.”

“!”

“나도 참 신기해요.”

 

진호가 낮게 쿡쿡하고 웃었다.


“나 정말 별 볼 일 없는 놈인데요.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고 나서, 신분이 조금은 상승된 모양이에요. 겪어보지 못한 여러 일들도 겪어보고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채경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아니에요.”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채경 씨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아니, 다 내가 잘못했어요. 우리 엄마 못 말린 거 내가 다 잘못한 거예요. 진호 씨 힘들게해서 너무 미안해요. 다 내가 미안해요.”


“채경 씨.”


“그런데 나 어떡해요?”


“뭐가요?”

“나 이미 진호 씨가 너무 익숙해져버렸는데.”

채경의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린다.


“나 이제 진호 씨 없이는 살 자신이 없어요.”

 

“채경 씨.”

“반드시 헤어져야만 하는 거예요?”

 

“약속 했어요.”


“하지만.”


“여동생과 바꾼 거예요.”

“말도 안 돼요.”

“그러게 말이에요.”

 

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조금은 무서워졌어요.”


“내가 우리 엄마 만나서 얘기해볼 게요.”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하지만.”

“어차피 헤어지기로 했으니까.”

“하.”


“그러니까 상관 없는 거예요. 우리 헤어져요.”

“제발요.”

“나도 부탁이에요.”

진호가 채경의 손을 꼭 잡는다.


“사랑했어요.”

“진호 씨.”

“나 먼저 갈게요.”

 

진호가 조심스럽게 채경의 손을 놓는다.


“가게 너무 오래비웠거든요.”


“가지 말아요.”

 

진호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가볼게요.”


“진호 씨!”

진호는 등을 보이더니, 천천히 멀어져 갔다.


“하.”

 

채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도저히 용서할 방법이 없다.


“하.”

자신의 엄마는 너무 잔인한 방법을 썼다.


“용서 못 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엄마.”

채경은 가방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이건 아니야.”


채경이 거칠게 시동을 건다.


“정말 이건 아니야.”


그 순간 채경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읍, 읍!”

“조용히 안 해?”

윽박. 진희는 다시 조용해졌다.


“어떡하죠?”


“사모님이 그냥 얌전히 내려놓으라고 했으니.”

 

하지만 사내는 아쉬운 듯 진희를 바라본다.


“몸도 딱 알맞게 여문 것 같은데.”


“!”

 

진희는 두려움으로 온몸이 떨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사모님이 말한 일을 들어야해.”


“그러게 말입니다.”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너는 운 좋은 줄 알아라.”

“으,”

 

“여긴가?”


“네.”

 

사내는 문을 열더니 우악스럽게 채경을 밀어던졌다.


“아!”


“앞으로 조용히 살아라.”

‘부웅’


차가 사라지고 진희는 조심스럽게 벽에 기대 앉았다.


“흐윽.”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오빠.”

오빠가 보고 싶다. 언제나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오빠, 어딨어? 나쁜 놈들 좀 때려 줘. 오빠. 오빠.”

 

진희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진희야.”


진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오빠!”

“진희야.”

진희는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괜찮아.”

 

“오빠, 나 무서웠어.”

진희가 진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린다.


“나 다시는 오빠 못 보는 거 아닌가 너무 무서웠어.”

“그래, 미안해. 오빠가 다 미안해.”

“오빠.”

“다시는 그런 일 안 생기게 할게. 미안해.”

“흑.”

진호는 진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동생 얼마나 놀랐을까.”

진호는 진희의 등을 토닥였다. 진희는 천천히 진정했다.


“다신, 다시는 이런 일 안 생기게 할게. 알았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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