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AM 7:42 [완]

AM 7:42 <7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 7. 20:10
 




AM 7:42




7화


엄마랑 나랑은 달라요!




“즐거웠어요.”


“저도요.”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에는 제가 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죠.”


다행히 모두 유쾌한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저희 먼저 들어가볼게요.”


“그래!”


“안녕히 가세요.”


윤우와 은호가 멀어지고, 채경은 밝은 표정으로 진호를 바라본다.


“어때? 기분 좀 풀렸죠?”

“네.”


진호도 싱긋 웃는다.


“좋은 사람들 같아요.”


“물론이죠.”

 

채경이 조심스럽게 진호에 팔짱을 낀다.


“채경씨.”


진호의 얼굴이 붉어진다.


“후후, 우리도 연인인데 너무 부끄러워하신다.”

 

“하하.”


진호는 귀까지 뜨거워 옴을 느끼며 두근거린다.


“그러면 집으로 가볼까요?”


“아, 네.”




“하아.”


오늘도 오빠가 집에 없다. 요 며칠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들어서는 쓸쓸함과 적막함이라니, 진희는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어도, 텅텅 비어 있다. 게다가 요즘 오빠를 만나지 못해서, 용돈도 다 떨어졌다.


“라면도 없어?”


집에 있는 것은 오직 물 뿐이다.


“휴우.”


나오는 것은 한숨 뿐이다.




“그랬어요?”


“그럼요.”

 

두 사람이 즐겁게 걸어오고 있는 순간 어디서 강한 불빛이 그들을 비추었다.


“뭐야?”

 

“어?”


채경은 조심스럽게 불빛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


엄마였다.


“아는 사람이에요?”


“우리, 어머니세요.”


차에서 엄마가 내리고, 채경은 조심스럽게 팔짱을 뺐다.


“엄마,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너야 말로, 무슨 일이냐?”

차가운 목소리.


“제가 제 집에 오는 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네가 네 집에 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저 청년은 누구냐는 말이다!”


“제 애인이에요.”


채경의 엄마가 진호를 천천히 훑어본다.


“영락없는 거지구만.”


“엄마!”


채경이 진호의 앞을 가로막는다.


“엄마 어떻게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내가 틀린 말 했니?”


채경의 엄마는 입가에 조소를 띄웠다.


“그 쪽도 생각이라는 게 있을텐데, 그대로 서있고 싶습니까?”


“네?”

 

“지금 저는 그 쪽에게 꺼져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


진호도 난생처음 당해보는 상황에 당혹스럽다.


“엄마, 그만 두세요.”


“너야 말로 그만 두거라!”


채경의 엄마가 매서운 눈으로 진호를 노려본다.


“도대체 우리 딸을 어떻게 구워 삶아 놓았는지는 몰라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어머니.”


“어머니?”


진호의 말에 채경의 엄마가 인상을 구긴다.


“지금 누구에게 어머니라고 한 겁니까?”


“네?”


“듣기 거북하군요.”


“엄마, 그만해요. 응? 제발.”


채경의 엄마는 채경의 말따위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는 그 쪽의 어머니가 아니고, 앞으로 어머니가 될 생각도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우리 채경이 근처에 접근하지 않아주셨으면 하는 군요.”


“하지만.”

 

“유기사.”


어딘가에서 거구의 남자가 걸어나왔다.


“진호씨!”


채경의 눈에 커다래졌다.


“끌고 가.”


“엄마!”


“이, 이거 놔!”


진호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진호는 채경의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엄마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짓?”


“네!”

 

“네가 요즘 뵈는 게 없구나.”


“엄마.”


“다 너를 위한 일이다. 그러니까 잠자코 있어. 나중에 분명히 나에게 고맙다고 할 날이 올 거다.”


“지금 저 사람을 그냥 두는 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기회에요!”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채경의 엄마는 깊은 눈으로 채경을 바라본다.


“내가 말을 했잖니?”


“뭐가요?”


“엄마처럼 살고 싶니?”


채경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진다.


“너도 알고 있잖니? 내가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셨을 거예요.”


“그래.”


채경의 엄마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그래서 나는 너를 말리는 거다.”


“엄마!”


“너도 나랑 똑같은 후회를 할까봐!”


채경은 답답하다. 도무지 엄마랑 대화가 되지 않는다.


“엄마, 이건 제 인생이에요!”


“아니.”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


“이 인생은 네 것만이 아니야. 내 것이기도 해!”


“어째서요?”


“네가 너 혼자의 힘으로 거기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하는 거냐?”


“!”

채경의 얼굴이 굳었다.


“분명 아닐 거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 있어!”




“이거 놔요!”


‘퍽’


사내는 진호를 내동댕이쳤다.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내가 피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그냥 두고 가는 겁니다.”


“!”


사내의 말에 진호는 기가 눌린다.


“사모님의 부탁은 당신을 반 병신으로 만들라는 것이었지만, 사람이 좋다는 데, 그럴 수야 없는 노릇이고, 그냥 돌아가십시오.”


“하아.”


사내는 자신의 할 말만을 한 채로, 뒤돌아 섰다.


“이봐요!”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젠장.”




“나도 처음에는 사랑 쫓아서 네 아버지랑 결혼 했다. 하지만 너무 달라. 다른 건 맞춰 질 수 없어. 닮을 수가 없는 거라고.”


“아니, 나는 엄마랑 달라요!”


채경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생각해요?”


“뭐?”


“엄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에요.”


“!”

 

채경의 엄마의 얼굴이 굳었다.


“너 도대체 그게 어디서 배운 말 버릇이니?”

 

“엄마는요?”


“!”

 

“나는요, 엄마를 존경했어요. 여성으로써.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엄마는 최악이에요!”


‘짝’


“!”

 

채경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자신의 왼쪽 뺨에 손을 가져다댄다. 뜨겁다.


“어, 엄마.”


“네가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


“네가 내 마음을 알아? 네가 어떻게 나를 알아! 내가 얼마나 지옥같은 삶을 살았는 지 알아! 너도 후회해! 똑같다고!”


엄마의 눈에 눈물이 어렴풋이 고이기 시작했다.


“너 정말 이기적이야. 너라는 애 이제 질렸다! 질린다고!”


엄마는 채경을 뒤로 한 채, 차에 올라탔다.


“네가 후회를 할 게 분명하기에, 나는 너를 막을 거다! 절대로 저 거지같은 녀석 만나게 두지는 않을 게야!”


차가 천천히 채경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채경은 엄마에게 맞은 뺨보다, 엄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는 사실에, 사랑하는 남자를 엄마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큰 아픔을 느꼈다.




“오, 오빠!”


집에 들어가자 진희가 토끼눈을 하고 뛰어 들어온다.


“아직 안 잤어?”


“오빠, 옷이 왜 그래!”


그제야 진호는 자신의 옷이 흙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오다가 넘어졌어.”


“거짓말.”


진희가 진호의 옷의 먼지를 턴다.


“어디서 또 싸움이라도 한 거야?”

 

“싸움은 무슨.”


“그런데 팔에 이 피는 뭐야?”

 

“넘어져서 그렇다니까.”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다리가 조금씩 절룩이고 있었다.


“나 먼저 들어가서 잘게.”


“오빠, 나한테까지 비밀이 있는 거니?”

 

“아니야.”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진희의 어깨를 붙잡는다.


“괜히, 너 걱정하지마, 너는 그냥 공부만 잘 하면 돼.”


“하지만.”


“진희야, 오빠는 괜찮아.”


진호가 싱긋 웃는다.


“진짜.”


“진짜지?”


“응.”


그제야 진희도 어느정도 수긍하는 눈치다.


“무슨 일 생기면 나에게 말해줘야 해.”

 

“물론이지.”


“약속.”


진호가 단단히 진희의 새끼 손가락에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건다.


“반드시 약속해.”


“꼭 지켜야 해.”


“응.”

 

진희가 미소를 짓는다.


“나 먼저 잘게.”


“응.”


진호는 답답한 가슴을 안고, 방으로 들어섰다.




“하아.”


채경은 가만히 전화기를 만지작 거린다. 도저히 진호에게 먼저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전화를 걸면, 도저히 뭐라고 생각할까? 아까 따라가봤어야 하는 건데, 다행히 집에는 잘 들어갔을까?


“휴우.”


전화를 해야 하는 걸까?


‘전화 왔어요!’


“여, 여보세요?”


“나에요.”


“진호 씨!”


다행이다. 무사하다.


“어떻게 집에는 잘 들어갔어요?”


“네 당연하죠.”


진호의 낮은 웃음 소리, 다행히 괜찮은 모양이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연인 사이에는 미안하다는 말 하는 게 아니래요. 그리고 나 정말 괜찮으니까 속상해 하지 말아요.”


“그래도, 그래도 나 때문에.”


“다 내 탓이에요. 내가 부족하니까.”


“진호 씨.”


“그러니까 채경 씨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만 좋으면 그만이잖아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믿는 데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계속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데 무슨 문제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자요. 그 말해주려고 전화한 거에요. 알았죠?”


“네.”

 

안심이다. 이 남자 덕분에 안심이다.


“잘 자요.”


“응.”

 

채경은 전화를 끊고 참아왔던 눈물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하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대로 사랑을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다. 물론 우리 둘은 서로가 좋다고 하지만 주위에서 보기 우리는 비정상적인 커플임에 분명하다. 남들이 보기에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커플이다.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하기에 그렇다. 진호는 자신이 이토록 부족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젠장.”

 

아무리 욕을 내뱉어봐도 나는 강진호일 뿐이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중졸에 검정고시, 구두닦이 인생 강진호다.


“하아.”


언제쯤 이 생활에서 벗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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