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7:42
6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사무실로 출근하던 채경은 주춤했다. 사무실의 분위기가 어제의 그 분위기가 아니다.
“저기. 은호 씨 사무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왜 이러냐고요?”
은호가 코웃음을 친다.
“아무리 사랑이 중요하다고 하셔도, 어떻게 저희를 두고 그냥 가버리실 수가 있으세요? 그래도 부장님이 어렵게 마련하신 자리인데 말이죠.”
“하지만.”
“그래도 너무 하셨어요.”
윤우도 은호의 옆에 선다.
“그래도 부장님은 팀장님 생각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고 가버리시면 부장님이 저희 보기가 어떠시겠어요?”
“하아.”
채경은 한숨뿐이다.
“그리고 저희도 이해가 안 돼요.”
“뭐가?”
“팀장님이 어디가 아쉬워서요?”
“응?”
“왜 그런 남자랑 사귀시는 건데요?”
채경은 당황스럽다.
“그 사람이 어디가 어때서?”
“그 사람 강남역에서 구두닦이라면서요?”
“그, 그런데?”
윤우의 표정이 비웃음이 어렸다.
“팀장님도 똑같은 분이시군요?”
“어?”
“조금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이 그냥 궁금한 거 뿐이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채경도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알아듣기 어려우니까 똑똑히 말해줄래?”
“팀장님 그 분 정말로 사랑하세요?”
“물론이지.”
“저희가 보기에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팀장님은 어릴 적부터 부러울 거 하나 없이 크셨잖아요.”
“그게 여기서 왜 나와?”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불쌍해보였겠죠.”
“강대리!”
채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사람을 매도하지마.”
“저도 그런 거면 좋겠네요.”
“어제 밥은 잘 먹었냐?”
“응.”
태균은 진호의 목소리가 시원치 않자,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데?”
태균이 진호의 옆에 앉는다.
“어제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거야?”
“아무 것도 아니래도.”
“너 나에게까지 숨길 거냐?”
그제야 진호가 태균을 바라본다.
“채경 씨가 팀장이래.”
“어?”
“팀장.”
진호가 조금은 허무한 듯 웃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나에게 말한 거 보다 훨씬 높은 사람이라는 거지.”
“그래?”
태균의 표정도 조금씩 심각해진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채경 씨 회사 사람들이 채경 씨가 아깝대.”
“뭐?”
태균이 마치 제 일인냥 흥분을 한다.
“뭐 그런 사람들이 다 있어?”
“사실 맞는 말이지.”
“야! 강진호!”
“맞잖아. 내가 채경 씨보다 많이 부족한 거.”
진호가 쓸쓸히 웃는다.
“누가 그러냐고?”
“애써 나 위로하지마. 나도 다 아는 거니까.”
“진호야.”
“그런데 채경 씨가 나를 위로해주더라.”
“어?”
“우리는 다른 것일 뿐이라고.”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나 힘을 내기로 했다.”
“진호야.”
“태균아, 너는 언제까지나 내 편이 되어줄거지?”
“물론이지.”
태균이 진호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나는 네 친구니까.”
‘따르릉 전화왔어요.’
“여보세요?”
“나다.”
“엄마?”
채경이 머리를 쓸어 넘긴다.
“무슨 일이야?”
“너 이상한 놈 만나고 다닌다면서?”
“엄마.”
“정 부장에게 다 들었어!”
채경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어디서 남자를 골라도, 그런 반푼이 같은 걸.”
“엄마, 그 사람 반푼이 아니.”
“시끄러! 엄마는 네가 알아서 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네가 그런 반푼이를 고를 지.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엄마!”
“아무튼 절대로 안 된다!”
“하지만.”
“안 돼!”
엄마의 너무나도 단호한 말에 채경은 가슴이 답답해 온다.
“왜 안되는 건데?”
“왜라고?”
저 쪽에서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채경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구두닦이라서?”
“네가 누군데?”
“나? 그냥 29살 노처녀일 뿐이야.”
“네가?”
“그럼 엄마는 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엄마가 답답해 하듯, 채경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너는 문화 그룹의 외동딸이야. 지금 팀장이라는 직위에 올라있기도 하고.”
“그런게 뭐가 중요해?”
“뭐?”
“사랑하는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너는 내가 행복해 보이니?”
“어?”
엄마의 말에 채경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태껏 엄마가 단 한 순간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여태껏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
“나도 젊을 적에는 너랑 똑같았어. 돈? 명예? 그런 거 다 필요 없었어. 다 허례의식이거든. 그래서 네 아빠 만났다고, 이렇게 후회하고 있다.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 만나서 후회중이라고!”
“나는 달라!”
“너도 똑같아.”
엄마의 말에 채경도 조금씩 불안해진다.
“아무튼 네가 그만 고집을 피웠으면 한다.”
“엄마.”
“이만 끊으마.”
전화는 일방적으로 걸려왔고, 일방적으로 끊겼다.
“하아.”
채경의 가슴은 더 답답해 진다.
“너 대학 등록 예치금 내는 게 언제지?”
“다음 주 월요일.”
“그래, 너 대학 나와서 똑같은 위치가 되면 되는 거잖아.”
태균이 미소를 지으며 진호를 위로한다.
“그렇게 기죽어 있지 마라.”
“그렇지?”
“그래. 너 기운 없는 거 보니까 내가 다 기운이 없다. 너 항상 잘 웃는 그런 애잖아. 좀 웃어라.”
“히.”
“그래.”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가슴이 쓰린 것은 태균이다.
“그래, 진희야. 성적이 많이 떨어졌구나.”
“네.”
“집안에 무슨 일 있니?”
“항상 일이 있는 걸요.”
매일 똑같은 물음. 질리지도 않는 건가?
“그래 여전히 선생님이 도울 일은 없는 거지?”
“네.”
“그래.”
담임도 이제 어느정도 포기한 듯 하다.
“들어가 보거라.”
“네.”
“하아.”
진호는 답답하다. 아무리 태균이 힘이 되어준다고 해도 채경이 괜찮다고 해도 자신이 너무나도 못나다.
“아직도 시무룩해 있냐?”
“아니.”
태균이 캔커피를 건넨다.
“마셔.”
“고마워.”
“내가 처음에 너 고백하지 말라고 했을 때, 너 괜찮다며.”
“그런데 아니다.”
진호는 쓸쓸히 웃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하여간, 미련한 녀석.”
“하아.”
채경은 가만히 종이컵을 만지작 거린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팀장님.”
“어? 은호 씨.”
“팀장님이 윤우 이해해주세요.”
“그래야지.”
“사실 걔가 가난한 집에서 자라서요. 자격지심 비슷한 게 있어요.”
“그래?”
“하지만 걔도 팀장님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으니까, 곧 자기가 먼저 사과하러 올 거예요. 그 때는 팀장님이 잘 받아주세요.”
“물론이지.”
채경은 빙긋 웃는다.
“저기.”
얼마나 지났을까? 윤우가 머쓱한 표정으로 채경의 앞에 선다.
“무슨 일이야?”
“아까 죄송했어요.”
“뭐가?”
“팀장님께 함부로 말한 거요.”
“아니야.”
채경이 밝게 웃는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거야.”
“팀장님.”
“나는 오히려 고마워. 그렇게 속 시원히 말해주는 윤우 씨가.”
“그래서 말인데요.”
“응?”
‘딩동 편지왔어요.’
채경이다.
‘오늘 저녁에 나랑 같이 밥 먹어요.’
“뭐래?”
“밥 먹자는데?”
“밥?”
“응.”
“먹으러 가.”
“그러려고.”
진호의 힘없는 미소를 보니 태균도 힘이 없다.
“내가 같이 가줄까?”
“아니.”
“그런데, 말이야.”
“?”
태균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너 오늘도 일찍 가려고?”
“휴.”
투정을 부리는 태균을 겨우 잠재우고 나온 진호. 내일이 걱정이다.
“진호 씨!”
“채경 씨!”
채경이 이미 자리에 앉아있다. 그런데 그 옆에.
“안녕하세요?”
“네.”
진호의 목소리가 살짝 굳어있다.
“어제는 제가 죄송했어요.”
“?”
윤우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네?”
“제가 뭔가를 오해했었나봐요.”
“?”
“저는 그 쪽, 그러니까 강진호 씨가, 돈 보고 팀장님에게 접근한 건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오해한 거 죄송합니다.”
“아.”
윤우가 손을 내밀자. 진호가 당황한다.
“안 잡으실 거예요?”
“아, 네.”
“강대리, 남의 남자 손 함부로 잡지마.”
“네.”
윤우가 싱긋 웃는다.
“저를 다시 소개할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강윤우입니다.”
“네, 저는 강진호입니다.”
“저는 유은호에요.”
“네.”
진호의 얼굴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한다.
“앉아.”
“네.”
오늘은 조금이나마 어제와는 다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진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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