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AM 7:42 [완]

AM 7:42 <세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7. 12. 18. 22:22
 



Am 7:42




3화


이제 항상 데려다 줄래요.




“조금 춥죠?”

“아니요.”


자신이 추울까봐 걱정을 하는 진호를 보니 행복해지는 채경이다.


“저기 목도리 사드릴까요?”


진호가 조심스럽게 좌판에 놓여있는 목도리를 가리킨다.


“진짜요?”

그런 목도리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채경이지만, 진호의 첫 번째 선물이라는 생각에 흐뭇해지는 채경이다.


“네, 저 갖고 싶어요.”

진호는 밝게 웃으며 채경을 좌판으로 이끌고 갔다.


“어떤 색이 좋으세요?”

“음, 상아색이요.”


“아저씨 이 목도리 얼마에요?”


“5000원.”


진호는 잠시 망설이더니,


“아저씨 두 개 살 테니까, 조금 깎아 주시면 안 돼요?”


“아유, 이것도 하나도 안 남아.”


“에, 아저씨. 저 저 역에서 구두 닦는데, 오시면 공짜로 구두 닦아 드릴게요. 그러니까 좀 깎아주세요.”


“이러면 안 되는데.”


“아, 아저씨.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추워하잖아요.”

“그래 좋다. 여자친구가 예쁘니까 내가 1000원 빼준다.”

“그럼 합쳐서 2000원?”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두 개를 흔든다.


“그래. 총각 입심에 반해서 그렇게 해줄게.”


“고맙습니다.”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돈을 지불했다.


“채경 씨 여기요.”

채경이 조심스럽게 목도리를 받아든다.


“이리 와 봐요. 내가 목도리 해줄게요.”

채경은 조심스럽게 진호에게 다가간다. 살짝 고개를 숙이니 진호의 향기가 코로 밀려온다. 코롱이나 향수 냄새는 아닌데 너무 좋다.


“다 됐어요.”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채경이 조심스럽게 좌판에 놓인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본다. 분명 자신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브랜드, 아니 브랜드도 아닌 제품일 게 분명한데, 예쁘다. 백화점에서 파는 것과 그렇게 큰 차이도 없다.


“예쁘네요.”

“그렇죠?”


진호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채경 씨가 예쁘다니까 기분이 더 좋네요.”

“나 이런 거 처음 해 봐요.”

“네?”

“아, 아니에요.”

채경의 얼굴이 격하게 붉어진다. 사실 나이 30이 다 되어가도록 남자와 데이트가 처음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목도리 사줬으니까 우리 커피 마실래요?”


“커피요?”


진호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판기는 보이지 않는다.


“자판기가 없는데?”


“자판기?”


채경이 고개를 갸웃한다.


“왠 자판기요?”


“그럼 어디서요?”

“저기.”


채경이 그 유명한 별다방을 가리킨다.


“!”


“왜요?”

“비, 비싸잖아요!”


“괜찮아요. 내가 살게요.”


“하, 하지만.”

“어서.”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진호를 끌어당긴다.




“하아.”


진호는 메뉴판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일단 값이 무지하게 비싸다는 점도 있지만, 추가라는 것은 또 뭐고, 케이크 한 조각이 2000원이 넘는다니


“진호 씨 단 거 좋아하세요?”

“아.”


진호는 재빨리 가장 저렴한 가격을 찾는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이라는 제품 자체를 찾을 수 없다.


“네.”

채경의 눈에 진호가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나랑 같은 거 마셔요.”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카운터를 바라보았다.


“여기 라떼 두 개 주세요.”


“네, 손님 라떼 두 잔 주문하셨습니다. 8000원입니다.”


“!”

진호가 조심스럽게 채경을 바라본다.


“왜요?”

“너무 비싸잖아요.”

“아니에요.”

채경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카드를 내민다.


“먼저 가서 앉아 계세요.”


“네.”




“휴우.”

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기서 커피를 들고 오면서 미소를 짓는 채경이 예쁘기는 하지만, 자신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커피를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사다니,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되는 진호다.


“오래 기다렸죠?”


“아니요.”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쟁반을 받는다.


“그냥 커피만 먹기가 그래서 치즈 케이크도 같이 샀어요.”


“아.”


진호가 슬쩍 영수증을 본다. 치즈 케이크 두 개, 가격이. 그러니까!


“왜 그러세요?”

진호의 놀란 표정을 짓고 채경이 의아해한다.


“아, 아닙니다.”


무슨 케이크 두 조각이 5000원이야? 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얌전히 커피를 마신다. 그런데 이 커피 너무 달달하다.


“입에 안 맞으세요?”


“아니요. 너무 맛있어요.”


진호는 미소를 짓지만 지금 속에서는 물을 달라고 날리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다녀오세요. 저기 오른 쪽이에요.”


“네.”


재빨리 진호는 자리를 피한다.


“그렇게 급했나?”


채경은 빙긋 웃으며 창 밖을 응시한다.




“저, 저기요.”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물, 물 한 잔만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네?”

웨이트리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진호를 바라본다.


“무슨 물 말씀이십니까?”

“아, 커피를 마시는데 너무 달아서 물이 켜서요.”

“아, 네.”

웨이트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물 한 잔을 건네준다.


“다음부터는 시럽을 빼달라고 주문해보세요.”


“여기 올 일 없으니까 괜찮지만, 그래도 고맙습니다.”

진호가 빙긋 웃으며 컵을 건넨다.




“금방 오네요?”

“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붉다.


“눈이라도 오려나보네.”


“눈이요?”


“네. 올해 첫눈이 좀 늦어요.”


“그러게요.”


진호는 속으로 오늘 날짜를 헤아려 본다. 첫눈이 아직 안 왔구나. 항상 지하에서만 있다보니 그 사실도 몰랐다.


“진호 씨는 첫 눈 오는 날 뭐하실 거예요?”

“네?”


“첫 눈 오는 날 뭐 할 거냐고요?”

“일 해야죠.”


진호가 채경도 보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이, 일이요?”

“네. 열심히 돈을 벌어 놔야죠.”


“아.”


채경이 한숨을 내쉬면서 애꿎은 커피만 젓는다.


“이제 일어나시죠.”

“네?”


“지금 20분이나 지났어요."

“어. 어.”




이 남자 뭐야? 채경은 지금 속으로 열심히 투덜거리는 중이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혼자서 걷는 담. 내가 보는 로맨스 소설들을 그렇게 주구장창 읽어도 저런 남자는 한 명도 없었는데. 내가 남자 잘못 고른 건가? 하아. 한숨만이 나온다. 게다가 숨도 가빠온다. 정말 걸음이 빠르다.

“채경 씨 빨리 와요.”


“네.”


저 앞에서 진호가 손짓을 한다. 채경은 없는 힘까지 겨우겨우 내가며 진호의 옆에 선다.


“하아.”


“힘들어요?”

“조금요.”


“그럼 여기서 조금만 쉬어 갈래요?”


채경은 그래도 한 번 튕겨야지라는 생각이 번뜩 든다.


“아니요. 저는 진호 씨랑 걷는 게 더 좋아요.”


“그래요? 그러면 계속 걸어요.”


진호가 싱긋 웃더니 다시 걷는다.


“저, 저기.”


 아 이게 아닌데. 채경은 애꿎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빨리 와요!”


“네.”


여전히 진호의 걸음은 엄청나게 빠르다.




“하아. 하아.”


채경이 가쁜 숨을 내쉰다.


“조금 괜찮아요?”

“네.”


채경이 애써 미소를 짓는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진호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번쩍이는 오피스텔에 살짝 위축된다.


“들어가세요.”


“네.”


채경이 조금 쭈뼛 거린다.


“?”

진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하아.”

채경은 고개를 흔들더니 한걸음 앞으로 다가온다.


“채경 씨?”

“고개 숙여봐요.”


진호는 채경의 말대로 고개를 살짝 숙인다.


“!”


그 순간 부드러운 무언가가 진호의 입술에 닿았다.


“채, 채경 씨!”

채경이 수줍은 듯 미소를 짓는다.


“집까지 바래다 준 보답.”

“!”


진호의 얼굴이 귀까지 빨게져있다.


“킥.”

“아, 앞으로.”


뒤돌아섰던 채경이 고개를 돌린다.


“이제 항상 집에 데려다 줄래요!”


진호가 눈을 질끈 감는다.


“!”

“대신요.”


“?”

“매일 키스 해주는 거지요?”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에는 내가 진호 씨 데려다 줄게요. 그러면 진호 씨가 해주는 거에요.”


“네.”


두 연인의 미소에 맞추어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우와 눈이다.”


“채경 씨 어서 들어가요.”


“네?”


“눈 맞으면 대머리 되요.”


“괜찮아요. 바로 집인데?”

“에?”


갑자기 진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왜요?”

“그러면 괜히 빨리 걸었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지?


“채경 씨 눈 맞을까봐 오래 걷고 싶은 거 일부로 힘들어 죽겠고, 채경 씨 힘든 거 보여도 서둘러서 걸은 건데.”


“!”


이 남자 은근히 로맨티스트다.


“치.”


“고마워요.”


채경이 조심스럽게 진호의 손을 잡는다.


“채경 씨.”

“그 마음 이 속에 다 담아둘게요.”

그리고 진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자신의 왼쪽 가슴에 얹었다. 따뜻한 온기가 진호의 손에서 느껴졌다.


“!”


“사랑해요.”


“저, 저도요.”


하얀 눈이 두 사람의 어깨 위로 내렸다.


“그럼 나 이제 들어가볼게요.”


“아, 네.”


진호가 조심스럽게 그 손을 빼어냈다.


“안녕.”


“네.”


두 사람이 아쉽다는 듯 계속 고개를 돌린다.


“먼저 가요.”


“아니 채경 씨 먼저 가세요.”


“그럼.”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비밀번호를 누른다.


‘삐’


문이 열렸다.


“저 진짜 가요.”


“네 안녕히 가세요.”


진호가 밝게 웃으며 손을 들어준다.


“킥.”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내일도 데려다 줘요!”


“네.”


진호가 밝게 웃는다.


“고마워요.”

“네.”


“진짜 고마워요!”


채경은 가슴이 사랑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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