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7:42
2화
그럼 이제 전화만 해요!
“하암.”
햇살이 눈을 간지럽힌다. 여느 때와 같이 익숙하게 냉장고의 문을 열고, 우유를 한 잔 가득 따른다.
“흐음.”
여유롭게 식탁에 앉아서 시계를 바라본다. 천천히 흐르는 초침, 이제 곧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채경은 지금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따뜻하고,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이다.
‘따르릉’
“이 시간에 누구지?”
액정을 보니, 그다!
“헤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새벽 다서 시에 일어난 진호는 지금 엄청난 고민 중이다.
“전화 할까?”
하지만 막상 전화기를 열면, 막막해진다.
“말까?”
하지만 전화기를 닫으면, 왠지 모를 서운함이 가슴에 남는다.
“휴우”
지금 진호는 채경에게 모닝콜을 해주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21년 삶 중의 첫 번째 여자 친구인 채경. 드라마에서는 다들 모닝콜을 해주기는 하는데, 또 너무 이른 것은 아닌 지, 방 안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중이다.
“모르겠다.”
침대에 털썩 누워보지만 머리는 텅 비어 있다.
“내가 뭐 연애를 해봤어야 알지.”
그 때 진호의 머리 속으로 누군가가 지나간다.
“아! 태균이!”
자타공인 플레이 보이인 태균, 그 녀석에게 물어보면 답이 빠를 것이다.
‘따르릉’
“흐음.”
태균이 손을 더듬는다.
“여보세요?”
“나다.”
“진호냐?”
태균이 머리를 긁으며, 침대에서 앉는다.
“무슨 일이냐?”
“겨우 그거 때문이냐?”
태균의 짜증이 전화기를 타고 넘어온다.
“하여간, 사람 귀찮게 하는 데 뭐가 있다니까?”
“그래도 내 주변에서는 너만큼 연애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없는 걸?”
진호가 태균의 짜증에 살짝 위축이 되어서 조심스럽게 태균을 띄워 본다.
“하긴, 내가 네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나마 연애 경험이 조금 풍부하긴 하지.”
다행히 진호의 작전이 먹힌 듯하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응?”
“네 마음은 어떠냐고?”
“당연히, 전화 하고 싶지.”
진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럼 해.”
“어?”
“네 마음이 중요하지, 경험이 뭐가 중요하냐?”
태균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야, 네 마음이 따라가는 대로 하는 거야.”
“진짜?”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사실에 분명 진호는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태균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서 끊고, 그 분께 걸어.”
“응.”
정말 바로 끊는 진호다.
“자식, 웃기다니까.”
그리고 다시 잠에 빠지는 태균이다.
“헤헤.”
진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번호를 누른다.
“휴우.”
깊은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통화연결음이 흘러 나온다.
“여보세요?”
채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접니다.”
“아, 진호 씨.”
그래, 이게 채경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아침이다.
“잘 일어나셨어요?”
“네.”
“다행이다.”
진호의 안도의 한숨이 귓가에 들리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진호 씨는 요?”
“네?”
“진호 씨는 잘 주무셨냐고요?”
“저야 당연하죠.”
채경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 일어나신 거예요?”
“아니오, 네.”
채경이 장난스럽게 눈썹을 모은다.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진호는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흠, 맞다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진호는 지금 시간을 본다. 여서 시 반. 일어난 지 꽤 된 시각이다.
“그, 그게.”
“뭐에요? 벌써부터 속이는 게 있는 거예요?”
“사, 사실은 아까 일어났어요!”
진호가 눈을 질끈 감고 대답을 한다.
“아까요?”
채경이 시계를 본다. 지금도 충분히 이른 시간인데?
“아까 언제요?”
“다, 다서 시요.”
“항상 그렇게 일찍 일어나요?”
채경이 눈이 동그래져서 묻는다.
“아, 아니요.”
“그런데 왜?”
“그, 그게.”
채경은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셨는데요?”
“채경 씨에게 모닝콜 해주려고요.”
“!”
“해주고 싶었는데, 언제 일어나실 줄 몰라서요.”
채경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 난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망설이다가 이제야 걸었어요.”
조금 창피하다. 그래도 말을 하니까 속이 시원하다.
“고마워요.”
“네?”
“날 위해서 그렇게 고민해줘서.”
“아,”
“조금있다가 봐요.”
“아, 네.”
전화가 끊겼지만 묘한 여운은 그대로 남아 있다. 가슴 속에.
“하아.”
가슴이 따뜻하다.
“하아.”
채경은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감싸 쥐었다.
“내가 천사를 만난 건가?”
너무 행복하다. 이런 게 사랑인가?
“친구 어떻게 되었는 가?”
“응?”
“모닝콜 말일세.”
가게로 나가자 마자 태균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진호의 옆으로 온다.
“당연히 모닝콜 했지.”
“정말? 그 사람이 뭐라는 데?”
“고맙데.”
“고마워?”
태균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왜?”
“자기 생각해줘서.”
“오, 닭살.”
태균이 자신의 팔을 문지른다.
“그래도 두 사람 되게 좋아 보인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는 분명 완전 소중한 커플이 될 거라고.”
“네 마음대로?”
진호가 살짝 태균을 흘겨본다.
“미안, 미안.”
태균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모은다.
‘또각 또각’
그 때 귀에 들리는 익숙한 소리. 어제의 그 시간보다는 조금 이르다.
“채경 씨.”
“태균 씨.”
하아.
저기 그가 보인다. 오늘도 망설여야 하는 건가? 지금 시간은 7시 30분, 채경은 매일 이 시간부터 매일 정확히 12분씩을 망설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지금도 망설이다가 막 일 분이 지나가는 참이다.
“휴우.”
하지만 이미 연인인걸?
채경은 당당히 발걸음을 옮긴다.
“채경 씨.”
다행히 그가 채경을 먼저 발견했다.
“진호 씨.”
채경도 익숙하게 미소를 지으며 진호의 앞에 선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빨리 보고 싶어서요.”
“어우, 닭살. 저는 저리로 좀 가 있을 게요.”
동업을 하는 사람이 팔을 문지르며 저리로 간다. 생각보다 재밌는 사람인 모양이다.
“구두 닦아 줄 거죠?”
“당연하죠.”
진호가 미소를 짓는 걸 보니 가슴이 따뜻하다. 아 내 사람이구나.
“여기요.”
“잠시만요.”
“훗.”
태균이 저 멀리 보이는 진호와 진호의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다행이다.
“그럼 저 갈게요.”
“네.”
두 사람의 마음에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어느 덧 시계는 8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다.
“저녁에 뵈요.”
“네.”
천천히 두 사람이 멀어진다.
“그렇게 좋냐?”
채경이 사라지자 태균이 나타나서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응.”
진호가 행복한 표정으로 답한다.
“뭐가 좋냐? 너보다 나이도 아홉 살이나 많은 완전 노땅인데.”
“성숙미.”
“에?”
태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해가 안 돼.”
이 거 정말 연애 처음 하는 녀석 맞아?
“어? 유 팀장님 분위기 이상해요!”
“어?”
윤우의 말에 움찔하는 채경.
“맞아.”
은호도 같이 채경을 바라본다.
“내, 내가 뭘?”
“수상해요.”
“뭔가, 여자다운 분위가가 풍겨 나온다?”
“그래?”
두 사람은 놀리려고 한 말인데, 채경은 너무나도 좋아한다.
“좋으세요?”
“응!”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한 건가?”
윤우와 은호는 서로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우리는 언제나 애인이 생길까나?”
“그러게?”
“걱정마. 걱정마 곧 좋은 사람 생길 거야!”
“팀장님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윤우가 입을 삐죽거린다.
“그래도 들어. 지금은 내가 유일한 솔로탈출이니까! 위대한 커플 만세! 솔로 지옥! 커플 천국!”
채경은 행복하다.
‘딩동 편지 왔어요.’
진호가 장갑을 벗고 핸드폰을 연다. 채경이다.
“히이.”
‘밥 먹었어요? - 내 사랑’
진호는 서투른 손으로 문자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누른다.
“왜 이렇게 안 와?”
1시. 문자 보낸 시간은 12시 55분. 5분이나 지났는데 답장이 없다. 전화기를 두고 밥을 먹으러 나갔나?
‘딩동, 편지 왔어요!’
‘네 - 그’
“에?”
채경은 허무하다. 뭐야? 단문은 너무하잖아!
‘딩동 편지 왔어요’
‘뭐 먹었어요? - 내 사랑’
진호는 등으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나 문자 잘 못 하는데.”
지금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인가? 진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판을 눌렀다.
이 남자 나랑 문자하기 싫나?
채경은 한숨만 나온다. 휴대 전화를 바라보아도, 휴대 전화는 침묵만을 유지하고 있다. 바쁜 가?
“유 팀장님 뭐 기다리는 문자라도 있으세요?”
은호가 커피를 건넨다.
“아니.”
“에? 분위기가 이상하신걸요?”
윤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팀장님 그 남자분 문자 기다리시는 거죠?”
“두 사람 일 안 해?”
“피.”
윤우와 은호가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로 돌아간다.
“휴.”
그나저나 왜 문자를 안 보내는 거야?
“그러니까, 이게 ㅣ에 자를 붙이고, 또 그러니까.”
진호는 진땀이 난다. 어서 빨리 채경에게 문자를 해주고 싶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다.
“뭐하냐?”
그제야 태균이 진호를 바라본다.
“문자가 와서 답장을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
“줘 봐.”
아까부터 10분 가까이 휴대전화와 씨름을 하던 진호의 휴대 전화에 쓰인 말은 겨우 ‘태균이랑 같이 김치찌기’ 였다.
“뭐 했냐?”
“내가 원래 전자 기기랑 안 친하잖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딩동 편지 왔어요’
채경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태균이랑 같이 김치찌개 먹었어요. 채경 씨는 뭐 드셨어요?’
채경은 재빨리 손을 놀린다.
‘딩동 편지 왔어요.’
진호가 채경의 문자를 보고 미소를 짓고, 다시 고민에 빠진다.
“줘, 내가 계속 보내줄게.”
“진짜?”
태균이 투덜거리며 휴대전화를 받는다.
“어? 이제 좀 안 바쁜가보네? 문자 바로바로 답장하는 거 보니까. 킥.”
채경은 소중히 문자들을 바라본다.
“팀장님 우리 퇴근 안 해요?”
7시 윤우가 볼멘 소리를 한다.
“맞아요.”
윤우의 옆에 있던 은호까지 한 마디 거든다.
“오늘 무슨 일 했는데/”
“에, 팀장님.”
채경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 못 끝낸 일도 있잖아요.”
“그거 내일 와서 다 끝낼게요. 네?”
윤우의 표정에 채경이 마지못해 허락한다는 투로
“좋아요. 그럼 내일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도록 해요.”
“네.”
하지만 이미 윤우는 채경의 진심을 파악했다.
“팀장님 고맙습니다.”
“그래요. 잘 가요.”
두 사람이 코트를 걸치고 정답게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동갑내기인 두 친구는 채경이 부러우리 만큼 친하다.
“나도 이제 퇴근을 해볼까?”
집에 가는 길에 다시 만날 진호의 생각에 두근거리는 채경이다.
“히.”
빨리 가고 싶어, 재빨리 코트를 걸치고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채경이다.
‘딩동 편지 왔어요.’
‘아직도 일하고 있어요? - 내 사랑’
진호는 난감해졌다. 태균은 이미 퇴근을 했는데. 휴. 진호는 서툰 솜씨로 차근차근 휴대전화의 버튼을 눌렀다.
“어라? 또 바쁜 가 보네. 뭐 곧 볼 거니까.”
채경은 미소를 지으며, 휴대 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여기서 강남역 까지는 5분 거리이다.
“킥.”
그 시간도 너무 길다고 느껴지는 채경이다.
“그, 그러니까. 이게 이 버튼이 아니고. 이 버튼인가?”
벌써 3분 째 씨름중인 진호.
“어? 문자 보내는 중이네?”
채경이 싱긋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뭐 저렇게 오래 치는 거야? 흠. 채경은 지금 당장 갈까도 생각했지만, 저렇게 길게 문자를 통해 할 말이 무얼까 하며, 잠시 기다려본다.
‘딩동 편지 왔어요.’
이내 채경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열어본 휴대전화에 뜨는 문자 메시지의 내용
‘네. 채경 씨는요?’
“뭐, 뭐야?”
채경은 밝게 미소를 지으며 진호에게 다가갔다.
“휴, 겨우 다썼네.”
진호가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문자 한 통 보내는 시간이, 구두를 한 켤레 닦는 시간과 같다.
“진호 씨!”
뒤를 돌아보니 채경이 서 있다.
“채경 씨!”
“답장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다 와버렸지 뭐에요?”
“아.”
진호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데 진호 씨 왜 그렇게 바빠요?”
“네?”
“나 말고도 문자 한참이나 하던데? 누구?”
“아 아니에요.”
“에?”
진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간다.
“문자 한 거 아니면, 왜 그렇게 오랫동안 휴대 전화만 보고 있었어요?”
“그, 그게 제가 휴대 전화를 잘 다룰지 몰라서요.”
“네?”
“아까 계속 보낸 게, 그러니까 채경 씨에게 문자를 한 통 보내려면 5분정도는 걸려요. 제가 좀 느리거든요.”
“에? 아까는 빨리 보냈잖아요.”
“그건 태균이가 대신 보내준 거에요.”
“킥, 푸하하!”
갑자기 채경은 웃음이 났다.
“채경 씨?”
“진호 씨 나 정말 미안해요.”
“?”
진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진호 씨 그러면 우리 앞으로 전화로 해요.”
“네?”
“진호 씨 문자 잘 못하니까 그럼 이제 우리 전화만 해요.”
채경이 싱긋 미소를 짓는다.
“나 진호 씨 일 방해될까봐 전화 안 한건데. 오히려 더 방해가 됐나봐. 그러니까 나 이제 전화 걸래요.”
“네.”
진호도 미소를 짓는다.
“저도 채경 씨 목소리 듣고 싶어요.”
“오케이. 그런데 가게 언제 닫아요?”
“이제 막 닫으려고요.”
사실 장사는 아직 더 해야 하지만, 채경까지 온 상황에서 장사를 무조건 고집하기도 그렇다.
“집에 바래다 드릴까요?”
“좋아요.”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진호는 그 미소에 힘이 나서, 빠르게 가게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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