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AM 7:42 [완]

AM 7:42 <네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7. 12. 19. 16:48
 




 Am 7:42




4화


엉터리 상담소




“오빠. 오빠?”

진희가 연신 진호의 앞에서 손을 흔든다.


“흐음.”


하지만 여전히 진호는 진희를 바라보지 못한다.


“오빠!”


“어, 어.”


진호가 진희의 밥 위에 생선을 한 조각 얹어준다.


“아침부터 무슨 생각해?”


“무슨 생각?”


진호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왼손을 입에 가져다댄다.


“히이.”


그리고 바보같은 웃음.


“뭐야?”


진희는 고개를 저으며 입에 밥을 밀어 넣는다.


“나 시험기간이라서 오늘 독서실 다녀올 거라서 늦을 거야.”


“어.”


“듣고 있어?”


“어.”


“오빠 내 오빠 아니지?”

“어.”


“오빠!”

“응?”

다시 망상에서 벗어난 듯 보이지만 여전히 헤롱헤롱 되는 진호다.


“모르겠다. 나 먼저 갈게.”


“어.”


진희는 고개를 젓는다.




어제의 설렘은 잠시.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채경은 커다란 고민에 휩싸였다.


“도대체 언제 종소리가 나는 거지?”


자신이 읽었던 수많은 로맨스 소설에 나왔던 말. 키스를 하면 종소리가 울린다. 그 말을 성경처럼 믿고 산 채경인데, 어제 진호와의 키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키스도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도 않았다. 부드럽기는 했지만, 커피의 향이 살짝 날 뿐. 그렇게 달콤하지도 않았다.


“왜지?”

채경이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린다.


“모르겠다.”


회사에 가서 어서 은호와 윤우에게 상담을 받아야 겠다.




“태균아.”


“으헉 너 뭐야?”


진호가 능글맞게 웃으며 자신의 뒤에 매달리자 태균이 기겁을 한다.


“히히.”


“이게 미쳤나?”


“응, 나 미쳤어!”


진호가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뭐?”


“어제 채경 씨랑 키스 했다!”

“뭐?”


태균이 진호를 바라본다.

“진짜?”


“응.”

진호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태균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어떻게 했어?”


“뭘?”

“연애 경험 없는 천하의 강진호가 어떻게 여자 입술을 덮칠 생각을 했냐고.”


“내가 안 했는데?”


“어?”


“채경 씨가 집에 데려다 줘서 고맙다고, 해줬어. 히히”


진호는 어제의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모양이다.


“야, 그게 뭐냐?”


“어?”


태균이 수건을 내던지다 시피 하고 진호의 옆에 앉는다.


“너 그러면 계속 잡혀 산다.”

“그게 무슨 말이야?”


“원래 그런 거는 여자가 먼저 하면 안 되는 거야.”


“왜 안 되는 건데?”

“휴.”

태균이 고개를 젓는다.


“그래야 연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거든.”


“연애의 주도권?”


“그래 이 멍충아.”


“그게 뭔데?”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진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좋은 아침.”


“네. 팀장님도?”


윤우가 고개를 갸웃한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뭐가?”


“뭔가 고민에 심각하게 빠진 표정.”


은호도 채경의 옆에 와서 앉는다.


“팀장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내가 고민은 무슨.”

하지만 채경의 표정은 고민이 있다. 라고 오로라를 풍기고 있다.


“무슨 고민인 지 말씀해보세요. 저희가 해결해 드릴게요.”


“네.”


채경은 살짝 이 둘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본다. 하지만 역시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고민을 털어놓기로 마음먹는다.


“저기, 내가 어제 키스를 했거든.”


“우와!”


“진짜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채경은 호들갑을 피우려는 둘을 진정시킨다.


“키스를 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은호 씨는 첫 키스 언제였어?”


“저요?”


은호가 눈을 굴린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요. 교회 오빠랑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부드럽게 달콤하고, 따뜻했어요.”


“그래?”


채경의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윤우 씨는?”


“저는 조금 빨랐어요.”


윤우가 부끄러운 듯 혀를 내문다.


“말 해주라.”


“초등학교 6학년 때요.”


“초등학교 6학년?”

채경의 눈이 동그래진다.


“아는 오빠 집에 갔는데, 오빠가 자꾸 키스해도 돼? 키스해도 돼? 라고 조르는 거예요. 막 싫다고 튕겼는데, 한 시간 동안 그러는 게 불쌍하기도 하고, 저도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했어요.”


“느낌은?”


“느낌요? 딱히 없었는데, 귤 냄새가 났어요. 그 때 귤을 먹다가 한 거거든요. 그리고 가슴이 막 두근거렸어요.”


“진짜?”


채경은 조금 안심이 된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있지. 키스를 했는데 말이야. 내가 알고 있는 키스랑 너무나도 느낌이 달라서 말이야.”


“느낌이요?”


“사실 이번이 내 첫 키스거든.”


“!”

“진짜요?”

“응.”


채경이 한숨을 쉰다.


“그런데 머리에서 종소리도 들리지 않고, 키스도 부드럽기는 했지만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도 않았어.”


“에, 팀장님 다 그런 거예요.”


“응?”

“그런 건 다 로맨스 소설이니까 그런 말을 써놓는 거죠. 종소리가 어디서 울려요?”

“맞아요. 종소리랑 초콜릿? 그런 거 다 지나가는 개나 주라고 하세요. 그리고 그 키스라는 것도 자꾸 하다보면 질려요.”

“질린다고?”


채경은 금시초문이다. 자신이 읽는 로맨스 소설 그 어디에도 이런 말은 쓰여 있지 않았다. 모든 로맨스 소설에서는 키스는 아름답기만 한 행동이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 둘의 이야기는 뭐지?


“그래도 그 남자 분 박력 있으시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만난 지 이틀 만에 키스라니.”


둘이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짓는다.


“아, 그리고 말이야.”


“?”


두 사람이 채경을 바라본다.


“키스 내가 먼저 했어.”


“네?”




“아 정말 그런 거야?”


“그래 이 바보야. 원래 여자는 딱 휘둘러주는 남자를 좋아하는 법이라고. 너처럼 그렇게 밍숭맹숭하게 굴면 싫어한단 말이야.”


“채경 씨는 그런 기색이 없었는데?”

진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거야 네가 눈치가 없어서 그런 거고.”


“그런 거야?”


“그래.”


태균은 지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너 정말 연애 안 해본 건 아는데. 그래도 본능이라는 것도 없는 거냐?”


“본능?”


“어제 데이트하면서 손 안 잡고 싶디?”


“손?”


“그래.”

진호는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어제는 그냥 채경이 비를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안 들었는데.”


“너 정말 좋아하는 거 맞냐?”


“당연하지!”


진호는 결연한 눈빛을 보인다.


“그런데 손도 안 잡고 싶어?”


“아직 이틀 밖에 안 되었잖아.”


“그래서 키스를 했냐?”


진호의 얼굴이 붉어진다.


“물론 그 쪽에서 먼저 했다지만. 너 그게 얼마나 쪽팔린 건 줄 아냐? 사내자식이 키스 하나 못 해가지고, 여자한테 당하기나 하고.”


“누, 누가 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 그, 그냥 서로 좋으면 그만인 거지.”


“웃기지 마. 엄청 중요한 거거든. 너는 이제 앞으로 우울한 날만이 계속 될 것이다. 아마도.”

“우울한 날?”


진호는 조금 무서워진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넌 이제 채경 씨한테 휘둘려서 살 거라는 말이야. 연애 기간 동안, 네 의견 채경 씨 들어주지도 않을 거다.”


“!”


“너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네 의견 절대로 못 펼쳐진다.”

“설마.”

“설마?”


태균이 코웃음을 친다.


“내가 영주랑 왜 헤어졌는데.”


“영주 누나? 왜 헤어진 건데?”


“하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길래.”


“응?”

“밥도 자기가 먹고 싶은 거만 먹겠다. 영화도 자기가 보고 싶은 거만 보겠다. 너 이러면 연애 못 한다. 질린다고.”


“정말?”


진호는 조금씩 두려워진다.




“정말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미지를 바꿔야죠.”


“어, 어떻게?”


“무조건 청순하게.”


윤우가 채경의 뒤로 가서 채경의 묶인 머리를 풀어버린다.


“왜?”


“남자들은 긴 생머리를 좋아하거든요.”


“그, 그래?”


채경은 단 한 번도 머리를 풀고 다닌 적이 없다.


“그리고 치마도 좀 입으세요.”


“치마?”


“�은 치마 말고, 살짝 무릎 아래까지 오는 스커트 있죠?”

“응.”


“그거. 남자들이 그런 거에 은근히 뻑가잖아요.”


“그런 거야?”


“물론이죠.”




“여자들 담배 피는 남자 싫다고 하지?”

“응.”

“사실 그거 다 뻥이야. 남자들 담배 피는 모습에 여자들이 뻑이 가는 거거든.”


진호는 고개를 갸웃한다. 진희는 담배 피는 남자 무지하게 싫어하던데?




“그리고 소주 그런 거는 못 마시는 척 해야 해요.”

“저, 저기.”


“네?”


채경이 살며시 은호를 바라본다.


“이미 그 사람 앞에서 소주 한 병 다 마셨는데. 헤헤.”


“아.”


“그럼 패스.”




“그리고 약간 과묵한 게 매력이거든.”

“과묵?”


이상하다? 채경 씨는 같이 대꾸해주는 걸 더 좋아해 하는 것 같은데?


“말이 많은 남자는 가벼워 보여.”




“하아.”


태균에게 모든 강의를 들은 진호는 진이 빠진다.


“어때 조금 머리에 들어오냐?”


“아주 조금.”


“그래.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해.”


진호는 오늘 데이트가 걱정이다.




“팀장님 오늘 잘하셔야 합니다.”


“응.”


채경은 조금 걱정이다. 이들을 믿어도 되는 건가?




‘따르릉. 전화 왔다!’


진호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채경이다.


“네.”

“아직 일하는 중이시죠?”

“네.”


진호는 태균에게 말한대로 과묵하게 채경에게 대답한다.


“그럼 제가 조금 있다가 갈게요. 거기서 뵈요.”


“네.”


전화를 끊고 진호는 한숨을 쉰다. 해주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은데 태균의 말대로 하느라고 답답하다.




“흠. 아픈가?”


채경은 거울에서 자신을 요리조리 비춰보며 고민 중이다. 진호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활기가 없다고 할까나? 그나저나 어떻게 머리를 풀면 더 청순해 보이려나? 항상 단정하게 묶기만 한 채경으로써는 알 수가 없다.


“휴.”




“진호 씨!”


저 멀리서 채경이 보인다. 진호는 미소를 짓는다.


“나 먼저 갈게.”

“배운 거.”


태균의 말에 진호는 다시 심호흡 한다.


“잘 기억할게.”




“잠시만요.”


길을 걷다가 진호는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처음 피는 담배가 너무 독하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피는 거지?


“진호 씨 담배 펴요.”


“제가 조금 핍니다.”


채경이 자신을 좋아하고 색다른 시선으로 봐주는 것 같아 흐뭇한 진호다.


“아, 그러시구나.”


“네.”


그리고 과묵함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저 뭐 달라진 거 없는 거 같아요?”


“달라진 거요?”


달라진 거? 진호는 채경을 유심히 바라본다. 단정하던 머리가 귀신 머리처럼 산발이 된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것이 없다.


“혹시, 머리?”


“맞아요.”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아.”

채경 역시 진호가 자신의 머리에 관심을 보여주는 줄 알고 흐뭇하다.




“저 이제 다 왔어요.”


진호는 조심스럽게 채경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채경이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왜?”

“담배 냄새 나서요.”


“?”


자, 잠깐 이거 태균이에게 들었던 거랑 다른데?

“여자들은 담배 피는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네? 누가 그런 말을 해요?”


“태, 태균이가.”


채경이 어이가 없어 코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저 담배 피는 남자 완전 안 좋아 해요.”


“호, 혹시 그럼 과묵한 남자는요?”


“저는 저랑 같이 대화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진호는 속으로 열심히 이를 간다.


“그런데 진호 씨. 제 머리 어때요?”


“머리가 왜요?”


“더 청순해 보이지 않아요?”


“귀신이 언니하자고 할 것 같아요.”


“네?”


뭐, 뭐야? 이게 아니잖아!


“청순해 보이는 게 아니라요?”


“청순은요. 지저분해보이는 걸요?”


채경이 조용히 머리를 묶는다.


“저도 사실은 사무실 여직원들이 시킨대로 한 거거든요.”


그리고 눈이 마주친 두 사람.


“푸하.”


“히히.”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둘 다 남의 말 듣고 서로를 서먹서먹하게 대한 거에요.”


“그런가봐요.”


“채경 씨의 단정한 그 모습이 아름다워요.”

“진호 씨의 그 성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반하게 되어요.”


“채경 씨.”


“진호 씨.”


채경이 조심스럽게 눈을 감고, 진호의 입술이 다가온다. 그리고, 입맞춤


‘뎅- 뎅-’


채경의 머리에서 종이 울린다. 그리고 담배를 핀 남자의 입술인데 달콤하기만 하다?


“채경 씨.”


“진호 씨.”


입술을 뗀 서로의 볼이 붉다.


“잘 들어가요.”


“네.”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종소리가 들렸어. 종소리가.”


너무 행복하다! 그래 이게 바로 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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