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AM 7:42 [완]

AM 7:42 <다섯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7. 12. 20. 21:30
 




AM 7:42




5화


우리 조금은 다른 거야.




“뭐 좋은 일 있어?”


“아니.”


하지만 진호의 표정을 보니,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오빠 나한테까지도 비밀 만들기야?”

 

“히.”

 

진희는 고개를 젓는다.


“하여간 이 인간은 이해가 안 되요.”


도대체 오빠라는 인간이 나보다 더 어리다니까.


“나 먼저 나간다.”

 

“응.”


“하여간.”




“팀장님 어디 아프신 거 아니야?”


은호가 조심스럽게 윤우를 바라본다.


“그러게 말이야.”


지금 채경은 바보처럼 실실 웃고만 있다.




“진호 씨 뭐 좋은 일 있어?”


“아니요.”


핸드폰 대리점 김 씨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한다.


“저 자식 지금 연애 중이거든요.”


“그래?”


김 씨 아저씨가 미소를 짓는다.


“진호 총각 영 숙맥인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두 사람이 이러거나 말거나 진호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부, 부장님.”


“오셨어요?”


윤우와 은호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나저나 유 팀장은 어디에 갔나?”


“유 팀장님요?”


은호가 조심스럽게 채경을 가리킨다.


“헤에.”


입을 헤벌레 벌리고 있는 채경이 부장의 눈에 보인다.


“당장 유 팀장 부장실로 올려보내세요!”


“아, 네.”


윤우가 조심스럽게 채경에게 다가간다.


“저기 팀장님.”


“응?”


채경이 꿈결에 젖은 목소리로 윤우를 바라본다.


“무슨 일이야?”


“부장님이 좀 올라오시라는 데요?”


“왜?”


“방금 내려오셨다가, 팀장님 꿈에 젖어 있는 모습 보시고.”


은호가 말 끝을 흐린다.


“뭐?”


채경은 앞이 캄캄하다. 정 부장 깐깐한 거 다 아는데.


“알았어.”


채경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코코아 한 잔만 좀 뽑아나 줘.”


“네.”


윤우와 은호가 안쓰럽다는 눈으로 채경을 바라본다.




‘똑똑’


채경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누구야?”


“유 팀장입니다.”


“들어와.”


차가운 목소리. 하아. 암담하다.


“부르셨어요?”


채경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들어선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네?”


“애인 생겼다며, 미리 나에게 말을 했어야지.”


“?”


채경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 행복한 소식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야 해?”

 

“부, 부장님.”


“축하하네. 언제 그 사람 데리고 저녁이나 먹지. 내가 거하게 쏠테니.”


“하.”


채경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진짜요?”


“그래.”


“그럼 오늘도 되는 거예요?”

“오늘?”


“네.”




‘따르릉 전화 왔어요.’


“여보세요?”


“나에요.”


“채경 씨!”


진호가 구두를 닦다가 전화를 받는다. 이미 손님은 머리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제가 닦아드릴게요.”


재빨리 태균이 수건을 잡는다.




“오늘 시간 괜찮아요?”


“오늘요?”


“네.”


채경이 시계를 본다. 4시 다소 이르기는 하다.


“언제요?”

“저희 회사 부장님이 오늘 저녁을 사주신데요.”


“저녁요?”


진호의 목소리가 떨떠름하다.


“불편해요?”


“조금요.”


“저희 회사 사람들 나쁘지 않은데. 그냥 저 애인 생긴 거 축하해준다고 해서요. 그렇게 불편하면 취소하고요.”


“이미 약속한 거예요?”


“네.”


채경이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그러면 할 수 없죠.”


“네?”


“채경 씨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없잖아요.”


약간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


“진짜죠?”


“물론이죠.”


역시 이 남자 최고다.


“그러면 지금 입고 있는 옷 말고 다른 옷은 없죠?”


“다른 옷이요?”




진호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본다. 조금 후줄그레하다.


“없는데.”


“그러면 조금 있다가 5시에 만나요.”


“5시오?”


“네.”


진호가 시계를 본다.


“괜찮아요.”


“그러면 출구 앞에 있을테니까 올라오세요.”


“알겠습니다"


“무슨 전화냐?”

 

진호가 전화를 끊자, 태균이 미소를 지으며 진호의 옆으로 온다.


“오늘 저녁을 먹자네.”


“저녁?”


태균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누구랑?”

 

“회사 사람들이 내가 궁금하다고 한데.”


“네가?”


“응.”


태균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그 사람들 네가 구두닦이인 거 알까?”


“응?”


“채경 씨가 이미 말 한 걸까?”


“말 했겠지?”


진호도 자신감이 없다.


“만약 아직 말 안 했다면?”


“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해 하겠냐?”

 

“그런가?”


“지금이라도 취소하는 게 어때?”


“하지만 이미 채경 씨가 약속을 잡았다고 하는 걸.”


“벌써?”


하여간 그 여자 성격 한 번 되게 급하네.


“그래서 만날 거야?”


“그럼, 이미 채경 씨 하고도 약속 한 건데?”

 

“휴우.”


태균이 한숨을 쉰다.


“걱정이다.”


“뭐가?”


“아니야.”


태균은 진호가 얼마나 무시를 당할 지 눈 앞에 보인다. 이 바보는 그걸 모르니. 하여간 너무 순진하다.




“저 먼저 퇴근할게요.”


“네, 조금 있다가 뵈요.”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벗어난다.


“히히.”


벌써부터 진호를 코디할 생각에 흐뭇하다.




“나 다녀올게.”


“그래.”


여전히 태균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얼굴 좀 펴라.”


“응.”

 

하지만 표정이 여전하다.


“내가 죽으러 가냐?”


“죽으러 가는 거 같이 보인다.”


태균이 고개를 젓는다.


“아무튼 네 선택이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리고 내가 어디서 무시 받을 사람이냐?”

“채경 씨 직업이라면.”


“채경 씨 직업 아무 것도 아니래. 그냥 사무원이래.”


“그러면 다행이고.”


태균은 더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는다.


“잘 다녀오고, 내일은 늦지 마라. 너 요즘 매일 일찍 퇴근한다.”


“미안.”


“연애 초기니까 봐주는 거야.”


“킥. 다녀올게.”


“그래.”




“이제 올 때가 되었는데?”

 

5시 30초 전이다.


“채경 씨!”


저 밑에서 진호가 올라온다. 역시 약속은 어기지 않는 바른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만나자고 했어요?”


채경이 조심스럽게 진호의 옷을 훑어본다. 역시 작업복차림은 아니지만, 자신의 정장에 비교해봤을 때 조금 밀린다.


“내가 옷 좀 사줄게요.”


“오, 옷이요?”


“네.”


“하지만.”

“부담 갖지 말아요. 오늘 내가 진호 씨에게 부담 주는 거 같아서 선물하는 거니까요. 부탁이에요.”


채경이 귀엽게 손을 모은다.


“네.”


진호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짓지만 채경은 그 걸 알아채지 못한다.




“이런데서 먹어요?”


“왜요?”


“한 번도 안 와봤어요.”

 

유명한 패밀리 레스토랑, 하지만 진호는 단 한 번도 이 곳에 와본 적이 없다. 항상 김밥이나 먹고, 진희와 했던 가장 큰 외식은 피자 전문점이었다.


“너무 굳어있지는 않아도 되어요.”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네.”


진호가 심호흡을 한다.




“어떤 사람일까?”


“우리 팀장님을 반하게 한 거 보면 분명 대단한 사람일 거야.”


“그럼, 우리 유 팀장 반하게 했으면, 아무리 안 되도 검사, 의사, 하다못해 교사라도 될 게 분명하지.”


“그럼요.”

“어머, 저기 오네요.”

 

세 사람 모두 채경과 그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멀쑥하게 생겼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는 지 파악할 수가 없다.


“뭐 하는 사람이지?”


“물어보면 되죠.”


“제가 늦었죠?”


“아니.”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진호 씨, 이 분이 저희 회사 부장님이에요.”

“반갑습니다.”


“네, 저는 강진호라고 합니다.”


진호가 그 손을 잡는다. 부장은 손에서 힘을 느낀다.


“이쪽은 회사 동료. 강윤우 씨.”


“반가워요.”


“네.”

 

“그리고 이쪽도 회사 동료. 유은호 씨.”


“반갑습니다.”


“저도요.”

 

“일단 앉지.”

 

부장의 말과 함께 다섯 사람은 모두 자리에 앉았다.


“그래 우리 유 팀장을 꼬신 거 보니 대단한 사람인가 보군.”


“네?”

 

진호는 살짝 당황했다.


“팀장이요?”

 

“어머, 모르셨어요?”

 

“네. 금시초문인데.”


“그만 해요.”


채경은 진호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 사라진 것을 보고, 걱정이 된다.


“이런 이야기는 그만 하지. 그나저나 강진호 씨는 무슨 일을 하나?”


“진호 씨요?”


채경이 살짝 눈치를 본다.


“그게.”


“구두 닦이를 하고 있습니다.”


채경의 말을 가로채고 진호가 말을 한다.


“구두닦이요?”

 

윤우가 의외라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흠, 그렇군.”

 

하지만 진호는 이미 세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편하실대로.”


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윤우는 채경을 닦달한다.


“왜 저런 남자를 고르셨어요?”

 

“응?”

 

“구두 닦이라니.”


“말도 안 돼요!”


“뭐가?”


채경은 당혹스럽다.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거야?


“나도 조금 황당하군.”


“부장님!”

“채경 씨라면 더 좋은 조건의 남자와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남자가 없는 거라면 내가 소개해 줄 수도 있네.”


“그런 거 아닙니다.”


채경의 인상을 쓴다.


“제발 그 사람 앞에서는 이런 말 하지 마세요.”




“하아.”


그래 평범한 사무원이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는 지도 모른다. 자세하게 알지도 못하고, 매일 아침 본다는 이유만으로 사귀자고 한 내가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팀장이라니 나랑 너무 차이가 나잖아.


“휴우.”


게다가 사람들의 표정이라니. 진호는 조금 자신이 없다.


“모르겠다.”


진호는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테이블로 걸어간다. 그런데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린다. 모두 자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팀장님!”

 

“흠.”


윤우가 말을 끊고 얼굴이 붉어진다.


“진호 씨 왔어요?”


채경의 얼굴도 붉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네?”


“제 동생 담임선생님께서 오늘 상담 요청하신 걸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이렇게 와주셨는데 죄송해요. 저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호 씨.”


채경도 따라 일어나자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채경을 자리에 앉힌다.


“채경 씨는 식사하고 오세요.”


“하지만.”

“아니요.”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그럼 즐거운 저녁 되십시오.”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에서 멀어진다.


“유 팀장, 도대체 저 남자가 어디가 좋다는 건가?”

“부장님.”


“맞아요.”


채경은 이 사람들이 답답하다. 사람을 겉밖에 보지 못하다니.

“저도 일어나겠습니다.”


“유 팀장!”

 

부장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지금 기분이라면 저도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없을 거 같아요.”


채경은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테이블을 벗어났다.




“하아.”


그래 강진호, 이제라도 헤어지자. 겨우 사흘 사귀었잖아. 우리는 원래부터 맞지 않는 거야. 그래.


“진호 씨!”

 

그 때 저 뒤에서 채경의 목소리가 들린다.


“?”


진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린다.


“채경 씨, 어쩐 일이에요?”

“진호 씨가 그렇게 가는데, 제가 어떻게 밥을 먹어요.”


“채경 씨.”


“미안해요.”


채경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채경 씨.”

 

진호가 당황을 한다.


“왜 울어요?”


“미안해요. 진호 씨 그런 모욕 당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솔직히 제가 분수가 없었죠. 어디 감히 한 회사의 팀장님을. 잘 된 거에요. 우리 이대로 헤어져요.”


“진호 씨!”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진호가 조심스럽게 채경을 안는다.


“그러면 이 말 꺼낸 내가 나쁜 거 같잖아요.”


“나쁜 거 맞아요.”


채경이 애써 울음을 참는다.


“우리는 틀려요.”

 

진호가 차분히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만날 수 없어요.”


“아니.”


채경이 진호에게서 떨어진다.


“틀렸어요.”

 

“채경 씨.”


“우리는 틀린 게 아니에요. 우리는 조금 다른 거야.”


“채경 씨.”


채경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보도를 적신다.


“우리는 틀린 게 아니에요!”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냥 조금 다를 뿐이에요. 틀린 게 아니라!”


“채경 씨.”

 

진호가 조심스럽게 한 발짝 다가갔다.


“지난 번에 첫 눈 오는 날 뭐할 거냐고 물었죠?”


“?”


“오늘 첫 눈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

 

채경이 입을 열 순간도 없이, 진호의 입술이 부드럽게 채경의 입술에 닿았다.


“고마워요.”


“진호 씨.”


“그리고 사랑해요.”

 

“나도.”


채경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볼 거예요.”


“응.”


“하지만 우리 조금씩 극복해 나가요.”


“네.”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닿았다. 그리고 하늘은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눈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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