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7:42
12화
그래도 사랑합니다.
“하아.”
진호는 괜히 빈 캔을 찼다.
“휴우.”
멀리 날아가는 캔을 보니 그나마 마음이 풀리는 듯 하다.
“코카 콜라 하나 주세요.”
‘탁’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콜라를 따서 한 모금 마시니 조금 진정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방법을 모르겠다. 이런 일이 처음이고, 어렵기만 하다,
“전화도 없고.”
분명 자신이 헤어지자고는 했지만, 그래도 전화는 해줄 줄 알았는데, 헤어지지 말자고 하면 그러려고 했는데,
“휴, 그렇다고 먼저 전화를 걸 수도 없고.”
“미치겠다.”
“저, 태균 씨.”
“채경 씨!”
태균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채경의 앞에 선다.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다, 들었죠?”
태균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사람 어딨어요?”
“왜요?”
태균의 말투가 날카로워진다.
“태균 씨.”
“걔 더 힘들게 하지 말아요.”
“하지만.”
“물론 채경 씨 잘못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데요?”
태균이 코웃음을 친다.
“일단 결과를 보고 말해요.”
“그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채경 씨 어머니가 하신 일이잖아요.”
“하지만.”
“채경 씨, 진호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해요.”
“그러면 어떤 게 진호를 위한 건지 모르시겠어요?”
채경은 할 말이 없다.
“채경 씨.”
“태균 씨, 태균 씨는 저희 편이 되어주시면 안 돼요?”
“저는 진호 편이에요. 그래서 이러는 거예요.”
“하아.”
채경이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나 이 나이 먹도록 처음해보는 연애에요. 그런데 이렇게 일이 꼬여가고 있어요. 나도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렇겠죠.”
태균도 옆에 앉아버린다.
“나는 정말 예쁜 사랑하고 싶었어요.”
“채경 씨.”
“그런데, 그런데.”
채경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두 사람이 만난 거 부터겠죠.”
“하아.”
태균의 차갑지만 정확한 말에 채경의 가슴이 아려온다.
“어떻게 하죠?”
“헤어지는 게 맞겠죠?”
“흐윽.”
채경이 입술을 깨문다.
“그럴 수는 없어요.”
“채경 씨!”
“진호 씨, 진호 씨라면 헤어질 거예요?”
“네?”
“진호 씨라면 그럴 수 있냐고요!”
진호는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래요.”
“하아.”
채경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나는 못 그래요. 나는 절대 못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하게요?”
“어떻게든, 되겠죠.”
“왜 그렇게 무책임해요!”
“진호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요.”
“그러니까 헤어지라는 거잖아요!”
“흐윽.”
태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제 일할 거니까, 마음대로 해요.”
“나 죽어버릴 지도 몰라요.”
뒤 돌아서는 태균의 등에 채경이 악을 쓴다.
“죽을 지도 모른다고요!”
“진호에게는 알리지 말아요.”
“하!”
“알면 진호 힘들어 해요.”
“알겠어요.”
채경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말 눈물겨운 우정이네요.”
“고맙습니다.”
“부럽습니다.”
“네.”
채경이 멀어지자 태균은 겨우 돌아선다.
“미안해요.”
태균은 다시 힘없어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태균이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요.”
“흐윽. 흐윽.”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채경을 모두 바라봤지만, 채경은 그들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개의치 않았다기보다는 그들의 시선을 느낄만한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한 채경이었다.
“내가 뭘? 내가,”
채경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균이라는 사람이 밉기만 하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잔인한 말을 서슴치 않고 퍼붓던 그 사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 사람과 친구가 아니였으면 한다.
“흐읍.”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런 태균과 진호가 부럽기도 하다. 채경에게는 그런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하아.”
여태까지 나는 무엇을 한 걸까?
“오셨어요?”
“응.”
다시 돌아온 채경을 보고 윤우와 은호가 서로의 눈치를 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저.”
“어?”
윤우가 코코아를 건넨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야.”
채경은 미소를 지으며 코코아를 받는다.
“잘 마실게.”
“네.”
달다. 그나마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
“팀장님 무슨 일 생기면 꼭 저희에게 말씀해주세요.”
“일?”
“네.”
은호가 미소를 짓는다.
“저희는 팀장님 편이거든요.”
“내 편이라.”
채경은 가만히 컵을 만지작 거렸다.
“정말 내 편인 거야?”
“네?”
윤우가 반문한다.
“정말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은호가 걱정어린 눈으로 채경을 바라본다.
“응.”
채경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신데요?”
“그게.”
채경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누군 지 알지?”
“네, 만나 봤잖아요.”
“그거 우리 엄마가 아셨어.”
“!”
“그럼?”
“그리고 우리 헤어지게 만드려고 정말 유치한 방법을 쓰셨더라고.”
“유치한 방법이요?”
“그 사람 여동생을 납치했어.”
“!”
“설마!”
윤우와 은호가 입을 가린다.
“그래서요?”
“다행히 지금은 돌려 보냈는데, 그 때문에 그 사람이 나와 헤어지자네. 나랑 사귀면 자기가 너무 힘들데.”
원치 않지만 채경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 첫 사랑이야.”
“팀장님.”
윤우가 조심스럽게 채경을 안았다.
“힘 내세요.”
“얼마나 힘드셨을까?”
은호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그런데 나 그 사람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이해 해요.”
“그런데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게 맞는 거 같아.”
“아니요.”
윤우와 은호는 단호히 대답했다.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힘든 걸?”
“팀장님이 곁에 없으면 편해지는 거예요?”
“어?”
“그게 확실하다면 떠나셔야죠.”
윤우가 채경의 손을 잡는다.
“하지만 곁에서 함께 극복할 수 있다면 아니에요.”
“맞아요.”
“둘.”
“팀장님.”
“그래 만나러 가야 겠어.”
채경이 전화기를 든다.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어.”
“잘 생각하셨어요.”
“고마워.”
“고맙긴요.”
채경이 외투를 걸친다.
“두 사람 내 일까지 하고 퇴근해 줘.”
“네!”
“내일 뵈요.”
그렇게 채경이 나간 순간 윤우와 은호는 채경의 마지막 말을 다시 생각한다.
“저, 은호 씨 지금 뭐라고 하셨지?”
“자기 일 하고 가라고.”
두 여자는 순식간에 패닉에 빠졌다.
“다 마셨네.”
진호가 캔을 흔들다 찌그러뜨렸다.
“휴우.”
‘♩♪♬♪♩’
채경이다.
“휴우.”
진호는 깊게 심호흡 했다.
“여보세요?”
“나에요.”
“네.”
진호는 일부로 차갑게 대답한다.
“왜 전화했어요?”
“우리 만나요.”
“왜요?”
“우리 이야기 해요.”
“나는 할 이야기 없어요.”
“나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
“듣고 싶지 않아요.”
“들어야만 해요.”
진호는 한숨을 쉰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에요?”
“우리 만나서, 만나서 이야기 해요.”
“좋아요.”
진호가 시계를 본다.
“30분 후에 그 카페에서 봐요.”
“아니요.”
“네?”
“지금 이야기해요.”
진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에요.”
“!”
멀리 채경이 걸어오고 있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요?”
“태균 씨가요.”
채경은 싱긋 웃었다.
“나 못 헤어지겠어요.”
“왜요?”
“우리가 같이 헤쳐나가면 안 되는 거예요?”
“안 되잖아요.”
“될 거예요.”
“어떻게 알아요?”
“그럼 안 될 거는 어떻게 알죠?”
채경이 진호의 손을 잡는다.
“앞으로는 이런 일 생기지 않도록 할게요.”
“채경 씨가 한 일이 아니잖아요. 채경 씨는 관련 없잖아요.”
“아니.”
채경이 진호를 안는다.
“그러니까 가라는 말 하지 말아요.”
“채경 씨.”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채경을 안는다.
“먼저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네?”
“전화할까 망설였어요.”
“진호 씨.”
“그런데 이렇게 먼저 전화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진호가 싱긋 웃는다.
“채경 씨가 누구든지 상관 없어요.”
“진호 씨.”
“채경 씨 어머니는 우리가 천천히 설득해 나가요.”
“고마워요.”
“채경 씨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진호가 채경을 꼭 끌어 안는다.
“그리고 채경 씨가 모든 잘못을 했더라도.”
“?”
“그래도 사랑합니다.”
“진호 씨.”
“진심이에요.”
채경과 진호의 입술이 부딪친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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