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서른한 번째 이야기
아버지의 말씀
“하아.”
“지연아 왜 그래?”
“아무 일도 아닙니다.”
연지가 지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데? 무슨 일인데?”
“그것이.”
지연이 입을 열었다가 고개를 젓는다.
“역시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말해봐. 고민은 털어 놓으면 절반은 해결 된 거라고 하잖아.”
“그렇습니까?”
지연이 망설인다.
“그, 그것이.”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지연아가씨.”
“네,”
집사로 계시는 유 노인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버님께서 부르십니다.”
“어인 일로요?”
유 노인이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알았어요.”
지연이 고운 자태로 신을 신는다.
“아버지.”
“그래 지연이 왔구나.”
“어인 일이십니까?”
순간 지연 아버지의 표정이 굳는다.
“아버지.”
“지연아.”
“네?”
“우리 곧 이사를 가게 될 지도 모른다.”
“이사라니요?”
지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우리의 집이 이곳에 있는데 어디로 떠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다 이 아비가 무능해서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가 눈을 지긋이 감는다.
“아버지.”
“내가 돈을 좀 빌렸다.”
“네?”
지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그리고 이 집을 담보로 잡았지.”
“!”
지연이 눈동자가 커진다.
“서, 설마.”
“그래.”
지연이 고개를 숙인다.
“어떻게 아버지께서 그런 일을 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그 누구보다 이 집에 애착을 갖고 계신 것 아니셨습니까?”
“이리 될 지 몰랐다.”
“!”
지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연아.”
“일단 지금은 너무 놀라서 마음을 추스르기가 어렵군요. 저 제 방에 가 있다가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연아!”
아버지가 한숨을 쉰다.
“네 어미를 살리려고 한 일이야. 그러려고 한 일이야.”
아버지의 손등으로 눈물이 떨어진다.
“하아.”
지연이 고개를 숙인다.
“이사를 가야하다니.”
지연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대연 군.”
더 이상 대연을 볼 수 없음에 지연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아려온다.
“주인 어른.”
유 노인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마지막까지 어른을 모시면 아니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유 노인을 안는다.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어른.”
“아저씨.”
“!”
유 노인의 눈이 동그래진다.
“주, 주인 어른.”
“언제나 이렇게 부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제게 정말로 큰 힘이 되어주신 아저씨.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아저씨를 모시지 못하는 점에 굉장히 송구스럽습니다.”
“주인 어른.”
유 노인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그동안 돌보아 드릴 수 있어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저를 거두어주신 선대에 대한 보답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한데.”
“아니요.”
아버지가 고개를 젓는다.
“제 곁에 있어주신 것만 해도 아저씨께서는 정말로 큰 일을 해주신 겁니다.”
“만일 이 종가가 다시 일어난다면 반드시 다시 불러주십시오.”
“네.”
“할아버지.”
지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유 노인의 품에 안긴다.
“아가씨.”
“할아버지.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가씨.”
유 노인이 지연의 등을 토닥인다.
“요즘 아가씨를 보면 제 마음이 흐뭇합니다.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가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비록 이 종가에 계시지 않더라도, 이 종가의 마음을 반드시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종가를 반드시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네.”
지연이 눈물을 닦는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 지금은 이해해주시겠지요?”
“네.”
지연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아가씨께서 이리 우시면 저는 길을 떠나지 못합니다.”
“흐윽. 네.”
지연이 억지로 입술을 �문다.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지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유 노인이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사립을 벗어난다. 쓸쓸함만이 종가를 휩쓸었다.
“앞으로는 많이 힘들게다.”
“예.”
“너도 알다시피 이 아비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오직 한 것은 글 공부요. 예절 공부니라. 이걸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는 반드시 지켜주겠다. 그러니 너는 그리 큰 마음을 쓰지 말거라.”
“예.”
“허나,”
지연이 고개를 든다.
“전학은 불가피 할 것이다.”
“예.”
지연은 담담하게 대답한다.
“괜찮겠느냐?”
“물론입니다.”
지연이 미소를 짓는다.
“괜찮습니다.”
유 노인
88살. 남자
오랫동안 지연의 집안에서 집사 노릇을 하면서 살아왔다. 지연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사람. 지연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이 종가에 대하여 애착이 굉장히 크다. 진심으로 이 집안의 가족들을 걱정하고 아끼고 있다. 가족들에게도 단순히 집사가 아닌 하나의 가족으로 대우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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