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 사랑해! [완]

우리, 사랑해! season 3 - [열두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7. 28. 22:02

 

 

 

우리, 사랑해!

- Season 3 -

 

열두 번째 이야기

 

선재와 주연, 그리고 병환.

 

 

 

주연 씨!

 

주연은 묵묵부답이었다.

 

하아.

 

선재가 고개를 저으며 1층으로 내려간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주연의 지금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선재였다.

 

 

 

.

 

주연은 너무나도 창피한 나머지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서로 사랑을 하는 사이라고는 하나, 서로의 속옷을 빨아주는 일은 좀 심하지 않은가? 아무리 연인 사이라고는 해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 주연이었다. 최소한 속옷 빨래는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정도라고 생각을 하는 주연이었다.

 

도대체 선재 씨는 왜?

애초에 빨래를 하지 않은 자신의 탓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방을 마음대로 들어와서 정리를 하는 건 정말 너무 심하지 않은가? 선재의 의도가 물론 이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당혹스러운 주연이다.

 

휴우.

 

선재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으아.

 

주연이 머리를 헝클어 뜨린다.

 

 

 

하아.

 

진수성찬을 두고 선재가 한숨을 쉰다. 주연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에 한 상 가득 차렸는데, 주연이 이렇게 화를 내고 2층으로 올라가다니, 너무나도 화가 난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지도 못하겠는 선재다.

 

후우.

 

그렇게 잘못한 걸까?

 

 

 

여보세요?

 

병환이 힘이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나다.

 

어머니.

 

어머니 때문에 혜지와 헤어진 이후,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조차 잘 드리지 않는 병환이었다.

 

어쩐 일이세요?

 

지금까지도 그 혜지라는 아이와 헤어진 것 때문에 이 애미에게 쌀쌀맞게 구는 게냐? 그게 오로지 이 애미 탓인 게냐? 이 애미가 네가 못 되라고 그렇게 한 게 아닌 걸 너도 잘 알고 있잖냐?

 

저 피곤해요.

 

병환아!

 

병환이 전화를 끊는다.

 

후우.

 

병환이 한숨을 쉰다.

 

헤지야.

 

병환이 전화를 만지작 거리다가 내려 놓는다. 혜지에게 전화를 하고 싶지만, 혜지의 목소리를 미친 듯이 듣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혜지에게 다시 연락을 할 그 용기가 나지 않는다.

 

후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답답한 병환이다.

 

하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꼬르륵

 

주연이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울상을 짓는다.

 

배고파.

 

점심에 먹은 것이라고는 혜지와 함께 카페에서 먹은 아이스크림이 전부였다. 선재가 해준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에 집에 왔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다. 게다가 자신이 너무나도 화를 냈었기에, 자신이 먼저 내려가기에도 마땅찮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웬일인지 평소에는 항상 먼저 와서 주연의 기분을 풀어주던 선재도 2층으로 올라오지도 않는다. 아마 주연이 너무나도 화가 났기에 그 화를 풀 용기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후우.

 

너무 배가 고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이잉.

 

주연도 자존심이 좀 있는데, 먼저 내려갈 수 없는데.

 

하아.

 

주연은 지금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도 갑갑했다.

 

 

 

후우.

 

선재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배 많이 고플텐데.

 

보통 여성보다는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덩치가 큰 주연은 다른 여성들보다 조금 더 많은 식사를 즐긴다. 그리고 삼시 세끼는 단 한끼도 거르지 않고 모두 먹는 주연인데, 저녁을 굶다니.

 

하아.

 

하지만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듯 한데 자신이 올라가도 되는 것인지 선재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주연이 굶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뭘 먹이기는 해야 하는데.

 

흐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재다.

 

 

 

Rrrrrr Rrrrrr

 

다시 전화가 울린다. 병환은 액정을 바라본다. 역시 어머니다.

 

후우.

 

병환이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너 어떻게 이 애미의 전화를 그 따위로 끊어버릴 수 있는 게냐! 네가 그러고도 내 자식이더냐?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데요?

 

선 보거라.

 

어머니!

 

네가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선을 보기로 그 쪽과 이야기를 다 끝내 놓았어. 이번 토요일.

 

왜 그렇게 멋대로세요!

 

병환이 자신이 의도한 것보다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무슨 말이냐?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저는 아직 다른 그 누구를 만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어미의 얼굴에 먹칠을 하겠다는 게냐?

 

어머니 멋대로 하신 약속이시잖아요!

 

다 너를 위해서다!

 

후우.

 

병환이 머리를 쓸어 올린다.

 

도대체 제게 왜 이러세요?

뭐가?

 

아닙니다. 그 여자분을 만나기는 하지요.

 

그래?

 

어머니의 목소리가 밝아지는 것을 느끼니 병환의 마음이 갑갑하다.

 

 

 

.

 

방문에 한참이나 귀를 대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주연은 울상을 지으며 다시 침대에 앉았다.

 

꼬르륵

 

배고픔이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히잉.

 

어떻게 해야 할까?

 

하아.

 

그렇게 주연이 방문에 귀를 대고 있는 순간

 

 

 

아무리 화가 났어도 밥은 먹여야 했다. 아무렴,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였다. 특히나 한국 사람, 그 중에서도 원주연의 경우는 말이다.

 

후우.

 

선재가 고개를 저으며 2층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순간

 

 

 

하아.

 

, 선이라. 병환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혜지와 헤어지고 보게 되는 선. 과연 옳은 것일까? 옳다면, 이것은 누구를 위하여 옳은 것일까?

 

후우.

 

병환은 머리가 너무나도 복잡해옴을 느꼈다. 이미 자신과 혜지의 일은 자신의 손으로 해결할 수 없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혜지와 자신이 함께 하던 그 순간들은 바로 어제의 일과 같이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 같았다. 사실, 지금 자신과 혜지가 헤어진 상태라는 것 자체도 병환은 믿기 힘들었다.

 

후우.

 

선을 보아야 했다. 최소한, 그래야만 했다. 일단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기는 해야 했다. 혜지와의 일은 그 이후로 밀어도 될 듯 했다.

 

하아.

 

병환이 복잡한 머리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철컥

 

으악!

 

우왓!

 

다른 집들과는 다르게, 방문을 밖으로 열게 되어 있는 선재의 집이었다. 그리고 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있던 주연과, 그 문을 잡아 당긴 선재. 그 결과.

 

!

 

, 주연 씨.

 

주연이 선재를 덮친 꼴이 되어 버렸다.

 

, 주연 씨.

 

.

 

선재와 주연 얼굴 모두 잔뜩 붉어 있다.

 

, 좀 비켜주실래요?

 

, .

 

주연이 황급히 선재의 몸에서 내려온다.

 

, 죄송해요.

 

, 아니에요.

 

두 사람 다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꼬르륵

 

순간 주연의 배에서 들리는 배꼽시계

 

!

 

주연의 얼굴이 붉어진다.

 

배 많이 고파요?

 

선재가 조심스럽게 주연에게 묻는다.

 

.

 

주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주연 씨.

 

?

 

밥을 먹던 주연이 고개를 든다.

 

정말 미안해요.

 

, 선재 씨.

 

주연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 저도 죄송해요.

 

주연이 고개를 숙인다.

 

선재 씨는 제 남자 친구이고, 우리는 지금 한 집에 사니까 그 정도 일을 하실 수도 있는 건데 제가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인 거 같아요.

 

, 주연 씨.

 

주연이 고개를 들고 해맑게 웃는다.

 

대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요.

 

.

 

선재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화 풀린 거예요?

 

.

 

주연이 해맑게 웃는다.

 

다 풀렸어요.

 

그렇게 두 사람의 헤프닝은 주연의 배꼽소리 덕에 쉽게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