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 Season 3 -
열한 번째 이야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주연 씨!”
“네?”
아침부터 선재가 큰 목소리로 주연을 부른다. 주연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1층으로 내려온다.
“무슨 일이에요?”
“이거 봐요.”
선재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엽서를 하나 내민다.
“어머.”
가인으로부터 온 엽서였다.
“어디 좀 봐요.”
“여기요.”
주연이 찬찬히 엽서를 읽어 본다.
‘To. 사랑하는 내 아들 선재와 내 아들의 소중한 여자 친구 주연 양에게
먼저 어머니로써 걱정되는 것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구나. 두 사람이 동거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 번에 들었다. 솔직히 나는 두 사람을 믿고 동거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성인이고, 두 사람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질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두 사람이 동거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주연 양이 자신의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고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에 걸리는 구나. 지금은 일단 주연 양의 어머니에게 임기응변으로 피하기는 했지만, 이 사실이 언제까지고 주연 양의 어머니 귀에 들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이 된다.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어머니에게 고백을 하고 함께 동거를 하는 게 어떨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이 되지만, 두 사람이 알아서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그 이야기는 두 사람 손에 맡기도록 하마. 나는 요즘 Dr. Jason과 정말 행복한 나날들을 보이고 있단다. 유럽, 특히나 이쪽 북유럽의 날씨는 꽤나 좋구나. 맑은 하늘과 청정한 자연. 한국의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구나. 왠지 모르게 나도 젊어진 느낌이 요즘 들어 부쩍 들지만, 내 곁에 있는 Dr. Jason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구나. 당분간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단다. 선재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주연 양이 곁에 있으니 꼭 내가 네 옆에 있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한단다. 그런만큼, 주연 양 우리 선재를 꼭 옆에서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주연 양이 있기에 내가 마음을 놓고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거니 말이에요. 선재야 언제나 너는 이 엄마의 아들로써 그 자부심을 잃지 않고 어디서나 빛이 나는 당당한 사람으로 지내줄 거라고 믿고 있다. 그게 너니까 너는 할 수 있을 거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보다 한참이나 더 많지만, 이 엽서의 공간이 나의 마음을 전부 적어내기에는 너무나도 좁은 공간이구나. 일단 이곳 스위스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면, 다시 너에게 엽서를 하도록 하마. 편지가 아니라 단순히 엽서 하나만 보낸다고 서운해 하지는 말거라. 이 어미는 이게 더 낭만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렇게 보내는 거니 말이다. 다시 한 번 두 사람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다음에 다시 엽서를 보낼 때까지 몸 건강히 잘 있거라.
From 세상에서 가장 우리 아들을 사랑하는 가인으로부터’
“우와.”
주연이 탄성을 내지른다.
“너무 멋있어요.”
“멋있긴요.”
하지만 선재도 기분이 좋다.
“우리 이 엽서 차곡차곡 모아요.”
“우리 엄마 성격에 그걸 그렇게 많이 보내실까요?”
선재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요?”
“우리 엄마가 원래 좀 덤벙대시거든요.”
선재가 씩 웃는다.
“그나저나 우리 방학해서 너무 좋지 않아요.”
“네.”
주연이 싱긋 웃는다.
“계절 학기 수업도 모두 끝나고, 정말 1년 내내 이렇게 지냈으면 좋겠다.”
주연이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몸을 눕힌다.
“하여간 주연 씨는 어차피 하는 일도 없었잖아요. 내가 밥도 다 해줘, 청소도 다 해줘. 안 그래요?”
“치.”
주연이 볼을 부풀린다.
“내가 요리를 하려고 하면 항상 선재 씨가 말리시잖아요.”
“맛이 없으니까 그렇죠.”
“네?”
선재의 말에 주연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선재 씨가 언제 저에게 요리나 많이 시켜보셨어요? 기껏해야, 김치 찌개랑 참치 찌개 한 번씩 끓였을 뿐이에요!”
“김치 찌개에 고추장 푸는 사람은 주연 씨 뿐일 걸요? 참치 찌개에 콘 샐러드 붓는 사람도 주연 씨 뿐이구요.”
“그, 그건.”
주연의 얼굴이 빨게 진다.
“소, 솔직히 김치 찌개에는 정말로 고추장이 들어가는 줄 알았지만, 참치 찌개는 그 때도 말했잖아요. 콘을 참치 통조림인 줄 알고 부었다고요.”
“그게 헷갈려요?”
선재가 계속 주연을 놀린다.
“그 때 자꾸 선재 씨가 정신 사납게 했잖아요. 나 요리 잘하나 감시하고 말이에요. 그, 그러니까 그랬죠! 자, 자꾸 선재 씨 저 놀릴래요?”
“아, 알았어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아무렴 제가 주연 씨 미워서 그랬겠어요.”
“선재 씨 하는 거 보면 나 미워하는 거 같애.”
“어라? 반말?”
“왜요? 반말 쓰면 안 돼요?”
선재가 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오빠거든요.”
“그런데요?”
주연이 혀를 내민다.
“오빠 같아야 오빠 소리가 나오죠.”
“뭐, 뭐라고요?”
선재가 팔짱을 낀다.
“그렇게 주연 씨 억울하시면 명예 회복 기회 드릴까요?”
“네?”
순간 주연이 당황한다.
“무, 무슨 명예 회복 기회요?”
“요리 할래요?”
“됐어요.”
주연이 바로 거절한다.
“왜요?”
선재가 고개를 갸웃한다.
“항상 억울하다고 하셨잖아요.”
“그 귀찮은 것을 하느니, 그냥 억울해 할래요.”
주연이 싱긋 웃는다.
“하여간.”
선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 참!”
“왜요?”
주연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 혜지 만나기로 했었거든요.”
“몇 시에 만나기로 하셨는대요?”
“그, 그러니까 그게 기억이 안 나요?”
주연이 울상을 짓는다.
“뭐라고요?”
선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정도도 기억하지 못해서 어떡해요?”
“시끄럽거든요.”
주연이 볼을 부풀린다.
“그나저나 얘는 왜 전화도 안 받아?”
주연이 울상을 지으며 전화기를 닫는다.
“그러면 저 나갔다 올게요.”
“그래요.”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주연이 순식간에 후다닥 나가버린다.
“저럴 때는 빠르다니까.”
선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 나는 집안 일이나 해볼까?”
“으.”
혜지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을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지는 주연이다.
“읏차.”
선재가 주연의 침대를 정리한다.
“하여간.”
이불도 하나도 정리하지 않고 밑으로 내려오던 주연이었다. 어쩐 지 선재를 자신의 방에 못 들어오게 한다 싶었다. 여기저기 과자 봉지가 널려 있고, 꼭 중학생 여학생 같은 방이었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겨우 한 살 차이인데도, 선재와 주연은 너무나도 달랐다. 어릴 적부터 화영이 모든 것을 챙겨준 주연과, 가인의 모든 것을 챙겨주어야 했던 선재가 다른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라?”
빨래는 2층 끝에 있는 다용도 실의 세탁기를 이용하면 된다고 했는데, 빨래 바구니 가득히 그냥 담겨 있었다.
“하여간.”
선재가 빙긋이 웃으며 빨래통을 집어 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챙겨줘야 한다니까.”
선재가 미소를 지으며 주연의 방을 나온다.
“정말?”
“그래.”
주연이 울상을 짓는다.
“얼마나 잔소리가 심한지, 아주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 같다니까.”
“의외다.”
“그러니까.”
주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 나 이제 가봐야 해.”
혜지가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
“나 오늘 집에 가기로 했었거든.”
“그래?”
주연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우리 다음에 다시 보자.”
“그래!”
방학이 되니, 가장 절친했던 친구 혜지의 얼굴을 보기도 영 힘들었다. 주연은 남은 생과일 주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제 가볼까?”
주연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주연 씨 왔어요?”
“네.”
순간 주연이 선재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그게 뭐예요?”
“뭐가요?”
선재가 고개를 갸웃한다.
“주부 같아요.”
“그래요?”
선재가 해맑게 웃는다.
“어서 손부터 씻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주연이 미소를 지으며 2 층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웃기나?”
머리 수건에, 앞치마를 한 새색시 선재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맛있는 한 상이 가득 차려지기 직전이다.
“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던 주연이 흠칫한다.
“뭐, 뭐지?”
너무나도 정돈이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악!”
“무슨 일이지?”
선재가 황급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간다.
“주연 씨 무슨 일이세요?”
“서, 선재 씨 제 빨래에 손 댔어요?”
“네?’
주연이 자신의 책상 구석을 가리킨다.
“네.”
“왜요?”
“네?”
주연이 선재를 바라본다.
“왜 내 빨래에 손을 대요!”
“아, 아니 빨래가 많길래.”
“그런 건 내가 하면 되잖아요!’
“아, 아니.”
주연의 얼굴이 붉다.
“당장 나가요!”
“주, 주연 씨!”
주연이 선재의 등을 떠민다.
“어서요!”
‘쾅’
선재가 나가자마자 거칠게 닫히는 주연의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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