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 사랑해! [완]

우리, 사랑해! season 3 - [스물한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8. 4. 10:58

 

 

 

우리, 사랑해!

- Season 3 -

 

스물 한 번째 이야기

 

상처, 그리고 외면

 

 

 

하아.

 

레스토랑을 나와서 병환이 한숨을 내쉰다. 막상 하선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히기는 했지만, 왠지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를 줬다고나 할까? 하선의 그 얼굴을 다시 떠올리니 병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아직 혜지를 잊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휴우.

 

병환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휴대 전화를 꺼져 본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 함에 가본다. 여전히 혜지로부터는 단 한 통의 문자 메시지도 와 있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꺼내 본 것이었는데, 기분만 더 우울해졌다.

 

혜지야.

 

병환이 멍하니 혜지의 이름을 불러본다. 혜지가 미친 듯이 보고 싶다. 너무나도 보고 싶다. 정말로 보고 싶다.

 

휴우.

 

순간 병환의 머리 속에 한 생각이 스친다.

 

 

 

하아.

 

주연의 얼굴이 너무나도 어둡다.

 

주연 씨.

 

선재가 조심스럽게 주연을 부른다.

 

, 선재 씨.

 

주연이 애써 미소를 짓는다.

 

무슨 걱정 있어요? 설마 아직도 병환 씨 일 때문에 그러고 계시는 거예요? 그 일이라면, 제가 그냥.

 

저 다 말했어요.

 

?

 

선재의 눈이 커다래진다.

 

, 무슨?

 

혜지에게 사실을 다 말해버렸다고요. 병환이 오빠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말이에요.

 

주연이 슬픈 얼굴로 말한다.

 

그러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런데. 말해버리고 말았어요. 혜지는 제 친구니까요. 혜지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게 보였으니까요.

 

주연 씨.

 

선재가 낮은 목소리로 주연을 부른다.

 

주연 씨가 알려주면 혜지 씨께서 더 힘들어 하실 거라는 생각은 못 하신 거예요? 그 사실을 알면 혜지 씨가 얼마나 더 상처 입고, 아파하실 지 생각해보시지도 않으신 건가요? 그런 거예요?

 

!

 

선재의 말을 듣고 아차 하는 주연이다.

 

, 그런.

 

저는 단순히 병환 형님 때문에 말씀 드리지 말라는 게 아니었어요. 그 두 사람 문제기 때문에 우리가 신경 쓰지 말자고 말하지 말라는 게 아니었다고요. 그 말을 듣게 되면, 분명히 혜지 씨가 많이 상처를 받을 테니까. 그게 눈에 보이니까. 그게 선하니까, 그렇게 말씀 드린 거라고요.

 

!

 

선재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혜지의 오랜 친구라면서, 그 정도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다.

 

, 어떡하죠.

 

주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선재가 주연을 다시 의자에 앉힌다.

 

두 사람이 알아서 모든 것을 다 하기를 바라아죠.

 

선재가 주연에게 시원한 물을 한 잔 따라준다.

 

하지만.

 

그만.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두 사람 모두 우리보다 훌륭한 어른들이니까, 이 정도 일쯤은 더 멋있게 끝낼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아무런 고민하지 말아요. 우리는 그냥 두 사람을 지켜보면 되는 거예요. 두 사람이 이 아픈 터널을 훌륭하게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선재 씨.

 

선재가 가만히 주연을 가슴으로 안는다.

 

주연 씨는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정말 그럴까요?

 

.

 

선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가만히 우리의 친구들을 지켜보면 되요.

 

선재의 말을 들은 주연도 고개를 끄덕인다.

 

 

 

딩동

 

혜지가 움찔한다.

 

혜지야! 혜지야!

 

,

 

그리고 잇달아 들리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혜지의 마음이 요동친다.

 

조혜지 문 열어! 나야!

 

병환, 그토록 기다리고 원하던 사람.

 

집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당장 나와! 조혜지! 조혜지! 네가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오랫동안 듣고 싶던 말.

 

 

조혜지!

 

하지만 혜지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던 병환의 얼굴을 마주할 그 용기가. 혜지에게는 없었다.

 

조혜지.

 

병환이 힘없는 목소리로 혜지를 부른다.

 

 

힘이 빠진 주먹.

 

정말, 정말 없는 거니?

 

혜지는 울음이 터져 나오려 해서, 자신의 입을 꽉 틀어 막았다.

 

울면 안 돼. 조혜지, 울면 안 돼.

 

혜지야. 나 갈게. 네가 없겠지만, 나 갈게.

 

터벅터벅

 

그리고 멀어지는 발소리.

 

흐읍.

 

그리고 터져 나오는 울음

 

흐윽, 흐윽.

 

혜지는 애써 묶어 놓았던 울음보를 다시 터뜨리고야 말았다. 자신이 기다리고 자신이 원하던 사람 탓에.

 

 

 

하아.

 

병환이 한숨을 내쉰다.

 

혜지.

정말 없었던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병환이 미소를 짓는다.

 

당연히, 당연히 없었겠지. 혜지가 있었는데도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랬겠어? , 아무렴 그렇지 않았겠지.

 

병환이 애써 자신을 위로한다.

 

혜지.

 

자꾸만, 자꾸만 혜지의 이름을 입으로 되뇌어 본다.

 

도대체 왜.

 

어디서부터 엇갈린 걸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이 엇갈린 것들이 풀려나갈 수 있을까? 병환은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든다고 하더라도 이대로 혜지를 놓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놓아버리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이제는 다시 이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박 대리님.

 

소은이 입을 가린다.

 

무슨 일이에요?

 

?

 

병환이 잔뜩 지친 얼굴로 소은을 바라본다.

 

무슨 말씀이에요?

 

지금 얼굴 상태가 어떤 지 알아요?

 

소은이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거울을 보여준다.

 

초췌하네요.

 

병환이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도대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소은 씨.

 

병환이 소은을 부른다.

 

어제, 혜지에게 찾아갔었어요.

 

!

 

그런데 혜지가 집에 없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어요.

 

병환이 멍하니 그 말만을 중얼거리다.

 

없었어요.

 

박 대리님.

 

소은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소은 씨.

 

.

정말, 이제는 기회가 없는 걸까요?

 

병환의 눈이 너무나도 애처롭다.

 

아니요. 아니에요. 분명히, 혜지 씨는 다시 마음을 열 거예요. 분명히, 분명히 그럴 거예요.

 

그렇겠죠?

 

힘겨운 미소를 짓는 병환이다.

 

그렇겠죠.

 

그리고 혼자 멍하니 책상을 내려다본다.

 

후우.

 

소은이 이마를 짚는다.

 

박 대리님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병환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는 소은이다. 사실 소은도 자신의 일이 너무나 밀려 있다. 이렇게 태평하게 병환만을 위로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후우.

 

산더미 같은 자신의 일을 바라보니 소은 역시 울고만 싶어졌다.

 

톡톡

 

?

 

서우였다.

 

일이 너무 많아요?

 

?

 

너무 많으면 저 좀 나눠주세요. 저는 한가하거든요.

 

그래?

 

순간 부장의 목소리가 난다.

 

그렇게 한가하단 말이지?

 

, 부장 님.

 

그러면 일거리를 줘야지.

 

부장이 미소를 짓는다.

 

어떠한 일거리를 원하나?

 

, 그게 아니라.

 

어서 이리 오지.

 

서우가 울상을 지으며, 부장에게 다가간다.

 

, 나중에 꼭 도와드릴게요.

 

자신을 도우려는 서우의 모습에 소은이 애써 미소를 짓는다.

 

하여간.

 

그리고 눈길을 거두며 다시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소은이다.

 

 

 

한가해?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오늘 아침 내기로 한 보고서는?

 

.

서우가 능청맞은 미소를 짓는다.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하여간!

 

부장이 혀를 끌끌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