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두 번째 이야기 -
“주연아 자니?”
화영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주연을 부른다. 주연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 쓴다. 화영이 한숨을 내쉬며 주연의 옆에 앉는다.
“일어나 봐.”
주연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화영은 쓸쓸한 눈으로 주연의 등을 바라본다.
“주연아.”
화영이 다시 한 번 주연을 부른다. 그러나 여전히 주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냥 엄마 이야기 좀 들어 볼래?”
화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연을 다독인다. 주연은 알게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화영은 그 모습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냥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너랑 대연이랑 정연이를 정말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만은 듣지 않게 하면서 키우고 싶었어.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너희를 키웠어. 손가락질 받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 딸은 정말 사랑하는 내 아들들은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차라리 네가 뚱뚱한 게 너무나도 고마웠어. 적어도 남자애들과의 연애 때문에 다른 여자들의 입방아에 오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네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그러더라?”
주연의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네 말을 들으니까 정말 좋은 사람인 걸 알 수 있겠더라고. 하지만,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라는 건 그렇게 오래 가는 게 아니거든. 네 아빠를 봐도 그렇게 주위 사람들을 다 봐도 그래. 사랑이라는 건 너무나도 빨리 식으니까, 그런 거니까 이 엄마는 그게 너무나도 무서웠어. 네가 다칠까봐. 정말로 네가 다칠까 봐. 하지만 연애라는 건 특히나 어린 날의 연애라는 건 그렇게 오래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네가 그냥 한 두 달 사귀다가 헤어질 줄 알았어. 그게 두 달이 넘어 가고 석 달도 넘어가더라. 남자 친구라는 사람에게 선물도 받아오고, 정말 내 딸이 하루하루 예뻐지는 게 눈에 보였어.
화영이 주연의 머리를 쓸어 준다.
“정말 아가씨 태가 난다고 해야 할까? 내 딸도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였구나, 내 딸도 이렇게 소중한 한 사람의 연인이구나. 그런데 엄마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너무나도 불안한 거야. 결국에 다치는 건 여자거든. 그런데, 그런데 네가 동거를 한다니. 그걸 듣고 정말 엄마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어. 동거라는 거, 정말 좋은 거야. 물론 두 사람이 행복하게 결혼을 한다는 그런 결말이 있을 때는 말이야. 하지만,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에 깨져 버린다면.”
“선재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주연이 이불을 걷어 내고 자리에 앉는다. 주연의 눈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주연 뿐만 아니라 화영의 눈 역시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선재 씨는, 선재 씨는.”
“알아.”
화영이 주연을 안아준다.
“하지만, 알면서도 그러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어.”
“엄마.”
“동거가 나쁜 거 아닌 거 알아.”
화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저렇게 미리 살아보면 나중에 실제로 살 때 참 도움이 되겠다 싶었어. 그런데, 그런데 그게 내 딸이 되니까 막상 아니더라. 방송으로 보았을 때는 참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그걸 내 딸이 하고 있다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되더라.”
“엄마.”
“엄마니까, 나는 엄마니까 그런 거구나. 그거를 나는 방송을 볼 때는 몰랐던 거지.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바로 너에게 달려 간 거야.”
화영이 주연의 볼을 쓸어 준다.
“많이 아팠지?”
“엄마!”
주연이 화영의 품을 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으아, 미치겠네. 전화를 해도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벌써 몇 시간 째 선재는 거실만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여유를 가지고 낙천적으로 생활을 하는 선재라고 해도 지금의 상황에서 그렇게 낙천적으로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에게 잡혀 갔다. 모두 자신 때문에. 자신의 고집 때문에.
“어떻게 하지?”
한숨만 나오는 선재였다.
“미치겠네.”
선재가 울상을 지으며 자신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본다.
“주연아.”
“응?”
화영의 다정한 목소리에 주연이 고개를 든다.
“너 그 사람이 그렇게 좋니?”
“응.”
주연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나 그 사람이 정말로 좋아. 나 그 사람 없이는 못 살 거 같아. 그 사람은 나의 공기고 나의 삶이야.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래.”
화영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주연을 보며 주연의 등을 토닥토닥 거려 준다. 주연이 화영의 품에 꼭 안긴다.
“주연아 그게 사랑이야.”
“엄마.”
“엄마도 그렇게 사랑을 했어.”
화영이 애써 눈물을 참으며 주연의 머리를 쓸어 준다.
“그러면 주연아, 엄마가 그 사람을 한 번만 만나볼게.”
“응?”
주연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엄마가 무조건 그 사람을 내치는 건 잘못이잖니?”
화영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엄마!”
주연이 화영의 목을 안는다.
“그렇게 좋으니?”
“응.”
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좋다니까 됐다.”
“지금 당장 부를게.”
“어?”
화영이 말릴 겨를도 없이 주연은 전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나 참.”
그런 주연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우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저런 거 하나 이해하지 못해주나 싶은 화영이다.
“오빠 이렇게 늦으면 어떻게 해?”
혜지가 퉁퉁 부은 얼굴로 병환을 바라본다.
“미안.”
병환이 머리를 긁적인다.
“미안.”
“하여간 내가 오빠 떄문에.”
혜지가 가볍게 병환을 흘겨 본다.
“정말 미안해.”
병환이 두 손을 모으자 그제야 혜지가 미소를 짓는다.
“그럼 오늘 오빠가 저녁 사는 거다.”
“당연하지.”
혜지가 씩 웃는다.
“그럼 됐어.”
“으유 돼지.”
병환이 혜지의 볼을 꼬집는다. 혜지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병환을 바라본다.
“오빠, 자꾸 이럴 거야?”
“어?”
혜지가 양 손으로 병환의 볼을 꼬집는다.
“아유, 우리 병환 오빠 너무 귀엽다.”
“너.”
병환이 생글생글 웃는다.
“어서 밥 먹으러 가자.”
“그래.”
혜지가 병환에게 팔짱을 낀다.
“덥지 않아?”
“오빠 옆에 있으니까, 하나도 안 덥고, 나 너무 시원하기만 한 걸? 이래서 우리가 연인인 건가?”
“킥.”
병환이 웃음을 터뜨린다.
“오빠는 더워?”
“아니.”
병환이 고개를 젓는다.
“나도 우리 혜지랑 있으니까 하나도 안 더워.”
“헤헤.”
혜지가 혀를 내문다.
“어서 가자.”
“응.”
“뭐 먹고 싶어?”
“글쎄?”
혜지가 검지를 문다.
“뭐야? 밥을 먹자고 했으면 네가 무언가 의견을 내야지.”
“나는 오빠가 먹고 싶다고 하는 건 다 먹고 싶은데?”
혜지가 싱긋 웃는다.
“하여간.”
병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혜지의 볼을 가볍게 꼬집는다.
“그러면 너 지금은 별로 배가 고픈 거 같지 않으니까 우리 영화를 먼저 보고 밥을 먹을까? 어때?”
“글쎼?”
혜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으면, 영화를 보는 동안 배가 좀 고프지 않으려나? 나는 배가 고플 거 같은데.”
“그런가?”
병환이 고개를 갸웃한다.
“나야 뭐,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한다니까.”
“킥.”
혜지가 싱긋 웃는다.
“그럼 우리 저기 가자.”
혜지가 가리키는 곳은 평범한 포장마차이다.
“왜?”
“나 우동 먹고 싶어서 그래.”
“우동이 먹고 싶으면 백화점으로 가도 되는 거잖아.”
“됐네요.”
혜지가 싱긋 웃는다.
“오빠 뭐라고 했어?”
“응?”
“우리 결혼할 거 아니야?”
“그, 그렇지.”
병환은 갑작스러운 혜지의 말에 당황스럽다.
“그런데 그거랑 무슨 상관인 건데?”
“어머?”
혜지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지금은 우리가 각자 돈을 벌고 쓰는 거지만,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오빠가 버는 돈은 누구 돈인 건데?”
“누구 돈인 건데?”
병환이 고개를 갸웃한다.
“하여간.”
혜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오빠랑 내가 결혼을 하면, 우리 오빠의 돈은 다 누가 쥐고 있는 건데.”
“뭐라고?”
혜지가 귀엽게 혀를 내민다.
“아주 벌써부터.”
병환이 혜지의 코를 귀엽게 흔든다.
“치, 나 이제부터 오빠 부인 역할 충실히 할 거라고.”
혜지가 싱긋 웃는다.
“그러니까 우리 저리로 가자.”
“나 참.”
병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래, 너는 내 부인이니까 당연히 경제적으로 헤프면 안 되지만, 오늘은 내 말을 듣자고요. 알았죠?”
병환이 부드럽게 혜지의 손을 잡고 백화점 식당가로 들어간다.
20살. 여자
조용하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하다.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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