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바보 아저씨... 2 - [일곱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8. 31. 00:12

 

 

 

바보 아저씨 2

 

일곱 번째 이야기

 

 

 

하암.

 

하품할 때는 입을 가리고 하라니까.

저는 제 오른 손으로 연주의 입을 가려줍니다.

 

이렇게 오빠가 가려주는 걸 뭐.

 

연주가 싱긋 웃습니다. 그런데 많이 피곤한 듯 합니다.

 

졸려?

 

조금.

 

연주가 다시 작게 하품을 합니다. 저는 손을 뻗어 연주의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게 만듭니다.

 

피곤하면 좀 자 둬.

 

오빠 힘들잖아.

 

힘들긴.

 

저는 미소를 지으며 연주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습니다.

 

집에 가면 깨워줄 테니까, 그냥 푹 자 둬. 버스에서 잠시 눈 붙이는 게 얼마나 요긴한데. 어서.

 

오빠도 힘들잖아.

 

연주가 제 얼굴을 바라봅니다.

 

나는 괜찮아.

 

됐어.

 

저는 씩 웃으며 연주의 눈을 가립니다.

 

너 지금 무지하게 피곤해 보여. 나는 내일부터 회사 안 가도 되는 거니까, 그냥 푹 자. 알았지?

 

흐음. 알았어.

 

연주가 눈을 감습니다.

 

잘 자.

 

.

시간이 얼마 흐르자 연주는 곤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연주를 바라 보았습니다.

 

연주야.

 

연주는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나 많이 아파.

 

저는 저도 모르게 연주에게 고백을 하고 말았습니다.

 

나 지금 너무 많이 아파. 우리 아버지께서 앓으시던 병 나도 앓고 있는 거래.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 어떡하니?

 

연주의 머리에 고개를 기댄 채 눈을 감았습니다. 이 아이를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흐음.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요? 저는 눈을 떴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다음이 연주가 내릴 정거장입니다.

 

연주야.

 

?

 

일어나, 내릴 때 다 됐어.

 

으음.

 

연주가 하품을 하면서 눈을 뜹니다.

 

다 왔어.

 

그래?

 

막 일어난 연주의 모습은 참 예쁩니다.

 

어서 내리자.

 

.

 

제가 손을 내밀자, 마치 유치원생이 유치원 선생님의 손을 잡듯이 연주가 제 손을 꽉 잡습니다.

 

 

 

아직 날이 많이 덥네.

 

9월 초, 9월부터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조금 이른 계절입니다. 아직 8월의 무더위가 채 가시지도 않은 시간이니까요.

 

연주야.

 

?

 

연주가 싱긋 웃으며 저를 바라봅니다.

 

저기.

 

말을 꺼내기가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정말 제가 연주를 사랑한다면, 정말 연주를 위한 일이라면 말을 해야만 합니다.

 

잘 가.

 

?

 

잘 가라고.

 

연주의 눈이 떨립니다.

 

무슨 말이야? 잘 가라니?

 

우리, 헤어지자.

!

연주의 얼굴이 굳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 헤어지다니? 갑자기 왜?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 건데! 우리가 왜? 우리가 왜 헤어져야만 하는 건데? ,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오빠. 오빠 왜 이래? 나한테 장난치지 마. 나 이런 장난, 나 이런 장난 별로 안 좋아한단 말이야. 오빠, 나 이런 거 안 좋아해.

 

미안해.

 

!

 

저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우리 더 이상 아닌 거 같다.

 

, ?

 

이유가 필요하니?

 

!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어울릴 수 없는 거 같아. 그냥 이대로 헤어지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너를 위해서도 말이야.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 !

 

연주가 악을 씁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연주의 눈에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는 눈물을 보니 제 마음이 조금씩 아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헤어질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강하게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나 네가 싫어졌어.

 

오빠.

연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듯 했습니다. 너무나도 잔인한 저의 말에, 연주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나 너란 여자애가 정말로 지겨워졌어. 제 멋 대로 하고, 너무 힘들어. 정말 더 이상 견딜 수는 없어.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 만큼, 너처럼 어린 애랑 연애를 하기보다는 제대로 결혼할 그런 사람을 만나야지.

 

저는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오빠가, 어떻게 오빠가 내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빠가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거냐고! 도대체 왜!

 

연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집니다.

 

이유, 그래 이유가 뭔데? 이유라도 말을 해줘야 내가 납득을 하고 오빠의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받아줄 거 아니야. , 무슨 이야기라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그 이유라도 말을 해줘야지 내가 오빠 말에 납득을 할 거 아니야!

 

이유가 없다고 했잖아.

 

저는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연주의 말에 대꾸를 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어. 그냥 너라는 여자애가 더 이상 좋지 않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그 뿐이야.

 

연주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가늘게 몸을 떨면서 가만히 저를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지도 않는데, 서로 사랑하는 척 곁에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나 너라는 여자애 이제는 싫어. 세상에 너 말고도 얼마나 여자가 많은 줄 알아? 너는 네가 좀 잘난 줄 알고 있나 본데, 너 그렇게 좋고 예쁜 아이 아니야. 나에게 너라는 여자는 더 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오빠.

 

연주가 가만히 입을 벌립니다.

 

농담이지?

 

입가에는 작은 미소만을 띄우고 있습니다.

 

오빠, 나 그런 농담 별로 안 좋아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지 마. ? 나 이런 농담 별로 안 좋아해.

 

연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 그러니까 오빠. 나 정말로 그런 농담 안 좋아하니까. 나 그런 농담 싫어하니까 그런 농담 하지마.

 

연주가 제발 농담이기를 바란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를 바라봅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지만, 이런 연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말을 해야만 합니다.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농담 아니야.

 

저는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 너랑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저의 말에 연주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

 

우리 헤어지자.

 

저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리 정말로 헤어지는 거야.

 

오빠!

 

연주가 저를 부릅니다. 너무나도 애타는 목소리로 저를 부릅니다.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해! 헤어지다니, 우리가 헤어지다니. 거짓말인 거지? 오빠 정말 거짓말이지?

 

연주의 애타는 목소리, 어떻게든지 연주에게 더 이상 여지를 남겨줘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깔끔하게 헤어져야 합니다.

 

잘 가.

 

저는 그리고 돌아섰습니다.

 

오빠 가지마! 오빠!

 

연주가 뛰어와서 저의 허리를 안았습니다. 머리가 아파옵니다. 저는 힘겹게 연주의 손을 떼냈습니다.

 

잘 가. 나 더 이상 너 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네 얼굴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어서 이 손 놓고 가.

 

오빠.

 

연주가 저의 허리를 더 꽉 안습니다.

 

가지마. ? 내가 어떻게든 변할게. 오빠가 원하는 그런 모습으로 변할게. 그러니까 가지마. 제발 가지마.

 

!

 

저는 일부러 거칠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연주가 저를 안는 손은 더욱더 힘이 들어갔습니다. 더 꽉 저의 허리를 안았습니다.

 

제발, 제발 가지마 오빠. 오빠가 원하는 그런 여자가 되도록 노력할 테니까. 더 이상 어린애처럼 어리광만 부리면서 오빠 힘들게 안 할 테니까 가지마, 제발 오빠 가지마. 가지마. ? 내가 더 잘할게.

 

놓으라고!

 

연주가 저의 등에 얼굴을 가져갔습니다. 연주의 눈물로 저의 등이 젖어 옵니다. 저의 마음도 젖어 옵니다.

 

놓을 수 없어. 지금 놓으면 갈 거잖아. 지금 놓으면 오빠 가는 거잖아. 그런데, 그런데 내가 이 손을 어떻게 놓을 수 있어? 지금 이 손을 놓으면 오빠가 가는 걸 아는데 내가 어떻게 이 손을 놓을 수 있어? 나 오빠가 가는 걸 원하지 않는데, 나 오빠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이 손을 놓아? 나 절대로 안 놔. 절대로 못 놔. 나 오빠 못 보낸다고. 가지 말라고!

 

연주가 자꾸만 힘들게 합니다. 강해져야 합니다. 단호해야 합니다. 더 이상 연주를 힘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서!

 

저는 거칠게 연주를 떼어 냈습니다.

 

오빠!

 

연주가 저를 다시 잡기 전에 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습니다.

 

행복해라.

 

, 오빠.

 

연주의 애타는 목소리가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그런 연주를 두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가지 마!

 

연주가 악을 썼습니다.

 

지금 가면, 오빠 지금 그렇게 가 버리면, 그렇게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면, 다시 나 볼 수 없어! 다시는 내 얼굴 못 보게 되는 거라고! 이 바보야! 지금 가면 진짜로 끝이야. 나 네 얼굴 안 봐! 이 바보야 지금 가면, 지금 가면 정말로 우리 끝인 거야! 우리 정말로 끝인 거라고! 다시는, 다시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는 거라고, 우리 정말로 헤어지는 거란 말이야! 이 바보야! 가지마, 제발 가지 말라고! 이유라도, 이유라도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쩌면,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게 갈 수가 있어! 가지마, 가지 말라니까 이 바보야! 가지마!

 

귀를 막고 싶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연주의 애타는 목소리가 자꾸만 저의 귀에 들립니다. 연주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연주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돌아설 수 없습니다. 연주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제 눈에서도 떨어질 그 눈물이 연주를 더 보내지 못하게 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연주를 보내는 것이 연주에게도 더 좋을 겁니다. 분명 그럴 겁니다. 괜히 제가 아프다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마음을 아파하느니, 그냥 제가 죽는다는 걸 모르고 이렇게 헤어지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이 바보야!

 

저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척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가지마! 가지 말라고. 지금 가면 우리 정말로 헤어지는 거라고!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연주의 눈물이 눈 앞에 선합니다. 저는 겨우겨우 입술을 꼭 깨물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저 골목만, 지금 저 눈 앞에 보이는 골목만 돌면 됩니다. 그러면 실컷 울 수 있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흐읍.

 

그리고 골목길을 돌자마자 터져 나오는 울음, 저는 입을 틀어 막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건 괜찮지만, 그 울음 소리가 새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후욱.

 

저는 재빨리 뛰었습니다.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연주의 울음 소리가 자꾸만 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연주의 눈물이 자꾸만 어른거려서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연주야.

 

제 삶은 이 순간부터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