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청계천 사람들

권정선재 2008. 8. 31. 13:24



청계천 사람들




“크악, 퉤.”


윤수는 서울의 우중충하고, 매캐한 공기 같은 가래를 한 움큼 거리로 내뱉는다.


“저기요.”


“예.”


나이가 자신보다 기껏해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다.


“이거 얼마인가요?”


그 녀석이 성인 기구를 하나 가리키며 묻는다.


“예, 3만원입니다.”


윤수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대구를 한다.


“그럼, 이거는요?”


그렇게 이것저것 뒤적이던 녀석은 가장 값이 헐한 성인 비디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렇게 인사까지 깍듯이 하고 시게를 보니, 어느덧 30분이 지나 있었다. 물건 때오는 품까지 합하니, 담배 한 갑 값도 안 되는 푼돈이었다. 허나, 요즘에는 겨우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돈도 구경하기가 어려운 시국이었다. 그만큼 경기가 어렵다기 보다는, 아마도, 이곳에 사람들이 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 이곳에 청계천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청계천이 생기기 전에, 절반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청계천의 상인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이곳 상인들은 지친다고 해도 방도가 없었다. 이런 푼돈이라도 벌어들이지 않을라치면, 말 그대로 산 입에 거미줄을 치게 되는 것이다.


“젠장 맞을.”


윤수는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찾는다.


‘탓, 탓’


라이터가 요란스런 소리만 내더니, 불은 붙지 않는다. 윤수가 찬찬히 라이터를 살피니, 라이터에 가스가 남아있지 않은 게 그제야 보인다.


“옘병할.”


윤수는 거리에 라이터를 던지고 자리에 앉아, 하릴 없이 길거리를 내다본다.


“제길.”


저기 청계천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절로 욕이 나온다. 모두 멋쟁이들이다. 연인들끼리 팔짱을 끼고, 가족들끼리 화목하게 앉아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모두 웃고 있다. 저마다 이 위에 허름한 건물들은 보이지 않는 듯, 자신들의 얼굴만 보고, 청계천만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휴.”


이게 모두 다 저 청계천 때문이리라. 여기 노점들 죄다 쫓겨나고, 윤수 자신도 겨우 근근이 사는 형편이 되었다. 혹 누구는 더 장사가 잘 된다고 지껄인다지만, 게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종적들이었다. 대다수의 치들은 윤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청계천이란 그들의 장사를 막는 하나의 장애물에 불과했다. 그들의 삶을 저 먼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과도 같이 단단한 장벽, 독일의 베를린 장벽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이 벽은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더 단단히 굳어간다는 사실 뿐일 것이다. 다시는 부숴지지 않을 듯이.


‘쏴아.’


그 때, 갑자기 예고도 없던 비가 쏟아졌다. 그나마 푼돈이라도 생길까 기대했던 윤수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러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게 문을 닫으려는 게다. 사실 이런 날씨에 가게 문을 dusk나, 닫으나 그 소득은 큰 차이가 없었다. 그 상황에 굳이 가게 문을 열면서, 자리에 버티고 앉을 이유는 없었다. 이런 날에는 그냥 집에 들어가서, 500원 짜리 과자 한 봉지와 소주를 마시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


“젠장맞을.”


안 되는 인생은 무얼 해도 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문을 잠그려고 자물쇠를 매만지던 윤수의 손이 그만, 자물쇠를 부수고 말았다.


“옘병, 될 일도 안 되려니.”


윤수는 우산도 없이 비속을 뚫고 자신의 옆 가게 철물점 홍 씨의 가게로 향했다.


“형님.”


“어쩐 일인가?”


홍 씨가 윤수를 보고,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물쇠 하나만 싸게 주쇼.”


“기다려봐.”


홍 씨가 자물쇠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멈칫하더니, 수건을 윤수에게 던진다.


“하는 짓도 영 미련해서, 게서 여까지 얼마나 된다 하냐만은, 그래도 수건이나마 머리에 좀 덮고 허던가, 아님 난중 저녁 때 비 좀 그치면 오던가, 꼭 지금만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오고 그래. 아무리 사람이 미련하다고 쳐도, 그건 미련퉁이들인 하는 짓이야.”


홍 씨는 잠시 뒤적이더니 자물쇠를 하나 꺼내 들었다.


“여기.”


“얼마예요?”


윤수가 재빨리 수건을 의자에 걸쳐 놓고, 지갑을 꺼내 돈을 치르려 하자, 송 씨가 손사래를 친다.


“됐네, 자네나 나나, 펴보나 마나한 손바닥인데, 그 돈 자네가 갖고 있다가 잘 쓰게.”


“아니, 그래도.”


홍 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윤수는 한사코 돈을 꺼내려든다.


“그럼, 빈대떡이나 사오는 게 어떻나?”


“빈대떡이요?”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빈대떡이 최고지. 요즘 동대문에 있는 그 곳 빈대떡이 그리 유명하다드만, 우리도 거기서 한 번쯤은 먹어도 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금방 빈대떡 사들고 오겠습니다.”


윤수가 인사를 꿈뻑하고 가게를 나갔다.




윤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같은 서울 아래의 청계천 근처에 있는 시장인데, 이곳은 윤수가 있는 그 곳과는 달랐다. 북적북적 거리는 사람들의 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었다. 예전에는 윤수가 있는 곳도 이러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한 군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옘병.”


윤수의 입에서 그냥 욕이 나온다. 윤수가 있는 곳과는 너무나도 딴판인 그 모양새에 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유, 이게 누구야? 윤수 씨 아니야?”


윤수가 고개를 돌린다.


“누님.”


과거 윤수의 가게 옆에서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던 아낙네이다. 윤수와는 누님, 아우 호칭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이 여자가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사라졌었다. 한동안 가게 주인이 이 아낙을 찾는다고 길길이 날뛰더니,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뭐 지금에야 그 양반도 잠잠해졌으니, 윤수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다만 그 당시에 아낙과 다소 친하게 지냈었던 윤수에게 온갖 의심이 쏟아지는 바람에 윤수는 조금 당황했었다. 허나 이미 다 지난 일이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여기 계셨소? 가까이도 계셨네. 그 것도 모르고, 괜히 걱정했구먼.”


“거기는 어때?”


아낙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크악, 퉤.”


윤수가 시장 바닥에다가 우악스럽게도 가래를 내뱉는다.


“젠장 맞을, 다 망하게 생겼어요. 누님은 어떠세요? 여기는 그나마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은데. 누님 혈색도 거기 있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이고,”


“되지, 장사.”


아낙이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여기도 거기랑 똑같아.”


“왜요?”


“여기도, 중도금 내고, 월세 내고, 일수금 까지 내고 그러면, 한 푼이나 쥐어 볼런가? 그렇게 살고 있어. 여기도 날품팔이 인생이지 뭐. 똑같은 맨 밑층의 인생이야. 여기서도 희망이란 없어.”


“누님은, 그거 낼 돈이라도 있으시지. 거기는 월세도 낼 형편이 없어요. 이제 거기서 지켜준다고 나름 거들먹거리던 건달 자식들마저도, 얻을 게 없으니 사라지는 형편이라고요. 건달, 그 개자식들도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라니까요. 오죽이나 장사가 안 되면 그치들까지 떠나 버리겠소?”


윤수가 중얼거리듯 말을 한다.


“빈대떡이나 가져가서 먹어. 내가 하나 해 줄게.”


아낙이 빙긋이 웃더니 빈대떡을 가지러 갔다. 윤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장을 바라보았다. 아낙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사람들이 장사가 되는 것만큼, 행복해 보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을 했다. 그 곳이나 여기나 사람들의 삶이 고된 것은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자.”


아낙이 이내, 빈대떡을 가져다가, 윤수에게 건넨다. 김치를 송송 넣어서 돼지기름을 넉넉히 둘러서 돼지고기와 녹두를 섞은 반죽을 치익 소리가 나도록 바삭바삭하게 구운 빈대떡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여기 돈.”


윤수가 5천원 짜리 지폐 하나를 내밀자, 아낙이 빙긋 웃으며 돈을 마다한다.


“누님, 지금 나 무시하시는 거요? 나도 이런 거 낼 돈 5천원쯤은 있단 말입니다.”


“무시는.”


아낙이 윤수의 손을 꼭 잡는다.


“그냥, 종종 이리 와.”


“…….”


“내가 다른 거는 못 해줘도, 빈대떡은 줄 수 있어. 윤수 씨야 말로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내가 겨우 이런 것도 하나 못 해줄까봐? 그 까짓것, 얼마나 한다고.”


아낙이 싱긋 웃는다.


“내가 다른 것은 못 줘도, 빈대떡은 줄 수 있어. 종종 빈대떡이 먹고 싶으면 이리로 와. 내가 빈대떡은 부쳐줄게.”


“누님.”


윤수가 두 손으로 빈대떡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송내댁!”


“예.”


얼마나, 오래 서있었는지 몰라도, 아낙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원래 성품이 그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성품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문득 이 여인의 삶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녹록하게 삶을 살아온 여자는 아닐 성 싶다는 생각이 드는 윤수이다. 마치 아낙과 그 여인의 삶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 한 모습이다. 다만 그 고됨을 풀어내는 방식이 조금은 다를 뿐인 듯하다.


“가.”


아낙이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 누님.”


아낙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래, 그 때는 조금 더 오래 있자.”


“예.”


윤수는 천천히 시장 어귀를 나오면서 머뭇머뭇한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만지작거린다.


“뭐 하는 짓이야!”


아까 그 여인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죄송해요. 사장님.”


그 말을 등 뒤로 듣는 윤수의 가슴 한 편이 딱딱하게 굳어오면서 싸한 비처럼 아려온다. 마치 펄펄 끓는 시뻘건 쇳물을 심장에 가득 붓는 느낌이랄까?


‘쏴아.’


시장 밖에는 아직도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윤수는 망설임 없이 차가운 비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비와 처음부터 하나였듯이 걷기 시작했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윤수는 가슴에 빈대떡을 품었다. 윤수는 빗물일지, 눈물일지 모를 것이 얼굴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뜨뜻미지근한 것이 심장에도 흘렀다.


“크악, 퉤.”


가래를 뱉고, 또 뱉고, 다시 뱉어도, 가슴이 자꾸만 답답한 게 숨을 쉬는 데, 무언가가 자꾸만 걸리적거리는 것 같다.


‘잘 사는 날이 올 꺼야.’


어디서인지 모르겠지만, 태진아인지 송대관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설운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잘 사는 날은 무슨, 젠장맞을 소리야.”


그치의 노래는 이 곳 청계천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먼 나라의 이야기인 듯 들렸다.


“크악, 퉤!”


윤수가 다시 한 번 가래를 내뱉고, 자리를 뜬다.


“잘 살꺼야. 잘 살꺼야.”


윤수는 작게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저 왔어요.”


지물포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윤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


어떤 남자들이 홍 씨의 주위를 둘러 싸고 있었다.


“누구십니가?”


“저희는 공무원들로, 지금 공무 집행을 하던 중입니다.”


한 사내가 윤수에게 신분증을 내보이며 윤수를 밀어냈다.


“도대체 무슨 공무집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윤수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이곳을 철거한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한 나이가 조금은 지긋해 보이는 사내가 윤수에게 다가와서 이야기를 건넨다.


“이 곳이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곳을 철거해야 합니다.”


“!”


‘툭’


윤수의 손에서 뜨끈한 빈대떡 봉투가 떨어져서 조각조각 지물포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이 곳을 철거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


윤수의 다리가 떨렸다.


“그럼 저희는 내일 다시 오죠.”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사내가 일행들을 데리고 가게 밖으로 향한다.


“그럼.”


그리고 작게 목례를 하고 가게를 빠져 나간다.


“형님!”


홍 씨의 안색이 창백하였다.

 “내가 여기에서 얼마나 살았는데. 내가 여기서 얼마나 힘들게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홍 씨가 혼자 중얼중얼 거린다. 그에게 이곳이 전부였다.


“형님, 그 종이 좀 줘보세요.”


윤수가 홍 씨의 손에 쥐어진 하얀 종이 한 장을 보고, 손을 내밀었으나, 홍 씨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윤수는 강제로 홍 씨의 손에 쥐어 있던 종이를 빼어 들었다.


“!”


이 곳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공문이었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까지 그 삐까번쩍하고 휘황찬란한 아파트가 들어온다니. 마지막까지 내몰린 사람들을 저 절벽 아래로 밀어내려는 심산인 모양이었다.


“보상은요?”


“평당 30만원.”


“!”


이곳에서 있는 가게들의 평수는 대다수가 기껏해야, 네 평에서 다서 평을 넘을까 말까하는 그런 가게들이었다. 이 말은 가게를 하나에 고작 백만 원 남짓의 돈만 받고, 나라에다가 넘기라는 이야기였다. 날강도가 이런 날강도가 없었다. 국가라는 것들이 없는 사람들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죽으라고 굿이라도 하는 판국이었다. 윤수는 가슴 한편에 울컥하는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일이 어딨어요.”


윤수의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젠장.”


윤수는 홍 씨의 가게서 나가, 저 멀리 보이는 롯데 캐슬을 바라보았다. 항상 그렇게 느꼈지만, 오늘 따라, 그 건물이 더 높아 보인다. 마치 그 건물들이 윤수를 깔보면서 내려다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윤수는 이를 뿌드득 뿌드득 간다.


“네 놈들 똥이 굵어봤자, 얼마나 굵겠냐!”


윤수가 악을 쓰면서, 주먹을 흔들어 댄다.


“나도 대학 나왔다, 이 거야! 나도 너희들처럼 대학 나왔다고! 이 개자식들아!”


S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대학인 K대를 나온 윤수가 사회에서 할 일은 없었다. 윤수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모두 S대를 나온 자들의 몫이었고, 윤수는 흘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 것이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젠장.”


윤수가 자물쇠를 들고, 자신의 가게로 와서 문을 잠근다.




“휴.”


잠이 오지 않는다.


“밝구나.”


보증금 30만원에 월세 5만 원짜리 몸 한 칸 겨우 누울 방에서 윤수는 하늘을 바라본다. 바로 앞에 떵떵거리던 그 아파트가 있다. 한 밤에 밝은 것은 별이어야만 하는데, 이곳에서 밝은 것은 별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저마다 잘났다고 지껄여대는 족속들이 밝게 빛나고 있다.


“젠장맞을. 휴.”


이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변하는 사실이 없다는 사실이 서글픈 윤수이다. 윤수도 어렸을 적에는 자신이 사회에 나가서 멋진 인재가 되고, 당당히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해 앞장설 줄 알았는데 변하는 것은 없다.




“안녕하세요.”


“어, 윤수 왔어?”


홍 씨의 얼굴이 이상하다.


“형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어?”


홍 씨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윤수가 홍 씨의 근처를 살핀다.


“형님, 어디 가십니까?”


홍 씨만한 가방이 홍 씨의 옆에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그, 그게.”




홍 씨는 잠자코 이야기를 끝냈다. 돈을 더 준다는 것이다. 평당 30만 원이 너무 적다는 사람들의 불평이 잇따르자, 평당 40만원을 챙겨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것으로 일단 급한 빚은 갚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홍 씨는 쓸쓸히 말했다.


“나도 가고 싶지는 않아.”


“…….”


“그런데 내가 할 일이 없잖아.”


“그러슈. 가십시오.”


윤수가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네가 화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예, 제가 화낼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형님은 저랑 같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치들 위협에 그토록 쉽게 고개 숙일 분은 아닌 줄 알았습니다. 저와 함께 끝까지 청계천을 지켜주실 분인지 알았단 말입니다. 실망입니다. 형님.”


“…….”


홍 씨는 말이 없다.


“형님! 변명이라도 해보십시오. 예! 변명이라도 하시라고요!”


“변명?”


홍 씨가 슬픈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은 말을 하지. 사람이 먼저 나고 돈이 난 거라고, 그러니까 사람들 제발 돈에 흔들려서 살지 말라고들 말이야. 그런데 그거 다 개소리야. 결국은 돈이야. 모든 것 착한 거, 도덕 그런 거? 다 돈 앞에서 무너져. 법 그런 것도 돈이면 다 해결되는 세상이야. 어제 내 딸년이 어떤 양아치들에게 맞고 왔어. 그런데 그 놈이 경찰 놈에게 돈을 줬나봐? 내 딸년이 그 자식을 꼬여냈다고 오히려 내가 고소를 당했어. 그런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내가 내 딸년을 위해서 겨우 합의금 300만원 마련해주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홍 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형님, 저는 안 떠납니다.”


윤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러니 꼭 오셔야 합니다.”


“그래.”


윤수의 눈이 반짝인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홍 씨가 천천히 가방을 끌고 청계천을 떠난다. 그리고 저 멀리 햇살이 비춘다. 오늘은 왠지 이곳에도 빛이 들 것 같은 날이다.


“크악 퉤!”


가래와 함께 윤수의 가슴 속 답답한 무언가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