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 2
여섯 번째 이야기
“뭐 먹을래?”
“나야 뭐, 아무거나 괜찮지. 네가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골라.”
“그래도.”
연주가 싱긋 웃습니다.
“오늘 오빠가 내가 하고 싶은 거 되게 많이 해줬잖아. 그러니까 저녁 메뉴 정도는 오빠가 고르게 해주려고 그랬지.”
“나는 네가 먹고 싶은 거 먹는 게 가장 좋아.”
“헤헤.”
연주가 해맑게 웃습니다.
“그럼 우리 오늘 피자 먹을까? 오빠도 그 이탈리아 정통 피자 집은 괜찮다고 했었잖아. 그 토핑 우리가 선택해서 먹는 곳 말이야.”
“나도 알아.”
“괜찮아?”
“응.”
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연주가 행복한 듯 미소를 짓습니다.
“이렇게 내 말 잘 들으니까 얼마나 좋냐? 그 동안 내 말을 안 들어서 얼마나 힘들었는 지 알아?”
“알았어.”
연주가 생긋 웃으며 저의 팔짱을 낍니다.
“가자!”
“그래.”
“오빠 토핑은 어떤 걸 얹을까?”
메뉴 판을 들고 있는 연주는 굉장히 신이 난 듯 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메뉴를 고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까도 말했잖아. 네가 먹고 싶은 거 아무 거나 먹자니까.”
“그럼 오빠가 버섯 좋아하니까, 버섯도 얹고, 오빠 올리브도 좋아하잖아. 올리브 얹고, 오빠가 좋아하는 콘도 얹고.”
“내가 좋아하는 거 말고 네가 좋아하는 거 얹으면 된다니까.”
“나도요. 오빠가 좋아하는 거 먹으면 그걸로 족하거든요.”
연주가 싱긋 웃으며 저를 바라봅니다.
“오빠가 나를 위해서 피자를 먹는데 내가 이 정도도 양보를 못 할까 봐? 지금 천하의
“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가게의 시계를 바라보았는데, 이런.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까 영화관에서 다녀왔잖아?”
연주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손 좀 씻으려고.”
“그래.”
저는 화장실로 가자마자 전화기를 꺼내들었습니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전화가 늦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습니다.”
젊은 의사입니다. 젊은 의사와 제가 한 약속 하나가 바로 전화하기 였습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지금 상태는 다 적어놓고 계시죠?”
“네.”
그리고 두 번째 상황은 저의 통증 상황을 적는 것이었습니다.
“후우.”
의사의 한숨 소리가 귓가를 파고 듭니다.
“정말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닌 겁니다. 이런 환자를 병원에 잡아 두지 않는 저도 정말 미친 놈입니다.”
“죄송합니다.”
의사는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
“몇 번을 말하지만 지금 당장 돌아가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겁니다. 그 점 알고 계시죠?”
“네.”
“휴우, 그럼 알겠습니다.”
“네, 전화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연주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매몰찬 이별, 미련이 생기지 않게 하는 이별 해야만 합니다. 너무나도 힘들지만,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저를 위한 것보다는 연주를 위한 것이 제게는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저는 얼굴에 물을 끼얹었습니다.
“잘 하자.”
그리고 속으로 다시 한 번 다짐을 하고 화장실을 나섰습니다.
“아까 말 한대로 시켰어. 괜찮지?”
“응.”
제가 앉자 연주가 제 잔에 스프라이트를 채웁니다.
“마운틴 듀가 없다고 해서 스프라이트 시켰어? 콜라보다는 그래도 스프라이트가 낫지? 지난 번에는 마운틴 듀가 있었는데 말이야.”
“나는 괜찮아.”
“오빠 항상 마운틴 듀만 마시잖아.”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콜라는 펩시이면서, 왜 마운틴 듀는 없는 거야? 되게 웃긴 가게라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는 거잖아.”
“그래도.”
연주가 입을 내밉니다.
“나는 오빠를 위해서 그러는 거지 뭐. 나는 아무 거나 잘 먹는 애라서 괜찮거든? 오빠
“알았습니다.”
연주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기도 못 오겠다.”
“왜?”
“왜긴?”
연주가 저를 바라봅니다.
“오빠가 좋아하는 게 없으니까 그러지.”
“그러지 마.”
“어?”
“아니, 나는 괜찮다고.”
저도 모르게 진지한 표정을 지은 모양입니다. 연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보고 있습니다.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연주가 오른쪽 입 꼬리를 올립니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연주가 주로 하는 버릇입니다. 아마도 제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인 제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피자 나왔습니다.”
“피자 나왔다.”
하지만 그런 표정도 잠시였습니다. 피자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연주는 피자를 보며 싱긋 웃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응.”
연주는 제게 먼저 피자를 한 조각 덜어주더니, 자신의 그릇에도 덜어 놓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오물오물 거리는 있이 어쩌면 이렇게 예뻐 보일 수 있는 건지. 너무나도 예뻐 보입니다.
“천천히 먹어.”
음료수를 연주의 편으로 밀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어떻게 천천히 먹어?”
연주가 애써 한 입을 삼키고 제 말에 대꾸를 합니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는 입 속에 무언가를 넣고도 말을 하던 연주는 제가 싫어한다는 말을 한 이후로는 그 버릇을 완벽하게 고쳤습니다. 그런데 피자가 뜨겁기는 많이 뜨거웠던 모양입니다. 연주가 차가운 음료수를 절반이나 단숨에 비워 버립니다.
“오빠는 안 먹어?”
“어? 먹어.”
열심히 먹던 연주가 의아한 듯이 저를 바라봅니다. 저는 황급히 제 접시에 놓여진 제 몫의 피자를 집습니다. 어느새 피자가 꽤나 많이 식었습니다.
“에, 그거 봐?”
연주가 아쉬운 표정을 짓습니다.
“막 된 피자가 얼마나 맛있는 건데. 으유.”
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뭐, 지금도 맛있는데.”
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피자를 입 속에 넣었습니다.
“맛있네.”
“치.”
연주가 못마땅한 표정을 한 번 짓고 다시 열심히 먹는 것에 열중합니다. 저는 한 조각을 겨우겨우 입 속에 밀어 넣고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연주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참 다행입니다. 연주가 먹고 싶은 걸 먹기 참 잘한 모양입니다.
“에? 왜 오빠가 돈을 내려고 해?”
제가 돈을 내려고 하자 연주가 제 앞을 막습니다.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었고, 오빠보다 내가 한참이나 많이 먹었잖아. 오늘 저녁은 내가 산다니까.”
“아니야.”
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까 영화도 네가 보여준 거잖아?”
“오빠 영화도 별로 안 좋아하잖아. 오늘 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 거니까, 내가 돈을 낸다니까.”
“괜찮아.”
저는 씩 웃으며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순간,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잠시만요!”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보고 있을 때 제가 현금을 내밀었습니다.
“그냥 현금으로 해주세요.”
“어머? 오빠 현금 잘 안 쓰잖아.”
“그냥.”
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죽고 나서 저의 흔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습니다. 뭐, 그게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요.
“현금 영수증 필요하세요?”
“아니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필요해요!”
순간 연주가 비명을 지르듯 외치고는 자신의 지갑에서 현금영수증 카드를 꺼내서, 직원에게 건넵니다.
“아니, 현금 영수증이 얼마나 좋은 건데?”
“너나 많이 끊어.”
“알겠습니다.”
연주가 직원에게서 현금영수증 카드와 현금영수증을 돌려받으면서 입을 삐쭉 거립니다.
“오빠 나랑 결혼해서도 그렇게 경제 관념 제로로 행동하면 정말 집에서 콱 내쫓아 버릴 거야.”
“킥.”
“어? 웃어?”
연주가 허리에 손을 얹습니다.
“지금 내 말이 농담인 줄 알고, 그렇게 웃고 있는 거지? 그런데 어떻게 하나? 나 지금 농담 전혀 아니거든.”
“농담 아닌 거 잘 알고 있어.”
저는 자연스럽게 연주의 허리에 손을 감았습니다.
“뭐, 뭐하는 거야?”
“킥.”
저는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더 꼭 안았습니다.
“왜?”
“나 살쪘단 말이야.”
연주가 제 손을 뿌리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연주를 품에 안고 싶었는데, 이런, 제 생각과 다르게 되어 버렸네요.
“빨리 가자.”
“그래.”
연주가 제 얼굴을 바라 봅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어?”
“오빠 집으로 가?”
연주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저를 바라봅니다. 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어?”
“나 오늘 몸도 안 좋고.”
“아.”
연주가 고개를 젓습니다.
“그래 오늘 오빠 몸 안 좋으니까. 내가 한 번 봐준다. 대신 오빠 나 집까지 데려다 줄 거지?”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주가 싱긋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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