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 2
세 번째 이야기
“흐음.”
좋지 않은 냄새가 저의 코 끝에 맴돕니다. 머리가 꽤나 무겁지만, 저는 힘겹게 눈을 떴습니다. 하얀 천장이 보입니다. 처음 의식을 차렸을 때는 들리지 않던 기계 소리도 들립니다. 아마도 쓰러져서, 연주가 응급실로 옮긴 모양입니다. 설마, 제 병명을 벌써 다 들어버린 것은 아니겠죠? 그러면 안 되는 일인데 말이죠.
“오빠? 깼어?”
잠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밤새 제 곁에서 저를 간호하느라 그랬던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연주가 토끼 눈보다도 더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응.”
저는 들릴락말락 하는 작은 목소리로 연주의 말에 대꾸했습니다. 혹시나 연주가 듣지 못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제 목소리는 들은 모양입니다. 역시 연인 사이에는 무언가 퉁하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오빠 잠시만 기다려. 내가 간호사 불러올게.”
“여, 연주야.”
간호사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이미 연주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연인 사이에 무언가가 통한다는 말은 취소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 통하는 건 없는 모양입니다.
“본인의 병명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네.”
“흐음.”
의사가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아마도 굉장히 안타까운 모양입니다. 지난 번 그 의사는 나이가 많아서 조금 사무적으로 변한 의사인 듯 하였는데, 지금의 의사는 아직 젊어서 그런 지 조금은 더 감성적인 모양입니다.
“혹시 수술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수술해도 가망이 없다고 하던데요?”
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생님의 제안은 굉장히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있다가 죽고 싶습니다. 괜히 힘들게 병원 신세를 져가며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처럼, 딱 지금처럼만 평범하게 지내다가 죽고 싶습니다.”
“하아.”
의사가 한숨을 내쉽니다.
“가족들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말씀을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하기가 어렵군요.”
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의사의 말에 대꾸 했습니다.
“제 아버지도 저와 같은 병을 앓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가족들이 받는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투병 사실을 가족들이 알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알게 될 텐데요?”
“그래서 떠나려고 합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자 의사의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그래도 가족 분들께는 사실을 말씀을 해드리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차후의 문제도 있을 테고 말이에요.”
“제가 이미 죽고 난 후라고 하더라도, 그런 준비쯤은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머리에 지나갑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모든 것을 다 맡아준 제례 업체. 그리고 다행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할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미리 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쯤은 말이죠.
“그래서 이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실 겁니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저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러한 저를 보면서 의사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오빠, 의사 선생님이 뭐라셔?”
“뭐라시긴.”
저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연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약해지려고 합니다.
“왜 쓰러진 건데?”
“그냥 빈혈.”
“빈혈?”
연주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오빠가 무슨 빈혈이야? 여태까지 그런 말 한 번도 한 적이 없잖아?”
“나도 이제 나이를 꽤나 먹었나봐.”
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네?”
“그 말 정말이야?”
“그럼.”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의사 선생님께 여쭤봐도 되는 거야?”
“물론.”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연주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연주의 행동을 보니 정말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죠.
“너 지금 뭐하게?”
“뭐하긴?”
연주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정말 오빠 말이 맞는 지 확인하려고 그러지.”
“그래. 확인 해라.”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지만,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연주의 말에 대꾸했습니다.
“그럼 진짜 간다.”
“그래.”
연주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리에 도로 앉습니다.
“왜 안 가냐?”
“오빠가 그렇게까지 나오는 거 보니 정말 빈혈인가 보네.”
연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내가 밥 하루에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 다른 나라 사람들은 내가 그 쪽 사람들 사정이니까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적어도 한국 사람들은 밥을 먹어야 사는 거라고. 오빠 매일같이 밥 안 좋아한다고 패스트푸드 같은 걸로 식사를 때우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잖아.”
“그런가 보다.”
저는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으유.”
연주가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젓습니다.
“언제 퇴원하라고 하셔?”
“어?”
“어차피 큰 병도 아니라면서, 병원에 오래 있을 필요 없는 거 아니야? 병원비가 얼마나 비싼데.”
연주가 벌써부터 집안 경제를 잡으려고 합니다.
“어차피 병원 온 거 체력이나 좀 회복하고 가려고. 아직 링거도 좀 남았고 말이야. 아깝잖아.”
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 참. 사람 걱정하게 만들고 겨우 빈혈이라니.”
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안 되겠다. 오빠 퇴원하면 동대문에 있는 진고개라도 가야겠다.”
“진고개는 왜?”
“왜긴?”
연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가서 갈비탕이라도 한 그릇 먹이려고 그러지. 오빠가 다른 집 갈비탕은 안 먹어도 그 집 갈비탕은 참 맛있다고 잘 먹잖아. 오빠 이렇게 허약한 게 올 여름 보신을 안 해서 그래. 오빠 삼복 같은 거 안 믿는 다고 올 여름 그런 거 하나도 안 챙겼지?”
“어? 어.”
“그럴 줄 알았어.”
연주가 한심하다는 듯 저를 바라봅니다.
“그런 거 아무리 옛날 구닥다리 같더라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존재하는 거라니까. 그러면 오빠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바보라서 그런 거 지키는 줄 아는 거야?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라고. 지금 당장 오빠부터 봐. 체력이 받쳐주지를 못하는 거잖아. 이거 내가 앞으로 잘 챙겨야겠네. 어휴.”
“알겠습니다!”
저는 장난스럽게 거수 경례를 했습니다.
“지금 장난칠 힘이 있어?”
“그렇네?”
“으유.”
연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제대로 안 아파 봐서 그래, 병원에 와서 그렇게 장난을 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병원이 얼마나 신성한 곳인데.”
“그런가?”
“그래.”
연주가 지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또 어디가?”
“나 입이 궁금해서 포카칩이라도 사먹으러 간다.”
“킥.”
하긴, 연주는 입에서 한 시도 군것질 거리를 떼놓고 살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저를 간호한다고 꽤나 오랜 시간 군것질을 하고 있지 못한 모양입니다.
“알았어. 다녀와.”
“링거 좀 빨리 맞아.”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치.”
연주가 볼을 한 번 부풀리더니 병실을 나섭니다.
“하아.”
연주가 나가자마자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언제 퇴원하면 되는 겁니까?”
의사의 얼굴이 꽤나 어둡습니다.
“선생님.”
“꼭 퇴원하셔야겠습니까?”
“네?”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솔직히 의사의 소명으로 환자 분 같은 분을 내보내서는 안 됩니다. 언제 어느 시각에 돌아가실 지 모르는 분을 병원 밖으로 내보내다니요.”
“선생님.”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선생님은 아파 보신 적이 없으시잔아요?”
의사가 빤히 저를 바라봅니다.
“이거 굉장히 힘들어요.”
저는 애써 미소를 짓습니다.
“저라고 병원에 의지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병원에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병원에 머물며, 쓸쓸하게 죽고 싶지는 않아요. 할 수 없다는 걸 안 이상 그냥 포기를 하는 게 더 편해요.”
“기적이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 사이 새로운 개념의 의술이 개발될 지도 모르는 거고요.”
“아니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차피 하늘에서 제게 기적을 내리신다면, 제가 어느 곳에 있든지 기적을 주실 겁니다. 그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저는 마지막까지도 자유롭게 있다가 죽음을 맞고 싶습니다.”
“하아.”
의사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제가 의사라도 저 같은 환자는 정말 마음에 안 들 것 같습니다. 다 본인을 걱정해서 이러는 건데, 이렇게 고집을 피우다니 말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앞에 있는 의사 선생님에게 무슨 사정이 있듯이, 저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거니까요.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의사가 고개를 듭니다.
“저와 몇 가지 약속을 해주시죠.”
“약속이요?”
무슨 약속일까요?
“어디 다녀 오는 거야?”
연주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사람 놀라게 하고 말이야.”
“의사 선생님 뵙고 왔어.”
“정말?”
연주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러면 언제 퇴원하라고 하셔?”
“지금 당장.”
“진짜?”
“내가 말했잖아. 별 거 아닌 빈혈 정도라고 말이야.”
“다행이다.”
연주가 생긋 웃습니다.
“우리 진고개 가자.”
“그래.”
진통제를 먹었으니까 집에 들어갈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 소설 > 단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보 아저씨... 2 - [다섯번째 이야기] (0) | 2008.08.30 |
---|---|
바보 아저씨... 2 - [네 번째 이야기] (0) | 2008.08.30 |
바보 아저씨... 2 - [두 번째 이야기] (0) | 2008.08.29 |
바보 아저씨... 2 - [첫 번째 이야기] (0) | 2008.08.29 |
시작입니다. (0) | 2008.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