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 2
네 번째 이야기
“이거 무슨 약이야?”
“응?”
연주가 식탁 테이블에 있던 제 약을 흔들며 묻습니다. 이런, 아까 약을 먹는 다는 것이 집어 넣는 것을 깜빡 잊은 모양입니다.
“아, 그거 철분제.”
“그래?”
연주가 자연스럽게 뚜껑을 엽니다. 저는 황급히 연주의 곁으로 다가가서 연주의 손에서 그 병을 빼앗습니다.
“에? 왜?”
“이거 비싼 거라고.”
저는 말도 안 되는 연극을 했습니다.
“에?”
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아니, 그거 얼마나 비싼 거라고 나도 못 먹게 하는 거냐?”
“어?”
연주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오빠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나는 오빠 위해서 항상 모든 걸 다 하는데, 그까짓 철분제 하나 못 먹게 하다니.”
연주가 볼을 부풀립니다. 이런, 이것 참 난감한 걸요?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이런, 빨리 머리를 굴려야 합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지, 연주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빨리 생각해야 할 텐 데요. 아!
“이거 조금 특별한 철분제라서 그래.”
“특별한?”
연주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연주의 표정을 바라보니 딱 걸렸습니다.
“내가 빈혈이 조금 심하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보통 사람이 먹으면 철분 과다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대.”
“그래?”
다행히 문과를 나와서 의학적인 지식은 전혀 없는 연주였습니다. 뭐, 저도 의학적인 상식은 없기 마련이지만요.
“그래서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네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는데 먹을래?”
“아니.”
연주는 참 단순합니다. 그래서 더 예쁘고 귀엽습니다.
“으아, 회사 가기 싫다.”
“회사 가기가 왜 싫냐?”
“치, 오빠는 오늘 가서 휴가 받을 거라면서? 그저께는 병원을 간다고 회사를 하루 쉬고, 어제는 또 쓰러져서 하루 쉬고 말이야. 오빠는 계속 회사를 안 갔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겠지만, 어휴.”
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나는 싫어.”
“킥.”
어쩜 이렇게 어린 애 같을까요?
“내가 끝나고 너 데리러 갈게.”
“정말?”
“그럼.”
연주가 싱긋 웃는다.
“하긴 내일부터 푸욱 쉬는데 그 정도는 나한테 봉사해도 되는 거 아닌가? 헤헤.”
“그래.”
“그럼 회사 다녀와.”
IT 계열인 저의 경우 출근 시간이 다소 늦습니다. 퇴근 시간도 그 만큼 늦어야 하지만, 아침 잠이 많은 저로써는 출근 시간이 늦은 게 훨씬 좋습니다. 물론 연주를 출근 시키는 일이 잦기에 일찍 일어나서 이 득을 제대로 누리지는 못하고 있지만요.
“어라? 그냥 보내는 거야?”
“어?”
연주가 서운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제 사랑이 식었구나?”
“무슨 말이야?”
“모닝 키스.”
연주가 눈을 감고 입을 내밉니다.
“킥.”
‘
저는 짧게 입을 맞추고 재빨리 입을 뗐습니다.
“어쩐 일이야?”
“뭐가?”
“우리 늑대 양반이.”
연주가 싱긋 웃습니다.
“그냥.”
“그래, 그러면 나 다녀올게. 오빠 진짜 나 퇴근할 때 회사 앞에 와줘야 하는 거야. 기다리고 있는다.”
“그래.”
연주가 미소를 지으며 집을 나섭니다.
‘철컥’
“후우.”
조금씩 정을 떼어야 할 텐데 이것 참 어렵습니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어떻게 제 곁에서 떼 놓을 수 있을까요?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서 출근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부서는 회사에서도 알아주는 분위기 좋은 부서입니다. 이상하게 다들 나이 터울도 크고 그런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약간 낯을 가리는 저로써는 이런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알아서들 다 다가와주니까요. 사람의 사귐에도 약간 시간이 걸리고 불편한 저로써는 참 고맙습니다.
“커피 드실래요?”
“오늘은 지영 씨가 당번인 거야?”
“네.”
지영 씨가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 부탁할게.”
“네. 대리 님은 블랙이시죠?”
“응.”
맨 처음 우리 부서의 전통을 모르고 부장님과 싸웠던 지영 씨입니다. 저희 부서의 경우 매일 돌아가면서 커피를 탑니다. 물론 부장님도 포함해서 말이죠. 그런데 신입이 온 날은 그 신입에게 커피를 타오게 시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열혈 지영 씨는, 그 날 여자가 커피를 타야 하는 거냐고 길길이 날 뛰었었죠. 물론,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얼굴이 붉어졌었습니다.
“대리님 여기요.”
“고마워.”
그나저나 부장님은 출근을 하셨을까요?
“저, 지영 씨!”
“네?”
“부장님 출근하셨어?”
“그럼요.”
지영 씨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요즘 MBC에 드라마 들어가는 거 협찬 하는 걸로 꽤나 머리 아프시잖아요. 오늘도 제일 일찍 오셨던 걸요? 일곱 시에 출근하셨다고 하던가? 어제도 제일 마지막에 퇴근하신 거 같던데. 아무튼 무지 바쁘시다니까요.”
“그래?”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왜요?”
“아니야.”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영 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멀어집니다. 그나저나, 그렇게 바쁘신 분께 저마저 고민을 안겨 드리면 안 되는데, 흐음.
“됐다!”
순간 부장실에서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부장님 무슨 일이세요?”
강실장이 재빨리 부장님께 다가갑니다. 부장님이 얼굴이 화색이 만연하여서 부장실을 나옵니다.
“됐어.”
지금이라도 눈물을 흘리실 거 같습니다.
“협찬 할 수 있게 되었어. 그 드라마 히트칠 게 분명해서 여기저기 많은 곳에서 찌르려고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정말 다행이네요.”
“그래.”
부장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다들 오늘 저녁에 시간 비워둬. 내가 회식 거하게 쏜다.”
“우와!”
“부장님 최고예요!”
“아싸.”
“그나저나 요즘에 회식이 없어서 서운했는데.”
부서 사람들이 참 좋아하고 있습니다. 다들 이렇게 화목한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좋아 보입니다.
“그래, 그러면 오늘 모두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보자고!”
“네!”
다들 싱긋 웃으며 일을 합니다.
“후우.”
부장님께는 지금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똑똑’
“응.”
“후우.”
저는 심호흡을 하고 부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무슨 일이야?”
“저.”
입을 떼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하지만, 말을 해야겠지요.
“무슨 일인데 그래?”
너무나도 자상하고 좋은 부장님이십니다. 언제나 저희 직원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분입니다.
“저, 이걸.”
“응?”
저는 사직서를 내밀었습니다.
“사직서?”
“네.”
“흐음.”
부장님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왜, 다른 회사에서 자네를 스카우트 하려고 그러는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면?”
부장님이 고개를 갸웃합니다.
“우리 회사 대우가 안 좋아서 그래? 그러면 내가 위에다가 말을 잘 해서.”
“아니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냥 지난 몇 년 동안 제대로 저를 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요, 이번에는 조금만 저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외국도 좀 나가보고, 우리나라 구석구석도 구경을 해보려고요.”
“그래?”
부장님이 미간을 찌푸립니다. 부장님께서 미간을 찌푸리신다는 건, 고민을 많이 하시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이 사표를 보류해두지.”
“네?”
부장님께서 미소를 지으십니다.
“자네는 우리 회사에서도 알아주는 재원이라고, 자네와 같은 재원이 회사를 그만 두게 할 수는 없단 말일세. 게다가 본인을 위한 투자를 하겠다는데 왜 내 보내겠나? 내가 이 사표는 넣어 두지.”
부장님께서 사직서를 자신의 서랍에 넣으십니다.
“저.”
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엽니다.
“사실은 제가 사정이 있어서요.”
“응?”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인가?”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금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겠네.”
부장님께서 고개를 저으십니다.
“알겠나?”
“네.”
부장님의 눈이 저를 뚫어보는 듯 바라봅니다.
“무슨 일인 지는 몰라도, 정말 자네에게 중요한 일인 듯 싶군, 잘 풀렸으면 좋겠네.”
“고맙습니다.”
일단,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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