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 2
두 번째 이야기
“너 무슨 일 있는 거니?”
“네?”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드니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너 왜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야?”
“아니요.”
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을 게 있나요?”
“그렇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아직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는 표정입니다. 그렇게 티가 나나요?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요.”
“아직도 그러니?”
“그렇네요.”
저는 힘없이 미소를 짓습니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의 얼굴을 들여다 보십니다.
“너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니?”
“병원 다녀왔어요.”
“그래? 병원에서 뭐라니?”
어머니를 걱정스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뭐 라긴 뭐라고 그래요.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러죠.”
“정말?”
“네.”
저는 힘겹게 미소를 짓습니다.
“제가 얼마나 튼튼한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어머니가 아직도 의심의 구름을 걷어내지 못하고 저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어머니에게 사실을 고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스트레스만 조금 조심하면 되는 거래요? 너무 무리해서 일하고 그러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 너 무리해서 일하는 거 같더라.”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너 휴가도 없지 않니? 그렇게 무리를 하면서 일하는데 몸에서 탈이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올해도 휴가가 없지 않았니? 사람이 좀 쉬면서 일을 해야지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지, 그렇게 일만하면 사람이 진이 다 빠져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걸 모르니?”
“그래서 좀 쉬려고요.”
저는 어색한 미소를 어색하지 않게 지으며 어머니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한, 한 달 정도 푹 쉬어보려고요.”
“그렇게 오래 쉬어도 되는 거니?”
어머니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쉬라고는 하셨지만, 너무 오래 쉰다는 사실에 자식이 회사에서 잘릴까 봐 걱정이신 모양입니다.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저 지난 몇 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않으면서 일을 했다는 걸 말이에요.”
“그래, 그거야 잘 알고 있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모아놓았던 유급 휴가들 이 기회에 모두 써 버리려고요. 어차피 유급이니까 큰 부담도 없고 말이에요. 그 동안 저축해 둔 돈도 있고, 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릴 돈도 충분히 될 거예요.”
“나에게 용돈은 안 줘도 돼.”
어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십니다.
“괜히, 나 용돈 준다고 너 써야 하는 돈 제대로 못 쓰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이미 늙어서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아. 그리고, 네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보험료도 아직 남아 있으니까 그렇게 많이 걱정은 하지 말거라.”
“네.”
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나저나 왜 그렇게 밥을 못 먹는 거야?”
“네?”
그러고보니, 어머니가 한 공기를 다 비우실 동안 겨우 세 숟가락을 먹었을 뿐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식사량이 굉장히 많이 줄었습니다. 그냥 살이 빠지려고 그러는 것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몸이 좋지 않아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제가 왜 밥을 안 먹어요.”
“살도 많이 빠진 것 같고.”
저는 일부러 밥을 열심히 퍼 먹습니다.
“이거 보세요. 저 정말 잘 먹잖아요.”
“그래, 그렇게 먹으니 얼마나 좋니?”
어머니가 이제서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저를 바라봅니다.
“너는 네 아버지처럼 아파서 죽지 말아라. 아파서 죽는 게 본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네. 그럴게요.”
저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나저나 너 결혼은 언제나 할 거니?”
“네?”
갑자기 무슨 결혼 이야기 시 이신지?
“너 여자 친구랑 사귄 기간도 꽤나 되지 않았니? 네 나이도 나이이고, 이제 나도 나이인데 말이다. 마실이라도 나가면, 주위에서는 벌써 할머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는데, 나는 아들이 장가도 들지 않았으니.”
“요즘에 결혼 늦게 하는 거 전혀 흠 아니에요.”
저는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습니다.
“뭐, 마을 사람들도 다 그 말을 하기는 하더구나. 네가 일자리도 꽤나 괜찮은 자리에 있으니 나이가 더 든다고 해도 혼사 자리는 차고 넘칠 거라고. 그래도 어미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다는 걸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니? 이 어미는 네가 하루라도 빠르게 가정을 가져서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가졌으면 한다. 지금도 아침 잘 안 먹으면서, 회사 다니고 있는 거 아니니?”
“제가 몇 번을 말씀 드려요.”
저는 마지막 한 톨의 밥까지 싹싹 긁어 먹으며, 어머니에게 대꾸를 했습니다.
“저희 회사 꽤나 좋은 편이라서 아침도 준다니까요. 그것도 한식이랑 양식 중에서 선택해서 먹을 수 있어서 꽤나 좋아요.”
“그래도, 집 밥만 하겠니?”
“요즘에는 결혼해도 와이프가 밥을 해주지 않는 집도 되게 많아요. 제 직장 동료들도 다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회사에서 먹으면 무료인데 뭐 집에서 밥을 먹고 나서요. 집에서 밥을 먹으면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요. 저는 그렇게 아침 밥을 먹느니, 차라리 아침에 5분이라도 더 자고 말겠어요.”
“그래, 어릴 적부터 네가 아침 잠이 많은 게 문제였지.”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 아이로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왜?”
어머니가 놀란 표정을 짓습니다.
“오늘은 안 자고 가는 거니?”
“내일 회사를 가야 하잖아요.”
언제나 어머니 혼자 계시는 집에 오면, 잠을 자고 가던 저이기에 어머니가 다소 놀라신 듯 합니다. 어머니가 제가 온다고 이부자리를 다 정돈하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거든요. 이 집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 마다 마음의 한 편에서 무언가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죄송해요.”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어머니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십니다.
“나중에 꼭 자러 올게요.”
“그러렴.”
어머니가 애써 미소를 지으시는 게 눈에 보입니다.
“그럼 저 가볼게요.”
“그래.”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도 따라 일어나시는 군요.
“어머니 그냥 앉아 계세요.”
“그래도.”
“아니에요.”
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못해 자리에 앉으십니다.
“그래, 그럼 다음에 꼭 다시 오렴.”
“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불안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십니다.
‘철컥’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데 어둠이 저를 반깁니다. 오늘은 연주가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까요. 텅 빈 집에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어색합니다. 조금 쓸쓸하고, 어쩌면 냉랭하기까지도 한 지금의 상황은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정말 안 오네.”
오늘은 연주의 품에 안기고 싶었는데, 연주도 바쁜 일이 있으니까요. 연주는 잘 나가는 여행사의 직원입니다. 워낙 여행을 다니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한 포털 사이트 덕에 이탈리아의 베니스 영화제에 한 번 다녀오더니, 그 이후로는 세계 여행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는 우리 나라에서 알아주는 항공사가 계열로 포함되어 있는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바쁘기는 하지.”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는 해도, 연주의 말을 들으니 외국을 나가는 사람들의 수는 장난이 아닌 모양입니다. 사실 연주를 보면 미안한 마음도 굉장히 많이 듭니다.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을 저를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요즘에는 지원팀에서만 근무를 하고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의 일을 보조하는 그 입장이 본인 입으로는 굉장히 행복하고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그 여행을 따라가고 싶어하고 있는 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본인을 우선해도 좋을 텐데.”
자신보다 저를 우선으로 생각을 해주는 연주를 보면, 고마운 마음과 부담스러움이 함께 공존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느낌이 조금은 익숙해졌다고나 할까요? 이제는 연주가 저를 돌봐주지 않으면 조금은 아쉬운 마음까지 듭니다.
“아.”
순간 번개와도 같은 고통이 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저는 재빨리 가방을 열어서 진통제를 찾았습니다. 의사가 준 진통제는 아스피린과 비교가 될 지도 않을 엄청난 진통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후우.”
과연 그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통제를 먹자마자 저의 온 몸을 덮칠 듯이 밀려오던 그 통증이 무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아프지 않으니, 정말 제가 그렇게 큰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냥 조금 심한 두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주야.”
연주의 사진을 보니, 자꾸만 마음이 아파옵니다. 연주와 헤어져야 하는 걸까요? 연주를 위해서라면 헤어지는 것이 맞을 텐데. 자꾸만 제 욕심이 커지려고 합니다. 연주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제 욕심이 자꾸만 커지려고 해서 걱정입니다.
‘딩동’
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현관 벨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누구세요?”
“나.”
연주? 이 시간에 무슨 일일까요? 저는 황급히 문을 열었습니다. 현관에서는 연주가 싱긋 웃으며 저를 보고 서 있습니다.
“네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그래도 명색이 내가 여자 친구인데 말이야.”
GS 25의 마크가 선명하게 박혀 있는 커다란 하얀 봉투를 들고 들어오며 연주가 싱긋 웃습니다.
“오빠 오늘 검사 했다는데, 그래도 여자 친구인 내가 와봐야 하는 거잖아.”
“아무 이상 없다는데.”
“그러니까.”
연주가 씩 웃으며 봉투 속에서 샴페인을 꺼낸다.
“왠 샴페인이야?”
저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머, 오늘 같이 좋은 날 샴페인이 빠지면 되겠어?”
연주가 씩 웃습니다.
“너 샴페인 마시고 싶어서 핑계 되는 구나?”
제가 살짝 짓궂게 말을 하자 연주의 볼이 붉어 집니다.
“아, 아니. 나는 샴페인도 마시면 안 되는 거야?”
연주가 당황 했는 지 말까지 더듬습니다.
“그런 건 아니고.”
이런 연주의 모습을 보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럼 오빠는 안 마실 거야?”
“왜 안 마셔?”
연주가 미소를 짓습니다.
“그럼, 누구 오빤데.”
“킥.”
정말 예쁜 아이입니다.
“잔은 내가 가져올게.”
“오케이.”
비닐 봉투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연주를 보고,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흐음, 냉장고 속에 무언가 먹을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없군요. 샴페인 안주는 딱히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콜릿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저는 아쉬운 표정으로 냉장고 문을 닫았습니다.
“오빠 안 와?”
연주가 준비를 다 했는 지 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갈게.”
저는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찬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쿵’
무슨 일이 생긴 거죠?
“오빠!”
연주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빠!”
그리고, 의식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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