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바보 아저씨... 2 - [첫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8. 29. 21:58

 

 

 

바보 아저씨 2

 

첫 번째 이야기

 

 

 

에 병원은 왜 가는 거야?

 

연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바라봅니다.

 

왜 가긴? 병원에 검사를 받을 일이 있으니까 가는 거지.

 

그러니까 무슨 검사?

 

걱정이 가득한 표정입니다. 연주는 참 여린 아이입니다.

 

너도 알잖아. 나 두통이 좀 심한 거 말이야. 그래서 검사를 좀 받아 보려고, 혹시나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서.

 

문제는 무슨.

 

연주가 혀를 내밉니다.

 

오빠는 항상 괜한 꾀병이나 부린단 말이야. 무슨 어린 아이도 아니고, 으유, 그까짓 두통이야 그냥 참으면 되는 거 가지고, 본인 몸을 너무 과대 평가 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내 몸을 과대 평가 해야지.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인데?

 

헤헤.

 

제 말에 연주가 웃음을 짓습니다.

 

아 맞다. 오빠 몸은 오빠께 아니라, 내 것이었지. 헤헤, 그러면 당장 가서 검사를 받아야지. .

 

그래서 지금 검사 받으러 가는 거거든.

 

, 알았어요.

 

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오늘 저녁에 볼 수 있는 건가?

글쎄? 오늘 어머니가 나를 좀 보자고 해서 말이야.

어머니가?

 

연주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어머니가 또 왜?

, 엄마가 아들을 보겠다는 데 무슨 이유가 있냐? 너 우리 어머니에게 너무 경쟁심리 불 붙는 거 아니야.

경쟁 심리는.

 

연주가 생글생글 웃습니다.

 

, 미리 어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데, 오빠가 한 번도 안 보여주니까 그러는 거지. 고부 간의 갈등. , 외로운 며느리의 인생 이야기.

 

무슨 신파극 찍냐?

 

제가 구박을 하자, 연주가 입을 삐쭉 내밉니다.

 

됐네요. 이런 감성이 메마른 한 겨울에 울산 바위 같은 인간아.

 

어쭈. 오빠한테.

 

연주가 혀를 내밉니다.

 

가서 뇌종양 판정이나 받아 버려라!

.

 

웃음 밖에 나지 않습니다.

 

, 네 몸이라니까.

 

내 몸이니까, 내가 마음대로 아프라는 데 무슨 상관이야?

 

하여간.

 

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그러자 연주가 와서 허리를 꼭 안습니다.

 

안 아픈 거지?

 

그냥 검사 받아 보는 거야. 정말 만일 혹시나 문제가 있을까 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알았지?

 

흐음, 알았어.

 

연주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면 우리 오늘 못 보는 건가?

 

아마도?

 

연주의 얼굴에 서운한 표정이 확 퍼져 나갑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연주의 모습이 정말 예쁩니다.

 

그나저나 너 출근 안 해도 돼?

?

 

연주가 주위를 두리번 거립니다.

 

지금 몇 시인데?

 

지금?

저는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서 연주에게 보여줍니다.

 

7 48?

 

으왓!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가다가 연주가 바닥에 넘어집니다.

 

으유, 조심 좀 하지.

지금 조심하게 생겼냐? 아이 씨. 오늘 또 부장한테 한 판 제대로 깨지겠네. 오빠는 일찍 일어났으면 나 좀 깨우든가. 하여간 미워.

어라?

 

난감합니다. 새벽에 깨울 때 안 일어난 사람이 누군데요? 그리고 그렇게 곤하게 자는 사람을 깨우기는 너무나도 미안한 일입니다. 깨워주기를 바란다면 조금만 덜 달게 자던가. 하여간, 말도 안 되는 아이입니다.

 

이렇게 나에게 따질 시간에 빨리 씻겠다.

, 오빠 나 씻을 동안 오늘 나 입고 갈 옷 좀 챙겨 주라. 아무 거나 챙겨 주면 되거든. 알았지?

 

그래.

 

연주가 저를 한 번 싱긋 보더니 욕실로 들어갑니다.

 

하여간.

귀엽단 말입니다. 후훗,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하고.

 

저와 연주는 부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한 달의 절반 이상은 함께 밤을 지샙니다. , 연인이니까 어느 정도의 스킨십은.

 

 

언제나 주의를 주는 데도 불구하고, 오늘도 문을 세게 닫고 가는 연주입니다. 연주는 보기에는 가냘퍼 보여도, 힘이 꽤나 좋습니다. 지난 번에도 방 문의 경첩이 떨어 질 정도로 세게 닫아서, 제가 좀 고생을 했었습니다.

 

하여간.

역시나 욕실도 잔뜩 어지럽혀져 있습니다. 친구들 말을 들으면, 여자 친구가 집에 와서 집을 깨끗하게 정리를 해주고 간다는 데, 우리는 정 반대입니다. 물건들만 대충 자리를 잡고 있으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연주와, 모든 건 제 자리에 있어야 하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이어야만 만족하는 저 사이에, 언제나 지는 것은 저입니다. 보기에 갑갑한 사람이 청소를 해야지요.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욕실을 청소하면서 참 갑갑해 옵니다. 하여간,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이입니다. 제가 지켜줘야지요. 끝까지 제가 지켜줘야지요.

 

.

 

순간 꽤나 큰 고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되던 두통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요즘에는 아스피린을 네다섯 알을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약한 위였는데, 요즘 두통이 더 심해지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종합 병원이네.

 

입에 겔포스를 달고 다니는 저를 보며 연주가 언제나 하는 말입니다. 뭐 이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본인도 꽤나 잔병치레가 잦은 편이면서도 이렇게 말을 하는 걸 보면 조금 웃기다고나 할까요?

 

이제 슬슬 가볼까?

 

병원 예약 시간은 오전 10였습니다. 아직 한 시간 가량 남았지만, 저는 일찍 나서는 것을 꽤나 좋아합니다. 차라리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 게 마음이 편하거든요. 만일 생각해보세요. 시간을 딱 맞춰 나갔는데 대중 교통이 마비라도 된다고 말이에요.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약속에 늦는 것만큼 나쁜 일도 없거든요. 물론 이런 저를 연주는 언제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연주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연주의 시간 개념은 전형적인 코리안 타임이라고나 할까요?

 

.

 

집을 나서려는데 다시 두통이 심해집니다. 정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일까요? 그런데 점점 두통이 심해지는 걸 보니 조금은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어서 병원에 가야겠습니다.

 

 

 

두통이 심하시다고요?

.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병원에 온 것이 다소 실감이 납니다. 어릴 적부터 병원을 자주 다녔던 터라, 병원에 대한 내성이 생길 만도 한데,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병원이라는 곳은 공포를 주는 모양입니다.

 

사진 같은 거 찍어 보신 적은 없고요?

 

전에는 단순하게 두통약을 먹으면 두통이 진정이 되었거든요.

 

요즘에는요.

 

의사의 시선이 마치 저를 관통하는 것 같습니다. 형사를 해도 되겠는 걸요?

 

아스피린을 꽤나 많이 먹어도, 여전히 아플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의사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렇게 말로 해서는 자세한 이유까지 알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환자마다 느끼는 고통의 감도도 다르고, 약간 과장되게 말을 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죠. 사진 찍어보죠. 왜 그런 건지.

 

.

 

당연히 사진을 한 번 찍어보려고 오기는 했는데, 이렇게 의사 선생님이 말을 하는 걸 들으니 더 떨립니다.

 

 

 

가만히 계세요.

 

.

 

누워 있는 데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입이 방정이라고 했으니 조심해야겠습니다.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여태까지 아무 일도 없었으니, 지금도 아무 일도 없는 거겠죠? 그냥 아무 이상도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병원으로 온 것이니까요. 그래도 이 침대에 누우니,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듭니다. 꽤나 공포스럽군요.

 

위잉

 

침대가 움직입니다. , 침대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저 커다란 원통이 움직이는 것이군요. 약간 뜨겁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요.

 

다 되셨습니다.

 

? 벌써 끝났다고요. 이거 18만 원짜리인데, 조금 너무한 걸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의사가 아닌데요.

 

 

 

왜 여태까지 병원에 오지 않았습니까?

 

?

 

이건 무슨 말이지요?

, 무슨 뜻이십니까?

 

뇌종양입니다.

 

!

 

웃음기 없는 저 표정.

 

, 농담이시죠?

 

농담이 아닙니다.

 

단호합니다. 저 사람 유머 감각도 제로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벼운 농담을 곁들여서 말하지, 아 그 편이 더 잔인하려나요? , 아무튼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요? 제가, 제가 뇌종양이라고요?

 

수술하면 되는 건가요?

 

의사가 고개를 젓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 수술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 다는 뜻일까요?

 

이미 늦었습니다.

 

, 늦다니요?

 

왜 여태까지 병원을 오시지 않은 건지 의심이 갑니다. 지금 시신경이 살아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뇌 종양이 심각합니다.

 

!

 

, 지금 이 의사가 무슨 연극을 하는 걸까요? 충무로에 뛰어들면, 영화 판을 휩쓸 훌륭한 배우가 될 겁니다.

 

, 그냥 두통이었다고요. 뇌 종양이라니요? 다시 한 번 검사를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그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의사는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

 

죄송합니다.

 

죽는다. 죽는 거군요.

 

얼마나 남은 건가요?

 

의사가 고개를 젓습니다. 저건 무슨 의미일까요?

정말 예측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입니다. 지금 이 진료실을 나서다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 당신 의사 맞아!

 

저는 저도 모르게 의사의 멱살을 잡고 말았습니다. 의사는 아무런 저항도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는 그 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하아.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햇살은 무지하게 좋구나.

 

병원을 나서자마자 햇살이 저를 따뜻하게 감쌉니다.

 

딩동

 

연주입니다.

 

오빠 검사 잘 끝났어? 아무 문제 없다지? 오빠 꾀병이라니까, 하여간 오빠는 겁이 너무 많아요. 오늘은 나도 일이 많아서 오빠 못 보겠다. 미안해. 대신 우리 내일 맛있는 저녁 먹자. 사랑해!

 

저는 슬라이더를 닫아 버렸습니다.

 

후우.

 

이상하게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나니 머리가 더 아픈 듯 느껴집니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이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걸까요?

연주야.

 

연주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오늘따라 더 따사로운 햇살이 너무나도 원망스럽습니다. 연주를 끝까지 지켜줄 수 없을 게 분명한데,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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