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 2
다섯 번째 이야기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오늘 회식 있잖아요?”
“그러게요.”
부서 사람들 모두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요.”
“흠.”
그 사이 부장님께서 밖으로 나오십니다.
“다들 주목.”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요?
“이 사람이, 무슨 사정이 생겼다고 해. 우리에게는 말을 해줄 수 없는 그런 사연인 듯 한데, 그래서 당분간 회사를 쉬게 되었네.”
“어머, 그만 두시는 거예요?”
지영 씨가 입을 가립니다. 모두들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니지. 내가 그렇게 쉽게 사람을 내보낼 거 같아. 나 내 사람은 마지막까지 지킨다고. 일단 사직서는 보류해두었어.”
부장님이 저를 바라봅니다.
“부디 그 일이 잘 되길 바라네.”
“고맙습니다.”
모두들 저를 바라봅니다. 이제 제가 말을 할 순서인가 보군요.
“지금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모두에게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제가 90도로 인사를 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정말 우리 부서에 꼭 필요한 분이셨는데.”
“과묵한 듯 하시면서도, 언제나 부서 일에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우리 부서에 대리 님과 저, 부장님만 남자라서 외로웠는데, 대리 님 마저 떠나시는 군요. 부디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그래.”
모두들 참 심성이 고운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랄게.”
저는 다시 90도로 인사했습니다.
“이제, 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저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고 회사를 빠져 나왔습니다.
“오빠 무슨 생각해?”
“어?”
어느 새 연주가 제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언제 나왔어?”
“한참 됐는데?”
연주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사람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어?”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연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바라봅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야?”
“내가 일이 있을 게 뭐가 있냐?”
“그건 그렇지만.”
연주가 의심의 표정을 걷어 내지 못한 채 저를 바라봅니다.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러 내리지만, 다행히 연주는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오빠 우리 오늘 뭐할까?”
“글쎄?”
“날도 많이 더운데,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
“영화?”
“응.”
저는 영화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어떠한 것을 보고 있는 것은 저와 잘 맞지 않습니다. 직업이 IT 쪽이라고 해서, 앉아 있고 실내에 있는 것만을 즐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도 밖에서 운동을 하고, 걷는 걸 많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연주는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사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가능하면 평소 데이트 때는 편안한 것을 하려고 합니다.
“오빠는 싫어?”
연주가 제 얼굴을 찬찬히 살펴 봅니다.
“오빠가 싫으면 영화 안 보고.”
“아니야.”
제가 영화를 보겠다고 하자 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오빠 영화 별로 안 좋아하잖아?”
“우리 연주가 보자고 하는데 안 볼 수 없지.”
“헤헤.”
연주가 검지로 코를 비빕니다.
“그런 입에 발린 말 누가 좋아할 줄 알고?”
그런데 연주의 표정은 지금 좋아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참 칭찬에 약한 연주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좋아하면서?”
“치.”
얼굴은 계속 웃고 있는 연주입니다.
“그럼 우리 영화 보러 갈까?”
“저녁은?”
“저녁?”
연주가 잠시 생각을 합니다.
“나는 지금 배 안 고픈데, 오빠는 배 고파?”
“뭐, 나도 배 안 고파.”
“그래, 그럼 우리 영화부터 보자.”
“그러든지.”
연주가 제게 팔짱을 낍니다.
“이 영화 괜찮지?”
“뭐, 나야.”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알고 있는 배우라고는
“뭐, 나야 아무 거나 상관 없지.”
“그러면 영화 표 끊어 올게.”
“그래.”
연주가 매표소로 가는 순간 통증이 왔습니다. 저는 재빨리 저의 가방을 열어서 진통제를 꺼냈습니다. 생수와 함께 약을 먹고 나서, 모든 정리를 하고 나니, 연주가 자리로 돌아옵니다.
“오빠, 아직도 몸 많이 안 좋은 거야? 얼굴이 많이 창백한데?”
“어?”
연주가 저의 이마에 손을 얹습니다.
“이거 봐. 식은 땀도 장난 아니고.”
연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를 바라봅니다.
“지금 영화 볼 정도로 체력 회복 안 된 거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까짓 영화 보는데 뭐가 힘들다고 영화 볼 체력도 안 된다고 그러냐? 나는 정말로 괜찮다니까.”
“얼굴이 창백한데.”
연주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정말로 괜찮아?”
“그럼.”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래.”
저는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진짜 꼴이 말이 아니네.”
거울 속의 제 모습은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은 창백한데다가, 이마에서는 땀이 흥건히 묻어 났습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도, 아 다 죽어가는 사람은 맞군요. 그래도 진단을 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모양인 건지. 정말 사람이라는 건 웃긴 동물인 듯 합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듣고 난 이후 몸이 더 안 좋아진 듯 합니다. 제 몸이지만 참 밉습니다.
“좀만 더 참자.”
저는 애써 미소를 지었습니다. 웃는데 더 섬칫해 보이는 건 저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요? 제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마치 드라큘라 백작이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입니다. 살이 많이 빠졌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거울을 통해서 보니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아자,”
저는 억지로 한 번 더 웃어 보이고는 화장실을 나섰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
“큰 거.”
“으유.”
연주가 코를 쥐고 고개를 젓습니다.
“하여간.”
“킥.”
저는 연주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스킨십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제가 손을 꽉 잡으니 연주가 저를 바라봅니다.
“오빠가 어쩐 일이야? 평소에 내가 손을 잡을라 치면, 황급히 손을 빼던 사람이 말이야. 많이 컸네.”
“손 안 씻었거든.”
제가 씩 웃자, 연주가 황급히 손을 빼냅니다.
“어유 드러워.”
“농담인데.”
“치.”
연주가 눈을 치켜 뜹니다.
“오빠가 그렇게 말하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거 같거든?”
“킥.”
연주가 저를 이상한 듯 바라봅니다.
“오빠 오늘 왜 그래?”
“어?”
“평소와 많이 다른 거 같아.”
“뭐가?”
“아니.”
연주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그냥 평소의 오빠와는 다른 거 같아. 조금 더 다정하고, 적응이 안 된다고나 할까? 뭐 꽤나 긍정적인 변화니까 불만은 없지만 말이야.”
“그러면 됐어.”
저는 연주의 머리를 헝클었습니다.
“어서 영화 보러 가자.”
“그래.”
까르르 웃는 연주의 옆에서 저는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현실과 동 떨어진 영화 속의 상황은 지금의 제 상황에 처하고 보니 더욱더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을 보니 화가 나려고만 했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 정말 저렇게 앓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런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서 병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오빠,”
“어?”
“영화 끝났어.”
어느새 극장 안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스크린에서는 앤딩 크레딧의 마지막 부분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극장에는 연주와 저 단 둘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출구 쪽에서는 영화관의 스태프가 어서 나가주기를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서서 저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 미안.”
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빠 오늘 정말 왜 그러는 거야?”
“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멍하니 있고.”
연주가 저를 수상하게 바라봅니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일이 있을 게 뭐가 있냐?”
“아니, 그런 건 아무 것도 없지만.”
연주가 저의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오빠, 나는 오빠의 여자 친구야. 무언가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에게 숨기는 게 뭐가 있어?”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 한 켠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습니다.
“정말 없는 거지?”
“그럼.”
이별, 이별을 고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제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지금 연주의 얼굴을 보는 이 순간에도 미안함에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연주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은 척 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죽는다면 분명 연주는 슬퍼할 겁니다. 그런 연주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제가 이별을 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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