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바보 아저씨... 2 - [다섯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8. 30. 15:34

 

 

 

바보 아저씨 2

 

다섯 번째 이야기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 오늘 회식 있잖아요?

그러게요.

부서 사람들 모두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요.

.

그 사이 부장님께서 밖으로 나오십니다.

 

다들 주목.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요?

 

이 사람이, 무슨 사정이 생겼다고 해. 우리에게는 말을 해줄 수 없는 그런 사연인 듯 한데, 그래서 당분간 회사를 쉬게 되었네.

 

어머, 그만 두시는 거예요?

 

지영 씨가 입을 가립니다. 모두들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니지. 내가 그렇게 쉽게 사람을 내보낼 거 같아. 나 내 사람은 마지막까지 지킨다고. 일단 사직서는 보류해두었어.

 

부장님이 저를 바라봅니다.

 

부디 그 일이 잘 되길 바라네.

 

고맙습니다.

모두들 저를 바라봅니다. 이제 제가 말을 할 순서인가 보군요.

 

지금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모두에게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제가 90도로 인사를 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정말 우리 부서에 꼭 필요한 분이셨는데.

 

과묵한 듯 하시면서도, 언제나 부서 일에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우리 부서에 대리 님과 저, 부장님만 남자라서 외로웠는데, 대리 님 마저 떠나시는 군요. 부디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그래.

 

모두들 참 심성이 고운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랄게.

저는 다시 90도로 인사했습니다.

 

이제, 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저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고 회사를 빠져 나왔습니다.

 

 

 

오빠 무슨 생각해?

 

?

 

어느 새 연주가 제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언제 나왔어?

한참 됐는데?

 

연주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사람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어?

 

,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연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바라봅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야?

 

내가 일이 있을 게 뭐가 있냐?

 

그건 그렇지만.

 

연주가 의심의 표정을 걷어 내지 못한 채 저를 바라봅니다.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러 내리지만, 다행히 연주는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오빠 우리 오늘 뭐할까?

 

글쎄?

 

날도 많이 더운데,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

 

영화?

 

.

저는 영화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어떠한 것을 보고 있는 것은 저와 잘 맞지 않습니다. 직업이 IT 쪽이라고 해서, 앉아 있고 실내에 있는 것만을 즐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도 밖에서 운동을 하고, 걷는 걸 많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연주는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사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가능하면 평소 데이트 때는 편안한 것을 하려고 합니다.

 

오빠는 싫어?

 

연주가 제 얼굴을 찬찬히 살펴 봅니다.

 

오빠가 싫으면 영화 안 보고.

 

아니야.

 

제가 영화를 보겠다고 하자 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오빠 영화 별로 안 좋아하잖아?

 

우리 연주가 보자고 하는데 안 볼 수 없지.

 

헤헤.

 

연주가 검지로 코를 비빕니다.

 

그런 입에 발린 말 누가 좋아할 줄 알고?

 

그런데 연주의 표정은 지금 좋아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참 칭찬에 약한 연주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좋아하면서?

 

.

 

얼굴은 계속 웃고 있는 연주입니다.

 

그럼 우리 영화 보러 갈까?

 

저녁은?

저녁?

 

연주가 잠시 생각을 합니다.

 

나는 지금 배 안 고픈데, 오빠는 배 고파?

 

, 나도 배 안 고파.

 

그래, 그럼 우리 영화부터 보자.

 

그러든지.

 

연주가 제게 팔짱을 낍니다.

 

 

 

이 영화 괜찮지?

 

, 나야.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알고 있는 배우라고는 강호김혜수 정도가 전부입니다. 아는 감독이라고는 임권택 감독 정도? 이 정도 밖에 알지 못하는데 지금 연주가 보자고 하는 영화의 배우는 정말 처음 보는 배우입니다.

 

, 나야 아무 거나 상관 없지.

 

그러면 영화 표 끊어 올게.

 

그래.

 

연주가 매표소로 가는 순간 통증이 왔습니다. 저는 재빨리 저의 가방을 열어서 진통제를 꺼냈습니다. 생수와 함께 약을 먹고 나서, 모든 정리를 하고 나니, 연주가 자리로 돌아옵니다.

 

오빠, 아직도 몸 많이 안 좋은 거야? 얼굴이 많이 창백한데?

 

?

 

연주가 저의 이마에 손을 얹습니다.

 

이거 봐. 식은 땀도 장난 아니고.

 

연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를 바라봅니다.

 

지금 영화 볼 정도로 체력 회복 안 된 거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까짓 영화 보는데 뭐가 힘들다고 영화 볼 체력도 안 된다고 그러냐? 나는 정말로 괜찮다니까.

 

얼굴이 창백한데.

 

연주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정말로 괜찮아?

 

그럼.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래.

저는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진짜 꼴이 말이 아니네.

 

거울 속의 제 모습은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은 창백한데다가, 이마에서는 땀이 흥건히 묻어 났습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도, 아 다 죽어가는 사람은 맞군요. 그래도 진단을 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모양인 건지. 정말 사람이라는 건 웃긴 동물인 듯 합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듣고 난 이후 몸이 더 안 좋아진 듯 합니다. 제 몸이지만 참 밉습니다.

 

좀만 더 참자.

 

저는 애써 미소를 지었습니다. 웃는데 더 섬칫해 보이는 건 저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요? 제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마치 드라큘라 백작이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입니다. 살이 많이 빠졌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거울을 통해서 보니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아자,

저는 억지로 한 번 더 웃어 보이고는 화장실을 나섰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

 

큰 거.

 

으유.

 

연주가 코를 쥐고 고개를 젓습니다.

 

하여간.

 

.

저는 연주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스킨십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제가 손을 꽉 잡으니 연주가 저를 바라봅니다.

 

오빠가 어쩐 일이야? 평소에 내가 손을 잡을라 치면, 황급히 손을 빼던 사람이 말이야. 많이 컸네.

 

손 안 씻었거든.

제가 씩 웃자, 연주가 황급히 손을 빼냅니다.

 

어유 드러워.

 

농담인데.

 

.

 

연주가 눈을 치켜 뜹니다.

 

오빠가 그렇게 말하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거 같거든?

 

.

 

연주가 저를 이상한 듯 바라봅니다.

 

오빠 오늘 왜 그래?

 

?

 

평소와 많이 다른 거 같아.

 

뭐가?

 

아니.

 

연주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그냥 평소의 오빠와는 다른 거 같아. 조금 더 다정하고, 적응이 안 된다고나 할까? 뭐 꽤나 긍정적인 변화니까 불만은 없지만 말이야.

 

그러면 됐어.

 

저는 연주의 머리를 헝클었습니다.

 

어서 영화 보러 가자.

 

그래.

 

 

 

까르르 웃는 연주의 옆에서 저는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현실과 동 떨어진 영화 속의 상황은 지금의 제 상황에 처하고 보니 더욱더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을 보니 화가 나려고만 했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 정말 저렇게 앓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런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서 병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오빠,

 

?

 

영화 끝났어.

 

어느새 극장 안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스크린에서는 앤딩 크레딧의 마지막 부분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극장에는 연주와 저 단 둘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출구 쪽에서는 영화관의 스태프가 어서 나가주기를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서서 저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미안.

 

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빠 오늘 정말 왜 그러는 거야?

 

?

하루에도 몇 번이나 멍하니 있고.

 

연주가 저를 수상하게 바라봅니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일이 있을 게 뭐가 있냐?

 

아니, 그런 건 아무 것도 없지만.

 

연주가 저의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오빠, 나는 오빠의 여자 친구야. 무언가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에게 숨기는 게 뭐가 있어?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 한 켠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습니다.

 

정말 없는 거지?

 

그럼.

 

이별, 이별을 고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제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지금 연주의 얼굴을 보는 이 순간에도 미안함에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연주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은 척 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죽는다면 분명 연주는 슬퍼할 겁니다. 그런 연주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제가 이별을 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