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 2
마지막 이야기
“건강 상태는 어때요?”
의사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좋은 것 같습니다.”
호젓한 산 속의 어느 별장.
“사실 아프기 전에는 이렇게 쉴 수가 없었거든요. 아프고 나니까, 이렇게 휴가도 얻고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가끔 통증으로 굉장히 아프기는 했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쉰 것은 대학교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흐음.”
의사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나저나 약은 잘 드시고 계십니까?”
“아니요.”
저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 왜요?”
“아니, 약을 먹는다고 해도, 제가 살 가망성이 없는데 억지로 저항을 한다는 것도 웃기더라고요. 이 곳에서는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니까 가끔은 그런 격렬한 통증을 겪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볼 사람이 없으니까, 가끔은 통증이 원하는 대로 제 몸을 가지고 놀게 해주어도 좋습니다.”
“휴우,”
의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제가 좋아할 줄 알았습니까?”
“정말 싫어하네?”
저는 미소를 지으며 의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려고요.”
“그나저나, 정말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겁니까?”
“네?”
저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의사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 아무도 모르고 있는 거냐는 말입니다.”
“네.”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가 안쓰러운 듯 저를 바라봅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알리지 않을 겁니까?”
“저 때문에 아픈 건 싫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연주,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니까요.”
“아!”
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제가 가져온 게 있습니다.”
“네?”
“잠시만 계시지요.”
의사가 황급히 별장을 나섭니다.
“나 참.”
참 좋은 의사입니다. 의사를 정말 직업으로써가 아닌, 소명으로써 하는 사람입니다. 저 같이 말도 안 듣는 환자를 위해서 이토록 애를 쓰는 의사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암.”
이상하게 많이 피곤합니다. 오랜만에 사람이 와서 그 사람을 맞느라 그런 것일까요? 요 근래 느껴보지 못한 피로함입니다.
“흐음.”
너무 피곤합니다.
“하암.”
의사 선생님은 여기 부엌을 사용하실 줄도 모르실 텐데요. 여기는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데요. 그런 거 이것저것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요. 그런데, 너무 졸립니다.
“흐음.”
눈꺼풀이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너무 졸립니다.
“저, 저기!”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 자리에서 섰다.
“저, 저기. 지금.”
“오빠!”
의사를 밀쳐내고, 연주가 별장으로 뛰어 들어 간다.
“오빠, 오빠 지금. 오빠, 나 왔어. 오빠 일어나. 나 왔다고. 이 바보야. 내가 왔다고. 내가 오빠 보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연주 씨.”
“오빠!”
연주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연주가 그를 흔든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이 나쁜 놈아. 이대로, 이대로 가면 어떻게 해! 이 나쁜 놈아. 이 바보야!”
오열을 하는 연주를 의사가 가만히 일으켜 세운다.
“진정하세요.”
“오빠. 오빠.”
연주가 이를 꼭 깨문다.
“오빠.”
“네가 연주니?”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연주의 손을 꼭 잡는다.
“그래, 마지막까지 우리 아들의 좋은 여자 친구로 남아주어서 참 고맙다. 정말로 고마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말뿐이어서 정말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어머니.”
연주는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오빠가 있어서 참 행복했어요. 마지막에는 제게 거짓말을 해서 좀 미웠지만, 그래도 저도 오빠가 있기에 정말로 행복했어요.”
“그래,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참 고맙구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너 많이 피곤한데, 눈이라도 좀 붙여야 하지 않겠니?”
“의사 선생님을 좀 뵙기로 해서요.”
연주가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도 좀 쉬세요.”
“나야, 우리 아들 장례식이니 쉬기도 좀 그렇고, 쉬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너도 의사 선생님 뵙고 나면 꼭 쉬거라.”
“네.”
“그래, 그러면 가보거라.”
“네.”
연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고 게신 겁니까?”
“네?”
갑작스러운 의사의 말에 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게 무슨 말이세요?”
“환자 분이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건지 여쭤보는 겁니다.”
“아니요.”
연주가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러면.”
“네?”
“왜 전혀 놀라지 않은 겁니까?”
의사가 진지한 눈으로 연주를 바라본다.
“처음에 그 분이 투병 사실이라는 걸 연주 씨에게 밝혔을 때 전혀 놀라지 않으셨잖아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실 수 있으셨던 겁니까? 왜 놀라지 않으신 거죠?”
“정확히는 알지 못했어요.”
연주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알고 있었어요.”
“네?”
의사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선생님은 아직 제대로 사랑해보신 적 없으시죠?”
연주가 의사를 바라본다.
“정말로요.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서로를 알게 되요.”
“서로를 알게 된다고요?”
“네.”
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걸 알게 되요.”
“정말로 그렇단 말입니까?”
“저랑 오빠는 그렇더라고요.”
연주가 쓸쓸히 고개를 끄덕인다.
“오빠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 지 몰라도,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저는 항상 오빠의 모든 것들을 느끼고 있었어요. 오빠가 아프면 저도 아팠고요. 오빠가 불안하면 저도 불안했어요.”
연주가 머리를 쓸어 올린다.
“오빠가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 조금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오빠의 얼굴이 이상했거든요. 우리 오빠 원래 거짓말 하나 못 하는 사람이에요. 사실 그렇게까지 나를 속였다는 게 참 대단해요.”
연주가 혀를 내민다.
“정말 대단해요. 그 순수했던 사람이.”
“연주 씨.”
“네.”
“제가 잘못한 걸까요?”
의사가 먼 하늘을 바라본다.
“분명 연주 씨에게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아니요.”
연주가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분명 제게 말씀 하실 줄 알았을 거예요.”
“네?”
의사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말했잖아요.”
연주가 싱긋 웃는다.
“우리는 토하는 게 있다고요.”
“아.”
의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렇군요.”
“네. 그래요.”
연주가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
“어휴 너 또 왔니?”
어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연주를 바라본다.
“왜 자꾸 와.”
“우리 어머니니까요.”
연주가 생긋 웃으며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는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오는 게 싫으세요?”
“싫지는 않은데.”
어머니가 말 끝을 흐린다.
“그래도 너무 미안하잖니?”
“미안하긴요.”
연주가 미소를 짓는다.
“오빠의 어머니신데요.”
“그래도.”
“제가 좋아서 오는 거예요.”
연주가 팔을 걷는다.
“그러니까, 말리지 마세요.”
“연주야.”
“이렇게 해서라도 오빠에게 받은 사랑을 갚고 싶으니까요.”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러면 네 마음이 편하다면.”
“고맙습니다.”
연주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바보야.”
그의 방에 들어가서 그의 사진을 보며 연주가 중얼거렸다.
“나를 두고 먼저 가서 좋냐? 나는 오빠가 없어서 지금 죽을 거 같은데 사진 속의 오빠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네. 뭐 거기서도 오빠는 행복하겠지? 오빠는 어디서도 행복한 사람일 테니까. 오빠, 나 정말로 사랑해.”
<바보 아저씨 2 끝>
'☆ 소설 > 단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맞이 가자 - [첫 번째 이야기] (0) | 2008.09.13 |
---|---|
청계천 사람들 (0) | 2008.08.31 |
바보 아저씨... 2 - [일곱 번째 이야기] (0) | 2008.08.31 |
바보 아저씨... 2 - [여섯 번째 이야기] (0) | 2008.08.31 |
바보 아저씨... 2 - [다섯번째 이야기] (0) | 2008.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