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
“교수님.”
선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교수실로 들어간다. 교수는 가방에 교재를 집어 넣으며 선재를 바라본다.
“내 강의가 지루하다더니 이곳은 어쩐 일인가?”
“죄송합니다.”
선재가 황급히 사죄의 말을 건넨다.
“아까는 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만 실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교수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십시오.”
“아닐세.”
교수가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다.
“다 선재 군 마음 속에 있는 말이니 실언이라도 그리 나온 것 아니겠나? 아무리 실언이라고 하더라도 평소에 마음 속에 담지 않은 이야기가 그렇게 입 밖으로 튀어 나올 일이 있겠는가?”
“아닙니다.”
선재가 손을 젓는다.
“교수님의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아닙니다.”
선재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정말 교수님의 수업이 재미있습니다.”
“흐음.”
교수의 왼쪽 눈썹이 꿈틀 거린다.
“용서해주십시오.”
“딱 한 번만이네.”
교수가 시선을 다시 자신의 책으로 돌리며 툭 던지자 선재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진다.
“그러면.”
“선재 군이니까 봐주는 거야.”
교수가 미소를 짓는다.
“무슨 마음 고생인지는 모르곘지만 선재 군이 더 이상 신경을 씨지 않는 방향으로 풀리기를 바라네.”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 강의 시간에 보지.”
“네.”
선재는 다시 한 번 인사를 꾸벅 하고 교수실을 나왔다.
‘Rrrrr Rrrrrr’
아마 선재일 것이다. 오늘 데이트를 하기로 했으니까, 주연은 액정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네,”
“어? 내 전화인 거 알았어?”
“어?”
순간 들리는 목소리는 선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갑자기 들리는 성기의 목소리에 주연이 움찔한다.
“서, 성기야.”
“이거 영광인데, 전화벨이 울리기가 무섭게 받고 말이야.”
성기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주연의 귀까지 향했다.
“오늘 시간 어때?”
“오늘?”
주연이 입술을 꼭 깨문다. 오늘은 선재와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오늘은 바쁜데.”
“왜?”
성기가 어린 아이가 보채듯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되묻는다.
“나를 보기 싫은 거야?”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보자.”
“어?”
주연은 난감해졌다.
“하지만 오늘은.”
“기다릴게.”
“!”
주연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서, 성기야.”
주연이 애타게 외치던 중에 전화가 끊겼다.
“나 참.”
주연이 고개를 젓는다.
“왜 이렇게 제멋대로야?”
“?”
선재가 고개를 갸웃한다. 멀리서 주연이 보여서 손을 들어서 아는 척을 하려고 했는데 주연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뭐지?”
선재가 주연을 주시하고 있는데 주연이 멀어진다.
“흐음.”
선재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 다시 전화기를 꺼내든다.
‘Rrrrr Rrrrr’
주연이 조심스럽게 액정을 확인해 본다. 이번에는 선재다.
“여보세요?”
“뭐해요?”
“그냥 있어요.”
주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이긴요. 오늘 우리 데이트 하기로 한 날이니까요.”
“아, 나는 오늘 수업 끝났는데.”
주연이 싱긋 웃는다.
“선재 씨는요?”
“주연 씨 주위를 좀 봐요.”
“네?”
주연이 주위를 둘러보자 미소를 짓는 선재가 보인다.
“킥.”
주연도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는다.
“그래.”
선재가 작게 다짐한다.
“이대로, 그냥 잘 지내면 되는 거야.”
선재가 밝게 미소를 짓는다.
“주연 씨!”
“으.”
대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뜬다.
“뭐, 뭐야?”
분명 무언가에 부딪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 길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분명이 차에 부딪친 것 같은데. 대연은 아래 입술을 꽉 깨물며 고통을 애써 참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
대연의 눈이 커다래졌다.
“지, 지연아!”
눈으로 보아도 피를 꽤나 흘린 듯 한 지연이 그냥 바닥에 누워 있다.
“제길.”
대연이 황급히 휴대 전화를 꺼내든다.
“여보세요? 여기 교통 사고가 났는대요.”
대연이 아래 입술을 꽉 깨문다.
“여기가 어디냐면요? 여기가. 그러니까.”
대연이 애써 울음을 참아내며 전화를 끝마친다.
“지연아, 지연아.”
대연이 눈을 꼭 감고 지연의 손을 잡는다.
“안 돼. 안 돼.”
대연이 더욱 꽉 지연의 손을 잡는다. 아직은 따뜻하다.
“지연아, 지연아.”
대연의 눈에서 눈물이 고인다.
“안 돼. 안 돼.”
‘삐뽀 삐뽀’
그리고 대연은 의식을 잃었다.
“다행입니다. 차에 부딪치고 이 정도 밖에 타박상이 없다는 건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휴우.”
화영이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 앉는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화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러면 그 여자 아이는.”
의사가 살짝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
화영의 눈 앞에 아득해진다.
“잘 모르시겠다니요?”
“그 아이도 출혈 양은 많은데 실제로 이상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멍하니 차트를 들여다본다.
“솔직히 저로써도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그 아이의 경우에는 그 아이가 얼마나 잘 견뎌주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의학적으로도 도와줄 것도 없고 오로지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이 달렸습니다.”
“하아.”
화영이 창백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의 아이도 아니고, 자신의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라고 했다. 멀쩡한 여자 아이를 자신의 아이가 다치게 한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화영은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 선생님이 누구십니까?”
그 순간 들리는 지긋한 목소리 화영이 고개를 들었다.
“태, 태경 오빠?”
그 남자가 화영을 내려다보았다.
“화영아.”
“세상이라는 게 참 좁구나.”
“그러게요.”
화영이 자신의 커피를 만지작 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정말 미안해요.”
“네가 미안하긴.”
태경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지연이도 대연 군을 참 좋아했단다.”
“오빠는 대연이를 봤어요?”
“그럼.”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아이가 얼마나 싹싹한지 나랑 바둑도 뒀다니까.”
“어머.”
화영이 미소를 짓는다.
“그런 줄도 몰랐어요.”
“그렇겠지.”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지연이 어떡해요?”
“어떡하긴.”
태경이 화영의 손을 잡는다.
“아직 가타부타 말이 나온 건 아니잖아. 그냥 있으면 될 거야.”
“하지만.”
태경이 고개를 젓는다.
“입이 화를 낳는다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야.”
“네.”
그 순간 화영은 느꼈다.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지연을 걱정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태경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지연이 엄마는요?”
“없어.”
태경이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지연을 바라보았다. 중환자실 유리 안으로 지연의 얼굴이 보인다.
“미, 미안해요.”
“아니야.”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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