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
“으음.”
대연이 가늘게 눈을 뜬다. 여전히 하얀 병실의 천장이 보이자 대연이 마음 속 깊숙이 밀려오는 고통에 눈을 다시 감아 버린다.
“대연이 깼니? 어라? 아니네.”
한 발짝 느린 화영의 말에 대연이 저도 모르게 눈을 뜰 뻔하다가 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 눈을 뜨면 다가올 진실, 혹은 그 이상의 것에 혹시나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기에 대연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서 일어나야지.”
화영의 따뜻한 손길이 대연의 이마에 다가온다.
“네가 곁에 있어야 지연이란 아이가 눈을 뜰 수 있지.”
“!”
순간 대연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네가 가야 눈을 뜨지.”
“!”
대연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눈을 뜬다? 지금 화영의 말을 그대로 생각을 해보면 아직 지연이 눈을 뜨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대연이 걱정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보증 수표와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지연이 가늘게 눈을 뜬다.
“어?”
눈을 떴는데 자신이 이상한 곳에 있다. 온통 색색이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공간에 자신이 홀로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지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흐음.”
의사가 와서 표정을 구긴다.
“선생님.”
태경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의사를 보지만 의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도대체 지연이는.”
태경의 애절한 표정에 의사의 마음도 아려온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신의 자식이 아픈 것만큼 슬픈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순간에는 그도 그 자신이 의사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선생님.”
“아직 모르겠습니다.”
“!”
의사의 말에 태경의 얼굴이 굳는다.
“그, 그게.”
“아직도 확률이 높지 않습니다.”
의사는 단호한 말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저 역시 확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하아.”
태경이 무너져 내린다.
“그, 그건. 그, 그건.”
“죄송합니다.”
태경의 얼굴에 허무한 표정이 지나간다.
“의사 선생님.”
“?”
의사가 고개를 돌려 태경을 바라본다.
“지연이 살려야 합니다.”
어느 새 다시 아버지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는 태경이었다.
“아버님.”
“저 이 아이 없으면 죽습니다.”
태경의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 배여 있다.
“이 아이 엄마도 죽었고, 이제 제 곁에는 유일하게 이 아이 뿐이었습니다. 이 아이, 이 아이 반드시 살아야 합니다. 저 혼자서 이 세상 살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제 유일한 힘의 원천이고 희망이였습니다. 이 아이를 보는 게 하루하루의 낙이었는데 안 됩니다. 절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지연이 아버님.”
의사가 태경의 어깨를 잡는다.
“아직 확실히 지연이가 어떻게 된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모릅니다.”
의사가 태경의 눈을 바라본다.
“아직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선생님.”
의사가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아버님의 이런 마음을 알고 지연 양이 일어날 겁니다.”
“그럴까요?”
“네.”
태경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정말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솔직히 우리 지연이가 견뎌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태경이 쓸쓸한 시선으로 지연을 바라본다.
“우리 지연이 그 동안 고생밖에 시키지 못해서 미안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이렇게 더 미안한 일이 생겨 버릴까봐. 그럴까봐.”
“아닙니다.”
의사가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지연 양 지금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의식을 찾지 못하지 않습니까?”
“분명 견뎌 낼 겁니다.”
의사가 힘주어 태경의 어깨를 짚는다.
“반드시 그렇게 견뎌낼 거니까 지연이 아버님도 힘을 내세요. 그래야, 그래야 지연이도 힘을 냅니다.”
“그럴까요?”
“물론입니다.”
태경이 슬픈 미소를 짓는다.
“그래야 할 텐데요.”
여전히 지연은 곱게 잠이 들어 있었다.
“언제 일어날지?”
태경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후우.”
의사 역시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너 내가 싫은 거야?”
“어?”
성기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 얼굴 안 보고 싶어했잖아. 혹시 내가 싫어서 그런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아닌데, 왜?”
성기가 볼을 가볍게 부풀린다.
“나 완전 서운하다고, 사귀고 싶어서 키스로 입술 도장까지 콱 찍어서 내 거라고 한 여자가 나를 피한다니 말이야.”
“조, 조용히 해!”
“킥.”
성기가 미소를 짓는다.
“왜?”
“너 자꾸 장난 칠래?”
“장난 아닌데.”
성기가 씩 웃는다.
“너는 지금 내가 장난으로 보여?”
“!”
주연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냐니?”
성기가 어깨를 으쓱한다.
“당연히 너와 사귀고 싶으니까 사귀고 싶다고 말을 한 거야. 너는 아직도 우리가 고등학생인 지 알고 있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더 이상 연애를 장난 삼아 하고 싶지만은 않다고.”
성기가 씩 웃는다.
“이제는 조금은 더 진지하게 애인을 만들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너는 아닌 거야?”
“아, 아니.”
저도 모르게 성기의 질문에 말려가고 있는 주연이다.
“그렇지?”
성기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럼 우리 사귀어도 되는 거 아니야?”
“뭐?”
주연이 황급히 자신의 정신을 찾는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냐니?”
성기가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우리 사귀는 거 한 번 생각해보라니까.”
“어, 어떻게 그래?”
“왜 못 그래?”
성기가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너에게 고백을 했고, 너도 싫지 않으면 우리 사귀면 되는 거 아니야?”
“너야 말로 우리가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니야?”
“뭐?”
성기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쉽게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해?”
“어?”
성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연을 바라본다.
“어떻게 이게 쉬운 거야?”
“너 나 알아?”
“당연하지.”
“어떻게 아는데?”
“응?”
갑작스러운 주연의 질문에 성기가 당황한다.
“어, 어떻게 아냐니?”
“너는 나를 어떤 아이로 알고 있는 건데?”
“그거야.”
성기가 씩 웃는다.
“재미있고 착하고 좋은 애, 그게
“아니야.”
주연이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나 많이 변했어.”
“그런 거 같아.”
성기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아는
“뭐?”
주연이 성기의 얼굴을 바라본다.
“내가 아는 주연은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거든.”
성기가 미소를 짓는다.
“마음에 들어.”
“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성기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러니까 네 말은 아직 우리가 몰라서 그렇다는 거지?”
“어?”
“그럼 알면 되는 거구나.”
“무, 무슨?”
성기가 어린 아이와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럼 서로 알면 되는 거잖아.”
“어?”
“어라니?”
성기가 킥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가자.”
그리고 주연의 팔을 낚아 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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