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아흔한 번째 이야기 -
“윽.”
태경이 아래 입술을 꽉 깨문다.
“하아.”
통증이 서서히 커져나가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아직까지는 진통제 두 알, 그리고 물, 심호흡만 있으면 어느 정도는 고통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 지는 모르는 태경이었다.
“지연아.”
태경이 가만히 눈을 감는다. 고통이 느껴지지만 고통에 지배될 수는 없었다. 지연이를 위해서 그래서는 안 됐다.
“후우.”
고통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흐읍.”
지연이 아래 입술을 꽉 깨물었다. 늘 그렇듯이 병실 앞에 서 있으면 늘 마음이 아파오는 지연이었다. 늘 아버지가 고통을 느끼시는 모습을 보면 병실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지연아.”
“아 대연 군.”
지연이 황급히 자신의 얼굴에 있는 어두운 기색을 지워낸다.
“어인 일이십니까?”
“너 걱정 돼서.”
대연의 얼굴에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하다.
“괜찮아?”
“예.”
지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괜찮습니다.”
“뭐라도 먹으러 가자.”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배가 고파서 그래.”
대연이 싱긋 웃는다.
“그러니까 가자.”
“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준 대연이 너무 고마운 지연이다.
“하아.”
병환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 뜨린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들어버린 듯 했다.
“미치겠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선재와 주연의 일에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재가 말을 했는데 가만히 있기도 뭐헀다.
“후우.”
병환이 한숨을 내쉬며 전화기를 들었다.
‘Rrrrr Rrrrr’
“여보세요?”
혜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는다.
“나야.”
“오빤 거 알아, 그런데 오빠가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어? 오빠 일하고 있어야 하잖아.”
“점심 같이 먹을래?”
“점심?”
혜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어제도 먹었잖아.”
“먹자.”
“흐음.”
혜지가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문다.
“알았어.”
“그러면 내가 학교로 갈게.”
“응.”
“그 때 보자.”
“그래.”
혜지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왜?”
그 순간 주연이 혜지를 바라보며 묻는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혜지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나저나 미안해서 어떡하지?”
“응?”
주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혜지를 바라본다.
“뭐가?”
“오늘도 점심 너 혼자서 먹어야 겠다.”
“오늘도?”
“응.”
주연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너 정말 친구 맞냐?”
“미안.”
혜지가 두 손을 모은다.
“대신 다음에 내가 밥이랑 커피까지 풀로 쏜다.”
“진짜지?”
“그래.”
혜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중에 봐.”
“응.”
혜지가 멀어진다.
“무슨 일이야?”
“어제 선재봤다.”
“선재 씨?”
혜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병환을 바라본다.
“응.”
“선재 씨가 왜 오빠를 찾아 가?”
“헤어지고 싶은대, 헤어질 수가 없대.”
“주, 주연이랑?”
병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다 알고 있나봐.”
“!”
혜지의 얼굴이 굳는다.
“뭐, 뭘 다 알고 있어?”
“뭐긴.”
병환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주연이 말이야?”
“응.”
“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혜지가 병환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런데 왜 헤어지지를 않는 거야?”
“사랑한대.”
“미쳤어.”
“도와달란다.”
“뭘?”
“자기 마음 정리하게.”
“뭘, 정리해?”
“이번주에 떠난대.”
“!”
혜지가 입을 다문다.
“부모님이 이번 주말에 한국 들어오신다고 했대, 그런데 그 전에 자기가 일본으로 출국을 해서 부모님들과 합류할 거래, 그리고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래. 그러니까 주연 씨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연 씨를 떠났다고, 그렇게 주연 씨에게 이별을 고할 거래.”
“미쳤어.”
“주연 씨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대, 주연 씨가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대, 진짜로 주연 씨를 사랑하니까, 끝까지 믿어주면서 떠나고 싶대.”
혜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주연이 만나러 갈래.”
“
병환이 황급히 혜지의 팔을 잡는다.
“그러면 선재 마음 다 무시하는 거잖아.”
“아, 아니 그래도 할 수 없잖아.”
혜지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
“그래서 말인데.”
“?”
혜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뭐?”
“선재 씨가 부탁을 하나 했어.”
“부탁?”
혜지가 병환의 얼굴을 바라본다.
“무슨 부탁?”
“그게.”
병환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하아.”
함꼐했던 추억, 선재는 주연의 칫솔을 쓰레기 봉투에 집어 넣는다. 주연의 실내용 슬리퍼, 주연의 수면 안대, 주연의 알람 시계, 주연의 샤워 가운, 주연의, 주연의, 선재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는다.
“되게 많네.”
5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로도 충분할 줄 알았는데, 부족했다.
“주연 씨.”
한 달 남짓이었던 동거 생활. 이렇게 많은 추억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하아.”
선재가 슬픈 미소를 짓는다.
“이제 정말 끝이네.”
선재는 쓰레기 봉투를 묶었다.
“미쳤어.”
“혜지야.”
“싫어.”
혜지는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그걸, 그걸 왜 알려고?”
“그건 나도 모르지.”
“안 돼.”
혜지가 고개를 젓는다.
“선재 씨는, 선재 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선재도 생각이 있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이래?”
“혜지야.”
“생각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래?”
“생각이 있으니까.”
“오빠.”
“부탁이라도 하고 싶나보지.”
“!”
혜지의 눈이 커다래진다.
“뭘 부탁해?”
“주연 씨를.”
“하.”
혜지가 코웃음을 친다.
“그게 더 미친 짓이야.”
혜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미쳤어.”
혜지가 아래 입술을 꼭 깨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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