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떴다! Episode. 1 - 빼빼로 데이
두 번째 이야기
44살의 빼빼로 데이.
“엄마 일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하고.”
“네.”
“안 힘드세요?”
“힘들지.”
“그런데 저 아무 것도 안 주세요?”
“뭘?”
청년이 서운한 표정을 짓습니다.
“정말 너무하시네?”
“뭐가 너무해?”
“내일이 무슨 날이지 아시잖아요.”
아 지금 내일이 빼빼로 데이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건가요? 저는 이왕지사 만든 빼빼로도 있겠다 그냥 가방에서 빼빼로를 꺼냈습니다. 누군가를 주려고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아까 집에 갔을 때 실수로 빼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안 빼기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빼빼로를 청년에게 건넸습니다.
“여기.”
“우와.”
청년이 함박 웃음을 짓습니다.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달라며?”
“그러니까 이거 누구 줄 사람이 있는데 괜히 제가 졸라서 저 주시는 거 아니냐고요? 다른 사람 주시려고 가지고 오신 거라면 저 안 주셔도 괜찮아요. 안 받아도 돼요.”
“아니야.”
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차피 그거 아무도 줄 사람 없었어. 오전에 제과 수업 듣는데 거기서 나온 거거든. 그러니까 자기가 가져도 돼.”
“진짜죠? 우와 완전 감동이다. 아줌마한테 이런 거 받을 줄 몰랐어요. 이거 제가 맛있는 거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스레는.”
이 청년은 참 사람에게 웃음을 나오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난기도 많고 늘 서글서글하게 미소를 지어서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청년을 좋아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 장난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요.
“제가 내일 저녁에 맛있는 저녁 쏘겠습니다.”
“됐어.”
저는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집어 들었습니다.
“자기 여자 친구에게나 그런 거 해 줘.”
“저 그런 거 없는 거 아시면서.”
“왜? 무슨 하자라도 있어?”
“네?”
청년이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진심으로 그런 거 없다니까요. 하자도 없고 말이에요. 그냥 이런 거 주셔서 감사해서 저녁이나 살려고 합니다.”
“됐어. 나중에 외국 가는데 그 돈 보태.”
“아니에요. 정말 내일 쏠래요.”
어라? 이 청년이 왜 이렇게 조르죠?
“안 돼. 알잖아. 우리 어머니랑 같이 살아서 어머니 저녁 차려드리고 같이 먹고 나와야 한다니까.”
“그러면.”
청년이 진지한 표정을 짓습니다.
“잠시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래요?”
“이야기?”
“네.”
청년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부담감이 느껴집니다. 조금 무섭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미소를 지으며 농담으로 그냥 대충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습니다. 집에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 이야기 해 봐.”
“잠시 나가요.”
“어디를?”
“여기는 좀 그렇잖아요.”
청년이 주위를 둘러보자 저 역시 주위를 둘러 봅니다. 다른 파트타이머들이 우리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을 보니 정말 이 청년의 말처럼 여기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 그러면 밖에 커피숍이라도 가자고.”
“네.”
저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뭐, 마실래?”
“아줌마는요?”
“나는 아메리카노.”
청년이 지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왜 그래?”
“제가 살게요.”
“괜찮아 나도 돈 있어.”
“그냥 제가 사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아줌마는 그냥 앉아 계세요.”
“나 참.”
저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지갑을 들고 카운터로 갔습니다. 나 참 저게 무슨 심보일까요? 청년이 돈이 없는 건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이죠. 이런 거 안 얻어 먹어도 괜찮은데. 뭐 공짜 커피가 싫은 건 아닌데, 그래도 미안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게 그 청년을 바라보면서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곧 그 청년이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로 옵니다.
“무슨 이야기인데.”
“후우.”
청년이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저기 아줌마.”
“응?”
“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
“네.”
왜 이런 고민을 저에게 묻는 걸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할 지 모르겠어요.”
“고백을 해.”
“네?”
청년이 저를 바라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며, 지금 자기가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그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안 좋아해줄까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 아니야?”
“맞아요.”
“그러면 그냥 고백을 해 보면 알 거 아니야. 어떻게 그 사람이 대답을 할까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조리면서 있는 게 아니라.”
“흐음.”
청년이 미간을 찌푸린다.
“그 사람이 제가 고백을 하면 받아줄까요?”
“글쎄? 만일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고백을 하는 거 그냥 들을 거 같아. 자기가 좀 선하고 사람 됨됨이가 바라? 나라면 두 말 할 거 없이 좋다고 두 손 맞잡을 거 같아. 그러니까 그냥 고백해.”
“그러면. 고백할래요.”
“그래.”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지금 그거 물으려고 그런 거야?”
“아니요.”
“응?”
청년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저를 바라봅니다. 또 무슨 이야기지요?
“아줌마.”
“왜?”
“좋아해요.”
“응?”
지금 뭐라고 말을 했지요?
“뭐라고?”
“좋아한다고요. 제가 고백을 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아줌마에요. 저 아줌마가 좋아요. 아줌마가 무지하게 좋아요. 아줌마가 보기에는 그냥 제가 어린 아이로 보이겠지만.”
“장난 치지 마.”
저는 황급히 이 청년의 말을 끊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랍니다. 저를 좋아한다니요? 나이든 사람을 놀려도 유분수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청년이 꽤나 장난기가 많은 청년입니다.
“됐어. 장난하지 마.”
저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아메리카노 잔을 입에 댔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표정이 여전히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습니다.
“진심이에요.”
“!”
“제가 언제나 장난을 치고 그래서 제가 지금 하는 말을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 진심으로 아줌마가 좋아요. 정말 지금 이 순간 제가 아줌마에게 하는 말은 장난이 아니에요. 저는요. 항상 장난은 잘 치지만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는 않아요. 정말로, 정말로 아줌마가 좋아요. 진심으로 아줌마가 좋아요.”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왜 말이 안 돼요?”
청년의 눈이 진지합니다.
“왜냐니? 자기랑 나랑은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완전히 큰 누나 뻘이야. 알아?”
“그까짓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 겨우 12살 차이 나요?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겨우 열두 살이요.”
“그게 적어? 안 적어. 12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이 되겠지? 나중에 그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고. 알아?”
“아줌마.”
“태경 씨.”
결국 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 청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태경이었습니다. 아 태가 성이고 경이 이름입니다.
“더 이상 이러지 말자. 나 재미 없어. 설사 자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왜 말이 아 돼요?”
“왜냐니?”
정말 이 청년 사람 답답하게 만듭니다.
“우리 나이 차이가.”
“겨우 열 두살이에요. 겨우 띠 동갑. 띠 동갑끼리 결혼을 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띠 동갑이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만일 당신도, 당신도 나를 좋아해준다면 그걸로 되는 거잖아요. 누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이를 이야기 하나요? 진심으로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잖아요. 그게 사랑인 거잖아요. 나는 아줌마가 좋아요. 우리가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던 그런 건 전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요. 지금 내가 아줌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아줌마와 나의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아줌마를 좋아하고 있다는 거예요. 나 처음 봤던 순간부터 아줌마가 좋았어요. 아줌마가, 아줌마가 정말 나보다 나이가 무지하게 많아서 그 동안 무지하게 고민했었거든요. 이건 쉽게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랑이겠구나. 지금 내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줌마라는 신기한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래서 그 동안 아줌마를 마음 속에서 밀어내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을 했었어요. 아줌마라는 사람이 내 마음 속에서 자라나지 못하게 하느라고 무지하게 고생을 했었다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줌마는 이미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었고, 더 이상 아줌마가 내 마음 속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요. 아줌마랑 나랑 나이 차이가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 그런 나이 따위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줌마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이 봐.”
듣자 듣자 하니 점점 심해지는 듯 하여서 저는 황급히 청년의 말을 끊었습니다. 저를 사랑을 하고 있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정말, 정말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연인입, 아니 연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겁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미안해. 내가 자기에게 무언가를 오해하게 만드는 일을 했었나 봐. 하지만 나는 자기. 아, 아니. 이 말도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해. 나는 민혁 군에게 아무런 의미를 지닌 여자가 아니야. 지금 민혁 군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 나는 솔직하게 잘 알지는 몰라. 하지만 민혁 군이 지금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던 간에, 내가 민혁 군이 그런 마음을 가질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해. 나는 민혁 군이 생각하는 그런 훌륭한 여자가 아니야.”
“아줌마.”
“나는 일단 나이가 많아. 게다가 나는 이미 결혼도 했었어. 게다가 나에게는 17살이나 된 딸이 있다고.”
“그런 게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아줌마를 좋아하는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지금 내가 궁금한 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아니라 바로 아줌마의 마음이에요. 아줌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싫어.”
저는 단호하게 말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단호하게 말을 해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끊어야만, 끊어야만 했습니다. 청년이 더 이상 오해를 하게, 더 이상은 마음 고생을 하게 둘 수 없었습니다. 단호하게 끊어야만 합니다. 나는 청년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그런 아줌마일 뿐입니다. 정말 이 사람이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듯이 나는 그저 아줌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줌마에게 이런 마음을 풀다니요? 정말 말도 안 될 일입니다.
“나는 민혁 씨 마음이 어떻든 간에 싫어. 나는 나보다 그렇게 어린 애는 내 취미에 맞지 않는다고. 연상연하가 트렌드라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모든 여자들이 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해. 그리고 지금 민혁 씨 마음 그렇게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거 내가 더 잘 알아. 지금 민혁 군이 나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 할 걸? 그럴 때 되도 전혀 걱정할 거 없어. 나는 민혁 씨의 지금 이 고백을 깨끗하게 잊어줄 테니까.”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요?”
“뭐?”
순간 이 청년의 얼굴을 바라본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순간 나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미, 민혁 씨.”
“정말이에요. 나는 진심이에요. 내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아줌마에게 고백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다면 아줌마는 정말 저를 잘못 본 거예요. 나는요. 아줌마에게 그렇게 쉽게 고백을 할 만큼 가벼운 놈이 아니에요. 물론 아줌마가 보기에 저는 너무나도 가벼운 녀석으로 보일 거예요. 그 동안 아줌마에게 고작 그런 놈으로 보일 수 없었다는 거, 그런 행동 밖에 하지 않았다는 거 내가 더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 무지하게 후회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줌마, 이거 하나는 분명해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진심이라는 거 말이에요. 아줌마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정말 장난으로 생각이 되시겠지만 장난이 아니에요. 정말로 장난이 아니라고요. 나는 아줌마가 좋아요. 그냥 장난으로 사랑 고백이나 할 만큼 나는 할 일이 없는 놈이에요. 아무리 내가 장난기가 많고 그런 녀석이라고 해도 사람의 감정으로 장난을 칠 만큼 생각이 없는 놈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줌마. 제발 장난이라고,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말아줘요. 그렇게 잔인한 말은 하지 말아줘요. 잊는 다고요? 잊어준다고요? 한 사람이 진심으로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해서 한 그 말을 그렇게 쉽게 잊는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요? 사람이 어떻게 냉정한 말을 꺼내요? 그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의 고백을 그렇게 취급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사람은 솔직한 마음으로 한 이야기일 텐데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 거잖아요.”
“민혁 씨 그만해.”
더 이상 이 곳에 있으면 저 역시 이상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확실히 청년의 말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이 청년의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이 청년의 말을 듣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청년에게 너무나도 잔인함이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됐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지금 민혁 씨 마음이 장난이 아니라도 이런 고백을 하는 건 아니지. 내가 그냥 평범한 아가씨라면 몰라. 나는 아줌마야. 민혁 씨 보다 나이가 12살이나 많은 그런 아줌마. 딸도 있고 남편은 죽었어. 그런 아줌마에게 이런 고백을 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사람이 생각이 있어야지. 나 지금 민혁 씨의 말을 듣고 있는 게 얼마나 불쾌한 줄 알아? 얼마나 낯 뜨거운 줄 알아? 나 민혁 씨의 이런 뜨거운 고백을 받고 가슴 설렐 그런 나이는 지났어. 그래 솔직히 말할게. 나 민혁 씨의 고백을 받고 조금이나마 설렜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게. 하지만 내가 조금이나마 설렜대도 변할 것은 없어. 우리는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 우리가 아무리 설레고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그렇게 보지 않아.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아름다울 수도 없는 사이야. 정말 솔직하게 너무나도 기뻤어.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여자로 보이는 구나. 여자로 보이기도 하는 구나. 아직은 늙은 퇴물로 취급을 받지 않는 구나.”
“아줌마.”
“그만.”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제발, 민혁 씨 그만해. 나 더 이상 민혁 씨의 말을 들으면 민혁 씨랑 더 이상 웃으면서 점심을 먹을 수 없을 거 같고, 더 이상 웃으면서 인사를 할 수가 없을 거 같아. 자꾸만 서로가 이상한 사이인 듯 생각이 될 거고, 더 이상 민혁 씨를 좋게 볼 수 없을 거야. 민혁 씨 그만해. 그만하자.”
“아줌마. 제발요. 단순히 지금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아줌마, 지금 당장 대답을 하라는 건 아줌마에게.”
“그만해.”
저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청년을 바라보았습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어. 나에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민혁 씨에 대한 내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 거야. 정말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민혁 씨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인데 나는 주말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여 주인공이 아니야. 아침 드라마 속의 여 주인공이 아니라고. 더 이상 낭만을 찾고 싶지도 않고 낭만을 원하지도 않고, 낭만이 다가온다고 해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 민혁 씨가 나라는 사람에게 고백을 해준 건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필요 없어. 더 이상 필요는 없어. 민혁 씨의 고백에는 언제나 거절을 할 거라고.”
“아줌마.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힐 수가 있어요? 이건 아니잖아요. 사람이, 사람이 고백을 했는데 그렇게 쉽게 거절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최소한 잠시라도 생각을 해 보고 거적을 하던가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민혁 씨 제발.”
저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청년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어울리지 않아.”
“잘 어울려요.”
“민혁 씨는 아직 겨우 32살이야. 나는 44살이야. 우리의 나이 차이는 쉽게 용납이 될 수가 없는 사이라고. 그리고 내 눈에 민혁 씨는 그냥 귀여운 막내 동생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민혁 씨는 20살 짜리 여대생이 애인 감으로 보여? 전혀 그렇지 않잖아. 나 역시 마찬 가지야. 나 역시 민혁 씨를 나의 애인으로 생각할 수가 없어. 민혁 씨는 너무나도 어려. 나는 민혁 씨가 겪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겪었었어. 우리는 서로가 사랑을 할 수 없는 그런 사이야. 앞으로도 민혁 씨가 그냥 나를 좋은 아줌마로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대해줄 수는 있어.”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요. 지금 아줌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는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줌마도 알아줬으면 해요. 내가 아줌마에게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했는 지 말이에요. 나 역시도 내가 미친 놈이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나 역시도 내가 고백을 하면 아줌마가 얼마나 기가 막혀 할 까 다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더 이상 고백을 하지 않고는 있을 수가 없었어요. 아줌마가 좋은데, 아줌마가 정말로 좋은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아줌마가 좋은 그 사실이 아무리 마음 속에 꼭꼭 담아 두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잖아요. 나 정말로 아줌마가 좋아요. 한 순간의 열병으로 치부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에요. 지금 아줌마는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이 아니라고 했죠? 아줌마가 나화신이 아니듯이 나 역시 구세주가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구세주가 나화신을 좋아했던 만큼 아줌마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내가 비록 드라마 속의 구세주처럼 실장 님도 아니고, 어떤 드라마 속의 부회장도 아니에요. 아버지가 부자도 아니고 나 역시 지독한 가난뱅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아줌마를 좋아하는 마음은 진심이이에요. 아줌마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그 드라마 속의 남자 주인공에 비할 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진심으로 아줌마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고 진심으로 아줌마를 아껴주고 싶어요. 아줌마가 아줌마라서 불쌍해서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런 건 아니었어요. 진심으로, 진심으로 아줌마가 좋아요.”
“민혁 씨.”
“아줌마.”
“이건 아니야. 정말 이건 아니야.”
“왜 아닌 건데요? 말을 했잖아요.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거라면.”
“그건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되는 거야. 민혁 씨는 이해가 안 되겠지. 만일 내가 같은 입장이었다면, 만일 내가 민혁 씨 나이 때 지금의 나이 차이만큼 나는 정말 내 꿈 속의 이상형을 찾았다면 나 역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그래 그건 인정해. 하지만 그 사람 역시 거절을 했었을 거야. 민혁 씨도 지금 민혁 씨보다 12살 어린 사람이 고백을 하면 거절할 거잖아.”
“하지만.”
“아니.”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 청년을 단념시킬 의무가 있었습니다.
“다르지 않아. 같은 마음이고 같은 마음으로 거절을 하는 거야. 그런데 그 거절을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분명히 민혁 씨는 나를 사귀게 된다면 후회를 할 거야. 나는 민혁 씨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좋은 여자는 아니거든. 가난하고 나이든 어머니도 함께 살고 있어. 여동생 하나는 프리랜서 기자랍시고 살고 있고 딸내미는 지지리도 말을 안 들어. 그런 집안의 여자야. 나랑 여동생만이 돈을 벌고 있지만 여동생은 곧 시집을 가야 할 판이야. 다행히 남편이 죽으면서 꽤나 많은 보험금을 주고는 갔지만 그래도 딸을 대학 보내고 그러려면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야 해. 이런 나의 삶 속에 들어올 자신이 있어? 용기가 있어?”
“물론이에요. 아줌마가 겪고 있는 고통이라면, 아줌마가 해야 할 일들이라면 당연히 내가 함께 할 거예요. 분명해요. 아줌마를 위해서라면 아줌마가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면 나 역시 당연히 거기에 끼어들 거예요. 나는 아줌마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수 있다고요. 분명해요.”
“제발 민혁 씨.”
이 청년의 고집은 장난이 아닙니다. 쉽게 단념을 할 것 같지 않습니다.
“아무리 민혁 씨가 나를 좋아한다고 졸라대도 나는 민혁 씨를 바라보지는 않을 거야. 민혁 씨는 내가 보기에 아무리 봐도 남자로 보이지 않거든. 민혁 씨는 그냥 내 눈에 어린 아이일 뿐이야. 아무리 민혁 씨가 한 남자라고 자신을 나에게 보이려고 해도 내 눈에는 그저 그런 어린 아이일 뿐이야. 민혁 씨 제발 그만하자. 이런 쓸 데 없는 감정 소모는 하고 싶지 않아. 나 너무 힘들어. 내일 아침에는 또 딸 아침 밥을 줘야 해. 나는 그냥 아줌마야. 길을 걷다 민혁 씨가 수도 없이 바라보는 그런 아줌마들. 민혁 씨는 앞으로 나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 텐데 왜 나에게 이렇게 목을 매려고 해. 이건 민혁 씨의 목을 스스로 조르는 일이잖아. 나는 민혁 씨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 제발 민혁 씨 그러니까 그만 해.”
“아줌마는 도대체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어요. 지금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장난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냥 가벼운 감정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정말 크나큰 착각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절대로 아니에요. 정말, 절대로 아니란 말이에요. 아줌마, 내가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게 쉬운 건 줄 알아요? 나 역시도 내가 미친 놈이 아닐까? 아줌마가 나를 미친 놈 취급하면 어떻게 하나 정말 미친 듯이 고민을 했어요.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내 마음은 정말 아줌마를 향해 있구나. 정말로, 진실되게 아줌마를 좋아하고 있구나 그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정말 미루고 미루다, 벼르고 벼르다 아줌마에게 고백을 한 거란 말이에요. 정말 내 감정은 그냥 어린 아이의 장난 같은 게 아니란 말이에요. 나는 그 누구보다 진심이에요. 지금 그 누구보다 진심이에요.”
“오 제발.”
저는 고개를 저으며 가방을 집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말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이 청년의 마음을 가장 단호하게 거절을 시키려면 저 역시 단호하게 대처해야만 합니다. 그게 이 청년을 위한 겁니다.
“나는 갈래. 민혁 씨, 나에게 민혁 씨는 그저 어린 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아무리 민혁 씨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아무리 민혁 씨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전혀 변할 것이 없어. 내 마음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게 아니야. 내 마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 아니 영원히 변하지 않아. 민혁 씨는 너무 어려. 너무나도 어려서 지금 분명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분명히 후회할 거야. 나는 민혁 씨가 그렇게 후회하는 걸 원하지 않아. 민혁 씨 분명 나중에 지금 민혁 씨가 고백을 한 거 후회하고 그렇게 할 거라고 분명해. 내가 그 점 하나는 분명히 장담을 할게. 민혁 씨 그만 해. 지금 민혁 씨의 이런 장난 같은 고백. 그래, 인정해 장난이 아닐 거야. 이런 고백을 장난 삼아 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분명히 지금 민혁 씨는 진지한 마음으로 고백을 한 거겠지. 그래 인정해. 인정할게. 하지만 나는 민혁 씨의 고백을 받아줄 수 없어. 더 이상 사랑이라는 걸 하고 싶지 않아. 할 힘이 없어.”
“아줌마.”
“그만.”
“하지만, 하지만.”
“알아 진실이라는 거. 알아 진심이라는 거. 하지만 그런 걸 다 안다고 해도 변할 건 없어. 내가 다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민혁 씨의 마음이 어떻다는 걸 다 알고 있더라도 변할 건 없어. 민혁 씨는 그저 어린 동생일 뿐이야. 거듭 말하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정말 민혁 씨에게는 미안할 일이지만 절대로 변하지는 않을 거야. 확신해. 확신하고 있어. 그러니까 접어. 나에 대해 접어.”
“못 접어요.”
“접어.”
“못 접어요.”
“접어.”
“못 접어!”
“접어!”
“못 접는다고!”
“접어야만 한다고!”
“제발, 그런 말 하지 마요.”
“접어.”
“하.”
“접어.”
저는 그 길로 카페를 나섰습니다.
“하아.”
겨울이 꽤나 쌀쌀했습니다. 사랑을 보낸 겨울은 더 쌀쌀할 거 같습니다. 마지막 로맨스라 꽤나 떨리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청년을 위해서는 거절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로맨스 꽤나 떨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청년을 위한 일입니다. 단호히 거절을 해야 했습니다.
“아줌마!”
얼마나 걷고 있었을까요? 청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왜 따라 나온 것일까요? 정말 말 귀를 못 알아 듣는 청년입니다.
“민혁 씨 분명히 내가.”
“사랑해요.”
“!”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이 저를 꽉 안았습니다. 너무나도 뜨거운 그 심장으로 나를 안았습니다. 이런 뜨거움 다시는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 뜨겁게 나를 안았습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너무너무 사랑해요. 진심이에요. 진짜진짜 사랑해요.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사랑해요.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다고 해도 사랑을 해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돌을 던지면 내가 대신 맞아줄 게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욕을 한다면 내가 대신 욕을 먹어줄 게요. 하지만, 하지만 아줌마가 나를 두고 돌아서지는 말아요. 나 알고 있어요. 아줌마 역시 나를 조금이나마 마음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지금 떨리고 있다는 걸. 지금 만일 아줌마가 정말 단 하나도 떨리지 않는다면 나를 당장 뿌리치고 가 봐요. 당장 그래요.”
저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떨려왔습니다. 정말 이런 내가 우스울 만큼 떨렸습니다. 너무너무 떨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도 안 됩니다. 떨리다니요. 떨리다니요. 정말 말도 안 될 일입니다. 말도 안 됩니다.
“봐요. 아줌마도 나를 두고 가지 않잖아요. 아줌마도 떨린다는 거 부정하지 않잖아요. 지금 떨리고 있잖아요. 아줌마 역시 지금 설레고 있잖아요. 아줌마도 지금 내가 아줌마를 뜨겁게 사랑한다는 거 알고 있잖아요.”
“그만 하자. 그래 나 떨려. 너무너무 좋아. 지금 너무나도 설레. 좋아. 기뻐. 나도 여자인데 한 남자가 나를 좋아해준다는 게 안 좋을 수가 있겠어? 하지만 그만 해. 더 이상 하지 마. 나 역시도 떨리지만 나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
“왜 안 되요?”
“민혁 씨.”
“단순히 나이 때문이라는 건 말도 안 돼요”
“말 돼.”
“아줌마.”
“민혁 씨.”
“제발요.”
“나야 말로 제발.”
저는 힘껏 청년을 떼어 냈습니다.
“더 이상 설렐 필요는 없어.”
“!”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하지만.”
“그만해.”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결코 우리는 연인이 될 수가 없어. 우리는 결코 평범하지가 안잖아. 결코 우리는 평범한 사이가 될 수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연인이 될 수 없을 게 분명해 그러니까 그만하자. 제발, 그만 하자.”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줌마도 설레잖아요. 아줌마가 아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아니라 아줌마 역시 너무나도 설레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왜 밀어내요? 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해요? 왜, 왜 그러냐고요?”
“그래 나 겁쟁이야.”
“겁쟁이, 그럼 내 뒤에 숨어요.”
“싫어.”
저는 뒤로 한 발짝 물러 섰습니다.
“이런 나를 한심하다고 욕을 해도 좋아. 사랑에 함부로 다가가지도 못하는 바보라고 해도 좋아. 하지만 민혁 씨랑 사귀느니 차라리 나는 바보를 할래. 그게 더 쉬울 거야. 나는 그러고 싶어. 더 이상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아.”
“아줌마.”
“미안해.”
저는 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청년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들렸지만 더 이상 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청년을 보면 안기고 싶을 것이 분명했기에, 더 이상 청년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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