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떴다! Episode. 1 - 빼빼로 데이
세 번째 이야기
34살의 빼빼로 데이.
“별로 그런 건 취재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말아.”
“알겠습니다!”
나 참 이 국장이라는 인간의 뻔뻔함을 보십시오. 얼마나 뻔뻔한 지 아십니까? 저는 신문사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솔직하게 말을 하겠습니다. 저는 프리랜서 기자도 아닌 비정규직 기자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흔히들 말을 하죠. 땜빵 전문 기자라고. 사실 저는 잘 나가는 신문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뭐 국회의원 비리 한 번 잘못 건드렸다가 실직자가 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후회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국회의원은 그대로 국회위원이라는 게 기분이 나쁘기는 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런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문사에 큰 광고를 물어주는 회사를 위해서 기사를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선배 왜요?”
“너 이런 기사 때문에 나 부른 거 알고 있었지?”
“그, 그게.”
‘퍽’
“서, 선배 왜 갑자기 정강이는 까고 그래요. 아프잖아요. 선배 언제나 말을 하지만 선배 힘은 장난이 아니라니까요.”
“아는 녀석이 이러냐? 내가 이런 더러운 기사 쓰기 싫어하는 거 알간 모르간? 하여간 이 새끼는 지 선배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도 모르고 있어. 이 따위 기사를 쓰라고 오는 거면 오지 말라고 해야지,”
“제,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정말 몰랐어?”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걸 보십시오. 하여간 후배라는 게 이 모양입니다. 선배의 자존심을 깨끗하게 짓밟는 기사를 쓰는 것은 못 말릴 망정, 선배에게 거짓말까지 하다니요. 정말 나쁜 놈입니다.
‘퍽’
“서, 선배.”
“닥쳐.”
저는 가방을 집어 들었습니다.
“나는 간다.”
“그, 그래도.”
“뭐?”
제가 홱하고 돌아서며 째려보자 후배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하여간 까불고 있습니다. 저를 무서워하면서 아무 말도 못하는 녀석이.
“그, 그럼 점심이나 하세요. 제가 살게요.”
“됐어.”
“그래도요.”
녀석이 후다닥 지 외투와 지갑을 들고 따라 나섭니다. 나 참 이 자식은 밸도 없는 건지, 지 선배가 항상 지를 구박을 하고 정강이를 까고 그러는데 항상 싱글거리면서 따라 붙습니다. 참 신기하기도 한 녀석입니다. 뭐 저야 나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때때로는 부담스럽다고 할까요?
“제대로 쏴라.”
“물론입니다.”
“자식이 입만 살아가지고.”
“가시죠.”
“그래.”
절뚝 거리면서 걷는 녀석을 보니 조금 미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뭐, 지가 잘못을 한 거니까 당연히 그런 일을 당하는 것도 싸다고 생각을 합니다.
“선배 정말로 다시 신문사에 들어올 생각이 없으세요?”
“몇 번을 말하냐?”
“그래도요.”
“됐다. 일 없다.”
사실 몇 번이나 신문사로부터 도로 들어오라는 말을 듣기는 했었습니다. 뭐, 제 자랑 같아서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가 기사를 쓰는 솜씨는 꽤나 뛰어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취재 하지 않으려던 기사도 많이 쓰고 말이에요. 종군 기자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그것까지 했었으니 뭐 신문사에서는 예뻐라 할 만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신문사는 각각의 색이 너무 짙습니다. 저는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 신문은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써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신문사에서 몇 번이나 들어오라고 했는데 단 한 번도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들어가는 길로 저의 자유는 억압을 받는 거니까요. 겨우 몇 푼의 돈에 저를 팔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요 선배. 선배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다니까요.”
“왜 또 전쟁 터졌다냐?”
“선배!”
“됐다.”
저는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상쾌한 콜라 덕에 그나마 조금 기분이 좋습니다.
“몇 번을 말하냐? 나의 궁극적인 꿈은 이까짓 기자가 아니라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작가야. 나는 더 이상 기자 일에 얽매여서 살고 싶지 않다고 몇 자 쓰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자 일을 하면서, 글을 쓸 데 보다는 훨씬 더 많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책도 많이 읽고 있고. 나 이런 자유를 그까짓 돈과 바꿀 생각은 전혀, 절대로 없다. 알겠냐?”
“하지만 선배. 선배 역시 돈 필요하시잖아요.”
“없어.”
“선배.”
“건방진 소리 좀 작작해.”
제가 노려보자 후배가 다시 입을 다뭅니다.
“나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알았어요.”
후배가 볼을 부풀립니다.
“그래도 선배.”
“죽을래?”
“네.”
“그런데 선배는 결혼 언제 하세요?”
“뭐냐? 너도 무슨 조선시대 유교 사상에 젖어 있는 그런 멍청한 사내였던 거냐?”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때 되면 하겠지. 나 결혼에 그렇게 나를 속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아직 젊다는 거 잊고 있냐?”
“그렇죠. 저보다야 어리시죠.”
“그래.”
사실은 제가 하대를 하면서 후배라고 마구 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뭐 겨우 한 살입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저보다 대학교 후배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도 꽤나 쳐주는 고려대학교를 나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학교는 선후배 관계가 꽤나 엄격한 편입니다. 그 때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그래도 하루이틀 하대하든 것이 아닌데, 쉽게 말 버릇이 고쳐질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뭐 녀석도 전혀 이 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그러는 너는 결혼 안 하냐?”
“선배가 하셔야 하지요.”
“지랄.”
“그 놈의 욕 좀 그만 하세요. 그렇게 욕을 많이 하니까 남자가 안 꼬이죠.”
“어쭈?”
“오늘 빼빼로도 하나 못 받으셨죠?”
“빼빼로?”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조카인 아라가 빼빼로 사게 돈을 달라고 하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오늘 이 빼빼로 데이 였군요. 뭐, 빼빼로 데이가 별 것입니까. 어린 녀석들이 그냥 유난을 떠는 것이지요.
“그런 거 받아서 뭐 하냐?”
“나 참.”
후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아무리 나보다 나이는 많다고 하더라도 나보다 후배인 녀석이 나를 너무나도 만만하게 봅니다. 하여간 녀석은 여자라고 저를 무시하는 게 분명하다니까요.
“같이 가요.”
“어디?”
“편의점이요.”
“편의점을 왜?”
“따라 와요.”
“어라?”
“어서요!”
“얌마!”
결국 후배에게 이끌려서 편의점으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후배는 저를 편의점으로 끌고 들어오더니 이것저것을 막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빼빼로 몇 개를 사더니 계산을 해서 저에게 들려줍니다.
“여기요.”
“이게 뭐냐?”
“눈까지 멀었습니까?”
“이 자식이.”
“뺴빼로에요.”
아니 지금 누가 빼빼로라는 걸 몰라서 묻는 겁니까? 이 녀석이 저에게 빼뺴로를 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빼뺴로를 주니까 묻는 것이지요. 지랑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 사이라고 빼빼로를 준답니까?
“그러니까 이걸 왜 나를 주냐고?”
“그냥 받아요.”
“이유를 알아야 받지.”
“나 참.”
후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저를 바라봅니다. 이 자식이 도대체 왜 이렇게 개기는 것일까요? 정말 사람 성질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인지 녀석이 건방져도 장난 아니게 건방집니다.
“그냥 받아요. 이유 알 필요 없으니까.”
“뭐?”
“좋아해요.”
“!”
지, 지금 저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 그러니까 지금. 그러니까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좋아한다고요. 선배를 좋아해요. 무지하게 좋아하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제가 선배를 좋아하는 눈치를 무지하게 줬는데 아직까지도 눈치를 못 채다니 선배도 장난 아닌 눈치 0단이십니다.”
“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나, 나를 좋아하다니? 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고. 나를 왜?”
“네?”
“나 참. 너도 35살 먹도록 아무도 꼬이지 않으니까 살짝 정신줄 놨구나. 네가 이렇게 나에게까지 고백을 하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퇴물 취급을 받아도 너랑은 안 사귄다. 미쳤냐? 내가 너랑 사귀게.”
“선배.”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나 단 한 번도 너 남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어. 나는 너 항상 내 후배로 생각했었다고. 그런데 갑작스러운 고백이라니 이거 좀 웃긴 거 아니냐? 고백을 하려면 진작 하던가 10년 넘게 알다가 이제서야 고백을 하는 거 뭔데?”
“항상 선배에게는 애인이 있었잖아요.”
“뭐?”
“저는 단 한번도 애인이 있었던 적이 없어요.”
“!”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녀석의 여성에 대한 취향이 조금 독특해서 안 생긴 걸 줄 알았는데 말이죠. 설마, 설마 정말 그 동안 저를 쭉 좋아하고 있어서 여자가 없었던 걸까요. 잠깐 이건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정말,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지, 진짜 이건 아닙니다.
“눈치 하나도 없는 선배는 여태까지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 하나도 몰랐었죠? 선배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말이에요. 나는 쭉 선배를 좋아했었어요. 선배가 단 한 번도 나를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나는 한 순간도 선배를 여자로 보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그냥 선배 옆에서 선배를 보는 게 너무나도 좋았거든요. 선배에게 욕심이 생기지 않았어요. 당연히 선배는 내 여자가 될 테니까, 알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선배에게 애인이 많이 생겨도 선배의 성질머리를 감당할 남자는 없다는 걸 말이에요.”
“죽을래?”
“킥.”
녀석이 작게 미소를 짓습니다. 도대체 이거 장난을 치는 것인지 진심으로 말을 하는 것인 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혼란 스럽죠?”
“뭐?”
“진심인 지 아닌 지 말이에요.”
나 참 귀신이 따로 없습니다.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까지도 이렇게 알 정도니 말입니다.
“그래 무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냐? 나를 좋아하다니? 말이 돼?”
“네.”
“하. 웃기지 마. 나는 네 선배야. 네 대학 선배. 너 지금 선배랑 사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해?”
“말이 안 될 건 뭡니까?”
“뭐?”
“좋아합니다.”
“!”
나 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옵니다. 기껏 후배 놈에게 고백을 받고자 여지껏 싱글로 지내온 것은 아닌데 말이죠.
“됐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떻든 간에 나는 너 후배 이상으로도 후배 이하로도 생각 안 하거든 그러니까 접어라.”
“
“너!”
한 마디 하려고 녀석의 눈을 봤는데 무지하게 진지합니다.
“
“그런데?”
“장난 치지 마. 장난 아니야.”
녀석의 눈이 진지합니다.
“사랑해. 사랑한다고. 너라는 애 정말 지켜주고 싶었어. 네가 나를 선배와 후배 사이로 선을 긋고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했을 때 너무나도 아팠어. 너무나도 슬펐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게 내 운명이니까. 그게 어쩔 수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더 이상 내 마음을 숨기지는 않겠어. 더 이상 숨기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어. 너무 오랫 동안 숨겨 왔어.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거야.”
“그만해.”
“
“됐어.”
더 이상 이런 소리 들을 필요 없습니다.
“우리 한 두 살 먹은 어린 아이 아니야. 여태까지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 갑자기 애인이 되는 것도 웃길 뿐더러 그러고 싶지 않아.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 해 보자. 너는 나랑 섹스를 할 수 있겠냐?”
“물론?”
“나를 보면 선다고?”
“만져 볼래.”
“됐어.”
기가 막힙니다. 저를 보면서 서다니요. 녀석의 뇌하수체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 A컵이야. 그리고 성격도 괄괄하고 완전 천방지축 마골피야. 남자랑도 체위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남자랑 술도 진탕 마셔. 동거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순결도 지키지 않았어. 나에게 처녀막이라는 게 사라진지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야.”
“상관 없어.”
“거짓말 하지 마.”
저는 녀석의 눈을 바라봤습니다.
“섹스? 웃기지 마. 정말 네가 나를 안을 수 있다고? 하.”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저랑 어떻게 섹스를 합니까?
“너 지금 오기야. 오기라고.”
“아니.”
“너 그리고 자꾸 반말 할래?”
“지금 네가 내 선배라고 생각해?”
“뭐?”
“여긴 학교가 아니야.”
“!”
건방져도 너무 건방진 녀석입니다.
“아무리 학교가 아니라고 해도 한 번 선배라는 게 변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냐? 우리는 변하지 않아. 우리가 선후배 사이라는 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변해. 아니, 애초부터 그런 간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였어. 너랑 나는 그저 남자랑 여자일 뿐이야.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거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거야. 여기에 학번이 무슨 상관이야? 여기어 선후배가 무슨 문제가 되는 거냐고?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가 중요한 거 아니야?”
“나는 네가 아무렇지도 않아.”
“
“
정말 머리가 지끈 거립니다. 저를 얼마나 만만하게 생각했을까요?
“내가 만만하냐?”
“그래.”
“하.”
정말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을 선배와 후배 사이로 살아왔던 저희 둘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런 고백이라니요? 그리고 여태까지 잘 지내다가 이제 갑자기 더 이상 후배로만 보지 말라니요? 그래요. 인정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나이 그 이상의 것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저는 이 녀석보다 선배이고, 이 사실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이 사실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던 녀석이 왜 갑자기 불만을 가지고 이러는 것인지, 머리가 다 지끈거리려고 합니다.
“더 이상 장난하지 마. 나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야.”
“
“내 이름 마음대로 부르지 마!”
저는 녀석을 노려보았습니다. 아무리 내가 여자이고 지보다 어려 보인다고 해서 이렇게 무시를 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나 장난치는 거 아니야. 나 지금 무지하게 불쾌해. 나는 네 선배고 이건 변하지 않아. 아무리 지금 네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선후배 사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너를 절대로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아. 정말 불쾌하다. 됐어. 이제.”
저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이런 자리에 있어봤자 기분만 불쾌해질 뿐입니다.
“나 좋은 후배 하나 잃었다고 생각한다.”
“
“정말 너는 좋은 후배라고 생각했었거든? 내게 정말 힘이 되주는 후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아닌 거 같다. 네 말대로 네가 나를 여자로 생각을 하고 잘 해줬던 거라면, 정말 네가 나를 선배로 생각하고 잘 대해준 게 아니잖아? 너 정말 웃긴 놈이다. 그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왜 이제야 이런 말을 하는 건데? 아, 내가 이제 너 못지 않게 30대 후반의 노땅이 되니까 불쌍해 보이디? 웃기지 마. 나
“무시한 거 아니야.”
“그러면!”
“나 여태까지
“네가 뭔데 나의 신념에 왈가왈부야?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야. 네가 관여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
“그래 진심이야.”
“웃기지 마. 그게 어떻게.”
“네가 뭔데 나에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는 기자가 싫어! 정말로 싫어. 이런 직업 싫어!”
“
“그래!”
너무 화가 납니다. 지가 뭔데, 지가 뭔데 남의 진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누군들 기자라는 직업이 하기 싫은 줄 아십니까? 저는 기자라는 직업을 정말 좋아합니다. 자부심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에 종사하기 전에는 기자라는 직업이 너무나도 낭만적으로 보였었습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을 밝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게 바로 기자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자가 되니 기자들이 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진실을 가지고 온다고 하더라도, 그 기사 내용이 신문사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거나 너무 높은 사람들의 진실이라면 그 기사는 신문에 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발로 뛰어 다니며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면서 써내려간 기사가 데스크에서 퇴짜를 맞는 것이 한 두 번, 아니 수십 번 수백 번이었습니다. 더 이상 기자라는 직업에 자부심은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기자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자를 하라고요? 못 합니다. 물론 기자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아무리 비리가 많고 어둡다고 해도 나름대로의 기쁨도 지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기자라는 직업을 하기에 나는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런 야생 속의 내버려지고 상처 투성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 갈래. 더 이상 너라 이야기를 해봤자 머리만 아프겠다.”
“가지 마.”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녀석이 저의 팔을 잡습니다.
“이거 안 놔?”
“
“!”
무, 무슨 짓거리죠? 감히 가겠다는 선배를 붙잡다니요.
“분명히 네가 네 입으로 말을 했지, 좋은 후배 하나 잃어 버린 셈 친다고. 그래 그렇게 해. 그러면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선후배 사이가 아니니까. 이제 우리는 그저 남자와 여자 사이일 뿐이니까.”
“장난 치지 마. 장난 할 기분 아니야.”
“몇 번을 말을 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진심?”
지금 저보고 저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정말 착각도 유분수입니다.
“내가 바보야?”
“그래.”
“뭐?”
“너 바보야.”
“하.”
이제는 선배에게 바보라는 말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니 정말 끝장 다 본 거 같습니다.
“놔! 갈 거야.”
“
“!”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알싸한 알코올의 향기가 입에 가득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역겹지 않고 뜨끈하고 들큰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입 속에서는 말캉한 무엇이 돌아다니는데 서서히 몸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의식이 몽롱해지려는 순간, 지, 지금 이게 무엇을 하는 짓인지!
‘퍽’
“으앗!”
여자 치고는 조금 센 저의 힘에 밀려난 녀석이 뒤로 주저 앉았습니다.
“왜 때려?”
“미, 미쳤어.”
“뭐가 미쳐?”
“미친 놈.”
저는 미친 듯이 제 입술을 문질렀습니다.
“지, 지금 네가 내게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키스.”
“개 자식.”
“왜 욕은 하고 그래?”
“도,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야?”
“좋아해.”
지, 지금 이 녀석이 뭐라고 말을 한 걸까요? 좋아한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저를 왜 좋아합니까? 제, 제가 뭐라고 저를 좋아합니까?
“나는 너를 후배 이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어.”
“
“하, 하지만. 나는 너를 남자로 원하지 않아.”
“
“단 한 번도 나는 너를 남자로 생각한 적이 없어.”
“이제라도 생각해.”
지금 이게 말이 됩니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단순히 선후배 사이로 지내왔는데 이제 남자와 여자로 지내자고요?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세상 그 누구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못 해. 아니 안 해. 오늘은 그냥 잊자.”
“
“선배라고 불러.”
저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물러터진 바보처럼 굴었다가는 앞으로도 저 녀석이 저에게 개기면서 함부로 굴 것이 눈에 뻔하니 보이니까요.
“더 이상은 나에 대해서 이상한 마음 품지 마. 아무리 네가 그렇게 발버둥 친다고 해도 나는 변하지 않으니까.”
“너도 떨렸잖아.”
“!”
순간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사실, 이 녀석과의 키스에 조금 설렜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귀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여지껏 단 한 번도 남자로 보지 않은 녀석과 단지 한 번의 키스 때문에 사랑에 빠져서 물고 빨고 하는 건 제 취향이 아닙니다.
“이 정도 쿨한 거 아니야? 우리 나이가 몇인데? 겨우 키스 하나에 서로 사랑하고 연인이 되고 그러기를 바라는 거야?”
저는 코웃음을 치며 녀석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설레지 않았어?”
“설레? 그래 설레어.”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설렌다고 해도 변할 건 없어. 우리는 그저 선후배 사이일 뿐이니까. 나는 여태까지 선후배 사이로 있던 우리 사이를 굳이 남녀간의 사이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여태까지 잘 지내 왔으면서 갑자기 왜 어색하게 지내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그 마음을 접을 수 없다면 나는 다시는 널 볼 필요는 없을 거 같아.”
“
“선배.”
저는 녀석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네가 나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는 잘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을 거야. 그리고 너 더 이상 건방지게 내가 기사를 맡는 지 안 맡는 지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지 마. 모든 건 다 내 일이고, 다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더 이상 너의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어.”
“하지만.”
“아니.”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애초에 더 이상 기자 일을 한다고 발발 거리는 게 더 웃긴 일이었어.”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더 이상 기자 일 하지 않아. 쓸 데 없이 기자를 하지 않는다고 말을 해 놓고서 계속 이 판을 나다니니, 너 같은 녀석이 이렇게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는 거겠지. 나 기자라는 직업에 더 이상 흥미가 없어. 회의만 남을 뿐이야. 더 이상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관여 하지 마.”
“싫어.”
“뭐?”
“싫다고.”
나 참 기가 막힙니다. 내 삶을 내가 살겠다는데, 그래서 관여를 하지 말라는데 그게 싫다니요?
“내 삶이야.”
“널 지킬 거야.”
“마음대로 해.”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난 갈 거야.”
“기다릴 거야.”
“안 와.”
“언제까지라도.”
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
“가지 않아!”
“기다린다고.”
살짝 고개를 돌렸는데, 정말 그 자리에 있습니다. 머리가 지끈 거립니다.
'☆ 소설 > 단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 소설] 거울 속 킬러 (0) | 2010.01.01 |
---|---|
그녀들이 떴다! Episode.1 [빼빼로 데이] - [17살의 빼빼로 데이] (0) | 2008.11.13 |
그녀들이 떴다! Episode.1 [빼빼로 데이] - [44살의 빼빼로 데이] (0) | 2008.11.11 |
그녀들이 떴다! Episode.1 [빼빼로 데이] - [70살의 빼빼로 데이] (0) | 2008.11.10 |
그녀들이 떴다! Episdoe.1 [빼빼로 데이] - [예고] (0) | 2008.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