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떴다! Episode. 1 - 빼빼로 데이
첫 번째 이야기
70살의 빼빼로 데이.
거울 속의 나도 참 많이 늙었습니다. 일흔 살,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요. 얼굴의 주름이 이제는 익숙할 따름입니다.
“엄마 일어났어요?”
“그래.”
우리 딸애의 목소리입니다. 우리 딸애에게는 참 미안한 것 투성이입니다. 물려줄 것이 없어서 과부 팔자를 물려주고 말았거든요. 막내를 임신했을 때 그 사람은 교통 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제 딸애도 저를 닮은 모양인 지 제 자식을 가지고 두 달 만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여즉 혼자 지내고 있지요. 아이고, 이것 좀 보세요. 나이가 들면 주책만 늘고 이상한 소리만 하는 게 늘어난다니까요. 이렇게 우울하고 재미없는 이유를 내가 왜 하고 있는 거담,
“엄마, 어서 내려오세요. 아침 드셔야죠.”
“그래 내려가마.”
우리 딸애가 재촉을 하니 어서 내려가야겠습니다. 뭐 이제 꽤나 시장하기도 하고 말이죠.
“엄마 용돈 좀.”
내려가자 마자 들리는 것은 저의 손녀 아라의 목소리입니다. 꽤나 귀엽게 생긴 손녀이지요?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아라는 솔직히 남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을 만큼 괜찮은 아이입니다. 요즘 아이답지 않게 어른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아이지요. 다른 집 아이들은 할머니를 무시하고 아는 척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는데 아라는 다른 아이지요.
“이번 달 용돈 벌써 줬잖니?”
우리 딸은 꽤나 깐깐한 편입니다. 그래도 제 딸에게까지 저렇게 깐깐한 표정을 지으며 돈을 주지 않으려고 하다니, 저를 보고 배웠다고요? 이런, 저는 절대로 저렇게 기르지 않았습니다. 자랑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이 그래도 꽤나 살았다우, 그래서 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으면서 이상하게 제 딸에게만큼은 하고픈 것을 다 못하게 한답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뭐 저번에 물어보니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런 다고 말은 하다만, 솔직히 말해서 지 아비 닮아서 자린고비에다가 수전노인 탓이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마.”
아라가 특유의 귀여운 눈웃음을 치면서 딸애에게 매달립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저렇게 우리 손녀의 필살기라고 말을 하는 눈웃음까지 치는 것일까요? 조금은 궁금해지는 군요?
“얘, 아라가 왜 저렇게 용돈을 달라고 조르는 게냐?”
“그게요. 엄마.”
연자가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이럴 때보면 연자 얘는 지 아버지를 쏙 빼 닮았습니다.
“내일이 빼빼로 데이라고 이러잖아요.”
“빼빼로 데이?”
저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빼빼로 데이라니, 정말 요즘에는 무슨 데이니, 뭐시기 데이니 거시기 데이니 한다고는 했는데, 뻬빼로 데이라는 말까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구식 할머니로 보지는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휴대전화로 문자도 칠 줄 알고,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면서 까르르 웃을 줄도 알고, 슈퍼주니어가 몇 명인지도 다 알고 있는 신세대랍니다.
“빼빼로 데이 그게 뭐 하는 날이냐?”
궁금한 것은 직접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지요. 저는 제 딸애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것도 몰라요?”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우리 딸 애의 대답이 아니라, 손녀인 아라의 대답이었습니다. 아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저를 바라보는 군요. 이거 빼빼로 데이라는 것은 꼭 알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할머니 신세대 할머니라면서요. 그런데도 빼빼로 데이가 뭔지도 모르세요? 빼빼로 데이 되게 유명한 건데. 할머니도 빼빼로가 뭔지는 알고 계시죠?”
“그럼.”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솔직히 기억에 자신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녀가 몇 번 보여준 기억이 있거든요. 저는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 과자나 사탕 같은 것들을 잘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에 상표에 대해서는 조금 약하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 초콜릿이 발라져 있는 막대 과자 아니냐?”
저는 조심스럽게 아라의 눈치를 보며 물었습니다.
“네 그거 맞아요. 그리고 빼빼로 데이에는 그 빼빼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면 되는 거예요.”
다행히 맞았습니다. 틀리면 또 구식 할머니 소리를 들을 뻔 했는데 참 다행입니다. 그런데 과자 나부랭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거라고요? 나 참 별 거지 발싸개 같은 풍습도 다 있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니까요.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소중하게 쓴 편지 같은 것들을 주고 받으면 족할 것이지 그 몸에도 좋지 않은 과자를 왜 주고 받는답니까?
“그런 과자 나부랭이를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거냐?”
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제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흐음.”
아라가 잠시 검지를 물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군요. 또 제 할미를 놀릴 생각을 하니 흐뭇해서 견딜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할머니 옆 집 박 씨 할아버지 좋아하시잖아요.”
“무, 무슨 말이냐?”
아, 아닙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서로 애처로와 하며, 몇 번 차를 마시기는 했지만 좋아하는 사이라니요. 그냥 서로 보면 미소를 짓고 담소를 나누는 그런 사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연모를 하는 사이라니요.
“할머니 놀리지 말아라.”
연자가 아라를 가볍게 흘겨보자 아라가 어깨를 으쓱하는 군요. 이럴 때는 제 딸이지만 참 고맙습니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제가 원하는 것을 대신 해줄 줄 알고 있으니까요.
“할머니를 놀린 게 아니라고요.”
아라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매는 군요. 학교에 갈 시간이 다 된 모양입니다.
“진짜에요.”
“흐음.”
연자가 다시 한 번 눈을 치켜 뜨자 아라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현관으로 향합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할머니 다녀올게요.”
“그러렴.”
아라가 베이지 색 컨버스 뒤축을 대충 꾸겨서 신습니다. 신발을 꾸겨 신으면 좋지 않다고 그렇게 누누이 말하는데 여전히 바뀌기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쾅’
“문 좀 살살 닫고 다니라니까.”
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허리에 손을 척 하고 올립니다. 하지만 지금 화를 내서 무얼 합니까? 이미 아라는 집을 나서고 없는 걸요.
“엄마, 국 좀 더 드실래요?”
연자가 제 국 그릇을 한 번 흘깃 쳐다보더니 묻습니다. 제 딸 아이의 자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딸 아이의 요리 솜씨는 꽤나 훌륭한 편입니다. 그래서 제 딸 아이가 요리를 하면 항상 의사가 말하는 양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곤 합니다. 저는 요리를 굉장히 못 하는 편이고 제 아비도 요리의 요 자도 모르던 양반이었는데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솜씨를 물려 받은 건지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래도 도둑질과 같은 해로운 장기는 아니니 요긴하고 참 좋은 듯 합니다.
“많이 먹었어.”
“그래요?”
연자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자리에 앉습니다. 연자의 밥 그릇과 국 그릇을 대충 보니 아라의 등굣길을 봐주느라 밥을 한 수저도 먹지 못했습니다. 항상 말은 아라에게 엄하게 하지만 참 좋은 엄마라니까요.
“그런데 연주는 뭐 하느라 안 내려오고 있는 게냐?”
“몰라요.”
연주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는 연자입니다. 아, 연주가 누구냐고요? 이런, 나이가 들면 기억력도 많이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아까 제 딸인 연자의 소개를 하면서 저의 또 다른 딸인 연주의 이야기를 하지 않다니, 연주는 저의 또 다른 딸입니다. 프리랜서 기자이지요. 자기 말로는 회사에 다니지 않고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밖에 나가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든 딸을 바라보면 마음 한 구석이 묘하게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박봉이라고 하더라도 예전처럼 잡지사에 매일같이 출퇴근을 하면 참 좋을 텐데 연주는 그게 싫다며 항상 펄쩍 뜁니다. 뭐, 제 선택이니 다 큰 딸을 제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어미가 된 입장으로써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어제도 늦게 들어왔어.”
“그래?”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연주는 요즘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지 술을 먹는 날의 횟수가 늘고 있었습니다. 다 큰 딸 술 먹는 거까지 제가 간섭할 수 없는 입장이니 아직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술은 좀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다 큰 처자가 외박을 밥 먹듯이 하니 말입니다. 남자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어디서 외박을 하고 오는 것인지, 그래도 제 아비를 닮아서 건강 하나는 타고 난 것이 복이라면 복일 것입니다. 술을 그리 퍼붓는대도 불구하고 지난 달에 받은 건강 검진에서 간 수치가 전혀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연자는 그 결과를 보면서 분명 기계가 잘못 된 것이라면서 입을 삐죽거렸지만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아비를 닮아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요.
“그나저나 엄마.”
“응?”
연자의 표정이 조금은 이상합니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겼다는 표정인데 도대체 어디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일까요?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그러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것인지, 연자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 어려 있는 것이 마음에 거슬렸습니다만, 그래도 딸 아이가 궁금하다는데 대답을 해주어야겠지요.
“엄마 박 영감 님 좋아하시죠?”
“뭐?”
나 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다니, 아까도 말했다시피 박 영감과 저는 그냥 같이 늙어가는 좋은 동무일 뿐입니다.
“너도 참 망측하게시리 이상한 말을 하는 구나, 내가 그 사람을 왜 좋아하누, 우리는 그냥 같이 늙어가는 이웃집에 노인 친구일 뿐이야. 괜히 아라 따라서 이상하게 엮지 말아라. 나도 그렇고 그 사람도 불편해, 다른 사람들 이목이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 나이인데.”
“정말인 거죠?”
연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제 얼굴을 바라봅니다. 필경, 저와 박 영감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기를 바라는 눈치이기는 한데,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둘이 아무 사이가 없는데, 저렇게 바라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무리 바라봐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는 게지요.
“그래 입 하프게시리 몇 번을 시키누,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네, 알았어요.”
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이제 좀 조용히 아침 식사를 할 수가 있겠군요.
“하암.”
그렇게 평온한 아침이 시작되려는 순간 연자의 미간이 찌푸려집니다. 하품 소리를 들어 보니 제 소리도 아니고 연자의 소리도 아닌 것을 보니, 아마 아까 제가 말씀을 드렸던 저의 막내 딸 연주의 목소리인 모양입니다. 연자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만을 봐도 그 점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언니 라면 좀 있어?”
“너는 엄마한테 인사부터 드리지 않고.”
“네. 엄마.”
연자의 말을 들은 연주가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고 맙니다. 연자와 연주는 열 살 터울이 나는 자매입니다. 늘그막에 얻은 자식인데다가 제 아비를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어서 제가 워낙 금지옥엽 귀한 딸로 키운 터라 저를 가벼이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저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닌 막내 딸로써 어미를 어렵지 여기지 않고 편안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연자도 얼마나 효녀인지 모릅니다. 저 아이는, 아, 이 이야기는 아마도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을 듯 하니 지금은 일단 접어두지요.
“하여간.”
연자가 가볍게 연주를 노려보고는 턱짓으로 찬장을 가리킵니다.
“네가 좋아하는 오동통한 라면 넣어 놨다.”
“끓여줘.”
“너.”
연자가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물면서 연주를 바라봅니다. 연주는 항상 제 언니를 이기지 못하면서 항상 제 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곤 합니다. 아마 막내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뭐, 연자 쟤도 처음에는 화를 내는 편이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대하며 결국에는 연주가 해달라고 하는 것을 모두 해주니 좋은 언니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나저나 너 오늘은 일 안나가냐?”
“일은 무슨.”
연주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식탁에 앉습니다. 워낙 피부가 지성인 연주의 머리는 하루 감지 않아서 완전 떡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주는 그런 머리가 간지러운 지 연신 긁어댑니다. 다행히 연자는 못 본 모양입니다. 연자가 보았다면 분명 밥상 머리에서 무엇하는 짓이냐고 하면서 연주에게 한 마디 쏘아부쳤겠지요.
“그나저나 엄마.”
“왜 그러냐?”
연주가 젓가락 뒷편으로 머리를 긁으면서 저를 바라봅니다.
“엄마 옆 집 박 씨 할배랑 스캔들 터졌던데, 그거 정말이야?”
“뭐,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앞에서도 제가 말했다시피 저와 옆 집에 살고 있는 박영감은 단순히 친구 사이일 뿐입니다. 그이 역시 젊었을 적에 그이의 부인을 사별하였고, 저 역시 그러한 팔자가 기구하이 같아서 늘상 위로가 되고 함께 할 수 있는 늘그막에 얻은 그런 동무인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올곧게 보이지만은 않는 모양입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디? 이 애미가 그렇게 함부로 뉘를 사귈 사람으로 보이니?”
“아니, 그건 아닌데.”
연주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입니다.
“그냥 동네에 소문이 파다해서 말이야. 엄마도 잘 알고 있잖아. 이 동네, 소문 한 번 잘못 나면 옴팡 뒤집어 쓰고 난리 굿이라니까. 다들 엄마랑 박 영감 님을 주시하고 있다고, 정말로 엄마 말씀대로 두 사람이 아무런 문제가 없이 순수한 사이라면 그렇게 사람들의 소문이 나지 않게 주의하는 것도 좋을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나 참, 하여간 요즘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입에 담기 참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나 젊었을 적만 해도 마을에 아낙 한 둘이 이렇게 소문을 냈지만 요즘에는 그 보다 훨씬 심한 모양입니다.
“나는 절대로 그런 일 없으니, 앞으로 말 말아라.”
“아, 아니 아니면 아닌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
이런, 제가 제 마음에도 없게 화를 내고 만 모양입니다. 저 역시 조금 당황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소문을 아라와 연자, 그리고 연주에게까지 연속으로 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연주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미안해집니다.
“네가 쉰 소리를 하니까, 엄마도 역정을 내시는 게 아니니? 네가 바른 말만 해 봐. 엄마가 한 번 역정을 내시나?”
“그래, 언니 잘 났어.”
연주가 입을 삐쭉 내밀며 연자를 바라봅니다. 저렇게 토라질 때 입을 내미는 모양이 꼭 제 아비를 닮았답니다. 연자와 연주의 아버지였던, 아, 그러니까 저의 남편이었던 그 사람은 저보다 딱 두 살이 어렸습니다. 그래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집에 우로는 온통 누님들 밖에 없어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서도, 그 사람은 나를 참 잘 따라주었습니다. 제 기분이 좋으면 누님, 누나, 누이라 부르며 재롱을 부렸었고, 제 기분이 좋지 않았을 때는 토라져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상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저이가 토라졌으니 내가 부인으로써 위로를 해야겠다라는 그런 안 사람으로써의 다짐이 아닌, 그저 어린 막내 동생이 볼이 퉁퉁 부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따름이었습니다. 그 시절 그이의 퉁퉁 부어 있던 표정을 연주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을 보니 참 신기한 기분이 듭니다.
“그만 퉁퉁 부어 있고 라면이나 먹어.”
연자도 미안했는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연주의 앞에 얌전히 라면을 내려 놓습니다. 허나, 연주는 이미 단단히 골이 난 모양인지 제 언니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라면을 열심히 먹어 댑니다. 연자는 그런 연주의 모습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제 자리에 앉습니다.
“아, 엄마.”
“응?”
때마침 생각이 난 것이 있다는 듯 말을 꺼내는 연자 때문에 저는 다시 밥을 먹으려던 손길을 멈추었습니다.
“이번에 나랑 같이 문화 센터 안 다닐래?”
“문화센터?”
문화센터가 뭐였더라? 아 동네 아녀자들이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요란을 피우는 바로 그 것이 바로 문화센터인 모양이었습니다.
“그거 있잖아. 사람들이 막 배우러 다니는 거.”
잔뜩 골이 나 있는 연주의 말을 들으니 저의 기억에 더욱 확신이 세워졌습니다.
“됐다. 이 나이에 무얼 배워서 뭐하누. 어디에 써 먹을 때도 없고 말이야.”
“어머?”
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봅니다.
“엄마, 엄마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돼지. 나에게 항상 엄마가 하는 말이 뭐야? 사람은 늙어서도 배워야 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끝없이 배우고 또 배우는 게 바로 인간이고 사람의 길이다. 엄마 늘상 내게 그러지 않았어?”
아, 생각을 해 보니 그랬습니다. 연주가 워낙 놀기만 좋아하고 공부는 잘 하지 않는 아이라 항상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바로 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제가 연주에게 할 때는 아직 제가 예순도 되지 않았을 아직은 할머니 소리를 듣기에 이른 나이였을 때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저도 이것저것을 배우고 싶었으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었습니다. 그 사실이 후회가 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무언가를 배우지는 않을 듯 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기에도 빠듯한 살림살이를 제가 다 아는데 감히 무얼 배운다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암요. 그리고 지금 이 나이에 무엇을 배운다는 건 참 웃긴 일일게 분명합니다. 무려 나이가 일흔을 먹었습니다.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엄마 나이 때문에 그러지?”
“응?”
이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난 나머지 연자에게 제 의중을 모두 읽혀 버렸습니다.
“엄마, 엄마보다 나이 더 많은 사람들도 온대. 그러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배우러 가요.”
“그래, 엄마.”
연자의 말에 연주마저 말을 보탭니다. 저보다 나이를 많이 먹은 양반들도 간다니, 정말 배움에는 나이가 없는 것일까요?
“그래도 조금 주책이지 않을까? 엄마도 이제 일흔인데, 나이가 꽤나 먹었잖니? 아무리 나이 많은 양반들이 온대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양반들이 올까 봐.”
“어머, 엄마 너무 모르는 구나.”
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저를 바라봅니다.
“요즘에는 엄마보다 한참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고 하던데? 지난 번에 다른 기자가 다룬 기사를 보니까 80살이 넘은 고령인데도 아직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할머니가 나온 적이 있어. 그 할머니를 보면서 우리 엄마도 이렇게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계속 무언가를 배우시면서 새로운 것을 도전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걸? 그러니까 엄마도 너무 부담 느끼지 마. 엄마도 거기 가면 아직 어린 축에 들 걸?”
“그래요. 엄마, 연주도 그러고, 나도 혼자서 문화 센터 같은데 다니기 적적해서 그래, 엄마랑 같이 다니면서, 엄마랑 같이 맛있는 것도 사먹고, 그러고 싶은데 어때요? 엄마 그리고 요리도 엄청 잘 하잖아. 그까짓 제과 정도야 엄마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닐 걸?”
그럴 까요? 사실 저 역시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만, 주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까봐 단 한 번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두 딸 아이가 문화 센터에 다니라고 권한다면 저 역시 굉장히 다녀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저 혼자서 그런 곳을 다니라고 하는 것이 아닌 본인도 함께 다니겠다고 하니까 더욱 더 마음이 든든하고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 딸이 함께 하겠다고 하는 것이니 배워 볼까요?
“정말 연자 너도 같이 듣는 거지?”
“그럼요.”
연자가 밝게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바라봅니다.
“너랑 같이 들으면 됐다. 같이 들으마. 그런데 제과가 정확히 무얼 하는 거냐?”
“에? 엄마는 그런 것도 몰라?”
연주가 저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눈빛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잠시만 그러니까 아, 제과를 잠시 잊어 버렸었습니다.
“미안하다. 과자를 만드는 거구나.”
“네.”
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를 가볍게 흘겨 봅니다. 저럴 필요는 없는데 괜히 연주에게 미안해 집니다.
“그럼 그건 언제부터 배우는 거냐?”
“사실은 엄마.”
연자가 머뭇거리면서 저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머뭇거리는 걸까요?
“이미 엄마랑 나 제과 수업 듣는 거 내가 신청 했어요. 엄마가 안 하겠다고 하면 큰일이다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엄마가 하겠다고 해줘서 나 정말 안심이에요. 제과는 오늘부터 배우면 되는 거거든요.”
“오, 오늘?”
“네.”
연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무리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다짐을 했어도 다짐을 한 그 날부터 단 한 번도 배우지 못했었던 것을 배운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참 연자는 저를 많이 닮았습니다. 미리 무언가를 계획 세워서 하기 보다는, 갑자기 무언가를 하고 나서 나중에 그 결과를 말하는 것이 말이죠. 그 것 때문에 그 사람과 나 역시도 꽤나 많이 싸웠는데, 나 참 늙으면 역시 주책인가 봅니다. 자꾸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니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좀 급하지 않니?”
“급하긴.”
연주가 연자를 거들며 제게 말을 건넵니다.
“언니도 얼마나 엄마랑 무언가를 배우러 가고 싶었으면 그랬겠어요? 엄마 그냥 가요. 언니랑 그 동안 엄마 모르게 말 많이 했었는데, 언니 이것저것 많이 배우러 다니고 싶었대요. 그런데 엄마 혼자 집에 있으면 적적하실까 못 했다는데, 그냥 엄마가 모른 척 하고 가요.”
“얘, 얘는.”
연자가 얼굴이 붉어지며 연주를 흘겨보는 것을 보니 정말 그런 모양입니다. 저도 참 주책입니다. 나이가 다 들은 할망구가 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막게 되다니요.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 때문에 연자가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전부 다 할 수 없었다니 굉장히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면 가자꾸나. 사실 나도 집에만 있어서 좀이 쑤시던 지경이야.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교류를 하면 이런 기분이 좀 나아질 지 모르겠구나.”
“정말이요?”
“그래.”
연자의 밝은 미소를 보니 그렇게 말을 해주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 연자야.”
“네?”
이런 낭패입니다. 연자의 말을 듣고 저와 비슷한 또래의 노인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왔었는데, 지금 연자와 함께 온 문화 센터에는 온통 젊은 사람들 뿐입니다. 제가 이 중에 늙은 축에 끼는 것은 물론, 아직 40초반인 연자마저도 나이가 든 축에 끼는 듯 보입니다. 이런 곳에 따라오다니 저도 참 주책입니다.
“여기는 죄 온통 사람들 뿐이잖니? 엄마가 여기에 있을 자리는 아닌 거 같다. 저 사람들 눈에 얼마나 주책스럽게 보이겠어. 다 늙어서 그냥 집에서 쉴 것이지라면서 말이야.”
“어, 엄마 왜 그러셔요?”
몸을 돌려 강의실을 나서려는 저의 팔을 연자가 잡아 끕니다.
“이왕지사 엄마도 배우러 오신 거 그냥 배우셔요. 엄마가 그랬잖아요. 배우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가 불편한 것도 불편한 것이고 저 치들도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왠 할머니가 하나 끼어 들어서 말입니다. 저들에게도 불편을 주고 저 역시 마음이 탐탁치 않은 일입니다.
“그냥 엄마는 배우지 않을련다. 아까는 배우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을 해 보니, 별로 배우지 않고 싶구나. 집에서 그냥 편히 혼자 쉬면 되니까, 정 배우고 싶으면 너는 혼자서 배워. 엄마는 신경 쓰지 말고.”
“자, 잠깐 엄마. 그러면, 그러면 오늘 하루만 수업을 들어 보세요.”
“응?”
“다음부터는 같이 들으러 오자는 이야기 안 할게요.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나랑 같이 들으셔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엄마 수업 안 듣고 가면 괜히 헛걸음 하신 거잖아요. 조금 있다가 저랑 점심 맛있는 거 잡숫고, 그리고 다음부터는 안 오시면 되는 거잖아요.”
“흐음.”
그럴까요? 연자의 눈을 보니 정말 혼자서 무언가를 배우기를 원하는 눈치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 그러면 오늘만 듣고, 다음부터는 너 혼자서 다녀. 알았어?”
“네.”
연자가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를 합니다.
“자, 이제 오븐에 넣었으니까 잠시만 기다리시면 되요.”
“휴.”
저는 진땀을 닦으며 의자에 앉았습니다. 뭔 놈의 과자 나부랭이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요. 빼빼로라는 막대 과자를 만든다고 하여서, 조금 신기하게 참여를 하였는데, 참 힘이 듭니다. 맨 처음 강사의 말을 들을 때는 그냥 쉽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 어렵습니다.
“엄마 어때요?”
“뭐가?”
“재미 있죠?”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몸이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연자의 미소를 보니 제가 즐거웠다는 말을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애미 된 입장으로 딸 아이가 미소를 지으면서 좋다고 하는데 싫다고 딱 잘라서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난감합니다.
“어머니.”
“예, 강사님.”
그렇게 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강사가 제게로 다가옵니다. 고등학교를 조리 과학고에서 나왔다는 이 강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쉬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이런 곳에서 강사 일을 한다고 합니다.
“오늘 어떠셨어요? 과자를 만든다는 거 별로 어렵지는 않으셨죠?”
“글쎄요.”
저는 강사와 연자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나이가 좀 많아서 이런 일이 젊은 사람들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고되고 힘이 드네요.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에요. 계량 컵이라는 거 사용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솔직히 제가 하기에는 그렇게 쉬운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안 오실 거에요?”
제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강사가 서운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런, 연자의 얼굴을 보니 연자 역시 굉장히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 주가 되어봐야 조금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거 같아요.”
“그러세요. 그러면 집에 가서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 보세요.”
“네.”
강사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오븐 쪽으로 걸어 갑니다.
“엄마, 정말로 이거 배우기 싫어요?”
“배우기 싫은 건 아니고.”
연자의 얼굴이 저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힘들다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이가 있잖니? 저런 일이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쉽게 느껴지겠지만, 이상하게 나는 꽤나 힘들다.”
“힘들긴.”
연자가 입을 삐죽 거립니다.
“아무튼, 그래도 오늘은 같이 해줘서 고마워요.”
“그래.”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한 숨을 돌리려고 하는데, 강사가 다시 우리들을 부릅니다. 아까 오븐기라는 곳에 넣은 과자가 모두 다 구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자와 함께 그 오븐 앞으로 가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새하얀 밀가루와 샛노란 개란, 누리끼리한 빠다만 넣었을 뿐인데 이렇게 맛있게 생긴 막대 과자가 생긴 건지, 참 오묘하고 신기합니다. 우리나라 음식들이 넣은 것 그대로의 모양을 지키고 있다면 이건 좀 다르게 생겼습니다.
“자 이제 초콜릿을 발라 볼까요? 각자 20개씩 챙겨가세요.”
사람들이 오븐 주위로 와락 달라들기에, 저와 연자는 멀찍이 서서 그치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치들이 다 고르고 나서 조금 덜 예쁜 것으로 해도 충분히 맛있는 과자가 만들어 져 있겠지요.
“어머니.”
그렇게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강사가 저를 부릅니다.
“여기 어머니랑, 연자 씨 꺼 40개 미리 놔 뒀어요.”
“이런.”
참 마음 씀씀이도 예쁜 사람입니다.
“꼭 예쁘게 완성하셔서 좋아하는 사람 가져다 드리세요.”
“아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냥 대답을 하니 연자가 저를 이상한 눈길로 봅니다. 물론 이 과자를 옆 집 박 씨에게 줄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단지 그이와 저는 함께 늙어가는 사이일 뿐이니까요.
“어머니, 초콜릿 뜨거우실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네.”
연자와 저의 앞에도 다른 수강생들과 마찬가지로 길쭉한 스댕 통이 주어졌습니다. 저희가 직접 만들어서 구운 막대 과자를 집어 넣으니 그 생긴 모양이 꼭 우리가 수퍼에서 사다 먹는 그 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자 모두 다 만드셨나요?”
“예.”
수강생들이 모두 대답을 하고 강사는 우리들에게 하나씩 비닐 봉투를 나눠 주었습니다. 각자 그 속에 넣어서 예쁘게 포장을 하라고 하는데, 연자는 어느 새 저를 바라보지 않고 정말 자신만의 초콜릿 막대 과자를 열심히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연자의 눈치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었는데 아마도 좋은 사람이 생긴 모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자에게도 좋은 사람이 생긴다면 참 좋을 텐데, 저절로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어머니는 포장 다 하셨어요?”
“포장은요.”
저는 미소를 지으며 강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어차피 줄 사람도 마땅찮고 준다고 해도 박 영감을 줄 텐데, 일일이 포장을 해 봤자 어디다가 쓴답니까? 그 양반이 먹기도 편해야 할 텐데요. 그냥 이 대로 어디 신문지 같은 데다가 싸서 주면 될 것입니다.
“주세요.”
“괜찮아요.”
“아니에요.”
괜찮다고 말을 하는데도 이 강사는 부득부득 자기가 가지고 가더니 예쁘게 포장을 합니다. 머 그냥 신문지에 가져다 주는 것도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이렇게 주면 더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럴 필요까지는 었었는데 말이죠.
“여기 어머니 가져 가세요. 누구를 드릴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예쁘게 포장을 해 가시면 더 좋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이 강사는 리본도 꽤나 예쁘게 묶습니다.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리본의 모양이 예쁘게 생기고 그런 것은 참 마음에 듭니다.
“그럼 모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엄마 그 빼빼로 누구 줄 거에요?”
점심을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연자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누굴 주긴.”
저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연히 박 영감이지. 내가 그 양반 말고 누구 줄 사람이 있니? 서로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누가 이런 걸 챙겨주겠니? 그냥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그래야지.”
“네.”
어쩐 일인지 그냥 넘어가는 연자가 더 이상하게 보였지만, 뭐 좋게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길 연자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해 놓고는 저는 박 영감 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누구세요?”
“나예요.”
말이 끝나고 더 이상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더니 잠시 후 현관이 열리고 박 영감이 나옵니다.
“아이고, 송 씨가 어쩐 일이여?”
“오늘 우리 딸 애랑 무얼 배웠거든요. 그래서 내일이 젊은 애들이 서로 막대 과자를 주는 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막대 과자를 만들었는데, 때 마침 영감님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영감님 드리려고요.”
“고마우이.”
박 영감은 정말로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박 영감은 이렇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갈 때마다 참 좋아해서 고맙습니다.
“들어와서 무엇이라도 마시고 갈랑가? 내 아들 놈이 이번에 동경에 다녀 와서 좋은 차를 가지고 왔는디.”
“괜찮아요.”
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지금쯤 가더라도 연자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극들이 그려지고 있을 텐데요.
“그럼 영감님 들어가셔요. 저도 가볼게요.”
“그려요.”
박 영감이 다시 들어가고 저는 저희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후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겨우 그까짓 막대 과자 하나 다른 이에게 준 것인데 그 이가 좋아하는 것을 보니 참 뿌듯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기분이 단지 그것 하나만 드는 것이 아닙니다. 설마. 이, 이것은 아니겠지요. 아닐 겁니다. 그럴 리가 없지요. 제가 나이가 몇인데 말입니다. 아, 지금 제가 무슨 기분이 들기에 이런 말을 하냐는 거고요? 나 참 민망하기도 작이 없지요. 지금 드는 감정은 마치 제가 처음 시집을 갔을 때 그 감정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그 시절의 기억이 너무나도 오래 되어서 아직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단순히 저의 착각이겠지요?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봄 처녀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듯이 요동을 치는 것인지는 참 알다가도 모를 노릇입니다. 그래도 이런 기분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혼자만이 소중하게 가지고 있을 그런 기분이겠지요. 빼빼로. 별로 건강에는 좋을 것 같지 않다만, 그래도 다른 이들에게 미소를 줄 수 있다면 이런 날도 한 번쯤 있는 게 나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박 영감 역시 좋아하는 것을 보니 그냥 제과를 배우러 다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주 과자라도 가져다 주면 박 영감이 참 좋아하곘지요?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녀야 겠습니다.
“뭐, 제과도 그냥 다니지.”
저는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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