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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다. Season 7 - [열세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9. 4. 20:32

 

추억에 살다.

 

 

Season 7

 

열세 번째 이야기

 

 

 

우와, 떨린다.

 

신지가 설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비행기 처음 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너무나도 신기하고 너무나도 기분 좋게 느껴진다.

 

그러게요.

 

윤호도 미소를 지으면서, 신지의 말에 동의했다.

 

또 다른 나라로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되게 즐겁고 신이 나게 느껴지네요. 너무나도 설레요. 이탈리아로 처음 올 때 그 순간 보다 지금이 더 많이 설레는 것 같아요. 진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뭘 그렇게들 감상적이냐?

 

성현이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희 한국 가서 하루도 안 되어서 에구구구 소리 할 걸?

 

어째서?

 

신지가 고개를 돌려 성현을 바라봤다.

 

왜 에구구구 소리가 나와?

 

너 처음 한국에서 이탈리아 갈 때도 가슴 설레네, 뭐 어쩌네 저러네 하다가 비행 장 시간 하고 나니까 온 몸이 쑤신다며.

 

.

 

신지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 그야 내가 나이가 몇 개냐? 이제 그렇게 힘들고 막 여기저기 쑤실 나이가 된 것 같지 않냐?

 

.

 

성현이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윤호 너는 좀 괜찮을 것 같냐?

 

글쎄요?

 

윤호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아무튼 신지 누나는 안 주무실 거죠?

 

? .

 

엉겁결에 윤호의 질문에 낚이고 만 신지.

 

그럼 저랑 성현이 형 잘 테니까 조금 있다고 깨우세요.

 

맞아. 기내식 나눠주기 시작하면 깨워라.

 

, 그런 게 어디 있어?

 

신지가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두 사람은 귀에 헤드폰을 끼운 채,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척을 하고 있었다.

 

더러운 것들.

 

신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뜨거운 햇살의 나라, 뜨거운 태양의 나라.

 

안녕.

 

성현의 말대로 참 이상하게 감성적이 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윤호랑 오는 날 아니야?

 

맞아요. 어머님.

 

어유, 그런데 이러고 있어?

 

괜찮아요.

 

해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녀석 혼자 오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간 백성현이라는 사람이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럼, 애미도 오는 거냐?

 

?

 

해미가 눈을 깜빡이고, 문희를 바라봤다.

 

애미라고 하면, 지금 준이 엄마, 그러니까 동서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그래.

 

문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해미를 바라봤다.

 

준이 애미 여기에 오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겠니? ? 준이 애미가 오면 우리 민용이랑.

 

어머니 마음 접으세요.

 

해미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삼촌은 서민정 선생님 좋아한다고 그러시잖아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왜 자꾸 그러세요?

 

그래도, 그래도 우리 손주들 엄마 아니니? 그러니까, 이왕이면 제 어미 손으로 키우는 게 낫잖아.

 

그럼 동서에게 준이랑 민이 주시면 되잖아요.

 

뭐야?

 

문희가 미간을 모으며 해미를 노려봤다.

 

아니, 애미야. 너는 어떻게 내 편을 들지 않고 준이 애미 편을 들 수가 있는 거냐? ? 어떻게 그래?

 

아니, 지금 제가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머니께서 동서에게 너무 심하게 구시는 거잖아요.

 

내가 심하게 군다고?

 

문희가 코웃음을 치며 해미를 바라봤다.

 

도대체, 도대체 내가 준이 애미에게 무얼 심하게 군다는 거야?

 

동서, 이미 삼촌이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포기 하세요.

 

어떻게 포기를 해?

 

문희가 짜증 섞인 말투로 해미의 말에 대꾸를 했다.

 

너는 나중에 윤호가 결혼해서 이혼했는데, 그 새끼를 네 며느리에게 홀랑 줘 버릴 수 있어?

 

그게 어떻게 홀랑 줘 버리는 거예요? 서로 같이 양육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예요. 어머니.

 

나는 몰라.

 

문희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준이 애미 편 들기만 해 봐라.:

 

어머니.

 

시끄러워.

 

문희가 부엌으로 향하자 해미가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저도 그래요.

 

해미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도, 동서가 다시 삼촌이랑 같이 살면 좋겠어요. 두 사람이 다시 같이 함께 하게 되면, 우리 윤호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요. 어머니 자식만 안 아프면 지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해미가 아래 입술을 물었다.

 

하지만 제 자식도 귀해요.

 

 

 

오늘 윤호가 온다고?

 

.

 

허 참.

 

범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윤호 녀석 확실히 너 용서했을까?

 

용서?

 

민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나 평생을 가도 윤호에게 용서라는 것을 받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범이 따지 듯 민호에게 물었다.

 

네가 그렇게 많이 윤호에게 잘못한 거 아니잖아. 너도, 너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잖아.

 

도망 간 거잖아.

 

민호가 엷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두 사람, 그 때 지금과 같이 용기를 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거야. 윤호, 빼앗지 않아도 되었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윤호에게 그 기회를 앗아가 버린 거잖아. 그런 거잖아.

 

하아.

 

범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우리 윤호에게 더 이상 무슨 기회를 줄 수가 없다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이제 다시 윤호에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윤호, 우리 윤호 더 이상 내가 아프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

 

하아, 아무리 그래도 너 그렇게 윤호에게 평생 죄책감 지니면서 살 거야? 윤호가 그런 걸 원할 것 같아?

 

모르지.

 

민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그냥,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거 뿐이라서 그래. 그러니까, 일단 그거 생각은 하지 말자.

 

이민호.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민호가 고개를 저으며 범의 허리를 안았다.

 

용서라는 건 내가 받고 싶다고, 내가 스스로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진짜로 윤호 그 자식이 나에 대해서 용서를 할 마음을 가져야, 그래야지만 그렇게 되야지만 되는 거잖아.

 

너 언제부터 그렇게 윤호 자식 챙기는 형이 되어 준 거냐?

 

.

 

민호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윤호 다시 보면 확실히 어색하기는 할 것 같네.

 

어색하다라.

 

범도 고개를 끄덕이며 민호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 비행기는 30분 후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꼐서는 남은 여행 시간도 즐겁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30분 밖에 안 남았다고?

 

신지가 놀란 눈을 하고 창 밖을 바라봤다.

 

얘들아, 밖에.

 

고개를 돌리던 신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이것들은 기내식 먹을 시간에만 잠시씩 일어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만 잘 수가 있는 거냐?

 

옆에서 입을 헤 벌리고 자는 윤호와 성현을 보니 저절로 혀가 차지면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신지는 애써 그 욕지기를 눌러 넣으며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배에 얹어 보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약간 도톰한 배.

 

첫 째인 준이는 사내 아이였고, 둘 째 아이인 민이는 여자 아이였으니, 이번에는 또 어떤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솔직한 마음으로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그런 기분이 드는 신지였다.

 

그런데, 이 아이 정말 누구의 아이지?

 

신지가 아래 입술을 물면서 미간을 모았다.

 

아직 정확한 검사를 병원에서 받은 것이 아니라, 민용 오빠의 아이 같기도 하고 성현이 자식의 아이 같기도 한데, 하아. 그래도 마지막에는 민용 오빠랑 그렇게 사이 안 좋았으니까.

 

신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이 아이겠지?

 

신지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민정아 밥 먹자.

 

.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하던 민정이 실수로 액자를 떨어뜨렸다.

 

? 이건.

 

윤호가 준 액자.

 

도대체 이 액자를 왜 줬던 걸까?

 

민정은 가만히 윤호가 준 액자를 바라봤다. 아무런 사진도 들어 있지 않은 그런 액자. 도대체 이걸 왜 준 것일까?

 

?

 

다시 제 자리에 놓으려고 하는데 유리에 금이 가 있었다.

 

이런.

 

민정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액자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여기에 사진 하나도 넣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버리게 생겼네?

 

그래도 한 번 열어나 볼까? 이건 액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흐음. 민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열었다.

 

!

 

그리고 눈이 흔들렸다.

 

, 말도 안 돼.

 

윤호의 편지가 있었다.

 

민정아 밥 안 먹니?

 

? . , 안 먹어요.

 

?

 

정수가 민정의 방 문을 벌컥 열었다.

 

아니 도대체…….

 

순간 정수는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 있었다. 민정이 눈에는 가득 눈물 방울을 단 채, 그렁그렁한 눈으로 종이 한 장을 들고 울고 있었다.

 

, 너 왜 그래?

 

엄마, 어떡해? 나 어떡하니?

 

정수가 황급히 다가와서 민정을 꽉 끌어 안고 토닥였다. 딸의 눈물, 어미의 가슴을 찢는 그런 눈물이었다.

 

왜 그래? 너 무슨 일이야?

 

나 다시 모든 사람들 아프게 할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민정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