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Episode.6
민용과 민정의 결혼 이야기 여덟
“그냥, 이 밤에 길을 걷다 보니까 ,오빠가 생각이 나더라. 그래도 우리 두 사람 꽤나 잘 어울렸어.”
“그렇지.”
역시나 전화를 통한 민용의 목소리는 좋았다.
“오빠.”
“응?”
“민정이 좋지?”
“어?”
순간 당황한 민용의 목소리.
“왜 당황하고 그래?”
“그, 그게 아니라.”
“좋은 아이야.”
신지는 벤치에 앉았다.
“걔 울리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아.”
“오빠.”
“응?”
“나 준이 보지 말까?”
“어?”
민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준이, 이제 낯을 가리게 될 거야. 그런데, 나도 있고 민정이도 있다면, 준이 많이 힘들어 할 거야. 내가 알아.”
“하지만.”
“오빠, 그러지 마. 나, 되게 고민을 하고 고민을 해서 그렇게 내린 결론이야. 내가 있으면, 준이 되게 많이 어려워 할 거야. 도대체 뭐가 뭔지, 준이가 잘 모르게 될 거란 말이야. 나 그런 거 원하지는 않아.”
“하지만. 하지만.”
“아니.”
신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자신의 목소리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가 신지에게서 나왔다.
“나 정말로 우리 준이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오빠 그러면 준이 나에게 줄 수 있어? 그건 아니지?”
“어?”
허를 찔린, 민용의 얼굴이 굳었다.
“오빠 그런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어. 오빠도 준이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준이 없이는 안 되잖아.”
“미안해.”
“아니야.”
신지의 목소리가 살짝 밝아졌다.
“오빠.”
“응?”
“미안해.”
“뭐가?”
“내가 무책임 해서.”
“네가 뭐가 무책임해.”
민용이 이마를 짚었다.
“너 만큼 책임감 있는 사람 본 적 없어.”
“오빠. 나 있잖아. 오빠 되게 좋아했다.”
“나도, 나도 그랬어.”
“쿡.”
수화기 너머로 웃음 소리가 번져왔다.
“그 말 거짓말이지?”
“아니.”
민용의 목소리는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신지 너 정말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정말로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닌 거지? 응?”
“아니야.”
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을 게 뭐가 있어? 오빠, 나 그렇게 나쁜 일이나, 사고 치는 일 같은 거 하지 않습니다.”
“알아.”
민용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냥 왠지 모르게 네 목소리나 그런 것이 평소에 내가 알고 있던 너랑 조금은 다른 것 같아서 말이야.”
“나 똑 같아.”
신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응?”
“나 오빠 지금 너무나도 보고 싶다? 그런데, 나 절대로 오빠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절대로.”
“왜?”
“오빠. 정말 잘 살아.”
“신지야!”
신지는 전화를 끊었다.
“하아.”
가슴이 아렸다.
“미안해. 미안해.”
신지의 발 끝에 물이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미안해. 내가 이렇게 이기적인 여자라서, 오빠를 이해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라서, 그렇게 좋은 여자가 아니라서, 나 너무나도 미안해. 나 정말, 정말 오빠에게 너무나도, 너무나도 미안해. 너무나도 미안해. 내가 이렇게 오빠를 사랑할 수 없어서. 그래서, 그래서 나 너무 미안해.”
가슴이 먹먹했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왜 이렇게 그를 잡지 못 했을까? 왜 이렇게, 이렇게 되어서야 뒤늦게 이 마음을 깨닫고 이렇게 혼자서 후회를 하는 걸까?
“오빠, 미안해. 미안해.”
신지가 휴대 전화를 가방에 집어 넣듯 던져 넣었다.
“나 오빠의 흔적을, 이제 모두 지울 거야. 오빠 흔적, 더 이상 나에게 남겨 두지 않을 거야. 안 그럴 거야.”
신지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아.”
민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알 수 없었다.
“흐음.”
신지가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어떻게 하지?”
민정이 무릎을 끌어 안았다.
“민정아.”
“아빠?”
주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핫초코를 건넸다.
“무슨 일 있냐?”
“아니요.”
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 없어요.”
“없기는.”
주현이 작게 핀잔을 줬다,
“민정이 너는, 네 아버지가 제 딸도 모르는 그런 바보 같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냐?”
“그런 거 아니에요.”
민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냥, 아무 일이 없어서 그래요.”
“정말이냐?”
“…….”
민정이 아래 입술을 물었다.
“정말, 정말로 아무 일 없어, 아니,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랬으면, 그랬으면 좋겠어요.”
“무슨 일인 거냐?”
주현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응?”
“아빠 나 그 사람 잡아도 되는 걸까요?”
“어?”
주현이 눈을 깜빡였다.
“무, 무슨 일인 거냐?”
“아빠도 알잖아요.”
민정이 아래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사람, 제가 아니라 먼저 신지랑 사랑을 하던 사람이라는 거 말이에요. 그 사람, 신지가 아직도 좋으면 어떻게 하죠?”
“후우.”
주현이 민정을 꼭 안았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거냐? 그 사람이, 그가 너랑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그 말은 네가 좋다는 거야. 그러니까 너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거야.”
“하지만 신지가 오빠가 좋대요.”
“!”
주현의 눈이 흔들렸다.
“뭐, 뭐라고?”
“신지, 신지 아직도 이 선생님이 너무나도 좋대요. 아직도 이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그래요.”
“하아.”
주현이 민정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서 불안하니?”
‘아니요.”
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미안해요.”
“!”
주현이 민정을 바라봤다.
“왜?”
“러시아로 간대요.”
“러시아?’
“피하고 싶대요.”
“!”
주현이 아래 입술을 물었다.
“그래서 죄책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거냐?”
“죄책감.”
민정이 엷게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죄책감,”
“하아.”
주현이 민정의 앞 머리를 쓸어 넘겼다.
“민정아.”
“네.”
“너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
“모르겠어요.”
민정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저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요. 그 어떤 사람도 저 때문에 아파오는 거, 그런 거 너무나도 싫어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 정말, 정말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그건 네가 다 정해야지.”
주현이 핫초코를 민정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빠는 아무 것도 이야기를 해줄 수 없어.”
“그래도 아빠는 똑똑하잖아요.”
“아니.”
주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바보야.”
“아빠.”
“나는 가보마.”
주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정아.”
“네?”
“네 마음 확실히 하거라.”
“!”
민정의 눈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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