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호녀

권정선재 2010. 6. 8. 07:00

호녀

 

권순재

 

 

 

한 동굴에서 자랐으며,

한 동굴에서 여인이 되었으며,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서,

어쩌면 저리도,

어쩌면 저리도 다를까?

 

웅녀와 범녀를 보면,

호녀의 마음은 자꾸만 턱턱 막혔다.

같은 동물에서 인간이 되었으면서,

서로를 어찌 저리 무시 하는가?

그렇기에 동물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가?

 

자신과 셋이 굴에 들어갈 때,

감히 정말 인간이 될 거란 믿음은 갖지 않았다.

다만,

호랑이가 없는

곰이 없는

숲에서 여우는 그저 하찮을 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말 운이 좋게도

구미호가 되었다.

 

사람도, 여우도 아닌

구미호가 되었다.

 

호녀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오늘은 또 뉘의 간을 훔쳐낼까?

오늘은 또 뉘의 숨을 앗아갈까?

 

이리도 살 수 밖에 없는 제가 한심하면서도,

이리도 살 수 밖에 엇는 운명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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