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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1]

권정선재 2010. 12. 27. 07:00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

 

 

 

아우 짜증나. 도대체 그 인간은 왜 그렇게 군다니?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요. 너도 네 남자친구 만날 때 이랬니?”

왜 또 성을 내고 그래?”

은비가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채연을 바라봤다. 그런 태연한 표정을 보니 채연은 더욱 발을 동동 굴렀다.

너는 네 절친한 친구가 남자한테 더럽게 차였다니까! 왜 그렇게 분위기를 못 맞춰. 친구가 지금 완전 우울하다고.”

그래서?”

은비는 살짝 자세를 고쳐 잡으면서 채연을 쳐다봤다.

너 내가 네 편을 들어주면서 남자친구 욕을 하면 또 네 남자친구 역성을 들면서 나에게 뭐라고 할 거잖아. 안 그래?”

하여간 나쁜 년.”

나쁜 년은.”

은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더니, 아이스티를 만들어서 채연에게 건넸다.

마셔.”

너는 남자친구가 한 번도 없어서 모르겠지만, 남자라는 족속이 어쩌면 그러니? 어쩌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니?”

그만 마셔.”

은비가 냉큼 채연의 손에서 잔을 빼앗자 채연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너 남자친구 없는 거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 없을 거다. 그러면서 왜 나에게만 그렇게 까칠하게 구는 거냐?”

됐고. 내일이면 다시 화해할 거면서 뭘 그러냐?”

아니 화해를 하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럼?”

됐다. 너랑 무슨 연애 상담을 하니? 내가 등신이지. 그나저나 너 정말로 식당 아르바이트 잘 할 수 있어?”

잘 하지?”

네가?”

채연이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소에 밥솥에 밥물도 못 맞추는 애가 무슨 식당에서 일을 한다고 나서는 것인지?

너 요리 정말 못 하잖아?”

식당에서 요리 시키냐? 설거지 시키지? 너도 알잖아. 내가 설거지 하나는 진짜 완전히 잘 하는 거 말이야.”

잘 알지.”

아무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말이야. 솔직히 국어국문학과 나와서 설거지 하는 게 말이 되냐? 그래도 어떻게 해? 일자리가 없는데.”

너도 걱정이다.”

채연이 대충 정리가 된 이불에 바로 누웠다.

은비야. 우리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인 걸까?”

모르지.”

은비도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우리 인생을 다 가져가서 정말 엄청나게 잘 사는 그런 놈 하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드냐?”

들지. 그런데 그 인간은 누굴까?”

 

너 미친 거 아니야?”

.”

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별 미친 놈이 겨우 라면 하나 끓이면서도 물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눈금 맞춰서 안 끓이면? 라면이 무슨 우동이라도 된다고 그러냐? 어차피 라면은 라면인데 뭘 그렇게 유난을 떨어?”

이게 제일 맛있는 거야.”

선재는 능청스럽게 대꾸하면서 비커의 물을 스포이드로 뽑아냈다.

라면 뒤에 설명서가 괜히 있는 줄 아냐? 이렇게 먹어야 제일 맛있습니다. 그렇게 써 있는 거라고. 너는 이 사람들이 하루이틀 연구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꼭 그렇게 어설프게 굴려고 하더라? 이 사람들 이거 만드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겠냐? 이 사람들이 고생을 한 걸 알면 이 사람들이 하는 거 그대로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얼마나 오랜만에 먹는 라면이냐? 이 정도는 지켜야지?”

너는 도가 넘으니까 그러지.”

희준은 선재가 타준 차를 보면서도 혀를 찼다.

너 이것도 뒤에 몇 밀리리터 넣으라고 했는지 그거 하나 다 봐서 끓인 거잖아. 온도는 온도계로 재고, 너 이렇게 사이코인 거 사람들이 아냐?”

사람들이 알 필요 있냐?”

선재가 장난스럽게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화배우, 그리고 제일 잘 나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까칠하다는 거 말이야.”

, 너 까칠하지.”

선재는 불을 키고 타이머를 눌렀다.

그래 요즘 일은 잘 되냐?”

잘 되겠냐?”

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기가 확실히 어려워지기는 어려워진 모양이었다. 아무리 어려워져도 거의 줄지 않는다는 외식비까지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식당을 하는 희준으로는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었다.

인간들이 밖에 나와서 밥을 안 먹어요.”

내가 모델 해줄까?”

됐습니다.”

희준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 입 짧은 거 모를 것 같냐? 너 입 짧은 걸로 치면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거다.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해 온 우리 수석 요리사가 한 음식도 네 입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며?”

이태리 식이 아니니까.”

지랄을 해요.”

입이 거칠다.”

희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튼 너는 안 쓸 거야. 너 전에 잡지 인터뷰 하면서, 제 친구 놈이 식당을 하는데 말이죠. 그 놈이 하는 식당이 그렇게 맛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제 친구인데. 허허허. 하면서 말을 하는 바람에 우리 식당 한 달 동안 장사 안 돼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 알지?”

그건 진짜 미안하지.”

아무튼, 너한테는 절대로 안 시켜. 내가 미쳤냐? 너에게 그런 일을 시키게? 하여간 권선재랑 얼깋면 일이 복잡해요.”

복잡하긴.”

때마침 타이머가 울리자 선재는 끓는 물에 온도게를 넣어 보더니, 미소를 지고는 스프와 건더기를 넣었다.

달걀은 넣을 거냐?”

달걀 없는 라면도 라면이냐?”

국물이 텁텁하잖아.”

그런 거 신경 쓰냐?”

그러니까 내가 너희 식당을 안 좋아 하는 거야. 주인이라는 자식이 하다 못해 라면을 먹는 데도 그렇게 무심한데 말이야. 어떤 사람이 너희 집에 가서 8만원이나 하는 스테이크를 먹겠냐? 그 질긴 고기를.”

그거 한우거든!”

내가 구워도 그거보다 잘 굽겠다.”

선재는 면을 넣고 다시 타이머를 누르고 자리에 앉았다.

친구야. 내가 진심으로 말을 하는 건데 너희 식당에 주방장 바꿀 생각 없는 거냐? 아무리 생각을 해도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아니 무슨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했다는 수석 요리사 요리 솜씨가 그 모양이냐? 그거 내가 발로 해도 훨씬 더 잘 할 것 같다. 진짜 그 사람은 아니야.”

그 사람 페이가 얼만지 알아?”

얼만데?”

한 달에 천만 원이 넘어. 거기다가 계약금은 별도에, 그 사람의 집, , 생활비까지 우리가 대주기로 한 거라고. 그리고 계약서를 쓸 때 일시불로 줘서, 문제가 생기는 쪽에서 다 책임을 지기로 한 거야. 그런데도 나보고 그 사람을 내쫓으라고 미쳤냐? 그리고 우리 식당에 오는 사람 중에서 너 빼고는 다들 그 요리사 한테 엄청나게 만족을 해. 그게 정말 요리가 맛있어서 만족을 하는 건지. 그 코쟁이가 있다는 사실에 만족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친구 네 부탁은 너무 하다.”

돈 내가 줄게.”

지랄은.”

선재는 다시 한 번 울리는 타이머에 자리에서 일어나 달걀을 풀 고, 잠시 기다린 후 냄비 째 들고 와서 식탁에 올렸다.

나 돈 많은 거 알잖아.”

네 돈이냐?”

우리 아버지 돈이지.”

그런데?”

나 외동이잖냐?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그 돈 쓰실 곳이 있을 것 같냐? 다 나 주시지. 그래서 어때?”

됐습니다.”

면을 자신의 앞접시로 덜면서 희준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친구를 잘 둬서, 그 덕을 보는 것도 좋지만. 솔직히 네 덕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서 말이다. 네가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자꾸만 너희 아버지 도움을 받는 거니까. 확실히 불편하기는 불편해.”

뭐가 불편해?”

달걀의 흰자와 국물만을 가져오면서 선재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나도 너희 식당에 들어가서 일이나 할까?”

소설이나 쓰세요.”

아 왜? 너도 나 요리 잘 하는 건 알잖아?”

요리를 잘 하는 건 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누구 밑에서 일을 할 성격은 아니잖아? 네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소설을 쓰는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거든요. 너 누구한테 명령 듣기 싫어서 그렇게 소설을 열심히 쓰는 거잖아. 출판사에서 조금만 터치를 하면 아주 지랄 발광을 하는 주제에. 됐습니다. 너 오더라도 수석 쉐프 못 시켜줘. 너 그 이탈리아 직수입 말 들어야 한다고.”

들으면 되는 거지.”

네가?”

희준은 젓가락으로 선재를 가리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도 가끔 웃기는 날이 있다니까.

내가 너를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닌 거 알지? 우리 두 사람 자그만치 20년 동안 친구였다. 그런데 네가 누구한테 고개를 숙인다고? 너희 아버지랑 어머니도 너를 포기했는데 누가 너를 커버하냐? 너 중대장하고 말 놓고 지냈다며? 그런데 네가 말을 들어? 네가 누구의 말을 듣는다고? 세상 사람들 길 묻고 물어봐라. 권선재가 정신을 차리는 것이 빠른지, 남북한 통일이 빠른지.”

너는 네 친구 기 그렇게 죽여야 속이 시원하냐?”

그렇다고 네가 기가 죽냐?”

아니지.”

선재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개수대에 그릇을 담근 후, 냉장고를 열고 희준을 바라봤다.

후식은 뭐 먹을래?”

나 아직 라면도 안 먹었거든?”

찬밥이라도 줄까?”

됐습니다. 찬밥도 온갖 유난을 떨면서 줄 거면서. 됐고. 아이스크림 있냐?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있지요.”

선재가 씩 웃으면서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이게 진짜 웰빙인 거거든. 국산 벌꿀에, 성주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참외, 거기다가 매일 아침 짠다는 그 우유까지. 이런 건 먹어줘야 하는 거거든.”

지랄을 해요.”

남은 면을 다 건져 먹으면서 희준이 다시 낮게 욕을 내뱉었다.

너는 그렇게 욕을 안 먹으면 속이 안 편하냐? 늘 그렇게 지랄만 해요. 아무튼 소설은 잘 써지냐?”

잘 써지겠냐?”

그릇에 아이스크림을 퍼서, 숟가락과 함께 내리면서 선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꼰대 또 그 버릇 나온 거 알지? 아들. 이제 그 소설 쓰는 일은 그만하고 회사 물려받는 거 어때? 아우 끔찍해.”

나는 부럽기만 하다.”

부럽기는.”

선재는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아무튼 한 번 식당에 놀러는 가야겠다. 너희 식당에 안 간지 너무 오래 된 것 같아. 이제 너희 식당 어떻게 생겼는지 까먹겠다.”

그래 까먹을만 하겠지. 너는 오지도 않을 거면서 늘 공수표를 날려서 큰 일이다. 그래놓고 안 올 거잖아.”

? 갈 거야.”

언제?”

지금이라도 갈까?”

퍽이나.”

오케이.”

선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가더니 재킷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현관으로 가서 차키를 들고 신을 신었다.

가자.”

진짜?”

가자니까.”

미친 놈.”

희준이 그냥 나오려고 하자 선재가 양 손바닥을 내밀면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개수대에 다 넣고 나와라.”

아우 끔찍한 놈.”

희준은 다시 한 번 진저리를 치고 현관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