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창고/라.남.밥.녀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2-2]

권정선재 2010. 12. 30. 07:00

 

어머, 언니. 그러니까. 까르르르.”

주연은 신이 나게 코디와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스타가 되고 나니 여유도 생기고, 정말 편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떠받들고 있다니, 스타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좋을까?

그나저나 주연아 대사 외웠어?”

대사는.”

주연이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매니저를 노려봤다.

어차피 한 씬에 각자 얼굴 따로 딸 거잖아? 그 때 그 때 외우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유난이야?”

유난을 해야지.”

누구야?”

처음 들리는 목소리에 화를 내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던 주연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드라마의 주연배우 권선재?

,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래서 대사를 안 외웠다?”

, 그런 게 아니라.”

선재는 주연의 앞으로 가더니 씩 미소를 지었다.

너 같은 년은 연기를 할 자격이 없지. 연기자? 네가? 대사 하나 제대로 외우지 않는 주제에 누가 연기를 하겠다고 하는 거야? 연기력 논란 없다고 네가 연기를 잘 하는 줄 아나본데 그건 아니지. 그리고 대사 하나 못 외우면서 연기자를 하겠다고? 너 같은 애들 지금 인기에 확 뜬 줄 아는 거지? 그런데 네가 이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뜰 수나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냐? 그리고 이 드라마가 너 때문에 뜬 것 같아? 아니지. 나 때문에 뜬 거지. 권선재가 있으니까 이 드라마가 대박이 난 거지. 그런데도 너는 네가 잘난 줄 알고 대사도 안 외우고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는 거야?”

안 외운 것이 아니라, , 외우기는 외웠는데.”

외워?”

선재는 피식 웃으며 테이블 위에 놓은 대본을 집어들었다. 새것이나 다름없이 빳빳한 것이. 대충 무슨 내용이 있는지 그 정도만 파악을 한 것 같았다. 선재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내 대본 줘 봐.”

.”

선재는 자신의 매니저가 건넨 대본을 주연에게 던졌다. 너덜너덜해서 금방이라도 뜯어질 것 같은 대본이었다.

보이냐?”

?”

이게 대본이어야 하는 거야. 이렇게 달달 외워도 나는 연기 잘 한다는 소리를 못 들어. 왜냐고? 나는 연기를 못 하니까. 내가 정말로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그리고 너? 너도 정말로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본을 보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는 아니야. 너는 아웃이라고. 그런 주제에 무슨 연기를 한다고?”

말씀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심하다고?”

. 그리고 무례하고요.”

주연이 부들부들 떨면서 선재를 노려봤다. 대기실에서 놀다가 갑자기 당한 날벼락이라 그런지 더욱 서러운 그녀였다.

알아요. 저 연기 못 하는 거. 그래도 저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요. 여자 주인공이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 기를 이렇게 눌러 놓아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그래요. 저 연기 못 해요. 그래서 도와주신 거 있어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주연은 놀란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 지금.”

도와줬지?”

선재가 싸늘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 같이 제정신 못 차리고 있는 년 주위에는 저런 것들이 있지. 이봐요. 매니저랑 코디 양반들. 얘 지금 인기 조금 있다고 떠받들어 주지 말아요. 이런 애들 오래 못 간다는 거 당신들이 더 잘 알잖아. 이런 애들 다잡고, 다시 다듬어서 더 오래 있게 할 생각을 해야지. 솔직히 당신들도 그냥 지금 단물이나 빼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런 것들이 무슨.”

이봐요.”

?”

나가려는 선재를 붙잡던 주연은 순간 움찔했다. 선재의 눈빛이 장난이 아니가 싸늘했다. 주연은 저절로 시선을 피했다.

대사 외워라. 감독님께 말씀 드려서 30분 미뤘다. 그리고 두 씬 30분에 갈 거다. 그러니까 틀리면 죽는다.”

어떻게 그걸.”

하지.”

선재는 다시 한 번 싸늘하게 노려보고 대기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주연은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뭐야 저 인간?”

 

, 괜찮아요?”

뭐가?”

선재는 이마를 짚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평소라면 그냥 미소를 지으면서 괜찮다. 괜찮다 했을 선재가 화를 내는 것을 보니, 매니저도 당혹스러웠다. 이 인간이 갑자기 철이라도 든 것인가?

네가 보기에 내가 어떠냐?”

?”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냐고.”

연기 잘 하고, 소설도 잘 쓰는 사람?”

그렇지?”

선재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 여자는 왜 내가 사귀자는 이야기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을까?”

?”

매니져가 화들짝 놀라며 의자를 끌고 와서 선재의 옆에 앉았다.

형 어떤 여자에게 고백했어요?”

.”

형 미쳤어요?”

미치기는.”

매니저의 물음에 선재가 짜증을 내며 그를 쳐다봤다.

너 내가 그 함부로 말하는 버릇 고치라고 했냐? 안 했냐? 이건 자기 연기자한테 미쳤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그러고도 네가 매니져냐? 연기자를 진정으로 원하고 위한다는 그런 매니저라고 할 수 있어?”

말 돌리지 말고요.”

매니져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누구에요? 연예인?”

아니야.”

그럼요?”

있어.”

선재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런 사람.”

 

어쩐 일이래? 원주연이 저렇게 완벽하게 하고?”

권선재가 뒤집었다던데?”

?”

스태프들 사이에서 갑자기 태도가 바뀐 주연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평소에 NG만 하더라도 수십번 내던 그녀가 이번에는 두 씬 모두 한 컷에 들어가는 놀라움을 보였다. 평소라면 따로 얼굴만 타이트하게 들어가는 것도, 감정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한 큐에 끝낸 두 사람 덕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주연 씨 수고했어.”

아닙니다.”

주연은 연기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차로 향하는 선재를 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 인간은 뭐가 그렇게 잘 난 거야?

 

형 이제 어디로 갈까요?”

희준이 레스토랑.”

? 집으로 안 가시고요? 조만간 새 책 교정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괜찮아.”

코트 안주머니에서 번호를 꺼내면서 선재가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까짓 소설이 문제란 말인가? 인생의 반쪽을 찾았는데?

형 그거 이미 선금도 받았다면서요?”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더 중요한 일이요?”

, 무지하게 중요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일을 해야 제대로 하는 거야?”

은비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제 일을 한 지 사흘이나 되었는데, 여전히 접시를 깨는 일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물론 깨뜨리는 접시의 수는 월등히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 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괜찮아요?”

. .”

요리사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의 옆에 섰다.

접시를 닦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그러게 말이에요.”

은비가 잔뜩 울상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은비 씨. 조금만 요령을 가지고 하면 안 될까요?”

요령이요?”

, 정확히 어떤 요령인지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니까. 그런데 은비 씨는 지금 살짝 버거운 것 같아요. 일단 오른손하고 왼손의 역할이 나누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아. 잠깐만요.”

?”

요리사는 씩 미소를 짓더니 오른손으로 접시를 잡고 왼손으로 한 번 닦아서, 물에 행구고 오른쪽 식기세척기로 넘기는 것을 몇 번 보엿다. 그리고 다시 씩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이렇게요.”

하지만 그러면 깨끗하지 않잖아요?”

상관 없어요.”

왜요?”

요리사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밥 먹는 사람들은 안에가 어떤 지 모르잖아.”

?”

농담이에요. 농담.”

은비의 놀란 표정을 본 요리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식기세척기 꽤나 유용하거든요. 진짜 끓는 물로 소독도 하고 하니까. 은비 씨는 그저 애벌 설거지만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간단히 건더기 같은 것만 없어지면 되요. 기름기 같은 것도 저 안에서 깔끔하게 되는 거니까. 그러면 은비 씨도 조금 더 편하고, 괜찮아질 거예요.”

정말 그래도 되는 거예요?”

.”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다들 윽박만 지르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니까.”

그게 이 사람들 특징이죠. , 그래도 다들 어딘지 기합이 들어가 있는 것이 멋있지 않아요?”

멋있기는 한데.”

다들 살짝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기합이 들어가 있다고 해야 하나? 은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감히 은비가 평가를 하거나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나저나 지금 저 도와줘도 되요?”

나는 오늘 퇴근.”

? 왜요?”

계약직이거든요.”

요리사가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나는 여기서 런치까지만 도와주기로 되어 있는 사람. 그러니까 이제 한가한 거죠. 부럽죠?”

부럽기는 하네요.”

은비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꾸했다.

그럼 수고해요.”

.”

은비는 다시 열심히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어서오십시오.”

선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직원을 바라봐줬다.

사장님 계시나요?”

, 안에 계십니다.”

그럼 저는 자리에 안내해주시고, 절대로 사장님께 왔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아셨죠?”

?”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 친구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당연히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녀석은 안 좋아할 수도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직원을 따라가던 선재가 은비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저도 부엌에 들어갈 자격이 있나요?”

?”

직원이 옆의 직원을 바라봤지만 그 직원 역시 어깨를 으쓱했다. 원칙으로는 그 누구도 부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난 권선재인데.”

그게.”

괜찮죠?”

결국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는 그런 표정을 보면서 씩 웃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저기요.”

하지만 은비는 그저 열심히 설거지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요!”

은비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지 않자 선재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봐요!”

, 저기.”

?”

접시를 닦던 은비가 옆에서 자신의 등을 두드리던 사람을 바라봤다. 그 사람은 신기하단 표정을 지으면서 뒤를 가리켰다.

뒤에 뭐가 있는데요?”

뒤를 보던 은비의 눈이 커졌다.

권선재?”

반가워요.”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은비의 눈이 커다라지는 것을 보니 저절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선재는 부드럽게 은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비는 떨리는 눈으로 그 손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