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뭐예요?”
“뭐긴요? 저녁이죠.”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식탁을 가리키자 은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려한 만찬이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이걸 다 주문했어요? 돈이 얼만데.”
“쉐프가 도와줘서 같이 했어요. 은비 씨를 위해서.”
“직접 만들었다고요?”
“네.”
은비가 큰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이 남자가 장난을 하는 것인지 진심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공을 들이고 있었다.
“배가 별로 안 고픈데.”
“왜 안 고파요.”
선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은비의 뒤로 와 의자를 빼주었다.
“저녁도 안 먹고 계속 일을 했다면서요?”
“그래도요.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도라니요. 거기 친구 분.”
“네?”
구석에 몰래 숨어서 보던 채연이 화들짝 놀라서 기둥에서 나왔다. 선재는 그녀를 향해서도 미소를 지었다.
“같이 먹어요.”
“아, 아니에요.”
“밥도 못 먹었잖아요. 여기 음식 싸구려 인 건 아는데요. 그래도 뭐, 내가 만들었으니까. 같이 먹지 그래요?”
“싸구려?”
와인을 한 병 챙겨서 나오던 희준이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저건 남의 가게 폄하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우리 가게 일류라니까.”
“삼류지.”
“이 자식이.”
“어허, 레이디들 있잖아?”
은비와 채연이 자신들을 바라본다는 것을 안 희준은 낮게 기침을 했다. 사장으로써 체통을 지켜야 하는데.
“채연 씨도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나도 같이 먹기로 한 거니까. 그리고 권선재 이 자식은 여자랑 단 둘이 두면 안 되는 놈이거든요. 무슨 짓을 할 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친구 지키는 거라고 생각하고 같이 먹어요.”
“네? 네.”
채연이 쭈뼛쭈뼛 은비의 옆에 앉았다.
“그나저나 쉐프는 어떻게 꼬셨냐?”
“그냥 좋은 저녁이다, 저녁 만드는 거 도와달라. 그러니까 오케이라는데? 너희 쉐프 너무 친절한 거 아니냐?”
“그 까칠이가 정말로 그래?”
“응.”
희준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자신이 인사를 날릴 때는 단 한 번도 대꾸를 하지 않던 싸가지였는데 선재에게는 이렇게 쉽게 도움을 준단 말인가? 월급을 주는 것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했다.
“이거 정말 다 만드신 거예요?”
“네.”
“어머, 어머.”
채연이 유난히 호들갑을 떨면서 은비를 때렸다.
“이거 봐. 완전 화려하지 않니?”
“화려하기는.”
은비는 살짝 말 끝을 흐렸다. 아닌 게 아니라, 꽤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있었다. 평소에 설거지만 하던 그녀가 보지 못했던 요리들이 접시에 있는 것을 보니 살짝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맛에 있어서는 자신을 못할 것 같아요. 일단 재료가 신선하지 않으니까. 남아 있는 걸로 밖에 못 해서 맛이 없을 가능성이 더 많아요. 그래도 내가 만든 거니까.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어요.”
“네. 잘먹겠습니다.”
“고마워요.”
은비는 먼저 봉골레 파스타부터 한 입 먹었다. 분명히 기름으로 볶은 파스타인데 하나도 느끼하지 않고 산뜻했다.
“맛있죠?”
“네.”
은비가 볼까지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맛있는 파스타는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 고르곤졸라도 맛있어요.”
“그건 쉐프가 한 거예요.”
“미친 놈.”
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너 여기 차려진 밥상 우리 레스토랑에 오시는 VVVIP도 못 드시는 거라는 거 아냐? 그런데 이런 걸 차렸어?”
“내 여자잖아.”
선재가 부드럽게 웃으며 은비에게 눈을 찡긋했다.
“저 사람은 나한테서 V가 몇 개가 붙어도 하나도 안 이상한 사람이니까. 그런 돈만 많은 속물하고 비교 하지 마라.”
“요리는 잘 했네.”
키조개 역시 산뜻했다. 이미 죽어 있는 녀석으로 조리를 한 것일 텐데도, 막 살아있는 녀석을 구운 것 같았다.
“요리 솜씨가 좋으시네요? 드라마만 하시고 책만 쓰셔서, 이런 재주도 있으신지 몰랐는데요.”
“제가 취미에요.”
선재가 부드럽게 웃으며 채연을 바라봤다.
“식객이 영화화나 드라마화 된다고 해서 하고 싶다고 그렇게 요리를 연습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안 써주더라고요.”
“어머. 그래요?”
“뭐, 그래도 어떻게든 써먹으니까 된 거죠.”
“그런데 권선재 씨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편하게 선재라고 불러도 되고. 무엇이 궁금한데요?”
“은비가 왜 좋아요?”
“야.”
은비가 얼굴이 붉어져서 살짝 채연을 노려봤지만 채연은 그런 그녀의 시선은 상관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잖아요. 선재 씨는 연기도 하고 그러니까 정말 예쁜 여자들을 많이 볼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은비가 왜 좋아요?”
“착하게 생겼어요.”
“네?”
“그래서 좋아요.”
선재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은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에요.”
채연이 재빨리 두 손을 저었다. 저녁까지 얻어 먹었다면 이제 조금은 눈치가 있게 행동을 해야 했다.
“저 잠시 들릴 때가 있어서요.”
“어디?”
“있어.”
은비가 눈치 없이 자신을 붙잡으려고 하자 채연이 단호하게 그녀의 호의를 거절했다. 왜 저렇게 눈치가 없는 걸까?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네.”
두 사람이 탄 차가 멀어지자 채연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은비 너는 좋겠다. 나는 어디서 저런 남자 하나 안 떨어지니? 나 좋다는 남자 하나 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터덜터덜 뒤를 도는 순간 그녀의 눈에 희준이 보였다.
“차희준. 그래, 우리 레스토랑 사장도 외모도 준수하고, 돈도 저 정도면 많은 거잖아. 뭐 크게 빠지지 않지.”
채연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희준에게 다가갔다.
“저녁은 입에 맞았어요?”
“네.”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들은 처음 먹어봐요. 몰랐는데, 그리고 아까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솜씨가 좋으시더라고요.”
“고마워요.”
선재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 여자랑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고 해야 하나?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뭐 마시고 싶지 않아요?”
“네? 뭘?”
“이 근처에 정말 괜찮은 카페가 하나 있거든요. 내가 아는 사람이 하는 건데, 거기는 진짜 좋은 원두를 써요. 게다가 매일 쓸 만큼만 볶아서, 향이 많이 달아나지도 않고, 정말 깔끔하고 좋아요.”
“그럼 제가 살게요.”
“네?”
선재가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여자가 커피를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희준에게서 이 여자의 월급을 들은 후로는 그 커피 값이 그리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는 별 것이 아니겠지만 이 여자에게는 꽤나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네?”
선재가 시계를 보면서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사람들 만나는 시간 보다 늦었네요. 이런, 그럼 그 카페는 이제 문을 닫았을 거예요. 미안해요.”
“아, 아니에요. 왜 미안해요.”
은비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아쉬운 데로 그냥 프랜차이즈 커피라도 드실래요? 제가 사드릴게요.”
“흐음. 그럼.”
순간 선재의 눈에 맥도날드가 보였다. 그래 저기에서 파는 커피라면 이 여자에게 부담이 가지 않을 거였다.
“저기서 사줘요.”
“네? 맥도날드요? 스타벅스나 그런 곳에 가도 괜찮은데? 하다못해, 저기 던킨도너츠도 있네요. 저기 가서 마셔요.”
“아니에요.”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기 드라이브 인이잖아요. 그냥 가면 되는 곳이니까. 알았죠?”
“네? 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요.”
“네, 잘 가요.”
선재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은비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집에만 오는 것인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하아, 저 사람 뭐지?”
이상하게 부담이 되었다. 함께 있다는 사실로도 힘이 드는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도 그랬다.
“왔어?”
“어? 어.”
채연은 이상한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너 왜 그래?”
“아니야.”
“선재 씨가 뭐라고 했어?“
“아니.”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은 다른 사람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너는 그새 어디를 다녀오는 거야? 슈퍼 다녀온 거야?”
“응. 느끼해서. 라면 사왔다.”
채연이 봉투에 담긴 삼양라면과 달걀을 보여주자, 은비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고급을 먹어도 느끼한 것을 보니 자신들과는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녀도 속이 많이 느끼했는데.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가 되는 건가봐.”
“왜?”
“나도 무지하게 느끼했거든.”
“안 돼.”
채연이 재빨리 봉투를 뒤로 숨겼다.
“이거 나 혼자 먹기에도 붖고하단 말이야. 진짜 느끼했다고.”
“친구끼리 그러기야?”
“친구끼리 이러기다.”
두 여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아들, 늦었네.”
유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거실로 나왔다. 선재는 모친을 향해서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희준이 레스토랑에 있다 와서.”
“아버지가 부르신다.”
“아빠가?”
“응. 서재에 계셔.”
“알았어요.”
선재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서재로 향했다. 도대체 아버지가 자신을 왜 부르시는 것일까? 그나저나 은비는 조심해서 집에 잘 들어갔나? 은비가 걱정이 많이 되는데. 일단은 부친을 보고 전화라도 해야 할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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