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나 참.”
선재는 전화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내 전화를 끊어?”
대한민국에서 권선재의 전화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전화를 끊었다.
“미치겠네.”
선재는 마구 머리를 헝클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도대체 이 여자 뇌구조가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형 얼굴이 왜 그래?”
“말 걸지 마.”
메이크업 담당은 당혹스럽다는 눈으로 매니져를 바라봤다. 얼굴이 꺼칠해서 화장이 하나도 먹을 것 같지 않았다.
“잠 못 주무셨어요?”
“야, 내가 웨이트리스랑 사귀면 이상하냐?”
“웨이트리스?”
매니져가 놀란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이 인간이 지금 이렇게 안달복달 하는 것이 웨이트리스 때문이라고?
“형 그거 정말이야?”
“닥치고, 내가 물은 거에만 대답을 좀 해 봐. 나는 그런 여자랑 어울리지 않는 거냐? 그런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매니져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선재를 위 아래로 훑었다. 약을 잘못 먹은 것은 분명히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 여자가 형을 거절했다는 거야?”
“어.”
선재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 가는 여자임에 분명했다.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사귀자고 말을 한다면 열이면 열 그에게 넘어올 것이 분명했다. 하다못해 그를 이용이라도 하기 위해서 넘어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런 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부족하냐?”
“아니.”
“내가 어디가 어때서?”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금 전보다 더 안색이 나빠진 선재의 피부를 보면서 메이크업 담당은 한숨을 내쉬었다.
“NG!"
감독의 외침이 울려퍼지자 모두의 얼굴이 구겨졌다. 평소에는 NG를 거의 내지 않던 선재가 오늘은 한 씬에서만 50번 넘게 NG를 내고 있었다. 이건 시간 낭비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 누구도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지.”
“아닙니다.”
감독의 말에 선재는 재빨리 대답했다. 여기서 쉬는 것은 절대로 자신의 자존심이 용납을 하지 않는 일이었다.
“딱 한 번만 더 가죠.”
“좋아.”
감독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NG를 냈던 거라면 바로 화라도 냈을 테지만, 선재가 NG를 내는 것은 또 상황이 달랐다. 감독의 지시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별 일이네요.”
“뭐가요?”
“아니.”
주연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선재를 바라봤다.
“저보고 연기 연습 좀 하라고 하시던 당신이 이렇게 자꾸 NG를 낸다는 사실이 우스워서 말이에요. 지난 번에 나보고 뭐라고 한 것은 그럴 자격도 안 되던 사람이 했던 말은 설마, 아닌 거겠죠?”
“아닙니다.”
선재는 미간을 모으며 주연을 바라봤다.
“그쪽도 지금 NG 안 낸 거 아니거든요?”
“그래서요?”
“아무튼 당신이라는 여자는 정말.”
“자 슛 들어갑니다!”
선재는 바로 주연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여자였다.
‘Rrrrrr Rrrrrr'
“여보세요?”
‘납니다.’
선재였다. 은비는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이 남자는 싫다고 하는데도 왜 이렇게 자꾸만 그녀에게 덤벼드는 것일까?
“무슨 일이에요?”
‘잠시 밖으로 나와요.’
“저 내일 출근해야 해요.”
‘내일도 만나기 싫다. 그러면 오늘 만나야 한다고요! 나 오늘 당신 때문에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만나요. 당신을 만나서 할 일이 있어요.’
“할 일이라고요?”
은비는 가만히 미간을 모았다. 할 일이라니?
‘부탁입니다.’
“이런 식으로 구는 거 무례한 일이라는 거 아시나요? 다른 사람들은 권선재 씨가 부르면 무조건 나오는 줄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제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일방적으로 마구 부르는 것은 삼가면 좋겠는데요? 그러니까 이만 들어가세요.”
‘제발요.’
선재는 다급히 은비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꽤나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던 것일까?
“무슨 일인데요?”
‘만나면 이야기를 할게요.’
“저 지금 자야 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아요.’
“지금 어디에 있는 건데요?”
‘당신의 집앞에 와 있어요.’
“네?”
은비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재빨리 창가로 향했다. 차에 기대어 서 있는 선재가 저 아래에 보이고 있었다.
“우,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희준이 자식에게 알아낸 것이죠. 뭐 별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지금 당장 아래로 좀 내려와요.’
“오래 안 걸리는 거죠?”
‘네. 약속합니다.’
“알았어요.”
은비는 한숨을 내쉬고 옷을 걸쳤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굴려고 하는 것일까?
“어디 가?”
“어? 어.”
채연이 눈을 비비며 은비를 바라보자 은비는 살짝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를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면 채연이 분명히 한 마디를 더 할 텐데. 은비는 재빨리 미소를 지으면서 지갑을 들었다.
“음료수 좀 사러 다녀올게.”
그리고 그녀의 대꾸도 듣지 않고 은비는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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