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4
“이게 뭐냐?”
“뭐가요?”
부친은 화가 난 표정으로 종이를 던졌다. 선재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것을 주우면서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살짝 얼굴이 굳었다.
‘톱스타 권선재와 신예 원주연 사랑싸움? 촬영장 냉기가 가득. 연기력 지적도 사랑이 바탕이었나?’
이러한 타이틀 아래 써있는 소설을 보니 선재는 어이가 없었다. 누가 누구랑 엮인다는 것인지,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거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네.”
선재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종이를 구겼다.
“얘가 정말로 연기를 못 해서 뭐라고 한 소리 한 것 밖에 없다고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기사가 난 것인지. 나 이런 애랑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아빠도 이런 일에 크게 신경 좀 쓰지 말아요. 뭐 별다른 일이라고.”
“별다른 일이지!”
부친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내가 그러니까 그 딴따라 일 좀 그만 두라고 말을 하지 않았냐? 그 딴따라 일 안 하면 이런 일도 안 일어날 거 아니야! 왜 하지 말라는데! 그 일 좀 그만 두라는데 그 말을 듣지 않아서 자꾸 이런 사단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 내가 얼마나 창피한 줄 알아? 네가 그러고 있는데!”
“뭐가 창피해요?”
선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 뒤를 긁적였다.
“아무튼 별 일 아니니까 신경도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제가 소속사랑 이야기를 해서 해명 기사 내도록 할게요. 이런 일로 뭐 화를 다 내시고 그러실까? 이럴 수도 있지.”
“이번 드라마 끝나면 은퇴해라.”
“네?”
선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퇴라니? 이제 막 잘 나가고 있는 판국인데 이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은퇴하면 저 뭐해요?”
“회사에 물어보니까, 너 이제 계약 기간도 다 끝나간다고 하더구나. 재계약 하지 말고 그냥 다 그만 두거라.”
“왜 그만 둬요? 제가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말도 안 되는 말씀 좀 하지 마세요.”
“왜 말이 안 되냐? 내가 처음부터 그 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그런데도 고집을 피운 것이 누구야? 네가 네 입으로 그러지 않았어? 스캔들이 터지면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이건 스캔들도 아니라고요.”
선재는 억울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고 나서 이런 기사가 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정말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기사가 다 나고 난리란 말인가?
“아빠도 알잖아요. 드라마 홍보를 하려고도 일부러 이런 기사도 내고는 한다는 거 말이에요. 그러니까, 별다른 일이 아니니까 신경 좀 쓰지 마세요. 별 다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난리신지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잖아!”
부친은 고함을 확 질렀다. 평소에는 조용조용 말을 하는 부친인 탓에 선재는 살짝 움츠러 들었다.
“앞으로도 두고 볼 거야.”
“네.”
선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진심인 것 같다는 거지?”
“응,”
채연의 눈이 순식간에 커다래졌다. 자신의 주위에 연예인과 사귀는 사람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너 복 터졌다.”
“무슨 복이 터져?”
“기사 보니까 권선재 돈도 되게 잘 번다는 것 같은데. 얼마나 좋으냐? 나는 그런 남자 어디에 없나 몰라.”
“하여간 속물이야.”
“속물이 뭐가 나쁘냐?”
“그럼 속물이 좋아?”
“좋은 것도 아니지만.”
채연은 젓가락을 입에 물고 가만히 은비를 살폈다. 확실히 어딘지 매력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예쁘지는 않지만 은비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은비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
은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에도 이런 일은 거의 당해보지 않았던 그녀였다. 게다가 이런 일을 연예인에게 당하게 되다니, 그것은 말 그대로 충격이고, 당혹스러운 일임에 분명했다.
“연예인이잖아. 그냥 평범한 사람이 헌팅을 한다고 해도 당혹스러운 일인데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이 그러는 거 보니까,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도 않고 말이야. 괜히 사람들 입에 타는 것도 우스울 것 같고.”
“사람들 입에 타는 게 뭐가 문제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좀 알아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는데.”
“나는 싫어.”
은비는 가볍게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그 사람 내게 정중하게 말을 하면 거절을 해야겠어. 이건 아니라고 말이야.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나 그렇게 불편한 생활을 하는 거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나는 그런 거 원하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도 너 좋다는 사람인데 일언지하에 거절을 할 수 있냐? 그 사람이 연예인인 게 그 사람의 죄는 아니잖아.”
“죄는 아니라도.”
은비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걸로 인해서 내가 편하지 않다면 확실히 그 이유로 아니라고 말을 할 수는 있는 거잖아. 나는 불편해.”
“모르겠다.”
채연은 가볍게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녀의 일이 아닌 만큼 뭐라고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너는 대단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남자랑 만나고 싶어서 난리인데, 너는 그 사람을 거절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랑 한 집에 살고 있다니 놀라운데?”
“놀리지 마.”
“놀리는 거 아니라니까.”
“아버지 왜 저러시니?”
“내일 신문에 기사가 나려나봐요.”
“기사?”
유자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선재의 옷을 받아서 옷걸이에 걸었다. 아들의 기사가 신문에 나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닐진대, 남편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화를 내는 거라면 좋은 일은 아닐 텐데.
“무슨 일이야?”
“엄마 원주연 알아?”
“아들이랑 같이 연기하는 애잖아.”
“걔랑 스캔들이 터졌다고.”
“스캔들?”
유자가 입을 가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없어.”
선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같이 연기를 하는 존경하는 선배도 아니고, 그런 싸가지 없는 신인 배우랑 스캔들이 터진다는 것은 확실히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었다. 마음에 안 들었다.
“없는데 왜 그런 기사가 나? 무슨 일이 있으니까 그런 기사가 나는 거 아니야? 아들, 이야기를 해 봐.”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요?”
선재는 살짝 날이 선 목소리로 대꾸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모친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알았어. 아들. 그럼 쉬어.”
“네.”
선재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웠다. 어머니께 화를 낼 일이 아니었는데,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가서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은비는 집에 잘 들어갔으려나? 은비를 생각을 하니 금새 마음이 풀려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선재였다. 선재는 전화기를 꺼내서 번호를 눌렀다.
'Rrrrr Rrrrr'
“왜 안 받아?”
“어? 모르는 번호라.”
은비가 액정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자 채연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모르는 번호라고? 평소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일이 없는 은비인데, 생각을 잠시 하던 채연이 손뼉을 치면서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이네.”
“그 사람?”
“권선재 씨.”
“권선재 씨가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해?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 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
“우리 사장이랑 친구라고 했잖아. 우리 사장에게 물어봐서 알았을 거야. 좋아하는 여자라는데 그 정도 노력도 하지 않았을까봐서? 너 잘 있는지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를 한 모양이네, 어서 받아.”
“그, 그래?”
은비는 살짝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네, 조은비입니다.”
‘잘 들어갔어요?’
“아, 네.”
은비는 채연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잘 들어갔어요. 그쪽은?”
‘에이, 그쪽이 아니고 권선재라니까. 멀쩡한 이름 놔두고 그쪽이 뭐예요. 그쪽이. 사람 이름을 불러줘야지. 안 그래요? 나는 계속 조은비 씨, 조은비 씨,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는데 이름 불러주는 사람 서운하게 자꾸만 그쪽이라고 할 거예요? 제대로 한 번 불러봐요. 내 이름 좋은데 왜 그럴까? 권선재. 이렇게 한 번 제대로 불러봐요.’
“권선재 씨.”
‘잘 하네.’
은비가 귀까지 빨개진 것으 보고 채연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은비 이 애가 이렇게 순진한 구석도 있구나 참 신기했다.
‘내일 저녁에는 뭐해요?’
“퇴근하고 쉬어야죠.”
‘되게 재미없다. 내가 재미있게 만들어줄게요? 어때요? 권선재와 하룻밤의 재미있는 데이트? 콜?’
“그게 피곤해서요.”
‘그러니까 내가 안 피곤하게 해줄게요? 어때요?’
“죄송해요.”
은비는 단호히 거절을 했다. 이 남자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영부영 얽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 남자와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공연히 이 남자의 도움을 받는다거나, 이 남자에게서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이 남자에게 더 이상 여지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 남자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그녀가 마음을 열 것은 아니니까.
“이런 전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네?’
“저는 그쪽이 되게 부담스럽거든요.”
“야, 너 왜 그래?”
채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재를 거절하겠다는 말이 그저 걱정으로 인한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그쪽하고 저는 너무 달라요.”
‘왜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나는 우리 두 사람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데?’
“직업도 다르고, 환경도 달라요. 식사를 하는 곳도 다르고, 하다 못해서 먹는 물까지도 다를 거라고요.”
‘확신해요?’
“뭐라고요?”
‘확신을 할 수 있냐고요?’
“네.”
선재의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은데, 은비는 마치 자신에게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힘주어 대답을 했다.
“확신해요.”
‘이거 난감하네. 나는 아니라고 확신을 하거든요.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것에 있어서 확신을 하는 걸 보니까, 우리 두 사람이 정말로 잘 어울리는 연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왜요? 노래도 있잖아요. 반대가 끌리는 이유. 우리 두 사람 반대니까 오히려 잘 어울릴 지도 모른다고요. 아무튼 내일 보기로 합시다. 정말로 서로가 그렇게 다른 사람인지 확인도 할 겸.’
“싫어요.”
‘왜 싫어요?’
“시간 아까워요.”
은비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당신이라는 사람하고 그런 걸로 입씨름 할 시간에 일이라도 조금 더 할 거예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전화 끊죠. 그 쪽도 이렇게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이봐요! 이봐요!’
은비는 황급히 종료 버튼을 눌렀다. 더 이상 선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서운하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너 대단하다.”
“뭐가?”
“그 사람을 거절을 하고 말이야.”
채연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런 남자의 고백을 거절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벌 같은 건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 지금 돈은 엄청나게 벌고 있을 걸? 너 그럼 빚 같은 거 더 고생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채연아. 너 말 이상해.”
은비는 가볍게 채연을 흘겨봤다.
“그럼 그 사람이랑 연애 같은 것을 하고 돈이라도 받으라는 이야기야? 내 아버지가 진 빚을 내가 갚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보고 갚으라고 하라고?”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은비가 갑자기 사납게 나오자 채연은 살짝 말끝을 흐렸다. 순한 은비도 가끔 화를 내면 그녀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독해지곤 했다.
“나는 네가 고생을 하고 그러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러지. 네가 그 사람보다 일을 하는 시간이 적어? 노력이 적어? 그런 것도 아닌데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난다면 이용을 하는 것도 좋다는 거지.”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마.”
은비는 단호히 채연의 말을 정리했다.
“채연이 너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생각을 하기에는 그런 거 정말 버려야 하는 생각이라고 생각을 해. 어떻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게다가 그 사람하고 내가 가당키나 하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절대로 어울릴 수도, 어울려서도 안 되는 사람이니까 너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마.”
“왜 말이 안 되냐?”
채연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내밀었다.
“솔직히 나는 그 사람이 나에게 고백이라도 했으면 얼씨구나 하고 받아줬을 거야. 그런 사람이 고백을 하는 것이 자주 있는 건 아니잖아? 말 그대로 한류 스타라니까? 초일류 스타라고. 요즘에는 드라마 밖에 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대상도 어린 나이에 받고 그랬잖아. 그런 사람이 너에게 고백을 하고 있는 거라니까? 이런 걸 거절하는 사람은 없어요.”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네가 이상하다는 거야.”
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예인이라면, 아니 그냥 연예인도 아니고 돈을 그렇게 잘 버는 데다가, 이미지도 너무나도 좋은 남자인데도 거절을 하다니.
“너 너무 자격지심 있는 거 아니야?”
“자격지심?”
“그래. 그 사람은 너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냥 너라는 여자를 조은비로 보고 있을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런데 너는 너를 그렇게 보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괜히 너 혼자서 마음이 이상해서. 너를 조은비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을 잘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 봐. 너처럼 사는 여자애 그 누가 좋아라 하겠냐? 평범한 사람들도 너 애인감으로 고르지는 않잖아. 다들 너보고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잖아. 그런데 너에게 부족하다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자신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라고 말을 해주는 사람이 나타난 거라고. 너는 그 사람이 너와 달라서 싫다고 하지만, 뭐가 다른 건데?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아. 너 왜 자꾸 그 사람에게 다르다는 것을 강조를 하고 있는 거야? 너희 두 사람이 다른 게 뭔데?”
“모두.”
은비가 싸늘한 말투로 대꾸했다.
“모두 다르잖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잖아. 나는 심지어 우리가 같은 사람인지도 궁금해. 누구는 이런 곳에서 살고 있고, 누구는 저 위에서 살고 있는데. 너는 정말로 같다고 생각을 하니? 나랑 그 사람이랑 같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런 네 생각이야 말로 틀린 거 아니야?”
“은비야.”
“알아. 내 자격지심일 지도 몰라. 그래, 내 자격지심일 거야. 그 남자는 절대로 나의 사람이 될 수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의 자격지심일 거야. 하지만 내 상황에서 자격지심을 안 가질 수도 없잖아? 너무나도 다른데. 우리 두 사람 신분이라는 것 자체가 달라. 이 시대에 신분이 없다고? 너도 신분을 보고 있잖아. 우리가 일을 하는 그 식당에서 우리가 밥을 먹을 수나 있어? 거기서 밥을 먹는 건 미친 짓이야. 미래도 보지 않고 바로 돈을 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런데 그 사람을 봐. 퇴근을 해야 하는 셰프까지 불러서 밥을 차리게 만들었어. 만일 우리들이 부탁을 한다면, 쉐프가 우리의 말을 들어주기나 할 것 같아? 그런 것 부터가 다르다는 거야.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다르다고. 과연 어떤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한 식당의, 정말 대단한 레스토랑의 쉐프의 퇴근까지 미루게 만들어? 아무도 못한단 말이야. 그런 거 자체가 나는 부담스럽다는 거야. 너무나도 달라서 힘이 든다는 거야.”
채연은 가만히 은비를 바라봤다. 은비의 말은 하나도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런 식의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녀 역시도 은비처럼 그런 식의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기회잖아.”
“버려질 기회?”
은비는 싸늘하게 웃으며 반문했다.
“그 사람의 노리개로 머물다가, 그 사람이 잠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 것처럼, 그 자리에서 애교나 부리다가, 결국 그 사람하고 나는 너무나도 다르구나. 이런 거 확인하면서 버려지는. 그런 바보가 되라는 거야? 그런 노리개라도 되라는 거야? 나는 그런 거 되기 싫어. 내 힘으로 할 거라고.”
“노리개를 하라는 것이 아니잖아.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네가 그렇게 될 리가 있겠니?”
“진심이라도. 안 돼는 거야.”
은비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은비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치명적으로 그런 사람을 알고 있었으니까. 은비는 단호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아무튼 싫어. 그러니까 채연이 너도 더 이상 이 일로 왈가왈부 하지 마.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네가 이렇게 말을 하는 거 나 마음이 편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니까 채연아, 제발 알았지?”
“알았어.”
채연이 입을 삐죽이며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편한 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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