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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2]

권정선재 2010. 12. 28. 07:00

 

으왓!”

쨍그랑

아니 조은비 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은비는 계속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다. 처음 접시를 깼을 때는,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놀라지 말아요. 라고 말을 하던 사람들도, 은비가 깨는 접시의 수가 한 장 두 장 늘어나고 보니 점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조금 조심을 하고 해요.”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은비는 쓰레기봉투에 깨진 접시를 넣으면서 다시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평소에 한 두 장 있을 때 닦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는 접시가 정말 쉴 새 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설거지 하는 것이 일이겠어? 라고 생각을 했는데. 들어오는 접시의 수가 장난이 아니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힘들죠?”

? 아니에요.”

아까부터 나름 신경을 써주고 있는 요리사를 보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주방이 전쟁터에요. 밖에서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모르죠. 마치 물 위를 헤엄을 치는 오리처럼 말이에요. 게다가 은비 씨는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하는 거니까. 더더욱 이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될 거야. 접시 밀려도 괜찮아요. 안에 많아. 그러니까 천천히 해요. 손에 익으면 빨라질 거예요.”

고맙습니다.”

요리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멀어졌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접시 없어?”

갑니다!”

접시!”

가요!”

접시 어딨어?”

여기요!”

쉴 새 없이 접시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은비는 쉽게 놀 수도 없었다. 접시만 들어오는 거면 오히려 괜찮을 지도 몰랐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가끔 자신의 손을 찌르는 포크나 나이프는 여전히 불청객이었다.

, 힘들어.”

페이만 세지 않았다면, 그리고 월세만 내지 않아도 됐더라면 그냥 공모전이나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쨍그랑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은비는 다시 열심히 허리를 굽혔다.

 

오 손님 많다?”

너만 안 오면 사람들 잘 와요. 그런데 꼭 대한민국 대표 소설가이자 배우이신 권선재 님이 오셔서 깽판을 놓고 가시니 이 모양이 되는 거 아니냐?”

사장님 오셨어요.”

. 안에 자리 좀.”

.”

선재는 자신의 앞에서는 너무나도 만만하게 굴면서 직원들에게는 왕처럼 대접을 받는 희준을 보면서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너 너무 심하게 구는 거 아니냐?”

뭐가?”

됐다.”

순간 어딘가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났다.

조은비 씨 이거 뭐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냐?”

아이 씨.”

희준은 금방 미간을 찌푸렸다. 대충 들어보니 상황이 딱 나오는 그였다.

아니 주방에서 일을 하던 애가, 일이 너무 많다고 때려 쳤거든. 그래서 급하다고 아무나 고용을 했더니 저 지랄이네.”

누군데?”

몰라. 이런 일 하던 애도 아니야.”

그럼?”

국문과 졸업이래.”

국문과?”

.”

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저런 애를 뽑는 것이 아니었는데 너무나도 급했다.

새로 알바 구하면 나가라고 해야지.”

접시 깰 수도 있지.”

선재가 주방 쪽으로 향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너는 접시 한 번도 안 깼냐?”

쟤가 사장이냐?”

그건 아니지.”

선재는 주방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순간 세상이 모두 멈춘 다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예뻤다. 정말 눈부시게 예쁜 여자가 그곳에 있었다.

권선재 뭐하냐?”

저 여자가 아르바이트라고?”

그런데 왜?”

자르지 마라.”

?”

절대로 자르지 마라.”

선재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저 여자 진짜 예쁘다.”

예쁘다고?”

희준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정상 키에, 정상 체중, 살짝 볼살이 많은 편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어려 보이기도 하고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쁘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는 아닌데.

저 여자보고 하는 말 맞냐?”

맞아.”

그렇게 예쁘지는 않은데?”

예뻐.”

어디가?”

토끼 같거든.”

?”

희준은 미친 놈 보듯이 선재를 바라봤지만, 선재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괜찮아?”

.”

채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홀서빙만 하는 입장이라서 주방의 사정을 잘 모르기는 했지만 접시를 그토록 깨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곱게만 볼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사람들이 막 뭐라고 하지?”

.”

은비가 다리를 주무르면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주방에 있는 것들하고 안 친한 것은 알았거든? 그래도 이토록 안 친한 줄은 몰랐다? 어떻게 내가 손만 대면 다들 그렇게 미끄러지고 난리라니? 다들 나를 엿 먹이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아.”

괜찮겠어?”

.”

홀서빙 자리 나면 바로 알려줄게.”

너 밖에 없다.”

채연은 은비의 어꺠를 주무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꼴이 언제 이 모양이 된 거냐?”

왜요? 그 꼴이 어때서요?”

어머나.”

갑작스럽게 들린 남자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서 본 것 같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 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이 그렇게 힘이 들어요?”

아닙니다.”

은비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아무튼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사내라서 함부로 굴기는 그랬다.

그럼.”

저기 잠시 이야기 좀 하지.”

?”

들어가려는 은비의 팔을 붙잡으며 사내가 씩 웃었다.

할 말이 있어서 말이지.”

일을 해야 하는데요?”

?”

사내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무언가를 누르더니,

아빠 나야. 왜 전화를 하긴. 돈 달라는 거 아니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니 사고 친 거 아니야. 경찰서 아니라고. 무슨 아들을 그렇게 밖에 안 보냐? 아무튼 그런 거 아니야. 여기 희준이 레스토랑인데. 싸운 거 아니라니까? 사람 좀 보내줘. 아니 그런 살마들 말고 말이야. 설거지 할 사람.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설거지. 그래 그릇 닦는. 응 아빠 그거 할 사람 세 사람만 보내줘. 그래.”

선재는 씩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에게 윙크를 했다.

박 이사 그 양반도 보내. . 나한테 엄청 못 되게 굴잖아. 알았어. 응 아빠 일찍 들어갈게. .”

선재는 전화를 끊고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설거지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들어갈 건가? 어차피 할 일도 없으면 나랑 여기서 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 누구세요?”

나를 몰라?”

선재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은비를 바라봤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집에 텔레비전 없나?”

, 있는데요.”

그런데도 권선재를 몰라?”

누구요?”

국문과 나왔다며. 그러면 소설도 좀 읽을 텐데.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젊은 한국 작가 몰라? 권선재. 있잖아. 남잔 다 늑대, 나쁜 남자 아픈 여자, 여왕의 궁전, 악마의 키스, 타락 악마, 아 왜. 보편적 연애, 결혼할까요? 사랑합니다. 굿바이 크리스마스 쓴 사람 말이야.”

아 설마 로맨스 쓰는 남자 권선재요?”

그렇지.”

선재가 연신 미소를 짓자 은비는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대단한 사람이 도대체 여기에 왜 있는 거야?

혹시 첫눈에 반한다는 말 믿나?”

, 첫눈이 뭐요?”

반하는 거.”

그게 뭔데요?”

내가 그쪽한테 반했거든.”

선재가 씩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자 은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도 자신의 분수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반했다고 말을 할 만큼 그렇게 뛰어난 외모를 가지지도 않았다.

장난을 하는 거죠?”

내가 한가해 보이나?”

그런 건 아니지만.”

반했다고.”

누구한테요?”

당신.”

저요?”

은비가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선재는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약간 맹한 짓도 하는 것이 더 매력이 있네. 그럼 여기서 내가 누구한테 반하나? 당신한테 반하지. 꽤나 귀여운 볼살에. 나이는 국문과 졸업이라고 들었으니까 스물다섯 쯤 된 것 같은데. 의외로 어려 보이고. 성격도 그 정도면 괜찮고. 국문과 졸업이니까 나랑 대화도 잘 될 거고. 연애 한 번 해보는 거 어때?”

, 이러지 마세요.”

은비가 선재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며 뒤로 두세 걸음 물러섰다.

왜 이런 장난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네요. 저는 그럼 들어가서 일을 하겠습니다.”

사람 불렀다니까.”

, 이거 왜 이러세요?”

나 참.”

선재가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지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혹시 이런 식으로 남자가 말을 한 적 없나?”

?”

없구나?”

선재는 순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희준의 말처럼 엄청나게 예쁜 여자는 아니니까. 뭐 그거야 자신의 눈에만 예쁘면 돼지.

연애 하자고.”

그쪽이 누군지 알고요?”

다시 말해? 남잔 다 늑대, 나쁜 남자 아픈 여자,”

, 아니 그런 거 말고.”

선재가 다시 자신의 출판물 목록을 말을 하려고 하자 은비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이 남자가 누군지는 알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남자가 누군지는 몰랐다.

아니 도대체 저한테 왜 이래요? 나 알아요?”

아니.”

그런데요?”

말했잖아.”

선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첫눈에 반했다고.”

은비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