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왓!”
‘쨍그랑’
“아니 조은비 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은비는 계속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다. 처음 접시를 깼을 때는,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놀라지 말아요. 라고 말을 하던 사람들도, 은비가 깨는 접시의 수가 한 장 두 장 늘어나고 보니 점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조금 조심을 하고 해요.”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은비는 쓰레기봉투에 깨진 접시를 넣으면서 다시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평소에 한 두 장 있을 때 닦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는 접시가 정말 쉴 새 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설거지 하는 것이 일이겠어? 라고 생각을 했는데. 들어오는 접시의 수가 장난이 아니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힘들죠?”
“네? 아니에요.”
아까부터 나름 신경을 써주고 있는 요리사를 보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주방이 전쟁터에요. 밖에서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모르죠. 마치 물 위를 헤엄을 치는 오리처럼 말이에요. 게다가 은비 씨는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하는 거니까. 더더욱 이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될 거야. 접시 밀려도 괜찮아요. 안에 많아. 그러니까 천천히 해요. 손에 익으면 빨라질 거예요.”
“고맙습니다.”
요리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멀어졌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접시 없어?”
“갑니다!”
“접시!”
“가요!”
“접시 어딨어?”
“여기요!”
쉴 새 없이 접시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은비는 쉽게 놀 수도 없었다. 접시만 들어오는 거면 오히려 괜찮을 지도 몰랐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가끔 자신의 손을 찌르는 포크나 나이프는 여전히 불청객이었다.
“아, 힘들어.”
페이만 세지 않았다면, 그리고 월세만 내지 않아도 됐더라면 그냥 공모전이나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쨍그랑’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은비는 다시 열심히 허리를 굽혔다.
“오 손님 많다?”
“너만 안 오면 사람들 잘 와요. 그런데 꼭 대한민국 대표 소설가이자 배우이신 권선재 님이 오셔서 깽판을 놓고 가시니 이 모양이 되는 거 아니냐?”
“사장님 오셨어요.”
“응. 안에 자리 좀.”
“네.”
선재는 자신의 앞에서는 너무나도 만만하게 굴면서 직원들에게는 왕처럼 대접을 받는 희준을 보면서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너 너무 심하게 구는 거 아니냐?”
“뭐가?”
“됐다.”
순간 어딘가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났다.
“조은비 씨 이거 뭐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냐?”
“아이 씨.”
희준은 금방 미간을 찌푸렸다. 대충 들어보니 상황이 딱 나오는 그였다.
“아니 주방에서 일을 하던 애가, 일이 너무 많다고 때려 쳤거든. 그래서 급하다고 아무나 고용을 했더니 저 지랄이네.”
“누군데?”
“몰라. 이런 일 하던 애도 아니야.”
“그럼?”
“국문과 졸업이래.”
“국문과?”
“응.”
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저런 애를 뽑는 것이 아니었는데 너무나도 급했다.
“새로 알바 구하면 나가라고 해야지.”
“접시 깰 수도 있지.”
선재가 주방 쪽으로 향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너는 접시 한 번도 안 깼냐?”
“쟤가 사장이냐?”
“그건 아니지.”
선재는 주방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순간 세상이 모두 멈춘 다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예뻤다. 정말 눈부시게 예쁜 여자가 그곳에 있었다.
“권선재 뭐하냐?”
“저 여자가 아르바이트라고?”
“그런데 왜?”
“자르지 마라.”
“어?”
“절대로 자르지 마라.”
선재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저 여자 진짜 예쁘다.”
“예쁘다고?”
희준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정상 키에, 정상 체중, 살짝 볼살이 많은 편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어려 보이기도 하고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쁘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는 아닌데.
“저 여자보고 하는 말 맞냐?”
“맞아.”
“그렇게 예쁘지는 않은데?”
“예뻐.”
“어디가?”
“토끼 같거든.”
“어?”
희준은 미친 놈 보듯이 선재를 바라봤지만, 선재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괜찮아?”
“응.”
채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홀서빙만 하는 입장이라서 주방의 사정을 잘 모르기는 했지만 접시를 그토록 깨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곱게만 볼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사람들이 막 뭐라고 하지?”
“응.”
은비가 다리를 주무르면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주방에 있는 것들하고 안 친한 것은 알았거든? 그래도 이토록 안 친한 줄은 몰랐다? 어떻게 내가 손만 대면 다들 그렇게 미끄러지고 난리라니? 다들 나를 엿 먹이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아.”
“괜찮겠어?”
“응.”
“홀서빙 자리 나면 바로 알려줄게.”
“너 밖에 없다.”
채연은 은비의 어꺠를 주무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꼴이 언제 이 모양이 된 거냐?”
“왜요? 그 꼴이 어때서요?”
“어머나.”
갑작스럽게 들린 남자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서 본 것 같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 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이 그렇게 힘이 들어요?”
“아닙니다.”
은비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아무튼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사내라서 함부로 굴기는 그랬다.
“그럼.”
“저기 잠시 이야기 좀 하지.”
“네?”
들어가려는 은비의 팔을 붙잡으며 사내가 씩 웃었다.
“할 말이 있어서 말이지.”
“일을 해야 하는데요?”
“일?”
사내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무언가를 누르더니,
“아빠 나야. 왜 전화를 하긴. 돈 달라는 거 아니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니 사고 친 거 아니야. 경찰서 아니라고. 무슨 아들을 그렇게 밖에 안 보냐? 아무튼 그런 거 아니야. 여기 희준이 레스토랑인데. 싸운 거 아니라니까? 사람 좀 보내줘. 아니 그런 살마들 말고 말이야. 설거지 할 사람.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설거지. 그래 그릇 닦는. 응 아빠 그거 할 사람 세 사람만 보내줘. 그래.”
선재는 씩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에게 윙크를 했다.
“박 이사 그 양반도 보내. 어. 나한테 엄청 못 되게 굴잖아. 알았어. 응 아빠 일찍 들어갈게. 응.”
선재는 전화를 끊고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설거지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들어갈 건가? 어차피 할 일도 없으면 나랑 여기서 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누, 누구세요?”
“나를 몰라?”
선재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은비를 바라봤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집에 텔레비전 없나?”
“이, 있는데요.”
“그런데도 권선재를 몰라?”
“누구요?”
“국문과 나왔다며. 그러면 소설도 좀 읽을 텐데.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젊은 한국 작가 몰라? 권선재. 있잖아. 남잔 다 늑대, 나쁜 남자 아픈 여자, 여왕의 궁전, 악마의 키스, 타락 악마, 아 왜. 보편적 연애, 결혼할까요? 사랑합니다. 굿바이 크리스마스 쓴 사람 말이야.”
“아 설마 로맨스 쓰는 남자 권선재요?”
“그렇지.”
선재가 연신 미소를 짓자 은비는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대단한 사람이 도대체 여기에 왜 있는 거야?
“혹시 첫눈에 반한다는 말 믿나?”
“처, 첫눈이 뭐요?”
“반하는 거.”
“그게 뭔데요?”
“내가 그쪽한테 반했거든.”
선재가 씩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자 은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도 자신의 분수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반했다고 말을 할 만큼 그렇게 뛰어난 외모를 가지지도 않았다.
“장난을 하는 거죠?”
“내가 한가해 보이나?”
“그런 건 아니지만.”
“반했다고.”
“누구한테요?”
“당신.”
“저요?”
은비가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선재는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약간 맹한 짓도 하는 것이 더 매력이 있네. 그럼 여기서 내가 누구한테 반하나? 당신한테 반하지. 꽤나 귀여운 볼살에. 나이는 국문과 졸업이라고 들었으니까 스물다섯 쯤 된 것 같은데. 의외로 어려 보이고. 성격도 그 정도면 괜찮고. 국문과 졸업이니까 나랑 대화도 잘 될 거고. 연애 한 번 해보는 거 어때?”
“이, 이러지 마세요.”
은비가 선재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며 뒤로 두세 걸음 물러섰다.
“왜 이런 장난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네요. 저는 그럼 들어가서 일을 하겠습니다.”
“사람 불렀다니까.”
“이, 이거 왜 이러세요?”
“나 참.”
선재가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지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혹시 이런 식으로 남자가 말을 한 적 없나?”
“네?”
“없구나?”
선재는 순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희준의 말처럼 엄청나게 예쁜 여자는 아니니까. 뭐 그거야 자신의 눈에만 예쁘면 돼지.
“연애 하자고.”
“그쪽이 누군지 알고요?”
“다시 말해? 남잔 다 늑대, 나쁜 남자 아픈 여자,”
“아, 아니 그런 거 말고.”
선재가 다시 자신의 출판물 목록을 말을 하려고 하자 은비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이 남자가 누군지는 알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남자가 누군지는 몰랐다.
“아니 도대체 저한테 왜 이래요? 나 알아요?”
“아니.”
“그런데요?”
“말했잖아.”
선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첫눈에 반했다고.”
은비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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