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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2-1]

권정선재 2010. 12. 29. 07:00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2

 

 

 

그러니까. 월화드라마의 황태자. 권선재가. 로맨스 소설계의 최고 로맨틱 가이라고 불리는 권선재가. 너보고, 그러니까 조은비 너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연애를 합시다. 그렇게 말을 했다고?”

.”

푸하하.”

채연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은비야. 내가 그 말을 믿을 거 같냐? 아가 그 남자가 조금, 그래 아주 조금 괜찮게 생기기는 했다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 너 무슨 꿈꾼 거 아니야?”

채연아, 너 맞을래?”

아니 말이 그렇잖아.”

채연이 쿠션을 다리에 끼고 앉으면서 이상하다는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조은비 인생 25년에 남자라고는 단 하나도, 진짜 단 하나도 없었는데. 그렇게 네 주위에는 수컷이라고는 씨가 말랐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고 하는 남자가 너에게 사귀자고 했다고?”

.”

그걸 믿으라고?”

사실이라니까.”

은비가 짜증을 내면서 채연을 바라봤다.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해서 얻는 게 도대체 뭐냐? 뭔가 이득이 있어야 너에게 거짓말을 할 거 아니야? 하지만 너에게 거짓말을 해서 얻는 거 하나도 없다고. 진짜로, 정말로 그 남자가 나에게 사귀자고 했다니까.”

이해가 안 가네.”

채연은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이리보고, 저리보고, 요리보고, 조리보아도 은비는 그렇게 미인형은 아니었다.

너 동글동글한 거 빼면 매력이 있냐?”

아이구, 칭찬 고맙다.”

그런 게 아니라.”

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은비를 한 바퀴 돌았다.

정신 사나워.”

가만히 있어봐.”

그렇게 몇 바퀴를 더 돌던 채연이 갑자기 은비의 앞에 철퍼덕 앉았다. 그리고 심각하게 은비를 들여다봤다.

우리 은비가 그 동안 피곤해서 정신이 좀 갔나?”

맞을래?”

그런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래?”

됐다. 됐어.”

은비는 손을 탁탁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같은 년이랑 이야기를 하려고 한 내가 등신이지. 밥 먹을래? 뭐 먹을래? 오늘은 내가 할게.”

네가 하면 안 먹어.”

? ?”

네 요리 솜씨 모르냐?”

채연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혀를 찼다.

계란프라이 하나 할 줄 모르는 년이 밥을 한다고 나서기는, 됐어. 내가 할 거니까 나와. 네가 하면 괜히 치울 거만 많아지고, 먹을 수도 없는 거 나와. 우리나라 기아가 몇인데 그런 걸 두냐?”

친구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주방에서 본 거 있거든.”

됐습니다.”

채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로 은비를 밀쳐냈다. 은비의 음식은 요리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별로였다.

우리 뭐라도 시켜먹을까?”

?”

은비가 울상을 지으면서 채연을 바라봤다.

자취를 하면서 제대로 뭐라도 해먹을 생각을 했는데, 매일 같이 식당에 나가서 사먹는 밥이 아니면 시켜 먹는 요리라니. 우리 여자들 맞니?”

여자들이라고 꼭 요리 잘 하냐?”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는 심하잖아.”

뭐가 심해?”

전단지를 뒤적거리던 채연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너는 무슨 여자애가 그런 차별에 잡혀 있어? 여자라고 꼭 요리를 잘 하라는 법이 있나? 없지. 그리고 나는 너보다 요리 잘 하거든요. 매일 혼자서 하는 것이 힘이 들어서 안 하는 거지. 피자 어때?”

느끼해.”

자장면은?”

더 느끼해.”

치킨은?”

장난하냐?”

흐음.”

채연은 전단지를 뒤적이면서 입을 내밀었다. 매일 같이 시켜먹다보니 채연 역시도 끌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짜로 맛있는 거 먹고 싶다.”

나는 집밥이면 다 좋을 것 같아.”

은비는 책상에 늘어지면서 슬프게 중얼거렸다.

집에서는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구질구질한 것들 아시고 계실까? 아마도 엄마랑 너희 어머니는 모르시겠지?”

우리 엄마 알면 큰 일 나.”

채연도 울상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뭐 맛있는 거 먹고 싶어도, 돈도 없고.”

우리가 일하는 식당 비싸?”

거기? 얘가 우스운 소리 하기는. 거기 초일류야. 우리 한 달 월급 다 모아도 밥 한 끼 사먹는 것도 어려울 걸?”

그렇게 비싸?”

.”

말도 안 돼.”

은비가 잔뜩 울상을 지었다. 누구는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서 버는 돈을 겨우 한 끼에 쓰는 사람들도 있다니.

불공평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도 노력할 맛이 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거절을 당하셨다?”

그래.”

희준은 재미있다는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천하의 권선재도 여자를 낚는데 실패하는 순간이 있구나.

이제 너도 한 물 간 거 아니냐?”

아니거든.”

선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팔짱을 꼈다.

일단 그 여자는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내 얼굴만 보더라도 딱 하고, 와우. 라고 외치는데 그 여자는 그런 것이 없었다고. , 이렇게 되면 진심으로 다가가는 거지.”

진심?”

희준이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하의 권선재에게 진심이라는 것이 있었나? 내가 너랑 지내면서 네가 얼마나 많은 여자를 갈아치우는 지 봤거든. 그런데 지금 네 입에서 진심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는 거냐? 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아?”

비꼬기는.”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면서 선재가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그 여자는 진짜 느낌이 달랐단 말이야. 그냥 뭐라고 해야 하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기분이 되게 좋았어. 정말로 좋았다고. 그나저나 희준아 나 부탁 하나만 하자.”

뭔데?”

그 사람 번호 좀 주라.”

싫어.”

희준은 잠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선재의 부탁을 거절했다.

네가 그 사람의 번호를 직접 가지지 않으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 그리고 너는 사장이 직원 번호나 알려주는 일을 하는 걸로 보이냐? 나는 우리 직원들을 무지하게 사랑하거든. 그 직원이 비록 접시를 무진장 깨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직원 정보를 너 같이 파렴치한 바람둥이에게 넘길 생각은 전혀 없다. 괜히 우리 직원 마음만 상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까칠하기는.”

선재가 낮게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뭐가 어쩔 수 없어?”

네가 그 사람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매일 같이 레스토랑에 와야 할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그 여자 번호를 얻을 때까지, 계속 트위터로 너희 음식점 별로라고 이야기나 해야겠다.”

너 그거 허위사실 유포야.”

허위사실이라니? 내가 몇 번을 말을 하냐? 인간적으로 너희 레스토랑 음식 맛이 있지 않다니까?”

그게 맛 없는 거냐?”

겸사겸사.”

선재의 능글맞음에 희준은 가슴을 두드렸다. 아무리 오랫동안 부딪히더라도 이 녀석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나저나 신기하다. 천하의 권선재가 어떤 여자에게 빠진다는 게 말이야. 그러고보면 너도 사람이야.”

? 뭐라고 생각했냐?”

악마.”

실 없는 놈. 아무튼 그 여자 번호 좀 줘.”

싫다니까?”

정말 그럴 거야?”

선재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두 사람 가장 친한 친구인데, 너는 나에게 겨우 번호 하나 안 가르쳐주는 거라고? 너무한 거 아니냐?”

겨우 번호 하나가 아니지. 그건 엄연히 한 사람의 신상정보라고요. 학창시절부터 나는 누가 번호 달라고 하면 은근히 기분이 나쁘더라. 직접 알아내면 되는 거지. 그걸 왜 그런 식으로 알려고 그래?”

됐다. 됐어.”

선재가 남은 코코아를 다 마시고 자리에 일어나며 살짝 미간을 모았다.

친구라는 자식이 쪼잔해서. 네가 그거 알려주면 김태이 번호 알려주려고 했는데. 뭐 네가 싫다면.”

친구.”

돌아서려는 선재의 옷자락을 희준이 재빨리 잡았다.

정말 김태이 번호를 알려주는 거야?”

, 그 여자 번호를 알려준다면 말이야.”

이건 진짜 싫은데.”

희준은 살짝 볼을 부풀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직원명부를 살폈다. 그리고 쪽지에 번호 하나를 적어서 선재에게 건넸다.

하여간 너는 집요한 놈이야.”

헤헤, 땡큐.”

선재는 그것을 안주머니에 잘 집어넣었다.

그럼 나는 갈게.”

김태이 번호는?”

내가 미쳤냐?”

! 권선재!”

선재는 희준이 뒤에서 고함을 지르는 것을 들으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일단 그 여자에게 연락은 할 수 있게 되었다.

 

형 뭐해요?”

? 아무 것도.”

대본을 보다말고 실실거리는 선재를 보며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했다. 항상 프로패셔널한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웃고 있는 거지?

오늘 녹화 언제 끝난대?”

두 씬 남았으니까, 한 네 시간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네 시간?”

선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현장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많이 걸리는 거야?”

아시잖아요. 신인배우 원주연. 갑자기 인기를 얻는 바람에 대본도 제대로 안 외우고, 아무튼 마음에 안 들어요.”

미치겠네.”

선재는 잠시 고개를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어디 가요?”

원주연한테.”

거기는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