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6
“이제 끝나는 겁니까?”
“절 기다리신 거예요?”
“그럼요?”
선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이렇게 맛 없는 식당에 밥이라도 먹으려고 왔을 것 같습니까? 저 은비 씨가 생각을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입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랄을 하기는.”
마무리를 하고 나오던 희준이 다시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여간 이 놈은 좋게 대꾸를 하려고 해도 자꾸만 입에서 욕이 나오게 하고 있었다.
“3주나 시간을 주기로 했다면서요?”
“네? 네.”
“그거 헛수고입니다. 이 녀석 그렇게 오래 공을 들일 필요도 없는 놈이에요. 그럴 가치가 없다니까.”
“말 예쁘게 한다.”
“이 정도면 예쁘지.”
은비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낮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녀의 미소를 본 선재는 더 활짝 웃었다.
“앞으로도 웃어요. 지금 웃는 거 너무 예쁘다. 나 생각을 해보니까 조은비 씨가 웃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웃어요. 웃으니까 좋네. 이렇게 좋은 웃음을 왜 그 동안 안 보였을까?”
“네? 그, 그게.”
“일일이 그렇게 반응을 할 필요는 없어요. 이 녀석이 하는 말 중에 대다수는 립서비스니까.”
선재가 자신을 노려보자 희준은 헛기침을 했다.
“나 좀 태워주라.”
“네 차는?”
“정비소에 있어.”
“싫다. 나는 은비 씨 집에 데려다 줘야 해. 그러니까 너는 돈도 많은 놈이니까 택시라도 타고 가세요.”
“내가 돈이 어디에 있냐?”
“저기, 저는 괜찮으니까 사장님 태워다 드리세요. 두 분 친구 사이시니까. 저는 여기서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 더 편해요.”
“거짓말.”
은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재가 입을 내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은비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내가 조은비 씨 집을 안 가봤습니까? 거기가 지하철 역이랑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있습니까?”
“그래도 그 정도면 역에 가깝죠.”
“모르겠습니다. 전철은 타본 적이 없어도 초역세권에 사는 사람으로, 그런 곳은 지하철 역이랑 먼 곳이에요. 그리고 조은비 씨 나에게 3주라는 시간을 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내가 데려다 줄 겁니다.”
“그건 이야기가 조금 다르죠.”
은비가 재빨리 항변했다. 이 남자 3 번의 데이트를 자신의 멋대로 3주라는 시간으로 늘리고 있다.
“그건 권선재 씨가 딱 3번 데이트를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한 것이잖아요.”
“네 3번의 데이트. 그런데 그 기간 사이사이 전화를 하면 다 받으라고 했잖아요. 그 말은 기억이 안 나나요?”
“기억은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데려다줄 필요까지는 없는데. 나 아직 권선재 씨 되게 많이 불편해요. 그러니까 권선재 씨랑 자꾸만 더 오래 있으면 나쁘게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몰라요.”
“그건 안 되는 건데.”
“지랄을 하기는.”
희준은 재빨리 선재의 손에서 차키를 낚았다.
“너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지 말고. 은비 씨 집 가는 길에 나 떨궈 주면 되잖아. 어차피 나 가는 길에 있는 것 같던데. 은비 씨 사는 곳 부천 맞죠?”
“네. 맞아요.”
“나 신월동 사니까. 가는 길에 떨궈주면 되는 거야. 뭘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어. 은비 씨 나도 타도 괜찮죠?”
“네.”
“마음에 안 드는 놈.”
선재는 다시 희준의 손에서 차키를 빼앗아 오면서 입을 내밀었다. 어떻게 단 둘이 데이트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이 눈치 없는 놈이 끼어들게 될 줄이야.
“너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이다.”
“누가 할 말인데?”
은비는 두 사람이 정말 친구가 맞는 것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도 서로 험한 말을 하면서도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얕은 우정은 또 아닌 모양이었다. 은비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만!”
“왜?”
“왜? 네가 앞에 타냐? 내 옆자리인 조수석은 은비 씨 자리야. 그러니까. 차희준. 너는 얌전히 뒤로 가세요.”
“치사한 새끼.”
희준은 앞문을 소리나게 닫고 뒷문을 열고 뒷자리에 앉았다. 선재는 잠시 고개를 젓더니 앞문을 열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타요.”
“고, 고맙습니다.”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선재와 함께 있으면 은비는 늘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미안해요. 희준이 이 자식이 눈치가 없어서. 평소라면 그냥 갈 텐데 오늘은 왜 이렇게 붙으려고 하는지.”
“은비 씨 지키려고 한다.”
희준이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은비 씨는 이 자식이 얼마나 나쁜 놈인 줄 모르죠? 겉으로는 상냥한 척 하고 있기는 한데 그렇게 좋은 놈은 아닙니다.”
“하여간.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은비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투닥거리면서도 좋은 사이였다.
“두 분은 언제부터 친구가 되신 거예요?”
“운이 나쁘게도 선재 저 녀석하고는 유치원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사이입니다. 너무나도 애석한 일이죠.”
“누가 할 소리.”
“사이가 참 좋아 보여요.”
은비의 말에 두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은비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거예요?”
“아니, 은비 씨가 보기에는 저하고 선재 이 자식이 사이가 좋아 보인다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뭐 저런 원수 사이가 다 있냐고 이야기를 하는데, 은비 씨는 참 사람 보는 눈이 다른 것 같아요.”
“다 좋아서 그러는 거잖아요.”
은비가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이 정말로 좋아서 자꾸만 투닥거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가 말을 하는 것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거라면 얼굴도 보지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오늘은 친구가 안보이네요?”
“아, 그 친구 오늘 쉬는 날이에요.”
“쉬는 날이 달라요?”
“네.”
은비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레스토랑은 쉬는 날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잖아요. 그렇다고 직원들이 쉬지 않을 수도 없는 거고 말이에요. 그래서 돌아가면서 서로 쉬고 있어요. 그래야 공평한 거니까 말이에요.”
“친구야.”
“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던 희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또 뭐라고 하려고?”
“다음부터는 은비 씨랑 채연 씨 같은 날 쉬게 해주면 안 되는 거냐? 한집에 사는 사람인데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안 되는 거야.”
“왜?”
“불공평한 거잖아. 다른 사람들은 뭐 같이 쉬지 않고 싶어서 안 쉬는 줄 알아? 그래도 다들 감안하면서 일을 하는 거야. 다 같이 고통을 분담을 하는 거라고. 그런데 너는 네 여자친구를 그런 일도 안 하는 안하무인으로 만들고 싶냐? 그런 일 해주면 정말 편하게 일을 할 것만 같아?”
“성질은.”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뭐 그렇게 어려운 부탁을 한 거라고 저렇게 펄펄 뛰는 것인지.
“은비 씨도 채연 씨랑 같이 쉬는 것이 좋죠?”
“아니에요. 꼭 같이 쉬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장님이 말씀을 하신 것처럼, 다들 자신이 쉬고 싶은 날에 쉬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게다가 사장님께서는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매일 같이 회사에 출근을 하시는 걸요? 그걸 보면 그러려니 해야죠.”
“너 매일 출근하냐?”
“몰랐냐?”
희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은 친구라는 녀석이 자기 친구가 일을 하는 날도 모르고 있었다.
“너는 엄청나게 좋은 집에 살아서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집안의 태생이 아니라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레스토랑에 사장 없으면 자질구레한 일들은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는 거냐?”
“대단하다.”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소에도 희준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보니 정말 장난 없이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내려라.”
“벌써 다 왔냐?”
“그래.”
희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스마트폰을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살짝 선재를 향해 미간을 모으더니, 바로 은비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조은비 씨는 모레 봅시다.”
“네.”
희준이 내리자 선재는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저 자식은 애초에 이 차를 왜 타서, 은비 씨 뭐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우리 영화라도 보고 갈까요?”
“아니요.”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선재 씨에게 말을 했잖아요. 우리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날은 딱 사흘 뿐이에요. 그리고 다른 시간은 마치 연인인 것처럼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연인은 아닌 거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서 끝. 데려다 주는 것만 하더라도 너무 감사하니까, 그리고 선재 씨도 피곤하잖아요.”
“나는 안 피곤한데.”
선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미소를 보는데 뭐라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쁜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좋아요. 내가 은비 씨에게 한 말도 있고 하니까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을게요. 내가 처음부터 은비 씨에게 딱 3번의 데이트를 주라고 한 거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더 뭐라고 하지는 않을게요.”
“드라마를 찍는 일은 힘이 들지 않아요?”
“네.”
선재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은 힘드네 뭐하네 말을 하곤 하지만 단 한 번도 선재는 그렇게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저는 일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요.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즐겁고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 눈에 저는 그저 배우이자 소설가인 권선재가 아니라,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권선재가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나도 재미가 있더라고요. 평소의 저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가 있잖아요. 특히나 그 일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는 사람들이니까.”
“부러워요.”
“네?”
선재가 고개를 돌려 은비를 바라봤다. 부럽다고? 내가? 선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은비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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