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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0-2]

권정선재 2011. 1. 15. 07:00

 

그렇게 부산을 떤 끝에 약국에서 가져온 시럽 병을 세척을 해서 물을 맞춘 선재가 끓인 라면이 완성이 되었다.

어서 들어요.”

이거 엄청 대단한 라면이네요.”

그렇죠?”

은비는 살짝 의심을 하면서 라면을 한 입 먹었다. 그런데 부산을 떨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 밤에 고생을 하다가 먹어서 그러는 것인지 쫄깃하고, 국물 맛도 그리 느끼하지 않고 좋았다.

맛이 어때요?”

좋은데요?”

그렇죠.”

선재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희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렇게 띄워주면 안 되는 건데.

아니 라면 회사에서 미쳤다고 뒤에 라면 만드는 법을 적어 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라면을 못 끓이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말이에요. 다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적혀 있는 거라니까요? 사람들이 그 사소한 진실을 몰라요. 기본만 맞추면 되는 건데 말이에요.”

, 그럴 수도 있고.”

은비 씨는 라면 잘 끓여요?”

?”

갑작스러운 희준의 질문에 은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라면은 고사하고 달걀 프라이 조차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저는 밥물도 잘 못 맞춰요.”

밥물 그거 어려운 거예요.”

아니.”

희준이 그녀의 편을 들어주려고 하자 은비는 더욱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도 여자라면 당연히 요리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다 여자 망신 다 시키는 건지 모르겠네.

전기 밥솥이요.”

?”

선재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그거 눈금다 있잖아요.”

.”

그런데도 못 맞춰요?”

은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희준과 선재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 어떻게 그걸 못 맞춰요? 그거 그냥 물을 거기에 딱 맞춰서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은비 씨가 주방에서 접시를 그렇게 많이 깨먹는 데는 이유가 다 있었네요. 조은비 씨는 부엌이랑 원래 어울리지 않는 유전자를 가지고 계셔서 그런 모양이에요. 이거 고려를 해봐야 겠는데요.”

두 분 다 놀리지 마세요.”

은비는 볼이 붉어진 채 라면을 냄비채 들고 국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럼 재미있게 놀다 갑니다.”

네 조심히 가세요.”

선재 녀석이 씩 웃어주는 것을 보고 희준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늦은 밤 갑자기 들어와 우당탕탕 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라면 물도 맞추는 놈이 좋아하는 여자가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라니. 되게 아이러니하네.”

희준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내일부터 할 일이 생겼어요.”

할 일이요?”

은비가 고개를 갸웃하며 선재를 바라봤다.

무슨 할 일이요?”

은비 씨 요리를 가르치는 거요.”

? 나에게 요리를 가르친다고요?”

그렇게 어려운 것들을 가르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기초가 되는 요리들. 그런 걸 가르쳐줄게요.”

싫어요.”

은비는 명랑하게 대꾸하며 먼저 차에 올랐다.

그런 거에 취미는 없어요.”

그래도 할 줄 알아야죠. 이제 요리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생존 수단에 더 가까워졌다니까요?”

권선재 씨 나 좋아한다고 했죠?”

? .”

그럼 된 거네. 나 좋아해서 내가 권선재 씨를 좋아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평생 요리를 해주면 되겠네.”

뭐라고요?”

선재는 금새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재미있는 여자였다. 왜 자신이 빠져든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

은비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 남자와 있는 것은 즐거웠다.

 

여기가 어디에요?”

낙산이요.”

낙산.”

서울에 이런 곳도 있었어요?”

성벽이 길게 늘어져 있고 꽤나 높은 지대였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것이 꽤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 좋다.”

이건 괜찮지?”

그런데 권선재 씨. 왜 아까부터 은근슬쩍 말을 놓고 그래요? 이래뵈도 서로 존중해야 하는 사이에.”

에 치사해.”

선재는 살짝 볼을 부풀렸다. 그런 선재의 모습에 은비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때때로 귀여운 구석도 있는 남자였다.

이거 하나는 좋네.”

진짜지?”

. 좋아요. 늘 가슴이 답답했거든요. 어딘지 꽉 막혀 있고. 내가 지금 뭘 하는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에 오니까 그 답답한 것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아요. 마음이 편해서 좋아요.”

나도 여기에 마음이 불편하면 오곤 해요.”

선재가 은비의 옆에 나란히 서서 서울을 바라봤다.

그 속에 들어가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동네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삭막한 동네이지만 이렇게 나오면 아름다운 곳이니까요. 다양한 이야기들도 보이는 것 같고, 저마다 저 속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을 하면 재미가 있기도 하고, 또 이곳에 있으면 알아보는 사람도 없더라고요. 그냥 배우 권선재가 아닌, 작가 권선재가 아닌. 사람으로 있을 때 참 좋아요.”

그런 감상적인 면도 있었어요?”

그럼요.”

선재가 으스대는 표정을 짓자 은비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게 다예요?”

뭘 더 바라요?”

아니, 조금은 싱겁다고 해야 하나? 날씨도 춥고, 우리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럴 줄 알았죠.”

선재가 씩 미소를 짓자 은비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뭘 알아요?”

차에 타봐요. 일단.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요.”

재미 없기만 해봐요. 두 번째로 노라는 대답을 할 테니까요.”

오케이.”

은비는 살짝 의심이 가는 표정으로 선재의 차에 올랐다. 선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라디오를 켜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거 보여준다면서요?”

, 정정. 들려줄게요.”

선재는 수상한 미소를 지으면서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사연과 신청곡 시간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분이 출석체크를 해주셨네요. 배우이자 소설가인 권선재 씨의 사연과 신청곡인데요. 아마도 지금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서울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지만 마음이 가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있는데요. 이 사람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자꾸만 두근 거려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이런 제 마음이 진짜라는 것을 모르고 자꾸만 이리 도망을 가고, 저리 도망을 가서 속이 상하게 만드는 그 사람이지만, 그래도 제가 아끼는 사람이기에 그런 모습까지도 다 귀엽게 보이고 사랑스럽게만 느껴집니다. DJ. 이 사람과 제가 행복할 수 있도록 바라주시길 바랍니다. 우와. 권선재 씨의 스캔들을 저희가 가장 먼저 소개를 하는 것인가요? 이거 재미있는 일인데요. 권선재 씨의 속을 썩이는 여성 분. 더 이상 속 썩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래저래 권선재 씨를 만나고 나름 친한 사이도 유지를 하고 있는데요. 그 사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정말 제대로 할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두 사람이 서로 진심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 권선재 씨의 신청곡, 현빈이 부른 그 남자 들려드리겠습니다.’

이게 뭐예요?”

뭐긴.”

은비는 놀란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놓았을 줄이야. 꽤나 열심히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조은비라는 사람을 제대로 감동을 시키려면 일단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어야 겠더라고요. 그러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더라도 당신이라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는 것이 쉽지도 않고 말이에요. 그래서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을 했더니, 이 방법이 떠올랐어요. 라디오 사연. 어때요? 느낌이.”

좋아요.”

은비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을 했을 줄은 몰랐어. 맨 처음에 백화점 데이트에서 어이가 없었던 당신하고는 또 다른데요?”

그것도 정말 노력을 한 거라니까.”

나는 이게 더 좋아요.”

나 참.”

선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백화점을 빌리는 데 내가 돈을 얼마나 많이 쓴 줄 알아요? 이건 그냥 전DJ랑 사이가 좋아서, 그냥 그 형님께 부탁을 한 건데. 백화점은 진짜로 고생 많이 한 건데. 닿는 연줄도 없어서 고생을 했고. 그런데 조은비 씨가 이쪽이 더 마음에 든다고 하니, 그래도 기뻐해야 하는 거겠죠?”

이게 지치이 되겠죠.”

은비가 금방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하자 선재는 팟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겨요?”

당신이라는 여자가 웃겨요.”

그래서 이 신청곡이 권선재 씨 마음이에요.”

아니요.”

그럼 이거 왜 신청을 한 거예요?”

내가 현빈을 좋아해서?”

, 뭐야?”

뭐긴. 내 마음이지.”

은비는 이 남자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지만, 이 남자와 있으니 피곤함도 조금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집에 들어가면 안 될까요?”

집에는 왜요?”

피곤해서요.”

? 같이 있기로 해놓고는.,”

제발.”

은비가 바로 두 손을 모았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잠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외간 남자 앞에서 잠을 자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딱 다섯 시간만 있다가 봐요.”

오케이. 그럼.”

선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집으로 모시죠.”

은비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