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1
“그럼 정확히 다섯 시간 있다가 다시 벨 누를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알았어요. 추운데 어서 차에 가요.”
“들어가는 것은 보고 가야죠. 그게 당연한 예의인데.”
“예의는 무슨.”
은비는 살짝 눈을 흘겼다. 선재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비는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자 선재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아, 피곤해.”
선재는 기지개를 켜며 차로 향했다.
‘똑똑’
“흐음.”
‘똑똑’
“아우, 누구야.”
‘똑똑’
“흐음.”
선재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짓는 은비를 보면서 천천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이제 일어났네요.”
은비가 빙긋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하자 선재는 얼굴이 붉어졌다. 완전 제대로 이미지를 구기게 생겼다.
“어, 어서 타요.”
“됐어요. 집에 들어가서 자다가 조금 있다가 다시 나와요. 나 집안 일도 하고 그러면 되는 거니까.”
“싫어요.”
선재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면서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말을 했다. 은비는 그런 선재가 귀엽기만 했다.
“정말 안 피곤해요?”
“안 피곤해요.”
“그나저나 연예인이라는 사람이 대단하기도 해. 어떻게 길거리에서 잠을 잘 생각을 다 하고 있냐?”
“이게 길거리에요? 차 안이지.”
“아무튼.”
안전벨트를 메면서 은비가 가볍게 고개를 젓자 선재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 이렇게 그녀 앞에서 이미지를 망칠 생각은 없는데.
“저기 선재 씨.”
“네?”
“입에 침.”
“네?”
“침 자국 있다고요.”
선재는 황급히 거울을 확인했다. 하얗게 침 자국이 남은 얼굴을 보니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이게 무슨 쪽이야?
“이, 이거 침이 아니라. 피부가 건조해서 지금 각질이 일어난 거예요. 절대로 은비 씨가 생각을 하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얼굴이 원래 건조해서, 잠만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이렇게 하얗게 번지더라고요.”
“알았어요.”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그녀가 자신을 배려해주는 것을 알기에 선재는 재빨리 물티슈를 꺼내서 입주위를 닦았다.
“이제 됐어요.”
“뭐가요?”
“아, 아니에요.”
은비는 가만히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 배고픈데.”
“배가 고파요? 아 맞다. 은비 씨 아침 안 먹었죠?”
“그런데 선재 씨는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시간이요?”
선재는 황급히 시계를 살폈다. 시간이 벌써 1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밖에서 나를 보고 있던 거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무슨?”
“나 오늘 되게 늦잠을 잤거든요. 그래서 간 줄 알았는데. 있어서 다행이에요. 선재 씨가 자고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니까. 나는 괜히 미안하고 막 그랬거든요. 그런데 선재 씨도 자고 있었다니까 마음이 푹 놓여서. 그리고 선재 씨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 아주 조금은 정리가 되었어요. 전에는 무조건 나랑 다른 사람이라고만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 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늦잠을 자서요?”
“아니.”
은비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침 흘리고 자서.”
“아이 침 아니라니까.”
“그렇다고 쳐두죠.”
“아니.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안 가요?”
선재는 입을 잔뜩 내밀었다. 이 여자 은근히 고단수다.
“뭐야? 또 동대문으로 온 거예요? 선재 씨는 알고 있는 장소가 동대문 하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첫 날이잖아요.”
선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부터 너무 좋은 걸 해주면 나중에는 이쪽에서 부담이 되는 법이라고요. 늘 새로운 데이트를 구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알아요?”
“그래서 서울이다. 그러면 서울 좀 넓게 쓰시지. 동대문 쪽에서만 노는 이유가 뭘까요? 나는 그 깊은 속을 모르겠네.”
“놀리지 좀 말아요.”
선재는 금새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워서 붉어진 것인지 분해서 붉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화끈 거리니 더욱 부끄럽게 생각이 되었다.
“그 망할 잠만 자지 않았더라도, 사실은 이게 아침이거든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을 먹여주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은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여기가 선재의 어머니가 운영을 하는 식당이라도 되는 건가? 설마 벌써 가족을 보여주는 건가?
“아, 아니죠?”
“뭐가요?”
“아니, 우리가 만난지가 얼마나 된다고 가족을 보여주려고 그래요? 어머니는 그냥 나, 나중에 우리 사이가 더 깊어지면. 그 때 알려드리는 것이 어때요? 괜히 우리 두 사람 어떤 사이가 될지도 모르는데 어머니께 이상한 기대 같은 거 심어드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마음 약하신 어머니 놀래켜 드릴 생각은 하지도 말고. 네? 오늘은 그냥 무, 무난한 곳,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서 밥을 먹는 것이 어때요?”
“갑자기 무슨.”
순간 선재의 얼굴이 요상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라는 말에 그의 모친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의 모친은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정말 최악의 손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선재가 요리에 그토록 까다로워진 거였는데.
사실을 말을 해주려다가. 그녀의 표정을 보니 조금 더 장난을 치고 싶기도 했다. 얼굴이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그래도 우리 두 사람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요.”
“알았어요.”
“네?”
더 이상 장난을 하면 이야기가 조금 더 심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은비가 꽤나 강하게 반응이 나오자 은근히 서운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희 어머니 아니에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식당이라 은비 씨랑 같이 오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아, 그래요.”
은비는 금새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전까지 괜히 혼자서 이상한 오해를 해서 열을 낸 것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그, 그럼 들어가요.”
“은비 씨 먼저 들어가요. 금방 갈게요.”
“네.”
은비가 차에 내리고 선재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그리 낯선 일일까? 하지만 곧 미소를 짓는 그였다. 그래. 만난 지가 언제나 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놀랐을 거였다. 자신이 너무나도 성급하게 굴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니까.
'★ 블로그 창고 > 라.남.밥.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2-1] (0) | 2011.01.18 |
---|---|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1-2] (0) | 2011.01.17 |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0-2] (0) | 2011.01.15 |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0-1] (0) | 2011.01.14 |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9-2] (0) | 2011.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