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2
“형 왜 이제 오시는 거예요?”
“무슨 일이야?”
선재가 들어서자 마자 매니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에게 바로 달라 붙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그리 가벼운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형 빼라고 하셔요.”
“뭐?”
선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드라마에서죠. 어디에서에요. 형이 지금 드라마 말고 또 뭐 하는 거 있는 거도 아니고 말이에요.”
“아니 왜?”
선재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어제 회식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이런 식의 보복을 하는 건가?
“회식 때문이야?”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그게.”
매니져는 살짝 아랫입술을 물었다. 사실을 이야기를 했을 때 선재의 반응을 생각을 하면 숨기는 것이 옳았다.
“그게 뭐?”
“원주연 씨 측에서.”
“머?”
선재는 미간을 잔뜩 모았다.
“원주연 쪽에서 또 뭘 한 건데?”
“아무튼 되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그랬어요. 게다가 형도 알고 있잖아요. 이 드라마가 대박이 나는 것에 대해서 다들 원주연 그 사람 때문이라고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반응도 좀 그렇고.”
“나 참.”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드라마가 성공을 하는 것은 탄탄한 대본과 함께 환상적인 연출력이 뒷받침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 주연이 맡고 있는 역할은 그 누가 맡더라도 대박을 칠 수 있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도대체 방송국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걸까?
“감독님은?”
“당연히 안 된다고 펄쩍 뛰셨죠. 감독님이랑 형이랑 이번에 한 것이 첫 작품도 아니고 말이에요.”
“그런데도 빼라고?”
“네.”
매니져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이번 드라메에서 가장 페이가 세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페이가 센 것 만큼 형에게서 바라는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면서, 형을 중간에 하차를 시키는 것이 어떨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말이 돼?”
선재가 손부채질을 하면서 소파에 주저 앉았다.
“아니 지금 계약을 한 것도 있고 말이야. 그건 당연한 예의로 갖춰야 하는 부분이 아니었나?”
“설마 진짜로 나가라고야 하겠어요. 아무튼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나 참.”
선재는 당혹스러웠다. 이런 식의 대우를 받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러니까 원주연 그 쪽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국장님도 거기에 홀라당 넘어갔다는 거지?”
“네.”
“정식으로 제안이 온 건가?”
“네.”
“후우.”
선재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이쪽에서 무릎을 꿇고 약하게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만 둔다고 해.”
“네?”
매니저가 놀란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형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해요? 그거 드라마 지금 50부작 짜리잖아요. 이제 막 20부 넘어가고 있는 판국에, 여기서 갑자기 하차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내가 먼저 나간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 방송국의 국장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일개 배우가 무슨 힘이 있나? 배우는 그냥 방송국에서 정해주는 데로 할 수 밖에 없는 거잖아?”
“형.”
매니져는 당혹스러웠다. 설마설마 했는데 선재가 정말로 고개를 끄덕이니까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너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은데?”
“아니, 국장님을 만나서 이건 아니라고, 이런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하면서 다시 해야 하는 거잖아요.”
“싫어.”
선재는 살짝 어깨를 으쓱하면서 간단히 대답했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절절 맬 필요가 있나? 솔직히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형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요?”
매니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선재를 바라봤다.
“형 이러면 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방송국에서도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요. 형 이러는 건 아니죠.”
“지금 내가 잘못을 했다는 거야?”
“형이 잘못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매니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재의 성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일단 만나보면 안 돼요?”
“응.”
“형!”
“안 된다고.”
선재가 하품까지 하자 매니저는 더욱 당혹스러웠다. 선재는 확실히 이 일에 대해서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국장님께 가서 뭐라고 하라고요?”
“안 한다고.”
“정말로요?”
“정말로.”
“뭐?”
주연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로 안 한다고 했다는 거야?”
“그래.”
주연의 매니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연이 당혹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기에, 일단 주연이 하자는 것에 다 동의를 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국장님은?”
“나가라지.”
“미치겠네.”
주연은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이 드라마에서 선재가 가지고 있는 자리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자리보다 커다랬다.
“우리한테는 뭐라고 안 그래?”
“별 말이 없던데.”
“다 알고 있을 텐데.”
주연은 팔짱을 꼈다. 속이 바싹바싹 타오고 있었다. 분명히 선재라면 그냥 넘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모르겠는데.”
매니져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주연은 더 화가 났다.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만 두겠다고?”
“네.”
국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선재의 매니저를 바라봤다. 아무리 인기가 있는 텔런트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게 지금 제대로 하는 태도인가?”
“그게.”
국장 앞에서 절절 매고 있는 매니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절절 매고 있는 가운데.
‘똑똑’
“누구야!”
“접니다. 권선재.”
국장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들어오지.”
선재는 당당히 들어와서 매니저의 팔목을 붙잡았다.
“나가자.”
“형!”
“나가자고.”
“지금 뭘 하는 것인가?”
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제가 듣기에는 분명히 국장님께서 저를 나가라고 했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하던데요? 아니신가요?”
“그거야 맞지만.”
“그래서 나가겠다는 겁니다.”
“허 참.”
국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나간다는 것이 말이 된다는 건가?”
“말이 안 될 것은 또 무언가요? 제가 생각을 하기에 저는 무례하게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라고?”
“위약에 대한 책임은 물지 않겠습니다. 배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뭐 어떻게 할 도리도 없지 않습니까?”
“고쳐야지!”
“죄송합니다.”
선재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드는 그의 표정에는 미안하다는 표정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이제 그만 두면 되는 겁니까?”
“권선재 씨.”
“그럼.”
선재는 그대로 매니저의 손을 붙들고 국장실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매니저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아니, 형은 여기 와서 이러면 어떻게 해요? 제가 알아서 다 할 수도 있고, 그만 두더라도 제가 해야 하는 거잖아요.”
“네가 거기서 뭘 해? 거기서 그냥 당하고 있었잖아. 나는 내 사람이 그러는 거 보고 싶지 않다.”
“형.”
“됐어.”
선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별 일도 아닌데 괜히 커다랗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은비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이대로 가면 오히려 그렇게 될 수도 있었고 좋게 풀릴 수도 있었다.
“그럼 나는 간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아무튼 오늘 스케쥴은 없는 날이잖아. 그리고 내가 여기에 와서까지 말을 했는데. 뭐 빠질 수 밖에 없는 거지. 작가님께서 빠질 날은 정해주시겠지만. 아무튼 그럼 나는 간다.”
“형! 형!”
“저기.”
바쁘게 길을 피하고 있는 선재의 앞에 어떤 여자가 우뚝 서 있었다. 고개를 드는 선재의 얼굴은 바로 구겨졌다.
“무슨 일이죠?”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니죠?”
“뭐라고요?”
선재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 있어서 자신에게 예의를 운운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제가 무슨 예의를 어겼다는 겁니까?”
“드라마를 하기로 했다면 무조건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런 식으로 중간에 나가는 것은 드라마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리고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너무 하신 거 아닌가요?”
“하.”
선재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이제 더 이상 얼굴을 볼 것 같지는 않는데, 아무튼 원주연 씨 그런 식의 이야기는 안 되는 거 아닌가?”
“뭐라고요?”
“다 아는데도 내가 거기에 안 찾아간 이유를 알아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천하고, 천박하고, 유치하고, 치졸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원주연 씨 하고 급부터가 다른 사람이야.”
“이봐요!”
주연이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듣자듣자하니 도저히 그녀가 용납을 할 수가 없는 정도의 이야기였다.
“아무리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내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너 뭐라고 했니?”
“네?”
“원주연 네가 아주 제대로 재미있게 노는 구나.”
선재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면서 주연을 바라봤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고 했는데 이 여자에게는 그러한 것이 통하지 않았다.
“너 그러면 재밌니?”
“이봐요!”
“나는 네가 봐도 되는 그런 만만한 사람도 아니거든. 네가 아무리 지금 난다 긴다 하는 것같아도 그런 것이 얼마나 갈 것 같아? 너 네가 생각을 하는 것 보다 짧아. 그리고 지금 네가 누군가에게 주는 상처가 나중에는 몇 배가 넘어서 다시 너에게 갈 수가 있다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하는 거라고.”
“웃기네.”
주연은 코웃음을 치면서 선재를 올려다 봤다.
“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아.”
“마음 대로.”
선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대로 주연을 비켜났다. 주연은 그런 선재를 보며 이를 악 물고 발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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