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은비 씨 오늘 쉬는 날 아니었어요?”
“맞아요.”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희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은비의 앞자리에 앉았다.
“오늘 선재 녀석에게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는 날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일하러 갔어요.”
“네?”
희준이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이 하는 짓을 볼 때는 그런 것과 전혀 상관 없이 열심히 할 것 같은 놈이었는데, 그래도 일은 일이라고 우선이라고 생각을 하는 건가?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거예요?”
“네.”
은비가 귀엽게 혀를 내며 미소를 지었다.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심심하더라고요. 그래서 뭐 딱히 갈 곳도 없고, 채연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고요.”
“흐음. 그래요.”
희준이 팔짱을 끼며 눈썹을 모았다.
“그럼 나랑 같이 나가지 않을래요?”
“네?”
은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희준을 바라봤다. 아니 사장님이 갑자기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어디를 나가요?”
“선재 그 자식이 간 것은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 녀석하고 데이트 하지 못 해서 지금 너무나도 심심하게 생각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대신 놀아준다고요.”
“아니에요.”
은비는 재빨리 손을 흔들면서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바쁘신데 저를 신경을 쓰실 필요는 없어요. 저 여기서 혼자서 노는 것도 너무 재미 있어요.”
“내가 놀고 싶어서 그래요. 나도 놀고 싶은데,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라서 놀아주는 사람도 없거든요.”
“권선재 씨랑 안 놀아요?”
“그 녀석이랑요?”
희준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녀석과 오랜 친구 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 기억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거의 맞지 않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어요?”
“그게 아이러니죠.”
희준의 미소를 보는 은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두 분의 성격이 다르세요?”
“우리 두 사람은 다르다기 보다는 틀리다는 말이 맞을 거예요. 정말로 같은 구석은 하나도 없거든요.”
“그래도 친구라는 것이 참 신기하네요.”
“그러게요.”
희준은 가볍게 동의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을 하기에도 선재와 친구가 된 것은 특이했다.
“그래서 안 나가요?”
“뭘 하실 건데요?”
“우리 밥 먹고 영화나 볼까요?”
“저 돈 하나도 없어요.”
“괜찮아요. 내가 다 쏠게요.”
“오.”
은비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희준을 바라봤다.
“이거 이렇게 얻어 먹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뭐, 알고 나면 선재 녀석이 더 좋은 걸로 보답을 하겠죠? 가서 재킷만 들고 올테니까 기다려요.”
“네.”
희준이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은비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선재의 친구라고 하니 무조건 낯설고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맨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런 싸늘한 느낌 역시 그녀가 잘못 본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 시작을 했다.
“그 녀석이 그랬다고요?”
“네.”
희준은 눈꼬리에 눈물까지 맺으면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완벽한 척을 하는 녀석이 잠을 자고 있었다니.
“그런데 은비 씨를 그 식당에 데리고 갔어요?”
“사장님도 아세요?”
“그럼요. 그나저나 은비 씨를 그 곳에 데리고 갔다는 것은 그 녀석이 은비 씨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 녀석은 자기 마음에 진짜로 들어온 사람만 그 식당에 데리고 가거든요.”
“아 그렇구나.”
은비는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말을 한 것이 그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럼 사장님은 언제 그 식당에 가보셨어요?”
“그 녀석과 알고 난지 10년은 지나서 가게 되었어요. 선재 그 녀석이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에게 되게 밝은 척을 하고 활달한 척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 녀석이 은근히 마음 속으로는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는 녀석이에요. 늘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옆에서 보기에는 너무나도 안쓰럽게 보이는 것도 있고 말이에요.”
“믿기지가 않아요.”
“왜요?”
“아니 그 사람은.”
“다 가져서?”
희준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재를 보면 같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 집안도 부자였고, 연기도 하고 게다가 책까지 흥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겉 모습만 보는 모든 사람들은 선재도 고민을 할 거라는 생각을 못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고, 그 누구보다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이 선재였다.
“네.”
은비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제가 감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도 상처가 있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어떤 건지 물어봐도 돼요?”
“물어는 봐도 되는데 대답은 안 해줄 거예요.”
“왜요?”
“그 녀석이 이야기를 할 부분이니까 말이에요.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니까 그 녀석만 말을 해야죠.”
“아.”
은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티격태격하기는 했지만, 은근히 서로를 배려를 많이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럼 사장님은 그런 모습을 많이 보신 거예요?”
“네.”
희준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을 했다.
“보고 싶지 않은 순간도 많았지만, 아무튼 그 녀석이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까 안타깝더라고요.”
“아.”
은비는 조심스럽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런 상처가 있을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은비 씨가 많이 노력을 해야 해요.”
“아? 네.”
은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뭐야?”
인터넷을 하던 유자가 놀란 눈을 했다. 아들이 방송에서 그만 둔다는 이야기가 인터넷 포털에 걸려 있었다.
“어머, 어머 이게 뭐야. 김집사! 김집사!”
“네, 사모님.”
김집사가 황급히 다가와서 그녀의 옆에 왔다.
“무슨 일이신가요?”
“이, 이거 좀 봐.”
김집사는 유자가 가리키는 화면을 보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이 평소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모르니까 나도 자기 부른 거 아니야. 자기 지금 당장 선재 얘한테 전화 좀 넣어줘. 통화를 해야겠어.”
“예.”
김집사는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다.
‘Rrrrr Rrrrr'
가만히 차에 앉아있던 선재는 휴대전화 액정을 확인했다. 본가였다. 선재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 전화기를 가져갔다.
“네.”
‘아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뭐가요?”
‘드라마에서 왜 하차를 해?’
벌써 기사가 난 모양이었다.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직업은 생각 외로 소문이 빠르게 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밀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불편했다.
“그렇게 되었어요.”
‘왜?’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아버지와는 다르게 늘 그가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해서 동의를 해주면서 박수를 쳐주던 모친이었다. 이번 일에 있어서 선재 못지 않게 당황을 할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들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무튼 그렇게 되었어요.”
‘당장 집에 들어와.’
“엄마.”
‘어서!’
평소와는 다르게 다소 강경한 모친의 태도에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소에는 너무나도 순한 모친이었지만 가끔씩 화를 낼 때면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화를 내면 제대로 내는 사람이었으니까.
“알겠어요.”
‘바로 와.’
“네.”
전화가 끊기고 선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네.”
“이게 뭐야!”
“어머, 여보.”
유자는 당황하며 남편을 맞았다. 남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해서 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그 녀석 지금 어디에 있어?”
“지금 오라고 했어요.”
“어디 그런 일을 마음대로 정해.”
“일단 진정을 하세요.”
“어떻게 진정을 해?”
남편은 넥타이를 약간 헐겁게를 매며 노기를 그대로 나타냈다. 아들 녀석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자꾸만 그의 속을 썩이고 있었다.
“어서 들어오라고 해!”
“어서 들어오라고 했어요. 일단 앉으세요.”
남편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당신 알았어?”
“아니요.”
유자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남편에게 불벼락이라도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남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남편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은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었지만, 남편 역시도 화가 누그러들면 아들에게 화를 내지 않을 테니까 선재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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