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3
“너 이게 무슨 사단이냐! 내게 제대로 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당당하게 말을 한 것이 바로 그제야!”
“죄송해요.”
선재는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확실히 당당하게 말을 했던 것이었는데. 금방 그것이 무너져 버렸다.
“어떻게 된 거야?”
“국장이 그만 두라고 하더라고요.”
“뭐?”
유자는 입을 가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양반은 도대체 너랑 무슨 원수를 진 것이 있다고 너보고 드라마를 그만 두라고 한다니?”
“그러게요.”
“그게 사실이냐?”
“네.”
부친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니 또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로 네가 그만둔다고 한 것이 아니냐?”
“네.”
“그런데 기사가 왜 이렇게 나?”
“아유, 당신도. 이게 어디 얘가 잘못을 해서 그러는 것이겠어요? 다 사람들 떠들기 좋아해서 그러지.”
“좋다.”
부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그만 두거라.”
“아버지.”
“여보!”
“뭘 어떻게 하겠냐? 이미 네 이미지는 나빠졌어. 네가 만일 일을 그만 둔다고 하면 네 편에서 내가 기사를 내도록 노력을 하마.”
“싫어요.”
선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가 저지르게 된 일이었고, 이제 그 역시도 어른이었다. 더 이상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
“당분간은 연기는 하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은퇴나 그러한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그리고 기사는, 아마도 알아서 다들 내게 될 거예요. 제 소속사도 노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에요.”
“그래요. 여보.”
유자가 선재의 편을 들며 선재의 옆에 앉았다.
“당신도 얘가 당신 도움 없이 여기까지 오르는데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그만 두라고 그래요?”
“당신이 계속 감싸니까 얘가 이러잖아.”
“얘가 뭐가 어때서요?”
유자는 조금 당차게 선재의 편을 들었다.
“오히려 당신이 너무 얘의 기를 눌러서 큰 일이에요. 밖에만 나가면 우리 아들을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빛이 난다고 그럽디다. 빛이 난다고 그래요. 그런 아들을 당신은 매일 잡으려고만 하잖아요. 그러니까 얘가 어디서 제대로 기나 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당신도 자꾸만 이 아이 무시하고 누르려고만 하지 말아요. 얘가 당신이 생각을 하는 것 보다 대단한 애라니까?”
“하여간 당신은.”
부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내는 늘 자신보다는 아들의 편을 우선으로 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보자는 거요?”
“알아서 한다잖아요. 대신 아들. 이번이 마지막이야.”
“네.”
“그러니까 당신도 그렇다고 해요. 이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 때는 그만 두게 하면 되는 거고요.”
“지난 번 스캔들도 있잖아.”
“아유, 당신은 쪼잔하게 뭘 그래요?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남자다운 일. 남자다운 일. 바로 이런 일 아니겠어요? 남자답게 지난 일은 그냥 깨끗하게 지워 버리라고요.”
“흐음.”
부친은 가만히 선재를 살폈다. 혼자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은 그 역시도 기특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이야.”
“고맙습니다.”
“올라가거라,”
“네.”
선재는 유자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2층으로 향했다. 부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유자를 바라봤다.
“아니 당신은 어쩌려고 자꾸 저 아이 편을 드는 거요?”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려고 하는 거죠. 당신이야 말로 너무 우리 아들 기를 죽이는 거 아니에요?”
“나 참.”
부친은 당혹스러웠다. 지금 오히려 누가 아들의 신세를 망치고 있는 것인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연극은 어땠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연극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은비였다. 늘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대학로라는 곳은 그녀가 살고 있는 곳으로 부터도 멀었고, 영화 한 번을 보는 것도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영화보다 세 배에서 네 배 정도 비싼 연극은 그저 특별한 사람들이나 보는 문화 행위였다.
“사실은 되게 부끄러운 일인데 연극을 이번에 처음 보는 거거든요.”
“처음이라고요?”
희준이 놀란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어릴 적부터 이러한 것들은 당연히 접하고 자란 희준이었다.
“왜요?”
“멀기도 하고 비싸기도 하고.”
“비싸다고요?”
“사장님은 당연히 안 비싸다고 생각을 하시겠죠. 사장님은 돈이 되게 많으신 분이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조금 고가거든요. 헤헤. 아무튼 오늘 너무나도 감사해요. 좋은 구경도 시켜주시고 말이에요. 게다가 밥까지 얻어 먹고, 너무나도 후한 대접을 받고 있어요.”
“후하긴요.”
희준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은비에게 너무나도 잘해주고 싶은 그였다.
“다른 거 뭐 하고 싶은 건 없어요?”
“네?”
“그러니까 평소에 해보고 싶기는 했는데 감히 할 수 없었던 것? 돈 때문도 좋고, 쪽팔려서도 좋고.”
“풉.”
희준의 입에서 쪽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은비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님도 그런 단어를 사용을 하실 줄 아세요?”
“그럼요.”
희준이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사장님께서 밥도 사주시고, 연극도 보여주셨으니까, 후식은 제가 사도록 할게요. 괜찮으시죠?”
“나야 고맙죠. 아이스크림 어때요?”
“좋아요.”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평소에도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는 편이었다.
“그럼 가죠.”
“네.”
은비가 씩씩한 걸음으로 희준의 뒤를 따랐다.
“아.”
잠시 침대에 누웠던 선재가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까 그대로 은비를 보내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젠장.”
바보 같은 놈.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 난리를 치고는, 이렇게 완전히 잊을 수가 있는 건가?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황급히 전화기를 꺼냈다.
“화가 나지 않았어야 하는데.”
선재가 다급히 전화 번호 1번을 눌렀다.
“젤라또는 처음 먹어봐요.”
“내가 좋아해요. 여기도 프랜차이즈 업체이기는 한데, 그래도 그냥 아이스크림 보다 훨씬 맛있어서. 더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음.”
메뉴는 은비가 자주 가던 곳에 비해서 택도 없이 부족했다. 열 가지 남짓한 메뉴는 서른 가지가 넘는 그곳과는 확실히 달랐다.
“뭐가 맛있어요?”
“여기는 다 맛있어요.”
“그래요?”
은비가 그렇게 검지를 물고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준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아, 선재 그 자식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이 여자에 대해서 좋아한다는 마음을 품게 되는 거였구나. 너무나도 쉽게 선재가 왜 이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는 지가 파악이 되는 그였다. 참 쉽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저는 티라미수요.”
“좋아요. 여기 티라미수랑 쇼콜라요.”
훨씬 부드럽고 촉촉한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은비가 미소를 지었다. 딱 봐도 너무나도 맛있게 생겼다.
“사장님 우리 레스토랑은 왜 아이스크림을 안 팔아요?”
“이상하게 맛을 내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요?”
한 입 먹는데, 입 안 가득 상큼함이 퍼지고 있었다.
“우와 되게 맛있다. 진짜 맛있어요.”
“그렇죠?”
희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이 여자가 기뻐하는 것이 왜 이렇게 행복한지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았다.
‘Rrrrr Rrrrr'
“은비 씨 전화 온 거 아니에요?”
“아, 네. 잠시만요.”
은비는 액정을 확인하고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희준에게 그대로 자신의 휴대전화 액정을 보여주었다.
“선재네요?”
“네. 전화 받아도 되죠?”
“그럼요.”
은비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전화를 받았다.
“네.”
‘지금 어디에요?’
“대학로요.”
‘대학로에는 왜요?’
은비는 잠시 희준을 바라봤다. 그와 함께 있다고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은 모양이었다. 희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사장님이랑 같이 있어요.”
‘희준이 녀석이랑요? 왜요?’
“제가 되게 심심해 보이셨나봐요. 저 놀아주셨어요.”
‘착한 놈이네. 원래 그 녀석이 그런 구석이 없는데. 아무튼 지금 어디에요? 내가 바로 갈게요.’
“오실 필요 없어요. 일 때문에 간 거잖아요.”
‘은비 씨 지금 인터넷 안 되는 구나?’
“네?”
은비가 살짝 목소리를 높이자 희준은 가만히 그녀를 살폈다.
“무슨 일이래요?”
“인터넷이 안 되냐고 묻는데요?”
“인터넷이요?”
희준은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포탈에 접속을 했다. 은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데요?”
‘인터넷만 되면 바로 알 걸요.’
잠시 미간을 모으던 희준은 그대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은비에게로 밀었다.
‘인기 텔런트 권선재. 인기 믿고 안하무인! 드라마 중도하차 선언!’
‘권선재 자의인가? 타이인가? 드라마 하차 네티즌 논란!’
‘담당 프로듀서도 몰랐던 일, 도대체 어디에서 터진 것인가?’
‘권선재 소속사 사실 확인. 하지만 권선재의 잘못은 아니라고.’
‘방송국 폭발. 그럼 누구의 잘못이냐! 시시비비 가리자 나서.’
‘네티즌들. 그 어떤 사유건 중도 하차는 배우의 몫이 크다 목소리 높여.’
은비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일까?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열심히 촬영을 하던 사람인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되었어요.’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요! 그렇게 되었다니.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뭐예요?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고요. 어떤 과정이 있을 거 아니에요?”
‘후우. 그게. 어제 은비 씨에게 급하게 오느라 국장님이 오라는 거 못 갔거든요.’
“아니 사람이 안 갔다고 이런 일을 해요?”
‘이것저것 겹치기도 했고요. 아무튼 내가 잘못을 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비 씨는 그것만 알면 돼요.’
“안 되는 거죠. 어떻게. 이거 되게 큰일이 아닌가요? 내가 방송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죠.”
‘은비 씨. 진정 좀 해요.’
“지금 내가 진정을 하게 생겼어요?”
희준은 재빨리 종업원에게 부탁을 해서 물을 한 잔 받아 은비에게 건넸다. 은비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 단숨에 그것을 들이켰다.
“사람들이 오해도 하고. 아무튼 이건 아니죠.”
‘금방 진정이 될 거예요.’
“금방 진정이 되더라도요. 선재 씨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닌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되게 생각이 없네요.”
‘은비 씨.’
“아무튼 제대로 해결을 해요. 나는 선재 씨가 이러는 거 원하지 않으니까. 일단 지금은 끊어요.”
은비는 전화를 끊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일까?
“사장님은 무슨 일인지 아세요?”
“아니요.”
‘Rrrrr Rrrrr'
다시 전화기가 울리자 은비는 베터리를 분리해 버렸다. 당황스러웠다. 이 사람이 갑자기 더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니까 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더욱 두렵고 낯설게 느껴졌다.
“전화 받지.”
“놀라서요. 무슨 일일까요?”
“아마도 큰일은 아닐 겁니다. 그 녀석이 고집이 센 일이 있어서 나이가 드신 분들하고도 부딪히곤 하거든요. 융통성이 없는 녀석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그런 걸 테니까 그리 걱정을 하지는 않으셔도 될 거예요.”
“그래도.”
은비는 살짝 아랫입술을 물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역시 저는 아닌가 봐요.”
“네? 그게 무슨.”
“선재 씨랑 말이에요. 같이 있으면서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아니에요. 이 사람은 정말로 저랑 너무나도 멀리에 있는 사람이에요. 감히 손도 댈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잊으려고 했었어요. 바보 같이. 다른 사람인 걸 잊고.”
“은비 씨.”
희준은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갔다. 아마도 스케쥴보다 은비를 우선으로 하다가 이런 사단이 났을 거였다. 선재 자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녀석이었고, 그걸 크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선재 녀석이 왜 그런 건지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일단 무슨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은비 씨를 우선에 두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요.”
“그래도요.”
은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일을 그만 둔 것 만으로도 대한민국이 모두 들썩거려요. 너무나도 다르다고요.”
“그런 건 신경을 쓰지 말아요.”
희준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꾸하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결국 그러한 것들은 다 겉으로만 보이는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죠. 선재라는 사람을 파악을 할 때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그러한 모습은 보지 마세요. 그러면 결국 선재의 가장 좋은 모습은 볼 수가 없으니까 말이에요. 은비 씨가 선재를 볼 때는 선재의 보이는 모습만 보세요. 은비 씨가 볼 수 있는, 은비 씨가 생각을 하기에 그것이 진짜 선재의 모습이다. 그러한 것만 봐요. 절대로 은비 씨의 생각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거기에 덧대어 보지 말고요. 알았죠?”
“네.”
은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블로그 창고 > 라.남.밥.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4-1] (0) | 2011.01.22 |
---|---|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3-2] (0) | 2011.01.21 |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2-2] (0) | 2011.01.19 |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2-1] (0) | 2011.01.18 |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1-2] (0) | 2011.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