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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3-2]

권정선재 2011. 1. 21. 07:00

 

하아.”

선재는 무릎을 안으며 자리에 앉았다. 마음이 답답했다. 은비가 왜 이렇게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일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가 잘못을 한 것은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집에 데려다주고 싶은데.”

아니에요.”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놀아준 것만 하더라도 너무나도 고마운데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여기 지하철 역도 있는 걸요.”

그럼 동대문역까지라도 데려다 줄게요. 환승을 하기 까다로울 텐데.”

괜찮아요. 한 정거장만 가서 갈아타면 되는 걸요. 그리고 사장님은 다시 레스토랑에 가신다고 했잖아요.”

혜화에서 동대문이 뭐 멀다고.”

됐어요.”

희준은 더 이상 그녀에게 권하지 않았다. 그가 권한다고 해서 그녀가 들을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더 미안하게 생각을 할 터였다.

그럼 내일 보죠.”

, 들어가세요.”

희준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은비는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 역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 때문일까?”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다.

 

멍청한 놈.”

희준은 낮게 욕설을 하며 귀에 핸즈프리를 꽂았다. 선재 녀석에게 한바탕 쏟아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여간 기회도 제대로 못 잡아요.”

희준은 전화기의 즐겨찾기 버튼을 눌러서, 선재와 통화하기를 터치했다.

 

‘Rrrrr Rrrrr'

전화벨 소리에 설마? 하던 선재는 바로 얼굴을 구겼다. 역시나 은비의 전화는 아니었다. 그래도 희준의 전화인지라 선재는 전화를 받았어요.

무슨 일이냐?”

너야 말로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대한민국이 온통 네 이야기로 도배가 된 거냐?’

그러게.”

선재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마음이 복잡하니 아무런 것도 생각을 하고 싶지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내가 모든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세상이 떠들어 대고 있네.”

정말 너는 아무 것도 안 했어?’

.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

뭐가?’

어제. 사실은 국장님이 나를 좀 보자고 했거든. 아마도 드라마를 연장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이야. 그런데 내가 은비 씨를 보러 가는데 너무 늦어서 마음이 급했잖아. 그래서 그냥 오ᅟᆞᆻ지.”

잘하는 짓이다.’

희준의 핀잔을 들으니 그래도 조금은 힘이 나는 선재였다.

은비 씨는?”

들어갔지.’

? 안 데려다 준 거야? 시간이 얼마 안 되었는데?”

내가 왜 데려다 주냐? 나는 은비 씨랑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그 사람도 네 기사 보니까 마음이 이상한가 보더라.’

?”

너랑 더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대.’

?”

선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침대에 앉았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내가 왜 다시 다른 사람으로 느껴져? 내가 도대체 뭘 어쨌다고 말이야.”

자기는 회사에서 잘린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 아니야? 수많은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자 중에 하나일 뿐이니까. 하지만 너는 너무나도 큰 관심이 가잖아. 아마도 거기서 너랑 자신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생각이라도 하게 된 모양이야. 꽤나 당황한 모양이더라고.’

젠장.”

그 생각을 또 못하고 있었다. 은비는 자신과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자꾸만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보냈어?”

그럼 내가 어떻게 하냐? 최대한 좋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은비 씨가 정의를 내릴 문제야.’

미치겠네.”

선재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그래서 정말로 그만 두는 거냐?’

.”

선재는 다소 쾌활하게 들릴 수도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드라마 힘든 거 너도 알잖냐? 이제 소설이나 쓰면서 조용하게 살려고 그런다.”

미친 놈.’

희준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너 드라마 하겠다고 개고생 한 거 다 잊었냐? 너희 아버지가 너 내쫓으려고 하고, 얼마나 힘이 들었냐?’

그랬지?”

그 시절을 생각을 하니 그냥 힘이 들었구나. 라는 생각만이 자꾸만 들었다. 아버지는 그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있었다. 소설을 쓰는 것만 하더라도 미워 하고 계셨는데 드라마라니. 아직까지도 회사에 들어오라고 성화신데, 그 시절에는 더 하신 분이셨다. 아버지가 여기저기를 막는 바람에 그는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부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꽂아준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연기력 논란도 시달렸다. 그 모든 것을 딛고, 결국 자신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랐기에 희준의 욕설은 당연했다.

안 아깝냐?’

아깝지.”

너 그거 은비 씨 때문이잖아. 은비 씨 너 미안해서 다시는 못 볼 지도 몰라. 잘 해결을 해.’

이미 내 손을 떠났어. 그리고 기사까지 나고 방송국에서도 조용히 안 있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냐?”

네가 숙여.’

? 내가 뭘 숙여?”

네가 먼저 기사를 내라고. 사소한 해프닝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절대로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해.’

내가 왜?”

은비 씨 안심을 시키려고.’

하아.”

선재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은 평범하지 않고 너무나도 특별했다.

일단 생각을 해보고.”

생각을 하기는 무슨. 아무튼 그럼 운전 중이라 끊는다.’

그래.”

선재는 전화를 끊고 옆으로 전화기를 던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은비가 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미치겠네.”

일부로 소소한 데이트 장소까지도 골라서 그녀를 데리고 간 거였는데, 이래서는 모두 공염불이 될 거였다.

희준이 자식 말을 들어야 하나?”

선재는 눈을 감고 손을 이마에 얹었다.

 

하아.”

기사를 살피고 있는 은비의 입에서는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기사들은 나름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중립이 아니었다.

이거 큰일이네.”

별로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또 이런 댓글들을 보니 그가 안쓰럽게 생각이 되기도 했다.

하아.”

전화기를 잡았다가 내려놓는 것이 벌써 몇 번인지 몰랐다.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감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은비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후우.”

선재는 다시 일어나서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잠시 통화음이 흐르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

집이요.”

미친 놈. 당장 사무실로 들어와.’

그게요.”

소속사 실장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머리가 복잡했다. 도대체 어떻게 처리를 해야 잘 넘어갈 수 있을까?

혹시 기자회견 가능해요?”

기자회견? 그건 또 왜?’

사실을 이야기를 해야죠.”

너 그러면 연예인 못 할 수도 있어. 네 매니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들었다.’

그러니까요. 부탁해요.”

아유, 나는 모르겠다. 알았어.’

문자 주세요.”

전화를 끊고 선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은 역시 정면 돌파가 가장 좋은 일이었다. 숨기는 것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