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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4-2]

권정선재 2011. 1. 23. 07:00

 

여기까지 와주셔서 모두 감사합니다.”

선재는 일단 미소를 지으면서 운을 뗐다. 기자회견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기싸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절대로 물러나면 안 되는 거였다.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기자회견의 수칙이었다.

제가 왜 기자회견을 하는지 아시나요?”

기자들은 조용했다. 선재는 물은 한 모금 마시고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월화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의 손이 조금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선재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 사람들은 하이에나였다.

그런데 그것이 제 의사가 아닙니다.”

잠시 멈췄던 타자들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서는 아시는 분들도 몇몇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혹시나 모르시는 분들도, 카더라 통신이라는, 그 뜬 소문을 듣고 사실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것들.”

선재는 잠시 말을 끊고 사람들을 둘러봤다. 기자들이 자신의 입에서 떨어질 말만을 기다리며 타자를 두드리기를 원하는 것을 보는 마음이 꽤나 통쾌했다. 이 재미에 기자회견은 즐거웠다.

방송국 측의 의견이었습니다.”

선재의 말이 이어지자 기자들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저는 드라마에서 하차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마지막까지 어떻게 하면 드라마를 완성도 있게 끝을 맺을 수가 있을까? 그 사실 하나만을 너무나도 고민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는 제가 그 드라마에 대해서 연장을 하기를 바라더군요. 하지만 제 팬 분들이나, 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실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선재는 카메라 렌즈를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는 절대로 연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연장은 결국 드라마를 죽이게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드라마를 사랑을 해서 연장을 한다고 하지만 드라마를 연장을 하게 되면 확실히 그 재미가 떨어지고, 그 가운데 시청자들도 지치게 됩니다. 결국 그 드라마는 예전만큼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국은 드라마를 연장을 시키고 싶어 합니다. 왜냐고요? 돈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돈이 그리 필요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들 그것은 잘 알고 계시죠?”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이상하게 기사가 나간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돈 때문이라는 의혹은 지우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하차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개 잠시도 고민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폭탄 하나로 끝이 난 줄 알았던 기자들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선재의 입을 바라봤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의 손은 더욱 바빠졌다.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싫은 건 아닌데, 아무튼 아직까지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믿을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주려고 합니다. 시간을 두고, 잠시 그 사람을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하차 흔쾌히 받았습니다.”

선재는 남은 물을 모두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이 드라마의 하차는 제가 결정을 한 것이 아니지만, 결국에 제가 결정을 한 것입니다. 나가라는 말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깨끗하게 손을 턴 것이 바로 저이니까요. 다만 여러분들이 아시고 계시는 이야기는 이것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만, 그것은 말씀을 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건.”

선재는 카메라 렌즈를 보면서 싸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누군가의 인생을 처절하게 망가뜨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 뭐야?”

주연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선재가 이야기를 하는 망가질 인생은 아마도 자신을 지칭하는 것인 모양이었다.

웃긴 사람이네.”

그러게.”

하지만 주연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선재의 말처럼 선재가 입이라도 잘못 놀린다면 모든 것이 다 허사로 돌아갈 일이었다.

오빠 채널 돌리지?”

, 그래.”

주연의 매니저는 황급히 채널을 돌렸다. 주연은 태연한 척 하며 안무실로 발걸음을 돌렸지만 그녀의 마음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자 그럼 질문을 받겠습니다.”

기자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선재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기자를 가리켰다.

질문을 해주시죠.”

그 여성분은 어디서 만나신 겁니까?”

그건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면 바로 알 수 있는 곳에 근무를 하고 있거든요.”

혹시 재벌가의 따님이십니까?”

아닙니다.”

선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얽힌다면 당연히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터였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재벌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예인도 아닙니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백조에 불과합니다.”

교제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제로요.”

?”

선재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교제한 기간에 대해서 물은 기자를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기자님 말씀 똑바로 못 들으시는 재주가 있으시죠? 제가 언제 누군가와 사귄다고 말씀을 했습니까?”

, 아니요.”

그러니까요.”

선재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저는 그저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저와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맨 처음 그 사람은 심지어 저를 알아보지도 못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그러한 것과는 전혀 상관 없이 저는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기에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그럼 드라마는 영구 하차를 하시는 겁니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으니 아무래도 하차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쉰 뒤에는 다시 좋은 작품으로 찾아뵈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소설을 쓰면서 드라마를 찍느라 굉장히 고생을 했거든요. 여러 가지 가십에도 오르고 말이죠. 그래서 이번 자의 반 타의 반 하차 이후에 그 동안 제대로 하지도 못했던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방송국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온르 기자회견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방송국에 타격이 갈 것 같습니다.”

이런 일 비일비재합니다.”

선재는 갑자기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면서 대꾸했다.

저와 같은 연기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인 배우들.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는 분들. 너무나도 많이 당하는 일입니다. 대본 리딩까지 다 끝나고요. 모두 얼굴도 익히고 이제 촬영만 가면 되는데 연락이 안 오는 겁니다. 그래서 전화를 해보니 배우가 바뀌었답니다. 하지만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힘이 없으니까. 다들 제가 힘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을 하시죠? 하지만 저 힘 없습니다. 일개 연예인과 방송국이 어디 같나요?”

 

, 저 망할 놈.”

드라마 국장은 목뒤를 잡으며 방송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 저 녀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자신과의 드라마 계약을 해지를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쁘지 않다네요.”

젠장.”

국장은 입술을 비틀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어린 놈 기나 꺾으려고 했는데.

똑똑

누구야?”

여비서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저기 사장님께서 호출을 하셨습니다.”

?”

국장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사장님이 왜?”

당장 오시랍니다.”

이런.”

국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재빨리 국장실을 빠져 나갔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 여자 분과 결혼이라도 하실 생각이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저야 뭐.”

선재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자 기자들도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말씀을 드렸잖아요. 저는 그 사람을 무지하게 좋아하고 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제가 청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되게 이른 시기이고. 사실 저희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럼 여자 분이 받아만 주신다면 청혼을 하실 생각도 있으시다는, 그런 의도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선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기자회견은 단순히 드라마에서 하차를 하게 되는 것을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도 말씀을 드리려고 한 겁니다. 앞으로 저에게 여러 가지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선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오늘은 사실 이런 걸 하고 싶은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데이트 날이었거든요.”

선재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 사람은 저와 다르게 일주일에 딱 하루만 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쉴 수 있는 그 하루를 너무나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만, 오늘은 그 상황이 제대로 되지 못해서 이루어주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의 소중한 하루를 제가 마음대로 망가뜨린 것 같아서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대신.”

선재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다음 주는 정말로 제대로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당신이라는 사람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지게 해줄 테니까 기대해요.”

선재는 그리고 살짝 윙크를 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 , 저거 봤어?”

.”

은비는 그저 멍하니 방송만 바라봤다.

그러니까 저거 지금 내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럼. 저 사람이 지금 네 이야기 말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저기에서 할 리가 있겠냐? 너 좋겠다.”

채연이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너 완전 좋겠다. 아니 어떤 남자가 자기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데 저렇게 행동을 한다니?”

저게 좋은 거야?”

은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채연을 바라봤다. 그녀의 생각에 저것은 전혀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나쁜 거잖아. 되게 무책임하고.”

무책임해?”

채연이 뜨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너는 도대체 저 행동 어디에 무책임함이 묻어난다는 거야? 너를 좋아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안 보이니?”

, 그런 건 아니지만.”

은비는 텔레비전을 끄면서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생각 외로 저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진심인 모양이었다.

나 어떻게 하니?”

뭘 어떻게 해?”

저 사람이 저러면 나는 저 사람을 밀어내고 싶어져. 사실 저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거든? 그런데 이상하게 저 사람이 나를 좋다고 하면 말이지. , 이 사람은 내가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막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을 밀어내고 싶어져.”

너 정말 특이해.”

그러니까.”

채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낯설어서 그런 거 아니야?”

낯설어서?”

사실, 너 선재 씨가 꼭 연예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연애 자체가 처음이잖아. 게다가 완전 덜렁이고 말이야.”

그거 칭찬이야?”

객관적인 입장.”

채연은 손가락까지 들어보이면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러니까 너는 지금 긴장이 되는 거야. 저 사람은 너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니까 말이야. 사실 생각을 해 봐. 권선재 씨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너 남자 자체가 처음이잖아. 저런 사람이 진짜로 좋은 사람인지, 그런 것도 제대로 판가름도 못 하잖아?”

, 그렇지.”

은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해보니까 채연이 하는 말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좋은 부분만 보자는 거야. 긍정적인 마음 가짐. 오케이?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면 네가 걱정을 하건, 걱정을 하지 않건 무조건 생기는 거라니까? 그런데 그 일을 미리 걱정을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 그러한 일은 그냥 닥치면 그 때 알아서 해결을 하면 되는 거야. 안 그래?”

모르겠다.”

은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눈을 감았다.

 

형 지금 어떻게 해요?”

.”

매니저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사고를 칠 것 같다. 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의 사고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 전화가 오고 난리라고요.”

그러라고 하지 뭐.”

실장님도 지금 엄청 바빠지셨어요.”

내가 왜 소속사가 있는 건데.”

선재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매니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게 다, 나의 일들에 대해서 부탁을 하기 위해서 있는 거 아니야. 안 그래? 되게 미안하게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언젠가 터질 일이라면 차라리 내 입으로 터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해.”

하지만.”

잘 했어.”

매니저와 살짝 목소리가 높아지려는 찰나 실장이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선재에게로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너 멋있더라.”

고마워요.”

그래, 네 말대로 빙빙 돌리는 것 보다 이쪽이 더 시원하게 터진 것 같다. 물론 네가 무책임하다는 여론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일단 네가 먼저 그만 두겠다고 한 것이 아니니까 그 쪽도 살짝은 죽었고, 또 네가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니까 관심 역시 그리로 많이 흘러갔고 말이야.”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아무튼, 그런데 누구냐?”

비밀이에요.”

선재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찡긋했다.

아무튼 저는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거죠?”

그래 당분간 쉬어. 너 그동안 무지하게 바빴으니까. 그래 휴가. 휴가라고 생각을 하면 되겠다.”

되게 찝찝한 휴가네.”

찝찝하더라도. 잘 들어가라.”

.”

매니저가 자신을 따라오려고 하자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휴가니까 너도 이제 당분간 휴가야.”

! !”

선재는 바쁘게 그 자리를 피했다. 은비의 생각이 잠시 났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희준이가 보고 싶었다.

차희준.”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