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지금 뭐예요!”
홀에 한 여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주방 식구들도 놀라서 모두 홀을 바라봤다. 한 여자 손님이 화를 내고 있었다.
“이게 보입니까?”
“네.”
매니저는 바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요?”
여자는 기이한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딱 봐도 그리 손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세제가 지금 접시에서 나왔어요!”
“뭐 세제?”
“은비 씨.”
“네?”
접시를 닦던 은비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저거.”
은비는 밖을 바라봤다. 한 여자가 매니저를 닦달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일류 레스토랑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다는 겁니까? 이게 말이나 됩니까?”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냐고요?”
여자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손님 명부를 확인을 해봐요. 내가 이 레스토랑에 하루이틀 오는 손님인가 말이에요. 내가 얼마나 단골인데! 도대체 나에게 이런 대접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만만한가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자주 나타나는, 그리고 고급 요리만 시키는 통이 큰 손님이었다.
“요즘 안 그래도 식당들마다 위생이 어쩌니 저쩌니 말도 많은데, 그래도 여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곳이 동네에서 하는 백반집도 아니고 유명한 이태리 레스토랑이잖아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암 없어야죠.”
여자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매니저를 노려봤다.
“제가 나가봐야 할까요?”
“됐어요.”
요리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은비가 나간다고 해서 뺨이나 맞지 좋은 일은 안 생길 거였다.
“그래도 매니저님이.”
“저 분은 원래 저거 하는 분이니까 괜찮아요.”
“세인 씨.”
세인은 은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세인의 말대로 나가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을까요?”
“네.”
세인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는 조심스럽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러니까 설거지를 똑바로 해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식당 매니저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컴플레인은 들어봤어도, 접시 밑에 세제가 남아 있어서 불쾌해서 참을 수가 없다는 컴플레인은 살다살다 처음이었다. 설거지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을 사장님은 도대체 왜 아직도 자르지 않고 계시는 걸까?
“그만 하시죠.”
“세, 세인 씨.”
“이 요리사님. 그래도 뭐라고 할 부분은 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손님이 화를 내고 가셨다고요.”
“그게 뭘요.”
세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의 앞에 섰다.
“원래 그런 손님들이 어떤지 매니저 님이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 사람들 컴플레인 거는 이유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그렇게 하면 뭐라도 떨어질까 그런다는 거, 다 아시는 분이 그렇게 촌스럽게 구신다. 은비 씨 이제 그만 잡고 보내주시는 거 어때요?”
“저는 괜찮아요.”
“괜찮기는.”
세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은비를 살폈다.
“매니저 님. 그리고 조은비 씨는 우리 주방 소관이잖아요. 잘못을 한 것이 있으면 쉐프와 말을 해야죠.”
“아무튼 이건 저희 쪽으로 들어온 거잖아요. 자꾸 이렇게 주방 파트랑 서빙 파트랑 나눌 겁니까?”
“아니요.”
세인은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이쯤하면 충분했다는 거예요. 저희도 너무나도 죄송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하더래도, 조은비 씨는 주방의 사람이니까 말이에요. 쉐프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말씀 전해드리래요.”
“좋아요.”
매니전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요. 접시가 깨지건 말건 그런 건 내가 신경을 쓸 바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일이 또 발생을 한다면 사장님께 공식적으로 말을 할 거예요.”
“죄송합니다.”
은비가 허리를 숙이고 일어났을 때는 매니저가 사라진 뒤였다.
“고마워요.”
“고맙긴요.”
세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많이 놀랐죠?”
“아니요. 제가 잘못을 해서 혼이 난 건데요. 생각 외로 제가 실수가 많은 편이라서 저도 놀랐어요.”
“은비 씨 잘못이 아니에요.”
“네?”
은비가 살짝 고개를 들어서 세인을 바라봤다.
“그럼 그게 누구 잘못이에요?”
“주방의 잘못이죠. 그리고 서빙의 잘못이기도 해요. 음식을 접시에 담았을 때나, 서빙을 할 때 그 정도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접시의 위쪽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까. 접시 아래쪽에 아주 살짝 그런 거니까. 은비 씨가 너무 상심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심한 참견인가?”
“아니요.”
은비가 겨우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왜 이렇게 여럿에게 피해를 주면서 사는 것일까?
“그래도 잘 하고 싶었거든요. 그냥 아르바이트로 하는 거라도 정말 열심히 하자. 나는 요리사가 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인 씨의 말처럼 주방에서 일을 하는 식구이니까. 나도 이제 주방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주방에 적어도 폐는 되지 말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실수에요.”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손을 갑자기 은비의 눈앞에 밀었다.
“이게 무슨?”
“손을 봐요.”
세인의 손은 여기저기 흉터가 가득했다. 불에 데인 자국, 칼에 베인 자국, 정말 다채로운 상처의 향연이었다.
“내가 손끝이 여물지가 못해서 요리를 잘 못해요. 그래서 주방에 폐를 끼치기도 참 많이 끼쳤죠. 은비 씨는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직업이 아닐 테니까, 그 일을 무조건 열심히 해라! 이렇게 말은 못 하겠어요. 그래도 내가 생각을 하기에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으면 괜찮은 거 같아.”
“그럴까요?”
“그럼요.”
‘Rrrrr Rrrrr'
때마침 울리는 전화기를 보니 선재였다. 미안해하는 은비의 표정을 보며 세인이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디너 준비하러 갈게요. 쉬어요.”
“고맙습니다.”
은비는 멀어지는 세인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고, 그가 주방에 들어가자, 그제야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네. 받았어요.”
‘되게 늦게 받네. 바빠요?’
“아니요. 바쁘지는 않아요.”
반가웠다. 이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어떻게 된 것일까? 묻고 싶었지만 감히 물을 수는 없었다.
“괜찮아요?”
‘역시 사고를 치기를 잘 했네. 은비 씨가 나를 다 걱정을 해주고, 이거 엄청나게 뿌듯한 걸요?’
“지금 장난이 나와요?”
‘뭐 심각한 일이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니까 은비 씨도 그렇게 크게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은비 씨가 그렇게 부담스럽게 생각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걱정이 안 돼요.”
자신이 왜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재와 통화를 하니 자꾸만 화가 나려고 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답답하게 굴어요. 정말 바보 같아. 옆에 있는 사람 제대로 볼 줄도 모르죠?”
‘네?’
“걱정했어요.”
은비는 결국 가슴에 담은 말을 내뱉었다.
“나도 내가 왜 선재 씨를 걱정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우리 두 사람 아무 것도 아니잖아. 정말 아닌데, 나는 권선재 씨에게 내 곁을 허락을 한 적은 없는데, 그래도 걱정이 되었어요. 도대체 나라는 사람이 뭐라고 그런 일까지 저지르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걱정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선재의 떨리는 음성이 저 편에서 들렸다.
‘되게 많이 걱정을 했어요. 은비 씨가 화를 내지는 않을까? 그렇게 일방적인 고백을 좋아하기나 할까? 그리고 혹시나 은비 씨 때문에 내가 그만 둔 거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아무튼 그런 건 다 지워요. 나는 이제 은비 씨 하나만 생각을 하고 싶어.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일단 뭐 일을 안 해도 먹고 살만 하기도 하니까. 은비 씨도 그 점은 알죠?’
“하여간 못 됐어.”
자신을 달래주기 위해서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은비는 선재에게 더더욱 미안한 마음만이 들었다.
“되게 미안해요. 이 남자에게 내가 왜 이렇게 폐만 끼치는 걸까 너무나도 미안해요. 그래서 나 이제 당당하게 되려고요. 권선재 씨. 오늘 데이트 반나절 밖에 못했으니까 우리 이틀 하고도 반나절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거예요.”
‘네?’
“바보.”
선재가 바로 듣지 못하자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앞으로 일주일, 또 이주일, 그리고 나서 삼주일 정오가 될 때까지 연애를 하는 거라고요.”
‘지, 진짜요?’
선재가 믿기지가 않는다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러니까 3주의 연애 기간을 4주로 늘리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거 지금 나 놀리는 거 아니죠?’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보여요?”
‘아니요.’
“그런데 왜 놀리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안 믿기니까.’
선재의 목소리는 확실히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라는 여자가 확실히 이 남자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까?
‘그냥 이러는 거 연애하면 안 되는 건가?’
“당연하죠.”
다시 장난스럽게 변한 선재의 목소리에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짐짓 엄한 어조로 대꾸했다.
“이거 말 타자 종 부리는 격이네.”
‘오호 문자까지.’
“아무튼 드라마는 계속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에요. 그리고 그건 은비 씨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더 멋진 남자여야 은비 씨가 나를 세우기에 부끄럽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뭐, 4주 짜리로는 괜찮아요.”
‘쿡.’
선재의 웃음을 들으니 정말로 다행인 모양이었다.
‘오늘부터는 일도 없으니까 꼭 퇴근을 할 때 데리러 갈게요.’
“기다릴게요.”
‘들어가요.’
“네.”
은비는 전화글 끊고 전화를 품에 안았다. 설렜다.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점검 안 할 겁니까?”
세인은 엄한 표정으로 주방 식구들을 바라봤다. 막내 요리사들은 모두 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주방 물론 쉐프가 담당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미리 다 점검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조은비 씨. 누가 뭐래도 주방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그냥 둘 겁니까?”
“부주방장님은 왜 그러시는 겁니까?”
요리사 중 하나가 억울하다는 눈으로 세인을 바라봤다.
“그 여자는 주방에 아무런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고요. 그런 사람이 뭐라고 그렇게 감싸주시는 겁니까? 그리고 주방의 책임이라고요? 설거지는 분명히 그 여자 담당이고, 그 여자는 주방과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이 없다고요?”
세인은 이마를 짚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로 그런 사고가 오늘을 만든 거 아닙니까? 이 주방에서 부주방장은 저입니다. 비록 런치 쪽 위주이고, 디너는 거의 담당하지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나마 제가 부주방장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부주방장도 조은비 씨를 주방 식구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아니라는 겁니까?”
“그래도 이건 심하잖아요.”
“맞아요. 너무 심해요.”
“접시를 깨는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고 말이에요.”
“후우.”
세인은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주방 사람들이 은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꽤나 안 좋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다들 하다보면 잘 하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처음보다 접시를 깨는 것도 줄어들었잖아요. 그것만 보더라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안 보이나요?”
“그래도 부주방장님.”
“그래도가 아니잖아요.”
세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려고 노력을 했다.
“아무튼 식구라는 겁니다.”
“결국 주방사람이 안 될 거 아닙니까?”
“그래도 지금은 봐야죠.”
“쉐프도 동의를 하신 거라서 이러시는 겁니까?”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럼 뭐가 중요하다는 겁니까? 쉐프가 이 주방의 총 주방장인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부주방장님은 너무 조은비 씨의 편만 들어주세요.”
“그만.”
세인은 가만히 손을 들어보였다. 멀리 은비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튼 믿어주자고요. 같이 일을 하는 동료니까. 오케이?”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세인은 은비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모두를 해산시켰다. 은비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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