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 씨 서요.”
“싫어요.”
“은비 씨.”
세인은 거칠게 은비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는 은비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참 약한 사람이었다.
“은비 씨가 왜 울어요? 아까 상황을 봐서 울어야 할 사람은 은비 씨가 아니라 사장님 같은데 말이에요.”
“서러워서요.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아줌마 다시 요리도 받아서 잘 먹고 갔잖아요.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잖아요. 기계에 넣고 나서도 그런 건데, 왜 나에게 이래요?”
은비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잘못을 한 건 알아요.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나니까. 그 많은 그릇들, 전부 내가 책임이니까. 깨먹은 것도 많고, 안 그래도 밉게 보인다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혼을 내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도 주방 식구들 미안한데 왜 그래요?”
“아마도 저 때문일 거예요.”
“네?”
은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세인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인 씨 때문이라니?”
“결국 이게 힘싸움인데, 레스토랑은 홀과 주방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야만 돌아갈 수 있어요. 어느 한 쪽이 잘나도 그건 안 되는 거죠. 두 쪽이 모두 힘을 가져야 무시를 하지 않고 존중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나는 은비 씨를 데리고 왔으니까, 그 기본적인 규율을 어긴 거죠.”
“그렇다고 그렇게 쉐프를 무안을 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쉐프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사장님도 알 거예요. 하지만 주방에서 개입을 한 거잖아요. 그리고 주방의 총 책임자는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쉐프에요. 그러니까 주방에서 먼저 홀의 권한을 넘어선 거니까, 사장으로도 주방의 권한을 넘겠다는 이야기에요. 쉐프의 고유 권한인 쉐프의 메뉴를 걸고 넘어진 거죠.”
“다 제 실수 때문이네요.”
은비가 눈물을 닦으며 허탈하게 말을 했다.
“제가 사고만 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을 거 아니에요? 제가 진짜 여러모로 민폐만 끼치네요.”
“민폐는 무슨. 그럴 수도 있어요. 다들 실수를 하는 거지.”
“그래도요.”
세인이 은비를 이끌어서 자리에 앉았다. 은비는 많이 작았다.
“은비 씨의 말처럼 사소한 실수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사장님도 다 실수를 하는데요.”
“실수가 크니까 그러죠.”
“괜찮아요. 그러니까 돌아가요.”
“아니요.”
은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선재에게도 미안했고, 쉐프에게도 미안했고, 희준에게도 미안했다. 자신은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곳이 주방이었다.
“애초에 맞지 않는 곳이었어요. 잠시 돈을 만들기 위해서 한 일이니까. 제가 그만 둔다고 해서 큰일도 안 생기고 말이에요.”
“그럼 다른 사람 생길 때까지만.”
“세인 씨 왜 이래요?”
은비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세인을 바라봤다.
“그런 소리를 하고 나왔는데 제가 거기서 어떻게 일을 해요? 아니에요. 저 그냥 그만 두는 게 나아요.”
“은비 씨.”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편이 훨씬 더 간단한 일이었다.
“미안해요. 저를 도와주셨는데.”
“아닙니다.”
세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다시 만나요.”
“네.”
은비가 고개를 숙이며 멀어지는 것을 보며 세인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희준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신이 잘못을 한 것은 아니었다. 주방이 홀을 무시했으니 같이 해주는 것이 당연했다.
“왜 나한테만 그래?”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은비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 여자가 자꾸만 자신에게 신경을 쓰이게 하고 있었다.
“뭐야 그 여자.”
답답했다. 그리고 갑갑했다.
‘Rrrrr Rrrrr'
“여보세요.”
‘나에요.’
“은비 씨.”
옷을 고르고 있던 선재가 놀라서 바로 자리에 앉았다. 은비가 먼저 전화한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를 했어요?”
‘지금 바빠요?’
“아니요. 하나도.”
‘그럼 잠시 볼 수 있어요? 어제 못 했던 데이트 오늘 마저 하고 싶은데. 선재 씨만 괜찮다면 말이에요.’
“저야 괜찮죠. 금방 나갈게요. 레스토랑으로 가면 되는 거죠?”
‘아니요. 저희 집 앞 카페에 있을게요.’
“네? 네.”
전화를 끊고 선재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카페에 있는다는 거지?”
아직 레스토랑에 있을 시간인데? 선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지갑을 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요.”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서점에 들려서 평소에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책도 한 권 구매하고 온 길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보자고 했어요? 지금 레스토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아직 안 끝나는 줄 아는데.”
“그게. 그만 뒀어요.”
“네?”
선재는 놀란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레스토랑을 왜 그만 둬요?”
“어차피 잠시 하려고 한 거였으니까요. 거기서 더 있으면 그곳이 진짜로 내 직장이 될 것만 같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는 곳이잖아요. 잠시만 있는 곳이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나왔어요. 잘했죠?”
“그게.”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은비의 말처럼 은비는 접시를 닦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그녀의 말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이야기는 놀라웠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갑자기 그곳을 나올 리가 없는 거잖아요.”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인데요?”
선재가 미간을 모았다. 설마 희준이 자식이 자신이 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슨 해코지라도 한 것일까?
“선재 씨 때문에 불편해서요.”
“네?”
선재의 얼굴이 살짝 굳자 은비는 재빨리 손을 저었다.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선재 씨 때문에 사장님이 전처럼 저를 마구 부려먹지 못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도 불편하고, 그래서 그만 두기로 했어요. 어차피 그만 두어야 하는 거 조금이라도 빠르게 그만 두는 것이 더 좋은 편인 것 같아서요. 내가 잘못한 것 같아요?”
“아니요.”
선재는 곧바로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은비 씨가 더욱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그만 두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보고 누가 잘못했다고 할 사람이 있나요? 없을 거예요. 잘 한 거예요. 너무나도 잘 한 거니까 이상한 생각을 하지 말아요.”
“고마워요.”
은비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나는 선재 씨가 그렇게 말을 해주기를 바랐어요. 사실 웃기잖아.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잖아요.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응원을 해주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이 난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누군데요?”
“권선재 씨.”
은비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요.”
“진짜죠?”
선재가 흥분을 하며 바로 반문했다.
“진짜로 그 말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사람이 나였던 거죠? 채연 씨가 아니라 바로 내가 생각이 난 거죠?”
“네.”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힘을 주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왜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남자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 남자가 자신에게 큰 모양이었다.
“그래도 괜찮은 거죠?”
“그럼요.”
선재도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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